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 사기극' 끝나지 않은 백수오 사태 막전막후

또 불량식품 공포…국민들은 불안하다

[일요시사 경제2팀] 박호민 기자 =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백수오 관련 제품이 대부분 ‘짝퉁’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백수오 관련 상품을 구매한 소비자부터 유통한 홈쇼핑, 그리고 생산 농가까지 충격을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지난달 22일 한국소비자원은 32개 백수오 제품 조사결과 진짜 백수오만을 사용한 제품은 3개(9.4%)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제품에는 부작용이 많아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 이엽우피소 성분이 검출되자 이른바 ‘백수오 사태’에 전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다. 백수오 사태는 지금까지도 주요 포털사이트의 상위 검색어로 오르는 등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백수오 사태의 결말은 어디로 향할까.
 
막막한 네츄럴
농가 피해는?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내츄럴엔도텍은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내츄럴엔도텍이 총 31개 업체에 독점 공급한 ‘백수오등복합추출물’에서 이엽우피소 성분이 혼입된 사실이 최종 확인됐기 때문이다.
 
소비자원이 지난달 22일 내츄럴엔도텍이 공급하고 있는 백수오 원료에서 이엽우피소가 검출됐다고 처음 발표했을 때만 해도 회사 측은 소송까지 불사까지 불사하겠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식약처마저 해당 제품들에서 이엽우피소 성분이 혼입됐다고 최종적으로 발표하자 재기불능의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
 
이에 내츄럴엔도텍은 지난 6일 “이엽우피소 혼입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는 내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관련 고소를 취하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지만 여론은 차갑다. 백수오 사태 직후부터 지금까지 변명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회사 측의 태도 때문이다.
 

사과문에서 내츄럴엔도텍 김재수 대표는 “백수오 원료에 대해서는 입고 전 및 입고 후 제품 생산 전 철저히 검사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해 왔으나 이번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에서 해당 롯트에 이엽우피소 혼입이 확인됐다”며 백수오 사태 책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이었다.
 
시중 유통 제품들 대부분 짝퉁 결론
가짜가 남긴 후폭풍…책임공방 가열
 
증권가에서는 과거 ‘삼양라면 우지파동’의 예를 들며 내츄럴엔도텍의 재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앞서 삼양라면은 1989년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라면제조 과정에서 소의 기름인 우지를 사용하고 있다고 검찰에 고발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삼양식품은 우지파동으로 직원 1000여명을 정리해야 했고, 50%가 넘던 점유율은 18∼19%로 떨어졌다. 삼양라면은 그 뒤 8년 가까이 법정 공방을 치른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아냈지만 25년이 지나도록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백수오 농가에서는 이번 사태로 재배를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7일 제천시에 따르면 현재 제천에서는 시에서 지원비를 받는 68개 농가를 비롯해 100여개 농가가 백수오를 재배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농가의 총 재배면적은 약 110㏊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달 22일 소비자원의 ‘가짜 백수오’ 발표 이후 불과 2주 사이 20곳을 웃도는 농가가 재배를 포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농가에서 재배되고 있는 80%의 물량을 감당하고 있는 내츄럴엔도텍의 상황이 악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충북도는 백수오 사태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재배농가를 위해 지원에 나섰다. 지난 6일 충북도는 제천시청에서 제천한방연합회와 도 농업기술센터, 제천한방바이오진흥재단 관계자 등과 긴급 간담회를 열어 백수오 재배농가의 피해방지 대책을 논의했다. 
 
충북도는 앞으로 백수오 종자 보급 단계부터 재배와 납품에 이르는 모든 과정의 품질보증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관계기관과 합동으로 도내 백수오 농가의 계약재배 실태를 파악하고, 판로개척 지원에 나서는 한편, 가짜 백수오로 알려진 이엽 우피소의 불법 재배와 유통에 대해서도 단속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코너몰린 식약처
업계 후폭풍
 
백수오 사태와 관련해 식약처의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식약처가 소비자원보다 먼저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추출물을 검사했으나 ‘이상 없음’ 결론을 내리면서 백수오 사태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약처의 사후 처리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김 처장은 “이엽우피소가 중국과 타이완의 식용 사례가 있고 식용을 금지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명의로 대한한의사협회에 이엽우피소와 관련한 독성 및 안전성에 관한 자료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한 사실이 드러나 이엽우피소 유해성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김 처장은 지난 6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내츄럴엔도텍 수거검사에 1명밖에 안 간 것이 인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냐’는 지적에 “그렇다. 인원이 더 필요하다. 도와달라”고 답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건강식품 업계는 백수오 사태에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7일 대형 할인마트 홈플러스에 따르면 한국소비자원이 가짜 백수오 관련 조사결과를 발표한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5일까지 건강기능식품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나 감소했다. 롯데마트 역시 같은 기간 건강기능식품 매출이 16.4% 감소했다. 세부 품목별 감소율은 ▲홍인삼 29.8% ▲비타민 19.4% ▲기능성 건강식품 9.5% 등으로 집계됐다. 매출이 늘어난 품목은 건강선물세트(12.3%)가 유일했다.
 
업계 관계자는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올해 초까지 꾸준히 성장했지만 백수오 사태로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신뢰 자체가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상품 구매한 소비자 충격
홈쇼핑·생산농가들 멘붕
 
반면, 제약업체는 반사이익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여성의 갱년기 질환에 좋다고 알려진 백수오의 부재가 대체재 관계에 놓여있는 제약업체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조아제약의 경우 지난달 30일 식약처의 가짜 백수오 발표에 즉시 상한가를 기록하면서 시장의 기대를 반영했다. 명문제약도 같은날 상한가를 기록했으며 다음날에도 7% 이상의 상승을 기록하면서 시장의 관심을 나타냈다. 대화제약 역시 이틀 연속 7%대의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백수오발 수혜를 입었다.
  

가짜 백수오 관련 제품을 산 소비자들은 단체 소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가짜 백수오 제품 환불 문의 및 소송을 준비하는 카페 등이 잇따라 개설되고 있다.
 
소비자들은 부작용 사례 등을 올리며 가짜 백수오의 유해성 여부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윤옥 새누리당 의원 등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에 신고된 백수오 부작용 건수는 2012년 1건, 2013년 2건에서 2014년 301건으로 급증했다. 부작용은 두드러기 피부발진 등이 31.6%로 가장 많았다.
 
소비자단체도 소송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녹색소비자연대는 “단체 소송 가능 여부를 따져보고, 소송을 하게 될 경우 제조사나 유통사 어디를 상대로 해야할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당한 소비자 
환불 계획은?
 
판매액수가 크지 않은 백화점과 대형 마트들은 백수오 관련 제품 환불에 인색하지 않은 모습이다.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백화점과 마트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수십여 건의 백수오 환불 건수를 처리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25건의 고객 환불 요청을 처리했다. 환불 금액은 약 300만원 규모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도 지난달 23일 이후 각각 20건 안팎의 환불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트는 백화점보다 환불 액수가 더 컸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액수였다. 이마트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5일까지 전국 모든 점포에서 백수오 제품 약 460건을 환불 처리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약 2300만원 규모다. 롯데마트는 이달 1∼5일 약 130건의 백수오 제품 환불 요청이 있었다. 금액으로 보면 약 60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문제는 홈쇼핑 업계다. 홈쇼핑 업체들이 전체 판매량의 75% 가량을 팔아치워 피해 규모가 크기 때문에 환불에 애를 먹고 있다. 이에 한국소비자원은 홈쇼핑 6개 업체에게 소비자들의 불만 해소 및 고객보호 차원에서 홈쇼핑업계가 소비자보상 방안을 마련해 시행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donky@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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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