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맛따라 ①전북 남원시

봄날 ‘광한루연가’는 별미를 싣고

남원은 춘향의 고향이자 <춘향전>의 발상지다. 마을의 면면 역시 두 사람의 풋풋하고 애틋한 사랑을 닮았다. 봄날에는 ‘남원 춘향제’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제’ 등이 열려 한층 풍성하다. 한우와 추어탕, 흑돼지 등 먹거리도 다양해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춘향의 고향에서 느끼는 봄날의 정취
<춘향전> 몸소 체험하는 춘향테마파크

첫 목적지는 역시 광한루원이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처음 만난 장소로, 광한루원은 광한루가 있는 정원을 부르는 말이다. <춘향전>의 무대라 귀에 익지만, 눈으로 보기 전에는 그 매력을 알 수 없다. 계절마다 작심한 듯 표정을 바꾸니 한 번 봤다고 모두 아는 것도 아니다. 남문으로 들어서면 푸른 잔디와 완월정이 반긴다. 완월정은 팔작지붕을 인 2층 누각으로, 옛 남원의 남문인 완월루의 이름을 땄다. 춘향제의 주요 행사가 치러지는 무대다.
광한루는 옥황상제의 궁전 광한청허부를 지상에 재현했다. 완월정의 북쪽으로 둘 사이에는 저수지가 있고, 오작교와 방장정, 영주각 등이 삼신산을 이룬다. 물가로는 버드나무 고목이 줄지어 수면 위로 몸을 기울인다. 물에 어린 초록빛이 가히 환상이다. 영주각에서 방장정 남쪽을 바라볼 때 가장 화려하다. 광한루원을 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다.

한 폭의 그림
광한루 전경

영주각을 지나서는 광한루와 방장정 갈림길이 아름답다. 짧은 구간이지만 그윽한 대숲의 짙은 녹음이 매혹한다. 다리 건너 광한루에는 춘향과 몽룡의 만남을 떠올리며 기념사진 찍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탐스런 장면이 나온다. 광한루를 배경으로 정면에는 삼신산의 방장정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홍예 네 개를 간직한 오작교가 한껏 멋을 뽐낸다. 오작교 위로 오가는 사람들마저 한 폭의 그림이다. 누구인들 그 길에서 5월의 춘향이 되고 싶지 않을까.
광한루원은 눈으로 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4~10월 매주 목요일 오후 2시(7월 셋째 주~8월 제외) 완월정에서 〈광한루원 음악회〉가 열린다. 국립민속국악원 국악연주단원의 풍류 콘서트가 흥겨움을 안긴다.

 

매주 토·일요일 오후 4시에는 광한루원 경내에서 신관 사또 부임 행차가 있다. 풍자와 해학의 한마당으로 주말 나들이객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5월부터 10월까지 토요일 저녁에는 유료 야간 공연 〈광한루연가 열녀춘향〉이 이색 볼거리를 제공한다. <춘향전>의 흥취에 깊이 젖어들고 싶다면 요천을 건너 춘향테마파크에 가보자. 걸어서 오갈 만한 거리로, 요천을 가로지르는 섶다리가 새로운 명물로 등장했다. 

 


춘향테마파크는 <춘향전>이 오롯한 주인공이다. 만남, 맹약, 사랑과 이별, 시련, 축제 등 춘향의 일대기로 꾸몄다. 영화 〈춘향뎐〉의 촬영지도 자리한다. 가족 단위 방문객은 동헌과 옥사정을 재현한 시련의 장에서 장난스럽게 곤장을 치며 논다. 축제의 장에서는 월요일과 수~금요일에 마당극, 판소리 상설 공연, 판소리 체험 등이 펼쳐진다. 사랑과 이별의 장에는 단심정이 있어 계단을 오른다. 춘향테마파크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라 남원 시내 전경을 조망하기 좋다. 올해 춘향제는 5월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개최한다. 〈세기의 사랑가〉 공연 예술제, ‘이판사판 춤판’ 경연 등을 눈여겨 봄직하다. 

광한루원과 춘향테마파크를 돌아본 뒤에는 점심을 먹고 쉬어 간다. 남원 시내는 추어탕거리가 유명하다. 남원추어탕이 유명한 건 섬진강 지류의 추어와 운봉 고랭지의 토란대나 시래기가 넉넉한 까닭이다. 시래기와 들깨 가루를 듬뿍 넣고 걸쭉하게 끓인 국물이 특징이다.
한우도 좋다. 가족 여행이라면 춘향테마파크에서 가까운 ‘한우촌웰빙가’도 무난하다. 문을 연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남원 사람들 사이에 알음알음 소문이 났다. 점심 메뉴로는 돌솥밥과 함께 나오는 육회비빔밥이 알맞다. 갓 지은 밥이 입맛을 돋운다. 육회에 거부감이 있다면 익혀서 주문해도 된다.
한정식은 ‘가나안식당’이 지역에서 이름났다. 홍어삼합과 소갈비찜, 도토리묵무침, 가오리찜, 바지락국 등 한 상 넉넉하게 차려 낸다. 크게 치장하지 않아도 음식 하나하나 맛깔스러워, 남도 정식의 손맛을 느껴볼 수 있다.

광한루원 경내에서 펼쳐지는 이색 음악회·콘서트
남원의 봄날 보여주는 지리산허브밸리와 바래봉

남원 시내를 돌아보고 나면 동쪽 운봉읍으로 향한다. 지리산허브밸리와 바래봉은 자연 그대로 남원의 봄날이다. 바래봉 철쭉은 지리산허브밸리부터 피기 시작해 4월 말에 해발 500m, 5월10일경에는 8부 능선까지 물들인다. 만개하면 바래봉과 세걸산을 잇는 산등성이가 장관이다. 연분홍 비단 치마가 산을 뒤덮은 듯하다. 지리산허브밸리에서 바래봉까지 왕복 세 시간 코스가 기본이다.

벌써 기대되는
5월 말 춘향제

철쭉제 기간에는 지리산허브밸리가 축제 행사장 역할을 한다. 남원은 2005년 9월 지리산 웰빙 허브산업특구로 지정되었다. 그 중심에 지리산허브밸리가 있다. 가족 방문객은 압화 전시관과 카페테리아, 풍차 포토 존을 갖춘 허브테마파크에서 주로 체험한다. 압화 전시관에는 지리산 자생식물 압화를 계절별로 전시한다. 평소 보기 힘든 들꽃을 관찰할 수 있어 유익하다. 조금 긴 산책을 원하면 자생식물생태공원을 이용한다. 지리산허브밸리에서 국악의 성지도 약 5.5km 거리로 지척이다. 남원은 판소리다섯마당 가운데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이고, 인근 비전마을은 동편제의 가왕 송흥록의 고향이다. 가히 국악의 성지다. 전시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전시·체험실은 1~2층에 자리한다.

우리네 소리 문화와 악기 등을 전시하고, 꽹과리나 소고 같은 전통 악기를 가볍게 연주해볼 수 있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하루 두 차례 예약 접수자에 한해 직접 국악기를 만들어보고, 판소리나 풍물 등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시관 뒤편 언덕에는 국악 선인 묘역이 있어 참배도 가능하다. 인적이 드문 산책로다.
운봉읍까지 왔다면 흑돼지도 빼놓을 수 없다. ‘지리산고원흑돈’에 가면 해발 400~600m 고랭지에서 기른 버크셔 순종 흑돼지를 낸다. 육질이 부드럽고 비계가 쫀득해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우리나라 돼지 생산량의 1%가 조금 넘는 양이라 귀한 대접을 받는다. 삼겹살, 목전지, 항정살, 가브리살, 갈매기살 등을 고루 맛볼 수 있는 ‘흑돈 명품 한 마리’가 좋다. 생고기를 꽃처럼 장식해 내는데, 같이 나오는 곰취절임에 싸 먹어도 맛있다. 야외에서 바비큐로 먹을 수도 있다.
천혜의 환경을 발끝으로 확인하고 싶을 때는 지리산둘레길로 여행을 계속한다. 천고마비가 꼭 가을의 이야기일까. 남원은 봄날의 오감이 기꺼운 여행지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코스

전통 체험 코스 : 광한루원→춘향테마파크→국악의 성지
풍경 여행 코스 : 광한루원→지리산허브밸리→바래봉

1박 2일 코스
첫째 날 : 광한루원→요천→춘향테마파크→남원항공우주천문대
둘째 날 : 바래봉→지리산허브밸리→국악의 성지

관련 웹사이트
· 남원시 문화관광 http://tour.namwon.go.kr
· 광한루원 www.gwanghallu.or.kr
· 춘향테마파크 www.namwontheme.or.kr
· 국악의 성지 http://gukak.namwon.go.kr
· 지리산허브밸리 www.jirisanherbvalley.or.kr

문의 전화
· 남원시청 문화관광과 063-620-6162
· 광한루원 063-625-4861
· 춘향테마파크 063-620-6836, 6180
· 국악의 성지 063-620-6905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남원역 :
KTX 하루 10회(05:20~21:40) 운행, 약 2시간 소요.
*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남원 :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1일 15회(06:00~22:20)운행, 3시간10분 소요.
* 문의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이지티켓 www.hticket.co.kr

자가운전
88고속도로 남원 IC→남원교차로 광한루원 방면 우회전→충정로 1.5km 직진→시청삼거리 춘향테마파크 방면 좌회전→시청로 700m→남원대교사거리 광한루원 방면 우회전→요천로 1.6km 직진 우측→광한루원

숙박
· 마음호텔 : 남원시 소리길, 063-631-9999,www.maumhotel.com
· 남원호텔 : 주천면 정령치로, 063-626-3535, www.namwonhotel.com
· 한일파크 : 남원시 용성로, 063-632-8462
· 윈호텔 : 남원시 충정로, 063-625-1801

식당
· 한우촌웰빙가 : 육회비빔밥, 남원시 양림길, 063-632-6935
· 한우회관 : 한우, 남원시 정문길, 063-625-4777
· 가나안식당 : 한정식, 남원시 관서당길, 063-632-5566
· 지리산고원흑돈 : 흑돼지, 아영면 인월장터로, 063-625-3663
· 새집추어탕 : 추어탕, 남원시 천거길, 063-625-2443

축제와 행사
· 제85회 남원 춘향제

  2015년 5월22~25일, 광한루원·요천 일원, 063-620-5771, www.chunhyang.org
· 제21회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제
  2015년 4월25일~5월24일(개화기에 따라 변동 가능), 바래봉 일원, 063-634-0024(운봉읍사무소)

주변 볼거리
실상사, 만인의총, 황산대첩비, 가왕 송흥록·국창 박초월 생가, 혼불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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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