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수목미니시리즈 <나쁜남자>의 여주인공 캐스팅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다. 배우 박주미가 “<나쁜남자>의 출연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기 때문. 이에 <나쁜남자>에 출연 중인 오연수는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고, 결국 박주미가 공개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 됐다. 이번 사건은 연예인들에게 캐스팅이 얼마나 큰 자존심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주미 ‘대타 발언’ 언급…오연수 “매너 없는 발언” 발끈
이형민 PD “태라 역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연수 것”
사건은 오랜만에 컴백한 배우 박주미가 지난 6월9일 열린 영화 <파괴된 사나이>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김남길과 김명민을 두고 고민했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이는 간접적으로 드라마 <나쁜남자>에서 김남길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오연수의 태라 역을 고사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신중하지 못한 행동”
소속사 통해 공식 사과
박주미 발언 이후 ‘오연수가 박주미의 대타냐’는 논란이 일어났고, 오연수는 지난 6월11일 자신의 트위터에 “아침부터 기분이 꿀꿀한 날이다. 박○○ 배우의 태라 역 어쩌구 한 것 때문에 촬영할 기분이 아니다”고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그녀는 “완전 매너 없는 행동에 기분이 바닥입니다”며 박주미의 캐스팅 발언에 대해 비난했다.
<나쁜남자> 연출을 맡고 있는 이형민 PD도 보도자료를 통해 “오연수의 스케줄이 안 맞을 때를 대비해서 박주미를 비롯해 몇 명의 여배우들에게 스케줄 확인을 하기는 했지만 태라 역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연수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오연수가 맡은 태라 역은 재벌가 장녀로, 부모의 뜻에 따라 정략 결혼을 했지만 뒤늦게 건욱(김남길)을 만난 후 격정적인 사랑 속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여인이다.
캐스팅 당시 오연수는 “태라는 그동안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고, 시놉시스를 보자마자 강렬한 매력 때문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며 “이형민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전한 바 있다.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자, 박주미는 지난 6월11일 오전 소속사를 통해 오연수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박주미는 “드라마 <나쁜남자>에 대해 언급한 것이 의도치 않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어 죄송하다. 그리고 누구보다 오연수 선배님께 죄송한 마음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박주미는 이어 “요즘 제가 드라마 애시청자이기도 하고, 작품을 대본으로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이 너무 좋았다. <파괴된 사나이> 역시 너무나 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었고, 그렇게 좋은 두 작품 중에 <파괴된 사나이>를 하게 된 것에 대한 제 마음을 전달한다는 것이 표현이 제대로 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주미는 또 “의도가 어찌 되었든 신중하지 못한 나머지 본의 아니게 오연수 선배님, 드라마 제작사 그리고 그 외 많은 분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고 사과했다.
박주미는 대타 발언 논란 이후 지난 6월14일 열린 <파괴된 사나이>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 참석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배경에 관심이 쏟아졌다. 이날 행사에는 주연배우 김명민, 엄기준과 아역 김소현 만이 참석했다.
스타급부터 섭외…외부 알려지면 ‘대타’ 인식
캐스팅 관련 멘트 함구령…이미지 타격 입어
영화사 측에 따르면 박주미는 개인 사정을 이유로 시사회에 오지 않았다지만 영화를 처음 공개하는 자리에 주연배우가 불참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대타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박주미가 혹여 또 다른 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의식적으로 언론을 피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실제로 캐스팅 비화를 살펴보면 제작 초기 물망에 올랐던 배우 대신 다른 배우가 출연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엄정화 대신 <환상의 커플>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한예슬이나, 이정재 대신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출연한 소지섭 등 대타로 출연해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많지만, 다른 사람이 고사한 캐릭터를 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됐던 <선덕여왕>은 김아중 대신에 이요원을 캐스팅 했다는 ‘대타설’이 돌아 제작진이 “대타가 아닌 가장 적합한 판단에 의한 캐스팅이었다”며 유감을 표한 바 있다.
캐스팅 대상의
2~3배수 출연진 선정
한 방송 관계자는 “‘캐스팅 비화’는 때로 재미있는 소재일 수 있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당사자로서는 자존심의 문제가 될 경우도 많다”며 “방영이 끝난 작품이거나 예상치 못한 ‘대박’을 터뜨렸을 때가 아닌 이상에는 특히 더 민감한 문제다”고 말했다.
사실상 드라마 캐스팅에 대타는 없다. 대부분 드라마 제작사는 캐스팅 대상의 2~3배수의 출연진을 선정해 섭외작업에 들어간다. 스케줄이 빡빡한 스타급 연예인들일 경우 출연이 불가능해질 요소가 많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하는 것이다. 스타급 연예인들은 여러 작품을 두고 고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연예인과 소속사는 가장 적합한 배역과 출연료를 얻기 위해 작품을 고르고 고른다.
한 방송 관계자는 “대부분 드라마 제작사는 수많은 배우들을 물망에 올려놓고 섭외를 시도한다. 그 명단에는 톱스타들의 이름이 즐비하다. 우선 순위를 두는 배우는 있지만 섭외 ‘1순위’를 캐스팅 하는 것은 쉽지 않다. ‘1순위’로 캐스팅 제의를 한 배우가 출연을 결정하기 전, 혹시 모를 거절에 대비해 몇 명의 배우들에게 스케줄 확인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 배우가 모든 작품에 출연할 수는 없다.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대타라고는 할 수 없다. 동일선상에 두고 출연 의사를 타진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며 “배용준을 한류스타로 일군 드라마 <겨울연가>의 캐스팅 제안을 류시원이 먼저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배용준을 대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연기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배역을 스스로 잘 선택하는 것 또한 배우의 능력이다. 때문에 이미 출연을 고사한 작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난 행동이라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박주미 ‘대타 발언’ 논란으로 각 소속사는 소속 연예인들에게 캐스팅 관련 멘트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
모 기획사 K 대표는 “소속 연예인들에게 캐스팅 관련해서 어떠한 발언도 하지 말도록 교육을 시키고 있다. 연예인들은 기사거리 제공을 위해 말하지만 이미지에 결코 좋을 게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