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보는 광복절특사 리스트

‘대통령 결단’ 국민들이 알아줄까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살리고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 사면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이같이 말하며 대대적인 특별사면을 시사했다. 특사 소식에 정·재계는 기대감을 품는 분위기다. 아직 특사 대상자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얼추 그림이 나와서다.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특별사면’을 지시했다. 아직 구체적인 사면 대상이나 범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오는 8월15일 단행될 ‘광복절 특사’에 정·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2013년 12월 대통령 취임 후 첫 번째 특별사면이 논의될 당시 ‘순수 서민생계형 범죄’로 사면 대상을 국한했었다. 줄곧 사면에 대해 신중한 모습을 취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가발전과 국민대통합’이라는 말로 그 범위를 넓힐 것을 시사했다. 


박근혜정부
두 번째 사면
 
광복절 특사를 단행하면 지난해 설 명절 이후 박 대통령의 두 번째 사면권 행사다. 법무부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사면심사위원회 구성 등 관련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사면법에는 법무장관이 대통령에게 특사를 상신하기 전에 사면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광복 70주년’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이번 특사 규모가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이번 특사의 최대 관심사는 재벌 총수 기업인,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사면 여부다. 재계에서는 확정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 구자원 LIG 회장 3부자, 집행유예 상태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사면 대상자로 오르내린다.
 

정계에서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이명박정부 인사들을 비롯해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정봉주 전 의원 등이 사면 대상으로 거론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우 지난 2008년 이명박정부의 특별사면 대상으로 한 차례 특혜를 받은 바 있다. 최 회장은 지난 2003년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돼 2008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판결 받고 같은 해 몇 달 뒤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았다.
 
하지만 최 회장은 지난 2008년 말부터 친동생인 SK그룹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SK텔레콤, 계열사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등에 투자한 465억여원의 펀드투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2013년 1월 구속됐다. 이후 지난해 2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최 회장은 현재 2년6개월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오는 2017년 1월30일이 만기일이며 남은 형기는 1년 6개월가량이다. 이와 함께 기소된 최 회장의 동생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은 지난 2011년 12월 검찰에 구속된 후 이듬해 6월 보석으로 풀려났다가 9월 2심에서 징역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돼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복역 중이다.

정치인·기업인
광복 특사 물망 
 
구자원 LIG 회장 3부자도 사면 검토 대상으로 거론된다. 구 회장은 2012년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장남인 구본상 LIG넥스원 전 부회장은 징역 4년, 차남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은 징역 3년이 확정됐다. 특히 구 전 부회장은 2012년 10월 구속된 이후 현재까지 복역 중인 재계 최장기수로 꼽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해 부실 위장계열사에 수천억원대의 부당지원을 해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 수감돼 재판을 받아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1억원과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의 형을 확정 받고 풀려났다. 김 회장은 배임액수가 1500억원 이상임에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를 받아 양형기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대법원의 양형기준표를 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상 300억원 이상이면 형의 감경구간은 4∼7년이다. 김 회장은 출감했으나 집행유예 기간이라는 이유로 그룹 주요회사 대표이사 자리에 복귀를 하지 못하고 있다.
 
8·15 특별사면 가시화
정재계 인사 대거 포함
 
수감 중이지만 가석방 요건을 채우지 못한 총수도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2012년 7월1일 구속됐지만 신장 이식 등 건강상의 문제를 이유로 수차례 구속집행이 중단되면서 총 수감기간을 114일 채우는 데 그쳤다.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 회장이 계속 수감생활을 이어 왔다면 가석방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이 회장 사건은 아직 대법원 선고 전이다. 이 회장은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한 차례 더 연장해달라는 신청을 냈다.
 
질병을 이유로 각각 보석과 형집행정지를 받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이선애 전 태광그룹 상무도 수감기간이 가석방 요건에 미치지 못한다. 불구속 기소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과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을 비롯, 회계분식 혐의로 수감된 상태에서 고등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강덕수 STX그룹 회장도 가석방 대상자에서 제외된다.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이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인 가석방 바람은 지난해 9월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당시 황 전 장관은 “기업인이라고 가석방 대상에서 배제하는 불이익을 줘선 안 된다. 기업인도 요건만 갖춘다면 가석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최 경제부총리는 “기업인들이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원칙에 어긋나서 엄하게 법 집행을 하는 것은 경제살리기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4일 CBS아침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한 전국경제인연합회 송원근 경제본부장은 ‘재벌총수가 사면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에 대해 “기업인이라고 특혜를 받아서도 불이익이 있어서도 안 된다”며 “기업인들의 경우 대체로 개인적 실수가 아닌 경제사범이고 특정경제가중처벌법 대상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런 기업인들을 경제활성화 명목으로 풀어준다면 마치 사회정의를 위해 조직폭력배를 사면하는 것과 다른 게 없다”며 “가중처벌이란 말 그대로 죄질이 무거워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사면에서도 좀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별한 사면
통합? 분열?
 
박근혜정부가 친이계(친이명박)와의 불편한 관계 해소 차원으로 전 정부 실세들에게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권의 사면대상자로 물망에 오르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저축은행 관계자 등으로부터 7억5000여만원을 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1년2개월 복역 후 만기 출소한 상태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은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뇌물수수, 민간인 불법사찰 지시, 원진비리 등에 연루돼 징역 2년6개월형을 산 뒤 지난해 11월 만기 출소해 사면 대상에 오르내린다.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김재홍 전 KT&G복지재단 이사장(이명박 전 대통령 사촌처남)도 특사 가능성이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누나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의 사면 여부도 주목된다.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으로 불렸던 홍사덕 전 국회의원은 기업가로부터 3000만원 상당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 2013년 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고,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돼 피선거권이 5년간 제한된 상태다. 
 

야권에서는 저축은행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지난 4월 대법원에서 500만원 벌금형 원심이 확정된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실형을 살고 피선거권이 10년간 제한된 정봉주 전 민주통합당 의원도 사면 대상으로 거론된다. 정 전 의원의 경우 개인비리가 아닌 정치사안 BBK폭로 때문에 형이 확정된 경우여서 대통합 사면 취지에 부합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을 제외하고는 정치인 사면에는 뚜렷한 명분이 없다. 기업인 사면에는 경제살리기라는 큰 틀의 명분이 있는 것과 대조돼 논란이 예상된다.
 
형기 3분의 1 채운 모범수형자 대상
절반 이상 복역한 최태원 회장 유력
이상득 박영준 이광재 정봉주도 거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은 15일 “재벌총수와 정치인을 위한 특별사면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민변은 이날 논평에서 “재벌 총수에 대해 특별사면 해주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는 전혀 근거가 없는 허황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대통령의 사면권은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에 대한 예외적인 요소로 매우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한다”고 지적하며 “원칙 없이 남용될 경우 법치주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국민의 준법정신마저 무디게 한다”고 우려했다. 
 
민변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위해 사면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자 재계와 정치권, 언론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재벌총수와 부정부패에 연루된 정치인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요구하고 나섰다”며 “또다시 ‘경제 살리기’라는 명목으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이는 판결에 이어 법집행에까지 특혜를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부패 범죄에 대해 매번 경제위기 극복이니 국민 통합이니 하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를 대며 무리한 사면을 남발할 게 아니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한 사면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사면을 실시한다면 서민 경제를 살리는 방향의 사면이 돼야 한다”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집회 및 시위를 하다가 형사 처벌된 시민들에 대한 특별사면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헌법 제79조 1항은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규명하고 있는데, 현행 사면법은 사면의 구체적 기준조차 규정하고 있지 않다. 엄격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이달 초 새정치민주연합 노웅래 의원은 비리 및 부정부패를 저지른 범죄자에 대한 특별사면을 금지하고, 대통령의 자의적인 특별사면권 행사를 방지하기 위한 내용의 ‘사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뇌물수수·횡령·배임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특별사면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아울러 사면심사위원회의 구성을 대통령·국회·대법원이 각각 지명한 3명씩으로 구성하고 사면심사를 위원 9인 가운데 6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되도록 규정했다.

“공정한 사면
기준 세워야”
 
노웅래 의원은 “특별사면은 사회통합을 위해 국가의 원수자격으로 실시하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이지만 역대 정권마다 특별사면이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행사됨에 따라 ‘보은사면’ ‘측근사면’이라는 비판이 많았다”며 “대형 금품비리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것도 모자라 특별사면으로 풀어주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정비리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특별사면을 원천 차단하고, 대통령의 특별사면이 불공정하게 이뤄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며 입법 취지를 밝혔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역대 정부의 사면 사례 & 절차
 
사면은 1980년 이후 총 52차례 시행됐다. ▲전두환정부 14차례 ▲노태우정부 7차례 ▲김영삼정부 9차례 ▲김대중정부 6차례 ▲노무현정부 8차례 ▲이명박정부 7차례 등. 박근혜정부는 지난해 1월 생계형 범죄로 수감된 서민들을 한 차례 특별사면했다.
 
헌법 79조 1항에 규정된 사면 절차는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으로 나뉜다. 일반사면은 대상 범죄와 기준 등을 정하고 일률적으로 형의 선고 효과를 없애주는 행위며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특별사면은 특정 범죄인에 대해 형의 선고 효력 등을 소멸시키는 행위로,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의 동의를 얻을 필요가 없다.
 
대통령이 결정하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은 특별사면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민적 화합 등을 내세워 광복절 등 국경일에 사면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사면에 따른 논란은 어느 정부도 피해갈 수 없었다. 때문에 현 정부는 논란을 최소화하면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데 초점을 맞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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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