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스타 박용하가 지난 6월30일 자살, 3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인 한류스타로 손꼽히는 박용하는 7월 말 한중일 3국을 배경으로 한 한류드라마 <러브송>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최근 여배우의 캐스팅을 확정 짓고 대규모로 보도된 이 드라마는 <히트> 드라마 제작진이 뭉쳐 일찍이 아시아 전역의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이처럼 일에 있어서도 큰 문제가 없었던 터라 박용하의 자살은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16년 간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강렬한 한 획을 남기고 떠난 그의 삶을 조명해 본다.
<겨울연가>로 한류스타 부상… 가수로도 인기
2008년 독립 ‘요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설립
1977년에 태어난 박용하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1994년 MBC 테마극장으로 처음 데뷔해 KBS 2TV <사랑이 꽃피는 교실> <스타트> 등 청춘 드라마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MBC <보고 또 보고>를 통해 배우로서 입지를 굳혔다. 반듯한 이미지를 선보인 그는 이 작품으로 그해 MBC 연기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KBS <사랑하세요>, MBC <우리는 길 잃은 작은 새를 보았다>, KBS <눈꽃>, SBS <소문난 여자>,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등에서도 순수하고 반듯한 느낌의 캐릭터를 주로 소화했다. 2002년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윤석호 PD의 시리즈 드라마 <겨울연가>에서 부드러운 이미지의 라디오 PD 김상혁 역할을 맡았던 그는 드라마가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단번에 한류스타로 발돋움했다.
가수로서도 성공적이었다. 2003년 일본에서 첫 앨범 ‘기별’을 발표한 그는 2004년부터 일본활동에 박차를 가한다. 일본에서 싱글 8장, 스페셜 앨범 2장을 냈으며 2005년에는 한국 가수 최초로 일본 골든디스크대상 신인상을 받은 데 이어 한일 우정의 해 특별상, 베스트 아시아 아티스트상을 받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한류스타 최초로 부도칸에서 콘서트도 열었다. 8월까지 일본 16개 전역에서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던 박용하는 2008년 드라마 <온에어>로 6년 만에 국내 안방극장에 돌아왔다. 기존의 부드러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까칠 이경민 PD’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해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연기 변신은 계속됐다. 지난해에는 드라마 <남자이야기>, 영화 <작전>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증권가의 세력 다툼을 소재로 한 <작전>은 그의 유작으로 남게 됐다.
2005년 한국 가수 최초
일본 골든디스크대상 신인상
2008년 자신의 이름을 딴 ‘요나 엔터테인먼트’란 기획사를 설립한 박용하는 측근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올초 제주도에서 일본 팬들을 초대해 열었던 팬미팅과 관련해 지인의 공금횡령으로 충격을 겪었다. 박용하는 2억원에 가까운 돈을 사비를 털어 팬들에게 배상했다. 이 과정에서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결국 박용하는 이 사건으로 10년을 동고동락한 매니저와 결별했다.
최근엔 세상과 작별하기 전 대작 드라마를 준비 중이었다. 윤은혜와 함께 홍콩 영화 <첨밀밀>의 한국 리메이크 드라마 <러브송>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돼 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이 드라마는 촬영 전부터 아시아 11개국에 선판매 논의가 오갈 정도로 박용하가 재도약하는 기회였다. 하지만 컴백은 박용하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겨울연가>로 한류스타 반열에 오른 박용하는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았지만, 불안감과 외로움을 호소했다. 국내 컴백을 앞두고는 부담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지난해 MBC <네버엔딩 스토리>에 출연해 “일본에서 한류스타로 인기가 높아지는 만큼 우울증과 자괴감이 컸다. 일본 생활이 길어질 때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명동에 일본인 대상
레스토랑 오픈 고심
또 <온에어> 출연을 앞두고 SBS <김승현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 출연해 “한류스타라는 이미지를 갖고 다시 컴백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힘들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스스로 기대했던 만큼 못했던 부분들에 마치 살을 찢는 듯한 고통까지 느낄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박용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었다.
서울 명동에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한류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했다. 사망 전날인 오후 9시께 사업 파트너인 A씨와 청담동에서 만나 술을 마신 뒤 귀가했다. 집에 들어온 박용하는 사망 전인 오전 0시40분께 위암 말기인 아버지의 등과 다리를 주무르며 ‘내가 아파야 하는데 미안해 미안해’라고 울먹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이날 오전 5시30분쯤 박용하가 자기 방 침대 위 봉에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것을 어머니가 발견했다.
지인 2억원 횡령·사업 압박·부친 암투병
이틀 전부터 주위에 “일 힘들다”심경 토로
박용하의 자살은 유서도 발견되지 않아 그 이유를 두고 팬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있다. 박용하의 자살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추측된다. 구상하고 있는 사업의 압박, 연예활동에 대한 부담, 부친의 암투병으로 인한 고통 등으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박용하에게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건강상의 문제(우울증 등)는 발견되지 않았다”며 “집과 컴퓨터를 면밀히 살펴봤지만 유서나 비망록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드라마·영화·가수
‘만능 엔터테이너’
경찰은 “박용하가 2~3일 전 지인들에게 ‘일도 힘들고 이 생활도 너무 힘들다. 생각이 좀 정리되면 다시 이야기 좀 하자’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박용하가 평소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아버지 암 투병을 지켜보면서 사업과 연예활동을 병행하는 데에 힘겨워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용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해 평소 수면제에 의존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1남1녀 중 막내인 박용하는 지난해 아버지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자 자기 집으로 모셔 극진히 간호해 왔으며 아버지에게는 병이 위중하다는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박용하는 드라마·영화·연극 등 연기는 물론 가수로까지 활발히 활동하던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특히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욱 많은 인기를 얻은 대표적인 ‘한류스타’로 꼽힌다. 박용하의 죽음에 대해 국내 팬들은 물론 일본 팬들도 “믿기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다”며 큰 슬픔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