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수렴청정’ 막후 스토리

대권가도 위해 무성대장도 어쩔 수 없이 ‘마~마~’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수렴청정’ ‘대리청정’. ‘섭정’의 다양한 유형은 한반도는 물론 세계 정치사에서 예외 없이 존재해왔다. 최근 단행된 새누리당 2기 인선 결과를 지켜본 정치권 일각에서는 박근혜-김무성으로 이어지는 계약성 수렴청정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다.

‘거부권 정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박 대통령은 결국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며 해당 법안을 폐기시켰고 ‘배신의 정치’라고 정의내린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에 대해선 축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계파갈등’이라는 시한폭탄을 안은 채 봉합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당직 인선 과정에서 청와대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쏟아졌다.

유승민 사퇴
김무성 2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당대표 취임 1주년인 지난 14일에 맞춰 원내대표를 포함한 교섭단체 및 주요 당직 인선을 마무리 지었다. 복수의 매체는 20대 총선을 겨냥한 ‘김무성 2기’의 출항을 알렸다.

새누리당에서 전면에 내건 인선 기준은 ‘탕평’이었다. 다수의 언론에서도 연일 새로 취임한 원유철 원내대표,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계파색이 옅다며, 비박계와 친박계 간 갈등을 최대한 고려한 결정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김무성 2기가 결코 탕평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핵심요직에는 친박계가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박 대통령의 당 장악력이 이전 1기보다 더욱 강화됐다고 정치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의 의중이 이번 당직 인선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평가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공천권을 쥔 사무총장직에 친박계 3선인 황진하 의원이, 원내수석부대표직에는 친박계 재선인 조원진 의원이, 제1·2사무부총장직에는 유 전 원내대표 사퇴에 역할을 했던 홍문표 의원과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의 측근으로 잘 알려진 박종희 전 의원이, 당대변인직에는 거부권 정국 동안 친박계의 확성기 역할을 한 이장우 의원이 각각 임명됐다.

각 인물들마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또는 비박계 사람들과 정치적 인연이 깊어 주목받고 있다. 황 사무총장은 과거 국방위원장직을 두고 유 전 원내대표와 겨룬 전적이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19대 국회 전반기 국방위원장으로 출마해 당선이 유력했다. 그러나 갑작스레 3성 장군 출신의 황 의원이 출마를 선언, 유 전 원내대표가 추인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초 외통위원장으로 내정됐던 황 의원이 돌연 국방위원장으로 선회한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친박계가 ‘유승민 견제용’으로 황 의원 카드를 꺼낸 든 것이라며 수군거렸다.

황진하·조원진
박종희·이장우

제1·2사무부총장직에 각각 홍문표 의원, 박종희 전 의원이 임명됨으로써 사무총장라인을 친박계가 장악하는 형국이 됐다. 비록 비박계로 분류되지만 홍 의원은 최근 유승민 정국을 전면에서 주도한 충청권 친박계 의원들과 의견을 같이하며 당시 유 전 원내대표 퇴진에 한몫했다.

박 전 의원의 경우에는 ‘김무성 2기’ 중 유일하게 현역이 아니라는 점, 과거 서청원 최고위원이 한나라당 당대표를 할 때 비서실장을 역임한 최측근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식구 챙기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같은 대구지역 국회의원인 친박계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도 유승민 정국에서 역할을 했다는 것이 언론의 지배적 견해다. 박 대통령과 유 전 원내대표의 갈등이 극에 달하기 전 조 의원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지혜로운 결정을 해 대구시와 대한민국이 발전하고 성공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종국에 가서는 “우리가 뽑은 대통령 아니냐. 정권에 대한 비판과 칭찬은 균형을 맞춰서 해야 한다”고 말해 유 전 원내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새누리당을 대표하는 목소리에 이장우 의원이 앉은 것을 두고 비박계에서는 불만이 많다. 유 전 원내대표가 한창 뭇매를 맞던 지난 7월 초, 비박계는 퇴진운동의 최전선에 충청권 친박계 의원들이 있고 그 중 이 의원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장우 대변인은 한창 분위기가 뜨겁던 지난 7일 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유 원내대표의 책임을 묻는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하겠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유 원내대표는 민주적인 리더십이 부족했다. 3년 반 동안 같이 국회의원을 하면서 마주 앉아 차 한 잔 같이 해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유승민 사퇴 후 “모든 당직 TK 제외”
김무성 “수도권은 금 경상도는 동” 논란

이들 모두 박 대통령과 친박계를 도와 유승민을 내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고 해서 여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노골적인 논공행상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중이다.

박 대통령과 친박계가 당 요직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대구·경북지역(이하 TK) 의원들이 배제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더불어 김 대표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자리에서 “내가 임명할 수 있는 모든 당직을 비경상도권 인사에게 맡기겠다”고 말한 것은 물론 “경상도 국회의원은 동메달이고, 수도권 국회의원은 금메달이다”며 파격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TK 의원들의 불만은 갈수록 고조되는 양상이다. 지난 15일 최고위원·중진의원연석회의에서 이병석 의원은 “(TK에선) 20대 총선 새누리당 심판론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 됐다”며 “(당대표로서) 공식적으로 해명하고 사과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 대표는 그 자리에서 “내년 총선에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말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적은 것으로 전해진다.

TK를 당직에서 배제한 이유에 대해 ‘설’들이 많다. 공교롭게도 최근 부딪힌 박 대통령과 유 전 원내대표 모두 이곳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어 더욱 후문이 많은 상황이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박 대통령의 ‘TK독식설’이다. TK는 박 대통령 지지층의 메카다. 그러나 최근 유승민 정국을 거치면서 지지층이 많이 이탈한 것으로 조사됐다.

TK 독식설
현기환 발탁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에 따르면 유 전 원내대표가 사퇴한 직후인 지난 8~9일 이틀간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차기대선주자지지도를 알아본 결과 유 전 원내대표가 TK에서 26.3%를 기록, 여권 내 1위를 차지했다. 거부권 정국을 기점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것과는 반대되는 결과다.

유승민을 차기 대통령으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구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는 풍문이 도는가 하면 대구시의회 의원들이 ‘유승민 지키기’에 나서는 등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에 입김을 발휘해 TK 의원들을 당 요직에서 제외하는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 TK독식설의 전말이다. 결국 20대 총선에서 TK공천권을 친박계가 사수하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현기환 정무수석 임명도 친박계 인선, TK배제론과 함께 수렴청정을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다.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당·청 소통에 책임감을 느끼고 사퇴한 지 53일 만에 일이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임명 직후 “현기환 신임 정무수석은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등을 지낸 노동계 출신의 전직 국회위원으로 정무적 감각과 친화력,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해, 정치권과의 소통 등 박 대통령을 정무적으로 원활히 보좌할 적임자”라고 밝혔다.

2기 키워드는 ‘유승민 정국’ 논공행상?
박근혜 수렴청정 시작, 공천 영향력↑


여·야는 모두 환영의 분위기다. 특히 김무성 대표와는 동향으로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면의 얘기를 아는 사람은 김 대표와 현 수석이 결코 좋은 사이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현 수석은 일찍이 19대 총선을 포기하고 공천심사위원으로 들어간 바 있다. 당시에도 공천의 객관성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외부인사를 심사위원으로 배치했는데, 오히려 심사위원 10명 중 국회의원이 몇 없는 사태가 벌어져 사실상 현 수석이 공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많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 부산 지역을 비롯해 영남권 공천에서 현 수석의 영향력이 상당히 높았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김 대표가 19대 총선에서 공천에 탈락했다는 사실이다. 19대 총선은 김 대표가 눈시울을 붉히며 ‘백의종군’을 선언했을 정도로 아픈 기억이 있는 선거다. 현 수석이 사실상 김 대표의 목을 친 것과 진배없다고 정치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때문에 20대 공천을 앞둔 시점에서 과거 김 대표에게 칼을 휘두른 현 수석에게 당·청 소통 창구역할을 주문한 것은 결국 새누리당을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박 대통령의 숨은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로우키 전략
승계 노림수?

박 대통령의 입김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가운데 김 대표는 ‘로우키 전략’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수평적 당·청관계에 대해 꾸준히 말을 꺼내지만 최근에는 극도의 저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은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과 상당수 겹쳐있다. 만약 지금 김 대표가 반기를 든다면 당을 장악할 순 있지만, 지지층은 등을 돌릴 것이다. 대선에 꿈이 있는 사람이 그럴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에게 자연스레 권력을 이양 받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서도 이젠 진정성에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이 많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오픈프라이머리가 결국 청와대와 친박계가 공천권을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하게 하려고 도입하려는 것인데 저렇게 저자세로 가면 물거품이 될 확률이 높다”며 “그동안 했던 말들이 다 허사가 되는 것인데 그때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진다”고 답했다.

일련의 시나리오대로라면 수렴청정에 대한 우려를 씻을 수 없다. 공천권을 잡은 친박계는 이제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내 다수를 차지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때 숨죽이고 있던 김 대표가 TK의 지지를 등에 업고 청와대에 입성한다. 그러면 얇은 ‘발’ 뒤에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는 박 대통령이 자리 잡게 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잡음 예고 선거구획정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지난 15일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 건물에서 현판식을 갖고 공식 활동을 알렸다. 이로써 위원회는 2016년 4월경으로 예정된 20대 총선에 대비해 선거구 조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 2014년 10월경 헌법재판소는 “각 국회의원 선거구 사이의 인구편차가 2:1을 넘지 않아야 한다”며 현행 공직선거법 상 선거구 획정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김대년 중앙선관위 사무차장 필두로 9명 구성 완료

이에 정치권 및 중앙선관위는 약 9개월여의 장고 끝에 위원회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위원회는 같은 날 위촉식을 가지고 김대년 중앙선관위 사무차장을 위원회 장으로 선출했다. 일정상 위원회는 오는 10월13일까지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앞으로 정치권에서는 이와 관련해 적지 않은 잡음이 예상된다. 위원회 위원 성향을 차치하더라도 근본적으로 19대 총선까지 유지됐던 246개 가운데 62개에 달하는 선거구에 대한 재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의 자료를 보면 62개 선거구 중 인구 상한을 초과한 선거구는 37곳, 기준에 미달한 선거구는 25곳으로 나타났다. 이 또한 특정 시·군·구에 몰려있어 해당 선거구를 둘러싼 각 정치인들 간 얽히고설킨 이해관계가 예상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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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