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28)전재현 아이지원프라임 대표

잘나갔던 CEO 투자 실패로 몰락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28회는 68억8400만원을 체납한 전재현 아이지원프라임 대표다.

전재현씨는 대웅제약 임원 출신이다. 이사 자격으로 일간 경제지에 오르내린 전문 경영인이다. 1990년대에는 전무이사를 지냈고 2000년 5월에는 비상근감사로 선임됐다. 연매출 600억원에 달하는 투자기관 경영도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전씨는 정확히 10년 뒤 빈털터리가 됐다. 전씨가 발행한 약속어음은 휴지조각이 됐다. 2010년 9월 시중은행은 전씨의 모든 당좌거래를 정지시켰다.

대기업 임원 출신

전씨가 대표로 있던 아이지원프라임은 고액체납법인에 등록됐다. 전씨는 2008년 6월부터 등록세 등 14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거둘 세금은 57억3300만원이다. 서울시가 공개한 2013년 체납 자료에서는 체납액이 57억2800만원으로 기재됐다. 서울시로서는 1년 사이 500만원의 세금을 정정 부과한 것이다.

아이지원프라임의 등록 주소지는 서울 동작구 상도동 171-1번지다. 이곳에서 전씨는 아이앤디개발이란 부동산 회사를 병행 운영했다. 두 회사가 마지막으로 기재한 대표번호로 연락했지만 결번으로 확인됐다. 아이지원프라임과 아이앤디개발은 각각 폐업 상태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이지원프라임은 2003년 11월 설립됐다. 설립 당시 부동산업 및 임대업을 업종으로 기재했다. 아이지원프라임이 주력한 사업은 서울 상도동 일대의 주택 재건축이다. 아이지원프라임은 2007년 7월 상도동 두산위브지역주택조합과 업무대행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라 아이지원프라임은 상도동 169-5번지 인근 토지매입, 건축 인허가, 분담금 관리, 건물 분양 등의 권한을 위임받았다. 관계사인 아이앤디개발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서울 동작구가 2008년 7월 고시한 '도시계획시설 실시계획인가'를 보면 전씨는 구청으로부터 도로 및 공원 개설을 허가받았다. 공사규모는 대지면적 3900㎡(도로 3143㎡, 공원 757㎡)로 크지 않았다. 준공 예정일은 2010년 3월이었다. 시행사는 아이앤디개발, 이 회사는 '상도동 27-3호 외 75필지 민영주택건설사업'에 대한 허가도 따냈다. 대지면적 1만242㎡, 사업비 1200억원 규모의 대형 건설공사가 도면 설계를 거쳐 발주됐다.

그런데 아이지원프라임은 재개발에 필요한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면서 분양권을 헐값에 넘기는 등 무리한 사업추진으로 지역주택조합과 마찰을 빚었다. 지역의 한 교회와는 이면계약을 맺어 조합으로부터 피소됐다. 당시 아이지원프라임이 은행으로부터 차입한 대금은 1300억원이 넘었다. PF로 일으킨 자금은 2000억원에 이르렀다. 전씨는 이 가운데 250억원 가량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서울시 57억원 국세청 11억5600만원
대웅제약 임원 출신 주가조작 사건 연루

2010년 무렵 아이앤디개발의 회사 주소지는 상도2동 183-13번지였다. 그런데 같은 건물에 입주한 투자회사는 전씨와 깊은 관련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의 회사는 아이앤디창업투자㈜다. 아이앤디창업투자㈜는 2002년 대웅제약으로부터 3개월간 20억원을 지원받는 등 대웅제약의 자금을 대리 운용했다.

아이앤디창업투자㈜는 '해외리조트 개발사업 및 기타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사업을 영위한다'라고 사업 목적을 명시했다. 1991년 설립됐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과 역삼동을 거쳐 상도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2000년 기준 자본금은 106억원, 매출액은 624억87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후 매출액은 점차 감소세를 보이더니 2009년 들어 2200만원까지 폭락했다. 2010년부터는 사실상 휴업 상태다.
 

은행 정보공시 등에 따르면 아이앤디창업투자㈜는 대웅제약의 계열사로 적시돼 있다. 2002년 기준 대웅제약은 아이앤디창업투자㈜의 지분 23.8%를 보유했다. 대웅제약의 임원을 지낸 전씨는 아이앤디창업투자㈜의 대표였다. 때문에 전씨가 대웅제약의 돈을 관리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아이앤디창업투자㈜는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 2005년부터 법인세 등 47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액은 11억5600만원이다. 그런데 아이앤디창업투자㈜의 대표이사로는 백왕기씨가 등록돼있다. 회사 공동대표였던 백씨가 체납 당시 아이앤디창업투자㈜의 경영에 관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상도동에서 개발 사업이 진행될 무렵 전씨는 ㈜에너랜드코퍼레이션이라는 코스닥 상장사 운영에 관여했다. ㈜에너랜드코퍼레이션은 의약품·위생용품 및 기타 관련 제품의 개발, 제조, 판매업 등을 사업목적으로 명시했다. 이 회사는 2010년 3월 기업공시를 통해 "전씨를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했다"라고 알렸다.

하지만 에너랜드코퍼레이션은 불과 다섯 달 만에 "전씨가 대표 직무를 사임했다"라고 재공시했다. 공동 대표였던 장모씨는 단독 대표이사가 됐다. 전씨는 대표에서 물러난 뒤 이사직만 유지했다. 그러다 1년도 못가 주가조작 사건에 휘말렸다.

2011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에너랜드코퍼레이션의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대표 장씨 등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장씨 등 5명은 2008년 31억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와 채권 등을 동원해 매매 실적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시세를 조작했다. 범행 시점은 2008년 2월부터 3월까지여서 전씨가 직접 가담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에게 책임을 묻는 주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기업 자금 관리?

전씨가 떠난 상도동은 현재 재건축이 한창이다. 시공사 두산중공업은 지난달 두산위브지역주택조합의 채무 2070억원에 대해 채무보증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실패한 개발 사업의 책임이 대기업 쪽으로 넘어간 것이다.

전씨는 어디에 있을까. 전씨가 대표로 있던 또 다른 회사의 이름은 B사다. B사는 현재 정상영업 중이다. B사는 노화방지 관련 시스템 개발 및 공급업을 사업내용으로 기재했다. 2002년 설립됐으며 전씨는 2007년까지 이 회사의 대표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B사는 2007년 대웅제약 쪽으로 편입됐다.

B사 관계자는 '전씨가 지금도 대표로 있느냐'라는 물음에 "그만둔 지 오래돼서 확인해 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 홈페이지상 현 대표는 노모씨로 확인된다. 그러나 한 채용사이트에는 아직도 전씨가 대표로 기재돼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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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