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검찰, 문체부-대한체육회 갈등 내사 '왜?'

정부 숟가락 얹기 시작됐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검찰이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대한체육회와 관련한 폭넓은 내사를 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전 회장은 지난 4월까지 대한체육회 명예회장을 지냈다. 박 전 회장을 겨냥한 내사지만 그 이면에는 통합체육회 출범에 반발하고 있는 일부 체육계 인사를 손보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또 합의 과정에서 '실세 차관'으로 알려진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대한체육회 측에 서명을 압박했다는 주장이 나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일 국민생활체육회가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대의원들은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간 통합을 지지하기로 결의했다. 총회에 앞서 열린 '체육단체 통합 설명회'에서는 '통합체육회'가 추진된 배경과 일정 등이 공유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김홍필 서기관을 보내 '체육단체 통합의 절차와 과제'에 대한 발제문을 낭독했다.

개정안 통과
논란은 여전

체육단체 개편을 위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은 지난해 10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안민석 의원이 발의했다. 올 3월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달 27일 정부는 국민생활체육회와 대한체육회를 하나로 통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통령령을 공포했다. 법안에 따라 양 단체는 2016년 3월27일까지 통합을 완료해야 한다. 가칭 통합체육회 출범이 가시화된 것이다.

그간 박근혜정부는 의욕적으로 체육단체 통합을 추진했다. 새정치연합 역시 통합체육회 출범을 지지해왔다. 체육단체 이원화로 생긴 ▲전문체육의 저변 약화 ▲은퇴선수의 일자리 제공 한계 ▲생활체육 서비스 수준 미흡 등의 문제점에 서로 공감대를 이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찬성하고 있는 통합체육회 추진에 우려하는 쪽은 대한체육회다. 원론적으로는 찬성이지만 각론에서 정부·국회와 이견을 보이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연간 2000억원이 넘는 국고를 지원받는 사실상의 이익단체다. 그 중심에는 KOC(대한올림픽위원회)가 있다. 대한체육회의 산하기구인 KOC는 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선수들을 발굴·육성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KOC의 존재 때문에 대한체육회는 체육계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문제는 초기 개정안에서 KOC를 통합체육회로부터 분리하는 방안이 검토됐다는 것이다. KOC가 없는 통합체육회는 비 올림픽 종목과 생활체육만 관장하는 까닭에 위상이 격하될 수밖에 없다. 통합대상인 대한체육회의 반발로 KOC 분리는 개정안에 명시되지 않았다. 남은 쟁점은 크게 두 가지, 통합준비위원회의 인적 구성과 초대 통합체육회장의 선출 방안이다.

동상이몽
통합체육회

지난달 28일 대한체육회는 자체 뉴스레터를 통해 체육단체 통합과 관련한 첫 번째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주요 경과를 살피면 대한체육회가 주장하고 있는 '체육계 자율성 보장'이 곳곳에 적시돼 있다.

먼저 대한체육회는 지난 3월27일 문화체육관광부 쪽으로 건의서 전달 및 장관 면담을 요청했다. 이들은 양 단체가 통합되는 과정에 당사자끼리 협의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율성'은 정부와 국회가 개입을 자제해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4월21일 '수용 불가' 입장을 대한체육회에 통보했다. 장관 면담 요청에 대해선 회신하지 않았다.

앞서 대한체육회는 수차례에 걸쳐 통합준비위원회의 인적 구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세부 훈령에 따르면 통합준비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천하는 3인, 대한체육회가 추천하는 2인, 국민생활체육회가 추천하는 2인,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추천하는 2인 등 모두 11명을 위원으로 두도록 구성했다.

하지만 이기흥 대한체육회 부회장은 "대한체육회가 7인, 국민생활체육회가 7인, 문화체육관광부가 1인을 추천해 통합준비위원회을 꾸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대한체육회 내부 회의에서도 "체육단체 통합에 왜 정치인과 장관이 끼어드느냐"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또 그는 "(정부 안대로 되면) 내년 2월 선출되는 통합체육회장도 사실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명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박용성 수사 중 돌연 대한체육회 내사
대한체육회·정부 주도 체육단체 통합에 반발


실제로 체육계에선 대한체육회를 이끄는 김정행 회장이 정권 눈 밖에 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김 회장이 밀려난다면 이 부회장을 비롯한 수뇌부는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이 부회장은 IOC(국제올림픽위원회)에 공식 질의서를 발송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IOC는 각 NOC(국가올림픽위원회)에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도록 했는데 정부가 이를 어기고 있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 서기관은 지난 4일 통화에서 "김정행 회장이 정부는 물론 국회와도 합의한 부분인데 이제 와서 법안을 반대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라며 "대한체육회의 '7+7안'은 중간 조정자가 없어 의견절충이 어렵다는 것을 생각해 달라"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11월6일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당시 국민생활체육회장), 김 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비밀 회동을 갖고, '체육단체 통합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 자리에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한 안 의원도 함께했다. 주요 합의 내용에는 ▲2017년 2월까지 양 단체를 통합하고 ▲국민생활체육회를 법정법인화하며 ▲KOC 분리 문제를 19대 국회에서 차후 논의하기로 한 조항이 담겼다.

네 사람의 합의 직후 체육인 출신인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은 "절차상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체육계가 자율적으로 통합을 추진해야 하는데 정치인과 해당 부처가 깊숙이 관여한 꼴"이라며 "이 합의문을 IOC로 보내면 어떻게 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실제 김 회장은 대한체육회 대의원들의 동의 없이는 서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주변에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세 차관'
서명 압박?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 회장은 합의문에 날인했다. 이를 두고 한 체육계 관계자는 "김 차관이 서명 당일 김 회장을 불러 ‘내가 책임질 테니 사인하세요’라고 했다”라며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처리하면 되지 않냐. 2017년까지 있을지도 모르는데…’라고 했다는 소문이 체육계에 파다하다”라고 말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부가 체육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셈이 된다.

그렇지만 관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우리가) 압력을 넣을 이유가 어디 있느냐"라며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일"이라고 답했다. 협상에 참여한 안 의원 측 역시 "(압력이건 아니건)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설사 강요했다고 하더라도 체육단체의 수장으로서 그때 거부했어야 맞는 것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 측 역시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면 법안 통과 이전에 했어야 한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 차관이 한 '발언'의 진위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체육계 일각에선 "나도 그 말을 들었다"라고 했고, 반대편에선 "유언비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소문이 나온 배경은 한 갈래로 모였다. 바로 '실세 차관' 의혹이다.

지난해 12월 안 의원은 국회 본회의 긴급 현안질의에서 김 차관의 인사개입 의혹을 폭로했다. 당시 안 의원은 "우상일 체육국장이 임명되는 과정에 김 차관이 개입했다"라고 밝혔다. 김 차관은 '문고리 권력'으로 지목된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함께 문화체육관광부 인사에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당시 김 차관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김 차관은 국민생활체육회 사무총장을 추천하는 등 일부 인사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교롭게도 국민생활체육회는 대한체육회와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단체다. 때문에 정치권에선 김 차관이 초대 통합체육회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김 회장은 소극적인 행보로 의심을 사고 있다. 대한체육회 회장이면서도 대한체육회의 입장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럴 만한 사정도 있다. 김 회장과 각별한 사이로 전해진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나란히 검찰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문체부 2차관 합의 압박설 “근거 없는 유언비어”
'정치권 개입' vs '밥그릇 챙기기' 논란 계속


김 회장은 2013년 2월 대한체육회장 선거 당시 박 전 수석을 통해 박 전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박 전 회장은 투표권이 있는 선수위원장에 김 회장 쪽 인사를 임명해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됐다. 현 대한체육회가 사실상 '박용성사단'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 부회장 역시 박용성사단의 일원으로 '제30회 런던올림픽 대한민국 대표선수단' 단장을 역임했다.

논란이 지펴지자 김 회장은 수술을 핑계로 국회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지난 4월 김 회장은 체육단체 통합 문제와 관련해 이 의원 측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며 병원에 입원했다. 이날이 4월8일이다. 입원 직후 김 회장은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했다.

그런데 김 회장의 올 4월 업무추진비 내역을 확인하면 수상한 구석이 눈에 띈다. 김 회장은 같은 달 15일 '언론사 업무협의'란 명목의 식대를 지출한 것으로 돼 있다. 수술 중이라던 김 회장이 누군가와 대면한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김정행 회장이 수술을 받은 것은 맞다"라면서도 "업무추진비 지출은 우리도 처음 듣는 얘기"라고 언급을 꺼렸다.

지난 5월20일 대한체육회는 이사회를 열고 새누리당 문대성 의원(IOC 위원)을 선수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또 조현재 전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을 전국체육대회 위원(행사추진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조 전 차관은 대한체육회 내부의 통합추진위원회 부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이는 정치권의 '입김'에 맞서 체육계가 내놓은 고육지책이라는 해석이다.

9일 대한체육회는 대의원총회를 앞두고 있다. 총회에서 대의원들은 '7+7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만약 대의원들이 정부 안(3+2+2+2)을 거부하기로 결의하면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경우에 따라선 대한체육회를 겨냥한 정권 차원의 사정작업이 벌어질 수 있다.
 

최근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대한체육회와 관련한 검찰의 내사가 끝났다"라며 "수사 착수시기를 저울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취재 결과 검찰의 칼날은 박용성사단으로 분류된 김 회장과 이 부회장을 겨냥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정행은 뒷짐
이기흥 전면에

앞서 검찰은 박 전 회장에 대한 소환을 앞두고 대한체육회 선거 과정을 포함해 국가대표 선발 비리, 협찬계약 특혜 의혹 등을 광범위하게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박 전 회장은 명예회장일 뿐이고, 현 회장과 관련한 검찰의 자료협조 요구는 없었다"라고 밝혔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 부회장의 거취 문제다. 대한수영연맹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는 지난해 감사원에서 16억원 상당의 수의계약에 대한 시정권고를 받았다. 지난달 중순에는 대한수영연맹 이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국가대표 코치와 학부모들로부터 2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사정기관 관계자는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가능성을 조심스레 언급했다. 현재 이 부회장은 대한체육회가 자체 추진하고 있는 통합준비위원회(정부 주도 위원회와는 별개)의 업무를 총괄·지휘하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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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