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원정 첫 16강 도전 나선 허정무 감독

호랑이군단 조련사 진돗개 “즐겁고 유쾌한 축구 보라”


‘축구 경기가 시작되면 감독이 할 일은 없다’는 속설은 이미 옛말이다. 경기 중 감독의 판단 하나에 승패가 좌우될 만큼 감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온 것. 8번째 월드컵을 앞둔 한국팀의 키를 잡은 것은 허정무 감독. 그에게 축구는 투쟁이자 삶 그 자체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볼을 차던 그가 지금 남아공월드컵에서 즐겁고 유쾌한 축구를 하겠다며 나섰다. 20년이 넘는 축구지도자 인생에서 터득한 ‘여유의 리더십’이다. <일요시사>는 남아공월드컵으로의 출항을 앞두고 있는 허정무 감독의 ‘축구외길인생’을 돌아봤다.


모든 포지션 소화, 원조 멀티 플레이어
악착같은 플레이로 ‘진돗개’ 별명 얻어

     
1955년 1월13일 허정무 감독은 전남 진도군 의신면 초사리에서 의동초교 교장선생님댁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삼촌뻘이었던 축구 국가대표 허윤정의 권유로 목포중을 졸업한 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가진 것이라곤 트레이닝복 한 벌과 운동화·이불 한 채가 전부였다. 눈 내리던 1967년 1월17일. 153㎝ 단신의 진도 촌놈은 축구를 시작한다. 선배들의 빨래를 도맡고, 새벽까지 개인훈련을 하던 그는 3개월만에 주전을 따냈다.

브라질 대표선수 자일징요처럼 되고 싶던 그는 고향 진도를 대표하는 ‘진돗개’로 불렸다. 끝내 상대를 제압하는 악착같은 플레이와 지능적인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영등포공고-연세대를 거쳐 국가대표로 발돋움했다. 대표팀에서도 그는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 그러던 중 그를 눈여겨보던 네덜란드 PSV는 그에게 입단을 제의 했다. 허 감독은 계약을 체결했고 그길로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네덜란드에서 ‘융(Jung)’으로 불리던 그는 3∼4개월간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다 나선 위트레흐트전에서 ‘패스의 달인’ 판 하네겜을 이겨내며 주전을 꿰찼다.
또 라이벌 아약스에서 뛰고 있던 네덜란드 축구 영웅 요한 크루이프와 세 차례 맞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다. 허정무를 이겨내지 못한 크루이프는 끝내 팔꿈치로 그를 가격하고 말았다.

“허정무는 훌륭한 선수였다”는 크루이프의 발언 때문에 허정무는 더욱 유명세를 탔다. 게다가 1982년엔 트벤테전에서는 수비수 3명을 제치고 결승골을 터트리며 에인트호번을 UEFA컵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허 감독은 1980년부터 3년간 왼쪽 날개와 중앙 미드필더로 77경기에 나서 15골을 뽑아냈다. 2년간 더 재계약하자는 에인트호번 구단의 제안을 물리치고 그는 1983년 귀국했다. 한국에 프로축구가 발족했기 때문이다.

그가 막 대표팀의 부름을 받았을 무렵 고 함흥철 대표팀 감독은 그를 ‘진도’라고 불렀다. 함 감독은 그에게 종종 “잘하면 진돗개가 되지만, 못하면 똥개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가대표 허정무는 진돗개가 되고 싶었다. 1978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대회 이라크전 도중 고환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네 바늘을 꿰맨 그는 자청해서 결승전에 출전, 끝내 우승을 거뒀다.

그가 얼마나 집념이 강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국가대표팀 멀티 플레이어의 원조다.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다. 1974년부터 1986년까지 13년간 A매치 87경기에 나서 30골을 뽑았다. 공격수를 전담하지 않고도 30골(역대 5위)을 뽑아낸 것은 대단한 기록이다. 그는 멕시코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뽑아냈고, 서울 아시안게임을 우승시킨 후 영예롭게 은퇴했다.

비난 속에 떠난 허감독
7년 만에 태극마크 달아

이후 허 감독은 선수시절의 경험을 살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트레이너로 1994 미국 월드컵에선 코치 등으로 국제무대 경험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1998년 대표팀, 2000년 시드니 올림픽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허 감독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아시안컵 등 주요 대회를 지휘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개최국 태국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8강에 머물렀다.

시드니올리픽 본선 조별리그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2승을 올리는 성과를 올렸지만 골득실차에서 밀리면서 탈락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아시안컵에서도 3위에 머물며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결국 허 감독은 세인들의 모진 비난을 뒤로한 채 대표팀에서 떠나게 된다. 그리고 2007년 그는 다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게 된다.

이후 근성과 투지를 강조하던 허정무 감독의 지도 철학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과학적이면서 합리적인 축구에 눈을 뜬 것. 이 때 등장한 것이 허 감독의 또 다른 상징인 ‘바둑’이다. 바둑은 상대의 수를 생각하고 이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 두뇌 싸움이다. 아마 4단인 허 감독은 축구계에서 바둑 고수로 정평이 나 있다. 상대의 흐름을 적절히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은 최고의 전술 중 하나다.

지난 2007년 12월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허 감독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본선의 전략으로 ‘아생연후살타(내 집을 먼저 살려놓고 상대를 잡으러 나간다)’라는 바둑의 전략을 들고 나온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허 감독의 변화된 생각은 대표팀의 분위기를 180도로 바꿔놓았다. 지난 2008년 1월 대표팀 소집 당시 일부 선수들은 속앓이를 해야 했다.

“남아공월드컵서‘유쾌한 축구’ 하겠다”
근성에 생각을 더해… 진화하는 지도철학


전남 드래곤즈 시절 운동량이 많았다는 소문만 듣고 ‘죽었다’고 생각한 것. 때문에 소집 시간보다 훨씬 일찍 파주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입소하는 선수들이 부지기수였다. 예상대로 훈련량은 많았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허 감독의 의도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비판이 쏟아졌다. 이런 위기감 속에 허 감독은 변화의 시도가 없으면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허 감독은 선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소통하는 감독으로 변해갔다. 박지성을 주장으로 선임한 뒤의 대표팀 분위기 변화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과거 대표팀 버스에서는 정적이 흘렀지만 최근에는 음악 소리와 선수들의 수다가 넘쳐난다. 이는 선수대기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피곤한 기미라도 보이면 휴식을 충분히 보장하기도 한다. 그는 축구선수와 감독으로서 ‘실크로드’를 걸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허 감독은 부인 최미나 씨의 내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1975년 <가요 올림픽>이라는 쇼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허정무)과 MC(최미나)로 처음 만난 허 감독 내외는 1978년부터 비밀연애를 시작했다. 당시 허 감독의 봉급은 10만8000원.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최미나씨의 봉급 300만원에 크게 못 미쳤다. 게다가 최씨의 집안에서는 “팬티 입고 뛰는 사람한테는 딸을 안 준다”며 결혼을 반대했다.

하지만 “리어카를 끄는 한이 있어도 안 굶길 자신이 있다”는 허 감독의 배짱에 결국 ‘스포츠-연예 스타’로선 처음으로 화려하게 결혼에 골인했다. 이후 그녀는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감독으로 거듭날 수 있게 전심전력했다. 특히 한국대표팀의 시합 다음날 디스크수술 일정을 잡고도 허 감독이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수술사실을 비밀로 했다는 일화는 그녀의 ‘살신성인’을 대변한다.

한국대표 선수·감독
배경엔 아내의 내조

이와 같은 아내의 내조에 대답이라도 하듯 허정무 감독은 “국내 감독에 대한 편견을 깨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선수들이 부담 없이 월드컵을 즐기길 바라면서 ‘유쾌한 도전’을 모토로 내걸었다. 자신감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말임과 동시에 믿음으로 대표팀을 성원해 달라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달 24일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쾌승을 거두면서 성공적인 첫발을 뗀 한국 축구. 남아공월드컵에서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어떤 결과를 낼지 주목된다. ‘근성’에 ‘생각’을 보태 자신만의 지도 스타일을 창조하고 있는 허정무 감독. 지금은 그를 믿어야 할 때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