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재점화 ‘제왕적 대통령제’ 명과 암

87년 이후 개헌 전무…협치 기반으로 한 분권 필요성 사회 각계서 요구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탈리아의 정치이론가 니콜로 마키아밸리는 자신의 저서 <군주론>을 통해 이상적인 통치자의 상을 제시했다. ‘마키아밸리즘’으로 불리는 이것은 이후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이론적 바탕이 된다. 약 50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군주론>을 관통하는 핵심 정의다. 저자 마키아밸리는 여러 인간 군상을 통해 이상적인 통치자란 어떤 사람인지 제시했다. 향후 전제 정치의 이론적 바탕이 된 이것은 대한민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회가 혼란스럽던 1960~1970년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절대 권력이라는 목적을 정당화했다. 그 과정에서 사사오입·유신헌법 등 자의적으로 헌법을 뜯어고치는 짓도 서슴지 않고 일어났다.

사사오입·유신헌법
제왕적 대통령제

시간이 흘러 1987년, 국민들의 노력으로 ‘직선제 개헌’이라 불리는 9차 개헌에 성공했다. 변화의 주요 골자는 대통령 직선제 및 5년 단임제 도입,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 확대였다. 그러나 9차 개헌 이후 지금까지 28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더 이상의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014년 11월경 진행한 개헌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 결과 찬성이 63.0%로 나와 반대한다는 21.5%를 압도했다. 각론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개헌을 원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개헌을 원하는 것일까. 정치권을 포함한 개헌론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의한 폐단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멀게는 ‘세월호’ 참사부터 가깝게는 ‘메르스’ 사태까지, 최근 대한민국의 재난대응시스템은 이미 멈춘 지 오래다. 세월호 때는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동안의 행적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으며, 메르스 때는 컨트롤타워의 부재에 국민들이 피해를 봤다.

일련의 모습을 종합해 봤을 때 제왕적 대통령제가 원인이라고 개헌론자들은 지적한다. 즉 사람이 바뀌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태를 두고 정치권은 절대적인 대통령 권한이 불러온 폐단이라고 말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입법부 원내교섭단체의 대표가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어느 정도로 규정하고 있을까. 대통령이 가진 대표적인 권한을 나열해보면 ‘국군통수권’ ‘계엄선포권’ ‘인사권’ 등이 있다. 이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군통수권·계엄선포권은 국가지도자가 지녀야 할 고유권한이라 인정하는데 반해, 인사권의 경우에는 남용될 수 있는 소지가 많아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월호·메르스
개헌 필요성 촉발

단적인 예로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인사권을 대통령이 쥐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삼권분립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일찍이 ‘국회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개헌론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견제를 전제로 한 삼권분립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정의화 국회의장은 제67주년 제헌절을 맞아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경축식에 참석한 정 의장은 이 자리에서 “개헌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부권 정국’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나온 발언이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정치권의 생각은 어떨까.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을 맞이해 <머니투데이>에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 중 86%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필요없다”고 답한 의원은 12%에 그쳤다.

세월호·메르스,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
중앙권력형, 분산 필요성 대두, 언제?

‘개헌모임’만 봐도 정치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제19대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이 모임에는 총 155명이 소속되어 있다. 구성을 보면 새누리당 의원은 56명,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의원이 96명, 정의당 2명, 무소속 1명으로 돼 있다. 주요 인물로는 입법부 수장인 정의화 국회의장, 개헌전도사라 불리는 새누리당의 이재오 의원, 야당의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새정치연합 우윤근 전 원내대표, 판사 출신의 정의당 서기호 의원 등 쟁쟁한 정치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모임의 구성원 대부분은 ‘개헌특위’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올해 안에 특위를 구성해야 된다며 마지노선을 9월로 잡고 있다. 새정치연합 우 전 원내대표는 “청와대를 설득해야 한다”며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장벽이 높다. 박 대통령이 일찍이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6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개헌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개헌론자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재오 의원은 최근 ‘지방분권개헌 원탁토론회’에 참석해 “개헌이 블랙홀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금은 국가경쟁력에 장애적요인 중 제일 큰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연합 우 전 원내대표는 “정치가 안정돼야지 경제가 살 수 있다”며 “개헌을 통해 국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박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했다.

우윤근·이재오
9월 개헌특위


지금 당장 논의를 시작해야 된다는 주장이 한 목소리로 나오고 있지만 각론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향후 어떤 식으로 의견이 수렴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각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기본권에 대한 개헌’, 두 번째 ‘정부형태에 대한 개헌’, 세 번째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이 그것이다.

첫 번째 기본권에 대한 개헌은 인간 존엄에 대한 가치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 새정치연합 신기남 의원은 ‘기본권 개헌을 위한 방향과 과제’라는 정책보고서를 통해 제안했다. 보고서에서 신 의원은 ‘기본권 주체 확대’ ‘양성평등 추구’ ‘정보기본권 신설’ 등을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 정부형태에 대한 개헌은 방법론에서 차이점이 많다. 나오고 있는 얘기를 종합해 보면 ‘4년 중임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가 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는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론이다. 말 그대로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줄이는 대신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비전에 대한 연속성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개헌을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고자 하는 개헌 취지에 맞지 않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중 우 전 원내대표는 이 이론이 미국식이라는 점을 들어 “미국은 주 단위의 철저한 연방국가기 때문에 4년 중임제가 가능하다”며 “우리에게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28년 동안 개헌 전무, 새 옷 입을 때
지방분권 필요성 대두, 각계 목소리↑

의원내각제 또한 비슷한 의미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지금 대한민국 현실을 고려한다면 너무 급작스런 변화라는 것이다. 특히 내각이 언제든 물러날 수 있다는 제도적 불안정성은 향후 문제가 될 공산이 크다고 많은 정치이론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최근 대안으로서 가장 각광받는 것은 분권형 대통령제다. 권력을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양분하는 이 체제는 국가 원수의 위치는 대통령이 그대로 가져가는 대신 국회의원들이 뽑은 국무총리가 행정부의 수반이 되어 내치를 담당한다는 게 주요골자다.

즉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제에서 국무총리의 권한을 의원내각제만큼 끌어올리는 형태로 볼 수 있다. 대통령제보단 사람에 대한 의존이 줄어드는 대신 의원내각제보단 현재 상황을 잘 반영한 절충안이라는 평가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 우 전 원내대표, 이 의원 등 대부분의 개헌론자들이 이 안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세 번째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이다. 앞서 정부형태에 대한 개헌을 정치권에서 주도하고 있다면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은 시민사회단체가 적극 주장하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지방분권’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로 인해 지방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은 그동안 수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개헌을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중앙정부의 하급기관화 되어버린 지자체를 개탄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방분권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지난 22일 토론회를 갖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왜 지방분권개헌인가?’라는 주제로 펼쳐진 이 자리에서 동의대·대전대 등 각 대학교수들과 정·관계 인사들은 자치권보장이 개헌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사를 기획한 이창용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실행위원장은 이번 토론회에 대해 “의원내각제·분권형 대통령제 등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것은 개헌에 대한 방법론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핵심은 어떻게 중앙에서 벗어나 국민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냐는 것”이라고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지방분권
국민행동

여러 논의가 오가고 있는 가운데 정치전문가들은 개헌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지금 전문가들도 의견이 판이하게 엇갈린다”며 “정치권이 곧바로 개헌으로 가버리면 국론이 분열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 원장은 9월 개헌특위 구성에 대해선 박근혜정부가 정권 중반을 지나고 있다는 이유를 들며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헌론, 지구촌은?

대한민국에서 개헌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콩고 등 다른 국가에서도 개헌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반응은 판이하게 달라 눈길이 간다.

일본 <교도통신>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약 60%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2일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전후 70주년을 맞아 국민 의식조사를 한 결과 헌법을 이대로 존속시켜야 한다는 응답이 60%로 나타나, 바꿔야 한다고 응답한 32%보다 약 두 배정도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콩고 “개헌 반대”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베정부가 개헌을 수반한 ‘집단자위권’ 법안 추진을 강력히 진행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AFP통신>이 지난 18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콩고공화국에서는 현 대통령이 독재를 위해 개헌을 추진하자 야당과 국민이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드니 사수 응게소 콩고대통령은 대통령 중임을 제한하고 대선 후보자의 나이를 70세로 제한하는 현행 헌법에 대한 개정안을 여당과 함께 통과시켰다. 이로써 지난 30년간 군림한 응게소 대통령은 72세의 나이로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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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