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성완종 수사 막후

산 권력 살리고 죽은 권력 두번 죽인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새 국면을 맞았다. 이른바 '특사 의혹' 수사로 방향을 튼 검찰이다. 수사팀의 칼끝은 참여정부를 겨누고 있다. 리스트에 적힌 친박계 6인에 대해선 일찌감치 면죄부를 내렸다. 정치권에선 '청와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작동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앞서 청와대는 불법 대선자금 의혹이 불거지자 엉뚱하게도 '정치개혁'을 주문했다. 검찰로서는 올해 말 정기인사를 앞두고 험난한 '충성시험'을 치르는 모습이다.

정국을 강타했던 '메르스 사태'가 6월 셋째 주를 기점으로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같은 기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를 회복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2일 밝힌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34.9%(신뢰수준 95%±2.0%포인트)로 나타났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20%대를 기록했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찾고 있다.

높아진 지지율
변수는 성완종

메르스 확산과 함께 주춤했던 '성완종 리스트' 수사도 새 국면을 맞았다. 검찰은 참여정부 당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를 지난 24일 소환했다. 노씨는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으며, 25일 오전 2시께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조사였기 때문에 당초 참고인 신분이란 보도도 나왔으나 실제 조사는 노씨의 금품 수수 여부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전해졌다. 노씨는 조사를 앞두고 응한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관련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검찰은 노씨가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이하 특사)을 도와주는 대가로 억대에 달하는 금품을 수수했다고 주장했다. 또 2007년 말 성 전 회장이 두 번째 특사를 받아내기 전 노씨와 접촉한 정황도 포착했다고 알렸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평소 노씨와 안면이 있던 경남기업 전직 임원 김모씨를 통해 관련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성 전 회장의 지시에 따라 노씨의 자택에서 여러 차례 사면을 부탁했다. 성 전 회장이 사면을 받은 날짜는 2007년 12월31일이며, 금품 제공은 사면 전 또는 이후에 있었다는 것이 검찰의 주장이다.


2007년 성 전 회장은 행담도 개발 관련 비리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판결 시점은 같은 해 11월이다. 성 전 회장은 2심 직후 상고를 포기했다. 특사를 받으려면 형을 확정판결 받아야하는 까닭에 성 전 회장 스스로 상고를 포기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성 전 회장은 당초 특사 명단에서 빠져있다가 발표 직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건평 기소
물타기 전략?

검찰의 의심에 대해 노씨는 "성 전 회장 측에게 사면 부탁을 받았으나 단호히 거절했다"라는 취지로 답했다. 김씨의 소개로 성 전 회장을 두세 차례 만난 건 사실이지만 청탁을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조사에서 노씨는 성 전 회장의 사면 경위와 관련해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노씨에 대한 기소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앞서 불구속 기소가 확정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함께 법정에 세운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특히 검찰은 참여정부 당시 특사 업무를 담당했던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새정치민주연합 전해철 의원으로부터 서면 답변서를 제출받아 분석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우에 따라 이들 두 사람에 대한 소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검찰은 노씨가 특사 과정에 영향력을 미쳤다는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때문에 노씨가 청탁을 받고 남은 돈의 일부를 청와대에 전달했을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노씨를 연결고리로 참여정부 전·현직 공무원을 옭아 넣겠다는 심산이다. 검찰은 노씨가 성 전 회장 측으로부터 금전적인 이득을 챙긴 것은 분명한 만큼 연결된 돈의 흐름을 쫓겠다는 생각이다.

검찰 특사 의혹 노건평 피의자 신분 소환
홍문종 참고인 소환 김기춘 수사대상 열외

변수는 공소시효다. 변호사법 위반 혐의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노씨가 2007년 12월 이전에 금품을 제공받았다면 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다. 단 노씨가 2008년 이후에 금전적인 이득을 챙겼다면 남은 시효가 유효할 수 있다. 일부 언론은 어떤 의도인지 검찰 관계자를 인용해 '임원 김씨가 노씨에게 2008년 이후 금품을 전달했다'라는 취지로 보도했다.

검찰은 잠재적 수사 대상자로 참여정부 공무원들을 지목하고, 이들에게 특가법상 뇌물죄 적용을 고려하는 모습이다. 대가성이 있는 1억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한 공무원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정황만 나오면 지금이라도 사법처벌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노씨의 비공개 소환은 여러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둔 수사팀의 다목적 카드로 읽힌다. 수사당국이 노리는 바는 의심할 여지없이 한 곳으로 모인다. 바로 야권이다.


노씨의 소환조사는 즉각 형평성 논란을 야기했다. 같은 혐의에 대해 다른 잣대를 적용한 것이다. 먼저 2012년 대선 당시 성 전 회장으로부터 2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받은 의혹에 휩싸인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됐다. 홍 의원은 지난 8일 검찰 조사에서 "성 전 회장을 잘 모른다"라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특히 홍 의원은 검찰 소환을 앞두고 회신한 서면 답변서에서 일부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해명을 요구했으나 홍 의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후문이다. 앞서 검찰은 홍 의원과 함께 불법 대선자금 의혹에 연루된 유정복 인천시장과 서병수 부산시장에게도 서면질의서를 보냈으나 소환은 통보하지 않았다. 이날 검찰은 홍 의원에 대한 소환조사를 끝으로 대선자금 수사를 사실상 종결했다.

비교적 구체적으로 금품 전달 상황이 묘사된 김기춘·허태열 두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선 검찰이 앞장서 "공소시효가 지났다"라고 두둔했다. 성 전 회장은 사망 당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7년 허 전 실장에게 서너 차례에 걸쳐 현금 7억원을 줬고, 김 전 실장에게는 2006년 9월26일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미화 10만달러를 전달했다"라고 폭로했다.

그렇지만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성완종 인터뷰'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두 '친박 실세'에 대해선 한 차례 서면조사로 모든 수사를 종결했다는 것이 언론에 알려진 내용이다.

최근엔 한 야당 의원을 통해 "김 전 실장에 대해선 서면조사조차 없었다"라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처음부터 검찰이 김 전 실장을 수사대상에서 열외하고 '공소권없음'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7억원 눈감고
2천만원 소환

허 전 실장의 경우는 더욱 수상하다.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었던 허 전 실장은 '포괄적 뇌물죄'의 적용이 가능했다. 특가법의 적용을 받는 혐의 액수(7억원)로 공소시효(10년)도 넉넉히 남아 있다. 범행 장소(리베라호텔)까지 공개된 마당에 소환이 필요했다. 그러나 검찰의 선택은 허 전 실장이 아닌 노씨였다.

더불어 구체적인 액수가 공개되지 않은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변인 브리핑을 끝으로 조사를 갈음했다. 박 대통령과 직접 연결된 '산 권력'은 누구 하나 건들지 못했다. 야권에선 '슈퍼특검'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여권이 응할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혹시 모를 특검까지 대비해 최대한 수사를 끌고 있다. 6월 중순으로 예정됐던 수사 결과 발표는 7월 첫 주로 미뤄졌다. 황교안 국무총리 임명과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등 외부 일정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성완종 의혹'과 관련해 수사 가이드라인을 공식화했다. 지난 4월28일 "성완종 사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라고 말한데 이어 5월4일에도 "사면제도를 전면 개선하라"라고 지시했다. 의혹의 핵심인 대선자금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언급하며 수사의 범위를 야권까지 확대할 것을 주문했다. 당시 법무부 수장이었던 황 총리는 대통령의 지시를 검찰에 전달했다.

앞서 청와대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파문,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해 각각 '정보 유출' '찌라시' 등의 발언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실제 수사결과도 대통령의 '지시'와 일치했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 수사 역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노씨의 기소가 불가피한 분위기다.


특검 도입 앞두고 마사지? 국정원 '각본' 의혹
정기인사 앞두고 충성게임…BH 인사권 발동할까

문제는 특사를 대가로 돈을 챙긴 쪽이 노씨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대통령인수위 당시 비서실에 있었던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지난 4월21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MB(이명박 전 대통령) 측 핵심인사가 성 전 회장의 사면을 특별히 챙겼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여권 인사를 겨냥한 '특사 수사'는 검토조차 되지 않고 있다.

특사 카드는 성완종 메모가 발견된 직후 국정원이 기획하고 제공한 작품으로 전해진다. 앞뒤 정황상 일종의 '물타기 아이템'이란 의심이 짙다. <일요시사>는 지난 4월20일 '성완종 게이트 ④박근혜 위기탈출 카드 포착'이란 기사에서 관련한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향후 특검이 도입되면 확인돼야 할 대목이다.

검찰은 노씨 외에도 지난 2013년 5월 옛 민주당 대표 경선 당시 성 전 회장에게서 수천만원을 전달받은 혐의로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의원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김 의원은 "황당한 이야기"라며 연거푸 소환에 불응했다. 첫 번째 소환통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유력한 증거가 분명하게 있는 사실에는 눈을 감고 전직 야당 대표를 소환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처사"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때문인지 검찰은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에 대해서도 소환을 통보했다. 2012년 총선 당시 성 전 회장으로부터 2000만원을 전달 받은 혐의다. 그러나 이 의원은 친박계와 친이계에 속하지 않았을 뿐더러 무게감 역시 야당 전직 대표인 김 의원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다.

법조계 일각에선 김 의원을 소환하기 위해 '구색 맞추기' 격으로 이 의원까지 조사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검찰이 김 의원을 소환하는 숨은 의도는 참여정부 말기 특사 과정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검찰은 두 현직 의원에 대한 조사가 끝나는 대로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로는 이 전 총리와 홍 지사만 기소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나지 않아 발표가 미뤄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청문회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잡음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만에 하나 노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결정되면 반야당 성향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간 청와대는 NLL 논란 등 이른바 '노무현 카드'를 통해 정치적인 위기를 돌파했다. 메르스 사태로 떨어진 지지율에 부담을 느끼는 청와대로서는 유혹을 느낄 법한 부분이다.

청와대는 황 총리를 통해 검찰에 대한 장악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 동력은 인사권이다. 표면적으로 인사권은 법무부 장관에게 있다. 그러나 인사권자가 정권의 뜻에 반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김 후보자 역시 황 총리의 사법연수원 후배이며 소위 '황교안 라인'으로 분류된다.

인사권 쥐고
수사팀 장악

오는 하반기 김진태 검찰총장의 후임 내정과 함께 대규모 인사이동이 예고된 상황에서 수사팀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모조리 좌천되거나 옷을 벗었다. 반면 '정윤회 문건' 수사를 지휘했던 김수남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대검 차장으로 영전했다.

성 전 회장은 생전 마지막 '유언'에서 "제가 왜 이런 얘기를 했나, (중략) 깨끗한 정부, 진짜 박(근혜) 대통령이 깨끗한 사람을 앞으로 내세워서 깨끗한 정부가 될 수 있도록 꼭 좀 도와주십쇼"라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이 유서로 남긴 메모 속 인물들은 아직 건재하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애지중지하던 서산장학재단을 '비자금 저수지'로 지목했다. 산 권력엔 관대하고, 죽은 권력엔 가혹한 검찰의 모습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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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