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남아공월드컵 기획특집2>대기업, 도 넘은 월드컵 마케팅 대해부



한국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월드컵 개막과 함께 붉은 악마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붉은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장관이 연출되고 있는 것. 특히 지난 12일 그리스 전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그 열기가 한층 뜨거워졌다. 이와 함께 기업들은 앞 다퉈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월드컵과 맞물린 광고효과가 어마어마한 것이 그 이유다. 이 과정에서 ‘깜짝 행사’나 ‘이색 이벤트’ 등 유쾌한 홍보행사도 눈에 띈다. 하지만 지나치면 아니한 만 못한 법. 기업 간 마케팅 경쟁이 과열되면서 월드컵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들은 뒷전에 밀려나는 일도 벌어졌다. 뿐만 아니라 불법 광고까지 공공연하게 등장하면서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이 ‘기업들의 축제’로 변질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광고경쟁 과열에 시민들 발끈…“응원단 뿔났다”
불법옥외 광고도 버젓이…“벌금내면 되지 뭐!”

롯데백화점·롯데마트는 1등 당첨자에게 대표팀 한 골당 2000만원에 해당하는 상품권을 주는 경품 행사를 열었다. 1등 당첨자가 받을 수 있는 상품권은 4000만원. 12일 경기에서 대표팀이 두 골을 넣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은 방문 고객 중 3명을 추첨해 ‘싼타페’ ‘YF쏘나타’ ‘아반떼 스페셜 에디션’ 한 대씩을 경품으로 제공한다.

롯데슈퍼는 4억원이 넘는 현금을 경품으로 내놨다.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면 100명에게 현금 120만원씩을, 8강에 진출하면 추가로 30명에게 240만원씩을 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처럼 4강에 진출할 경우 10명에게 2400만원씩을 추가로 증정할 계획이다.

‘남아공’ ‘심육강’ ‘한국승’
응원 이름 가진 사람에 경품

패션속옷 전문업체 ‘좋은사람들’은 보디가드, 예스 등 전국 300여개 전문점에서 구매고객들을 대상으로 대표팀이 1승할 때마다 구매금액의 10%를 포인트로 돌려주는 행사를 열고 있다.

‘깜짝행사’도 있었다. AK플라자 구로본점은 그리스전 승리에 따라 13일 하루 동안 아디다스,컨버스,피에르가르뎅,파코라반 등의 브랜드를 50% 할인된 가격에 판매했다. 갤러리아백화점 대전 동백점도 이날 오후 2시부터 커플 티셔츠와 축구화, 축구 유니폼을 추첨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지급했다.


‘16강 기원 이벤트’도 속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경우 이달 말까지 파브 3D TV를 구매한 고객 중 총 333명에게 100만원과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펼치고 있다. 이 회사는 월드컵 특수를 겨냥해 보상판매 및 24시간 바로배송 서비스도 진행 중이다.

금융권은 대표팀 성적에 따라 우대 금리를 지급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외환은행은 1승 때마다 0.1%포인트씩 최대 0.3%포인트의 이자를 높여주는 ‘월드컵 특판예금’을 내놨다. 신한은행은 16강에 진출할 때 300달러 이상 환전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금 상품 ‘골드리슈’ 50g을 지급하는 행사를 30일까지 열 예정이다.

이색 이벤트도 눈에 띈다. GS샵은 월드컵을 맞아 독특한 이름을 가진 사람을 찾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름에 ‘남아공’ ‘심육강’ ‘한국승’ 등 한국팀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긴 사람이 기업 블로그인 ‘리얼쇼핑스토리(blog.gsshop.com)’에 응원 메시지를 남기면 된다. 응모자 가운데 10명을 추첨해 응모자의 이름을 새긴 붉은 색 티셔츠와 16강을 기원하는 찰떡 선물 세트를 준다. JW메리어트 호텔도 ‘남아공’이란 이름을 가진 손님에게 20만1000원짜리 패키지 상품 객실을 하루 숙박료 436만원짜리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으로 바꿔준다. 260㎡(약 80평) 규모의 이 방은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과 성악가 안드리아 보첼리가 묵었던 방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월드컵 특수를 맞아 기업들의 마케팅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수혜를 거둔 것은 다름 아닌 현대·기아차다. 월드컵 공식후원을 하면서 광고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얻을 광고효과는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매 경기당 A보드를 통해 기업로고가 노출됨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로고는 평균 13분가량 경기장에 등장하게 되며, 이 로고는 전세계 앞에 노출된다.

이번 월드컵을 TV로 시청하는 사람은 연인원 약 400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재방송이나 하이라이트방송을 통해서도 현대·기아차의 기업로고는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그 광고효과가 막대하다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2006년 독일월드컵에 이어 3회 연속 FIFA를 공식후원하고 있다. 한·일 월드컵 때의 홍보효과는 6조원에 달했으며, 독일월드컵에서의 브랜드 노출효과는 7조원을 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메시, 호날두, 루니 등 스타들이 총출동해 초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이번 월드컵에서 현대·기아차는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기아차가 이번 월드컵에 얼마를 투자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약 3000억∼5000억원 선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대·기아차로서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투자금의 20배에 달하는 광고효과를 누리게 되는 셈.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월드컵 열기가 고조되고 있어서 고무적”이라며 “이번 월드컵을 통해 현대·기아차의 브랜드인지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SBS 역시 최대수혜주 중에 하나다. 독점중계 논란으로 뭇매를 맞고 있음에도 입가엔 미소가 번져있다. 과거 월드컵에 비해 광고료가 많이 뛴 것이 그 이유다.

현대차 광고효과 10조
SBS 광고매출 1200억

한 증권사의 미디어 담당 애널리스트는 “방송 3사가 중계했던 2002년 월드컵과 비교하면 한국 경기의 광고료가 세 배 정도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SBS가 이번 월드컵 중계를 위해 쓴 돈은 1086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반면 광고 판매 등 매출액은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더라도 최소 1200여 억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기업들 대부분은 “과거보다 비싸긴 하지만 광고 효과를 생각하면 못 낼 액수는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만큼 광고효과가 뛰어나단 소리다.

강명수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연구원은 “기업마다 차이가 있지만 월드컵 마케팅 효과는 투자비의 3배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월드컵 응원 특수를 노리는 기업체들의 ‘샅바싸움’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자사 브랜드를 부각시키기 위해 신사협정을 위배하는가 하면 경쟁업체의 광고효과를 반감시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기업체들의 경쟁 속에 정작 월드컵 축제의 주인이어야 할 시민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월드컵 응원의 메카인 서울광장을 둘러싼 기업들의 각축전이 대표적이다. 서울광장 행사는 당초 서울시가 조례에 따라 ‘기업 브랜드와 슬로건을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진행될 예정이었다.

응원행사의 주관사인 현대자동차와 후원사인 SKT는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당장 응원가 지정 문제부터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응원가가 경쟁 통신업체를 연상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 것. 결국 특정 기업을 연상시키는 대표곡들을 응원가에서 배제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뒤늦게 접한 붉은악마는 “마음 놓고 불러야 할 응원가조차 기업이 통제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마케팅이 중심에 있는 서울광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응원장소를 강남 코엑스와 봉은사 근처로 변경하는 등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불법광고물이 공공연히 등장하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중구 을지로2가 본사 외벽 유리창에 박지성 선수를 모델로 한 대형 광고물을 부착했다. 건물을 감쌀 정도로 커서 이른바 ‘래핑(Wrapping)’이라 불리는 광고물이다.


이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과 시행령에 저촉된다. 옥외광고물법 등에 따르면 광고 현수막은 구청에서 지정한 게시대에만 걸어야 한다. 백화점, 대형마트 건물 등은 유통산업법에 따라 외벽에 광고현수막을 걸 수 있으나 그 외 건물에 광고현수막을 걸면 옥외광고물법 위반이다.

이 밖에도 교보생명은 광화문 본사 사옥에 가로 90m, 세로 20m 크기의 래핑광고를 부착하고 ‘한국 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초대형 래핑을 설치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불법이었다.

불법광고물 단속권한은 각 구청에 있다. 그러나 구청의 능력으로는 소형 현수막이나 불법 전단 정도를 단속할 수 있을 뿐 기업의 래핑광고나 초대형 광고현수막은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래핑이나 대형 현수막을 철거하려면 사다리차를 이용하거나 건물 옥상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야 한다”며 “그런 장비도 없거니와 있다 한들 공무원이 줄을 타고 내려오는 등의 전문 기술을 어떻게 익히겠냐”며 단속 상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결국 구청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과태료 또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대 500만원까지 밖에 부과할 수 없다.

이에 최근 서울 중구청은 해당 기업에 “이 광고물을 철거하지 않으면 최대 5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며 계고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콧방귀만 뀔 따름이다. 래핑광고의 엄청난 효과에 비하면 벌금은 무시해도 될 만한 액수이기 때문이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광고효과에 비해 과태료나 이행강제금이 터무니없이 적은 점을 기업이 악용하고 있다”며 “이를 막으려면 법을 개정해 광고효과에 버금가는 금액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 응원가로 아웅다웅
‘시민들 뿔났다’

반면 기업 관계자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적 축제가 있을 때 설치하는 대형 광고물은 비록 불법이라도 공익적 효과가 적지 않다고 항변하고 나섰다.

구청에서 래핑광고를 철거하라는 통보를 받은 한 기업의 담당자는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고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특정 상품을 홍보하는 것도 아닌 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종로구청 담당자는 “건물에 래핑을 하거나 현수막을 걸어도 광고물이 아니라면 단속대상이 아니다. 공익을 강조하고 싶다면 로고나 상호, 기업을 연상하게 하는 문구를 빼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기업은 한 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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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