'강력사건 1번지' 경기서남권서 사라지는 여자들 추적

잔혹범죄 사각지대…터졌다하면 ‘충격’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수원·화성·안산 등 경기 서남권의 경우 잔혹범죄가 끊이지 않아 위험도가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지역주민들의 범죄불안감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수원역 인근에서 실종된 한 여대생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2004년 화성 여대생 실종사건과 유사해 눈길을 끈다. 이번 사건과 함께 그간 경기 서남권에서 일어났던 잔혹범죄들을 되짚어본다.

 
경기 수원역 인근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가 실종된 여대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15일 경기경찰청과 수원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45분께 경기 평택시 진위천 일대 진위배수지를 수색하던 중 배수지 인근에서 실종된 여대생 김모(21·여)씨가 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김씨 주변에선 김씨가 실종 직전까지 신고 있었던 신발 한 짝도 함께 발견됐다.

여대생 실종
숨진채 발견
 
김씨의 시신은 CCTV분석을 통해 용의자 차량이 해당 경로를 이동한 사실을 확인하고 현장을 수색 중이던 수원서부경찰서 형사에 의해 발견됐다. 김씨가 발견된 곳은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윤모(45)씨가 건설업체에 근무하면서 배수로 공사를 했던 곳으로 전해졌다. 앞서 경찰은 14일 오전 1시18분께 김씨 남자친구(22)로부터 “여자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고 길에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보니 여자친구가 사라졌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수색에 나선 경찰은 같은 날 오전 4∼5시께 김씨가 사라진 수원역 인근에서 500여m 떨어진 장소에서 김씨의 지갑과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경찰은 소지품이 발견된 수원 매산로 주변의 한 건물에서 건설업체 이사인 윤씨가 김씨를 데려가는 듯한 모습이 찍힌 CCTV를 확보하고 윤씨를 용의자로 특정해 수사를 벌였다.
 

CCTV에는 윤씨와 김씨가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러던 중 경찰의 추적을 받던 윤씨가 14일 오후 5시30분께 강원도 원주시의 한 저수지 인근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는 없었다. 숨진 윤씨가 몰던 차량 트렁크에선 김씨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 등이 발견됐다.
 
윤씨는 같은 날 오전 집과 직장에 차례로 들러 옷가지 등을 챙긴 뒤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경찰은 각 현장에서 증거물과 DNA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경찰은 윤씨가 남자친구와 술에 취한 상태로 길에서 잠이 든 김씨를 납치한 뒤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수원·화성·안산 등서 잇달아 여성실종
수원서만 2년동안 성인녀 160명 행불
 
16일 수원서부경찰서는 국과수로부터 김씨의 사인이 목졸림에 의한 경부압박질식사로 통보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용의자 윤씨가 숨져 사건이 ‘공소권 없음’ 처분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의구심이 남지 않도록 윤씨의 행적과 범행 동기 등을 충분히 조사한다는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의 직장동료와 가족 등을 불러 범행 동기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직까지 윤씨와 김양 사이에 연결고리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용의자 윤씨와 피해자 김양이 모두 숨져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일어난 여대생 실종사건은 과거 ‘화성 여대생 실종사건’과 유사해 눈길을 끈다. 지난 2004년 10월, 노모(당시 21·여)씨는 한밤중 화성복지관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서 2km가량 떨어진 봉담읍 와우리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뒤 실종됐다.
 
노씨의 실종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새벽까지 주변 수색을 펼쳐 노씨의 청바지, 브래지어, 양말, 수영복, 가방 등 유류품을 발견했다. 그리고 사건발생 47일째 되는 날 인근 야산에서 노씨로 추정되는 유골과 머리카락이 발견됐고 결국 노씨의 사체로 확인됐다. 그러나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범인을 끝내 붙잡지 못하면서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화성시는 강력사건 1번지로 불린다. 지난 2월에는 시신없는 살인사건이 벌어져 지역주민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경찰은 지난 2월 A(67·여)씨의 실종신고를 받고 수사를 벌이던 중 A씨 소유 별채에 세들어 살던 김모(59)씨의 행적에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하고 그의 주거지를 감식하기로 했다. 김씨는 같은 달 9일 경찰의 감식을 앞두고 자신이 살던 별채에 불을 질러 전소시킨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당시 검찰은 김씨 차량에서 A씨 혈흔을 확보했지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데다 김씨가 살인혐의를 완강히 부인해 방화 혐의만 적용해 기소한 뒤 경찰과 함께 살인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수사를 계속해왔다. 이후 김씨가 쓰다버린 육절기에서 A씨의 피부, 근육 등 인체조직이 검출되자 검찰은 A씨가 사망한 것으로 결론을 짓고 사건을 ‘실종사건’에서 ‘살인사건’으로 전환했다.

실종됐다하면…
싸늘한 주검으로
 
김씨는 미리 구입한 육절기를 이용해 A씨의 시신을 잘게 훼손한 뒤 상자 여러 개에 나눠 담아 인근 개울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가 버린 육절기 단면 100여곳에서 살점 등 A씨의 DNA를 분석한 결과 살해하지 않고서는 발견될 수 없는 여러 부위의 인체조직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살인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김씨 PC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분석 결과 올해 1월 말부터 김씨가 인터넷 상에서 ‘인체해부도’ ‘인체해부학’ ‘육절기’ ‘골절기’ ‘띠톱’ ‘민찌기’ 등을 검색한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더했다.
 
이 사건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5개월여 만에 일단락됐지만 살인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거인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법원의 판단에 귀추가 주목된다.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노정환)는 지난 2월 화성에서 실종된 A씨는 살해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유력 용의자 김씨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수원 팔달산에서 토막시신이 발견돼 지역주민들이 공포에 떨었다. 팔달산 등산로에서 토막난 사체 일부가 비닐봉지에 담긴 채 발견된 것이다. 같은 달 5일 수원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4일 오후 팔달산을 등산하던 한 남성이 검은색 비닐봉투를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비닐봉투를 확인한 결과 봉투 안에는 머리와 팔이 없는 상반신 사체가 담겨 있었다. 이후 수원시 매교동 인근 수원천 산책로에서 검은색 비닐봉투 4개가 추가로 발견됐다. 비닐봉투는 피해자의 살점으로 보이는 인체 일부를 덮고 있었다. 특히 시신의 장기가 없었다는 점이 인신매매·장기적출 괴담을 양산했다.
 
잊을만하면 터지는 사건
대부분 살인으로 드러나 
외국인 많아 수사 어려워
 
괴담이 삽시간에 번지면서 “중국동포로 보이는 50대 남자가 월세방 계약을 했는데 며칠 머물다가 보이지 않는다”는 한통의 신고전화가 수원서부경찰서에 접수되면서 용의자가 특정됐다. 경찰은 용의자 박춘봉(57)이 머물렀던 방에서 피해자의 혈흔이 발견된 점, 팔달산에서 발견된 봉지와 유사한 점을 단서라 여기고 그의 행적을 추적했다. 경찰은 잠복 끝에 그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결과 박춘봉은 동거녀 김모(49)씨가 자신과 다투고서 짐을 싸 나간 뒤 만나주지 않자 앙심을 품고 동거녀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잔혹하게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월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김용정)는 살인, 사체손괴, 사체유기 등 혐의로 박춘봉을 구속기소했다. 그리고 지난달 30일 수원지법 형사15부(양철한 부장판사)는 박춘봉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3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토막살인은 경기도 안산에서도 일어났다. 지난 4월 시화 방조제(안산시·시흥시·화성시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에서 낚시 중이던 한 남성이 토막난 시체가 담겨 있는 가방을 발견했다. 제보를 받은 경찰은 곧바로 현장에 출동해 팔, 다리, 머리 등이 없는 몸통 사체를 수습했다. 이후 경찰은 머리, 손목, 발목 등을 추가로 발견해 손목에서 지문을 채취한 결과 피해자는 중국 국적 한모(42·여)씨임을 밝혀냈다.
 
경찰은 한씨의 남편 김하일(47)이 경찰서에 아내의 미귀가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미루어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조카가 거주하는 건물로 들어갔다가 나와 공장에 출근하는 것을 확인한 경찰은 건물을 수색해 옥상에서 한씨의 양팔과 양다리 사체 일부가 담긴 가방을 발견했다. 공장 주변에 잠복해 있던 형사 10명은 김씨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김하일은 경찰에서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밝혔다. 한씨가 자신의 계좌로 돈을 송부하라고 강요하자 망치로 때린 후 목졸라 살해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증거인멸을 위해 부엌칼을 다듬은 후 화장실에서 사체를 토막 내 가방에 하나씩 담아 출퇴근 시간대를 이용해 유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1부(부장판사 이영욱)는 아내인 한씨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 시화방조제 등에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김하일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수사 난항 일쑤
불안한 주민들
 

지난 2012년에도 토막사건이 일어나 세간에 충격을 안겼다. 2012년 4월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서 조선족 오원춘(56)이 휴대전화 부품공장에서 일하고 퇴근하는 K씨(당시 28세·여)를 자신의 집으로 납치한 뒤 목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냈다. 당시 오원춘에게 납치된 피해자 K씨는 오원춘이 집을 나간 사이 문을 잠그고 경찰에 신고해 “모르는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며 자세한 위치를 설명했지만 경찰은 자세한 위치를 물으며 K씨가 답할 수 없는 질문으로 따지면서 대응해 논란이 됐다.
 
경찰은 뒤늦게 피해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신고접수 두 시간 만에 수색에 들어갔다. K씨의 신고전화를 받은 후 2일째 되는 날 “부부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는 옆집 주민의 제보를 받고 수사범위를 좁힌 경찰은 다세대 주택에서 토막 낸 시신을 가지고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던 오원춘을 붙잡았다.
 
살해수법은 매우 악랄했다. 오원춘은 K씨 납치 당시 K씨가 강하게 저항하자 둔기로 내리치고 목을 졸라 살해한 뒤 범행을 감추기 위해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시신을 358점으로 토막 내 여행용 가방과 비닐봉지 등에 나눠 담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오원춘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사형 구형과 함께 전자발찌 30년 부착도 요구했다. 이후 수원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이동훈 부장판사)는 오원춘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다. 오원춘이 이 같은 법원의 판단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 김기정)는 범행 수법이 잔인해 죄질이 무겁지만, 인육 및 장기밀매를 목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1심의 판결의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고, 사형 판결을 내린 1심의 형량이 무겁다고 판단,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2013년 1월에 대법원에서 이를 확정했다.
 
지난 2009년에는 ‘연쇄살인’이 각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경기 서남권 지역에서 여성들을 잇따라 살인한 연쇄살인마 강호순(57)이 붙잡히면서부터였다. 강호순은 2009년 1월 2008년 12월 경기도 군포시에서 실종된 여대생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추가 수사에서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경기 서남권 일대에서 여성 7명이 연쇄적으로 실종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강호순은 연쇄살인을 부인하다 증거를 제시한 경찰에 군포 여대생을 포함해 7명을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강호순이 살해했다고 밝힌 부녀자는 노래방 도우미 3명, 회사원 1명, 주부 1명, 여대생 2명이었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었다. 강호순은 2006년 9월 강원도 정선군에서 당시 정선군청에서 근무하던 여성 공무원 윤모(당시 23세·여)씨를 살해했다고 밝혔다. 또 2005년 10월 경기도 안산시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자신의 장모와 처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강호순은 1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장을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항소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2009년 8월 사형이 확정됐다.
 
경기 서남권에서 벌어지는 실종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수원지역에서 실종된 18세 이상 여성은 지난 2년 새 159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실종사건이 끊이지 않자 당국이 팔을 걷어부쳤다. 경기도, 수원시, 경기지방경찰청이 수원시를 전국 최고의 안전도시로 만들기 위한 안전시범도시 구축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수원시는 안전시범지역 조성계획 수립과 시행, 경기지방경찰청은 범죄예방에 대한 자문과 범죄발생정보 관련 데이터 제공을 맡는다.
 
경기도는 도청 내 자문검사와 디자인전문가, 경찰청, 빅데이터전문가 등 범죄예방 전문가들로 구성된 TF를 구성해 수원시를 지원할 계획이다. 수원시도 제2부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안전마을TF를 구성, 수원시 내 옛 도심 지역인 지동을 중심으로 현장방문조사를 하고 안전도시조성을 위한 사업발굴과 기존의 관련사업을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밤길 나서기
두려운 여성들
 
도는 수원시를 6891개 블록으로 세분화하고 범죄취약 정도, CCTV 감시취약지역, 유동인구 등을 분석해 CCTV 최우선 설치 지역 133개 블록, 우선설치 지역 420개 블록, 설치필요지역 979개 블록을 선정했다. 수원시는 이번 분석결과를 반영해 CCTV 설치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도는 올해 말까지 도시형·도농복합형·농촌형 CCTV 사각지대 표준 분석모델을 개발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도내 31개 시·군으로 확대·적용할 계획이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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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