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원정 첫 16강 도전 나선 허정무 감독

호랑이군단 조련사 진돗개 “즐겁고 유쾌한 축구 보라”


‘축구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이 할 일은 없다’는 속설은 이미 옛말이다. 경기 중 감독의 판단 하나에 승패가 좌우될 만큼 감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온 것. 8번째 월드컵을 앞둔 한국팀의 키를 잡은 것은 허정무 감독. 그에게 축구는 투쟁이자 삶 그 자체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볼을 차던 그가 지금 남아공월드컵에서 즐겁고 유쾌한 축구를 하겠다며 나섰다. 20년이 넘는 축구지도자 인생에서 터득한 ‘여유의 리더십’이다. <일요시사>는 남아공월드컵으로의 출항을 앞두고 있는 허정무 감독의 ‘축구외길인생’을 돌아봤다.


모든 포지션 소화, 원조 멀티 플레이어
악착같은 플레이로 ‘진돗개’ 별명 얻어

     
1955년 1월13일 허정무 감독은 전남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서 의동초교 교장선생님댁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삼촌뻘이었던 축구 국가대표 허윤정의 권유로 목포중을 졸업한 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가진 것이라곤 트레이닝복 한 벌과 운동화·이불 한 채가 전부였다. 눈 내리던 1967년 1월17일. 153㎝ 단신의 진도 촌놈은 축구를 시작한다. 선배들의 빨래를 도맡고, 새벽까지 개인훈련을 하던 그는 3개월만에 주전을 따냈다.

브라질 대표선수 자일징요처럼 되고 싶던 그는 고향 진도를 대표하는 ‘진돗개’로 불렸다. 끝내 상대를 제압하는 악착같은 플레이와 지능적인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영등포공고-연세대를 거쳐 국가대표로 발돋움했다. 대표팀에서도 그는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 그러던 중 그를 눈여겨보던 네덜란드 PSV는 그에게 입단을 제의 했다. 허 감독은 계약을 체결했고 그길로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네덜란드에서 ‘융(Jung)’으로 불리던 그는 3∼4개월간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다 나선 위트레흐트전에서 ‘패스의 달인’ 판 하네겜을 이겨내며 주전을 꿰찼다.
또 라이벌 아약스에서 뛰고 있던 네덜란드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와 세 차례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다. 허정무를 이겨내지 못한 크루이프는 끝내 팔꿈치로 그를 가격하고 말았다.

“허정무는 훌륭한 선수였다”는 크루이프의 발언 때문에 허정무는 더욱 유명세를 탔다. 게다가 1982년엔 트벤테전에서는 수비수 3명을 제치고 결승골을 터트리며 에인트호번을 UEFA컵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허 감독은 1980년부터 3년간 왼쪽 날개와 중앙 미드필더로 77경기에 나서 15골을 뽑아냈다. 2년간 더 재계약하자는 에인트호번 구단의 제안을 물리치고 그는 1983년 귀국했다. 한국에 프로축구가 발족했기 때문이다.

그가 막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을 무렵 고 함흥철 대표팀 감독은 그를 ‘진도’라고 불렀다. 함 감독은 그에게 종종 “잘하면 진돗개가 되지만, 못하면 똥개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가대표 허정무는 진돗개가 되고 싶었다. 1978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대회 이라크전 도중 고환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네 바늘을 꿰맨 그는 자청해서 결승전에 출전, 끝내 우승을 거뒀다.

그가 얼마나 집념이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국가대표팀 멀티 플레이어의 원조다.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다. 1974년부터 1986년까지 13년간 A매치 87경기에 나서 30골을 뽑았다. 공격수를 전담하지 않고도 30골(역대 5위)을 뽑아낸 것은 대단한 기록이다. 그는 멕시코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뽑아냈고, 서울 아시안게임을 우승시킨 후 영예롭게 은퇴했다.

비난 속에 떠난 허감독
7년 만에 태극마크 달아

이후 허 감독은 선수시절의 경험을 살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트레이너로 1994 미국 월드컵에선 코치 등으로 국제무대 경험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1998년 대표팀,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허 감독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아시안컵 등 주요 대회를 지휘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최국 태국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8강에 머물렀다.

시드니올리픽 본선 조별리그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2승을 올리는 성과를 올렸지만 골득실차에서 밀리면서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아시안컵에서도 3위에 머물며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결국 허 감독은 세인들의 모진 비난을 뒤로한 채 대표팀에서 떠나게 된다. 그리고 2007년 그는 다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게 된다.

이후 근성과 투지를 강조하던 허정무 감독의 지도 철학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과학적이면서 합리적인 축구에 눈을 뜬 것. 이 때 등장한 것이 허 감독의 또 다른 상징인 ‘바둑’이다. 바둑은 상대의 수를 생각하고 이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 두뇌 싸움이다. 아마 4단인 허 감독은 축구계에서 바둑 고수로 정평이 나 있다. 상대의 흐름을 적절히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최고의 전술 중 하나다.

지난 2007년 12월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허 감독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의 전략으로 ‘아생연후살타(내 집을 먼저 살려놓고 상대를 잡으러 나간다)’라는 바둑의 전략을 들고 나온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허 감독의 변화된 생각은 대표팀의 분위기를 180도로 바꿔놓았다. 지난 2008년 1월 대표팀 소집 당시 일부 선수들은 속앓이를 해야 했다.

“남아공월드컵서‘유쾌한 축구’ 하겠다”
근성에 생각을 더해… 진화하는 지도철학


전남 드래곤즈 시절 운동량이 많았다는 소문만 듣고 ‘죽었다’고 생각한 것. 때문에 소집 시간보다 훨씬 일찍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입소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였다. 예상대로 훈련량은 많았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허 감독의 의도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위기감 속에 허 감독은 변화의 시도가 없으면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허 감독은 선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소통하는 감독으로 변해갔다. 박지성을 주장으로 선임한 뒤의 대표팀 분위기 변화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과거 대표팀 버스에서는 정적이 흘렀지만 최근에는 음악 소리와 선수들의 수다가 넘쳐난다. 이는 선수대기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피곤한 기미라도 보이면 휴식을 충분히 보장하기도 한다. 그는 축구선수와 감독으로서 ‘실크로드’를 걸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허 감독은 부인 최미나 씨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1975년 <가요 올림픽>이라는 쇼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허정무)과 MC(최미나)로 처음 만난 허 감독 내외는 1978년부터 비밀연애를 시작했다. 당시 허 감독의 봉급은 10만8000원.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최미나씨의 봉급 300만원에 크게 못 미쳤다. 게다가 최씨의 집안에서는 “팬티 입고 뛰는 사람한테는 딸을 안 준다”며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리어카를 끄는 한이 있어도 안 굶길 자신이 있다”는 허 감독의 배짱에 결국 ‘스포츠-연예 스타’로선 처음으로 화려하게 결혼에 골인했다. 이후 그녀는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감독으로 거듭날 수 있게 전심전력했다. 특히 한국대표팀의 시합 다음날 디스크수술 일정을 잡고도 허 감독이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수술사실을 비밀로 했다는 일화는 그녀의 ‘살신성인’을 대변한다.

한국대표 선수·감독
배경엔 아내의 내조

이와 같은 아내의 내조에 대답이라도 하듯 허정무 감독은 “국내 감독에 대한 편견을 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선수들이 부담 없이 월드컵을 즐기길 바라면서 ‘유쾌한 도전’을 모토로 내걸었다. 자신감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말임과 동시에 믿음으로 대표팀을 성원해 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달 24일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쾌승을 거두면서 성공적인 첫발을 뗀 한국 축구. 남아공월드컵에서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어떤 결과를 낼지 주목된다. ‘근성’에 ‘생각’을 보태 자신만의 지도 스타일을 창조하고 있는 허정무 감독. 지금은 그를 믿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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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