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 신화’ 하림 급성장 비화

37년 만에…생닭 팔아 재벌 됐다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닭고기 가공업체 하림이 내년 봄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대기업집단에 편입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병아리 10마리에서 시작한 닭고기 업체가 어느덧 재벌 반열에 올라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에는 강남 논현동에 사옥을 올리기도 했다. 급성장한 하림그룹의 비화를 살펴봤다.

 
닭고기 가공업체 하림그룹이 이르면 내년 봄 공정거래위 지정 대기업 반열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하림그룹은 그간 유관 업종을 중심으로 꾸준히 계열사를 늘렸다. 그중에서도 국내 벌크선사 부문 국내 1위 해상운송업체 팬오션 인수는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하립그룹의 자산총액은 4조3000억원으로 오는 6월 팬오션을 인수할 경우 자산 총액이 5조원을 넘어 내년 4월 공정거래위가 지정하는 대기업 집단에 편입될 확률이 높다. 

한우물 파더니…
 
앞서 하림은 지난 2월 JKL과 팬오션(구 STX 팬오션) 인수를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인수가는 1조79억원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팬오션은 부채 3조444억원, 자본 1조3950억원 등 총 4조4394억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해상운송업체다. 하림그룹이 오는 6월 팬오션을 인수하면 총 자산규모는 9조원을 웃돌게 된다. 대기업집단은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으로 현재 61곳이 지정돼 있다.
 
하림그룹이 대기업집단에 편입되면 상호 출자와 채무 보증에 제한을 받는 등 각종 규제에 묶이게 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대기업 반열에 들어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대기업집단 편입에 대비하고 있는 하림그룹은 그룹 차원의 홍보 인력을 강화하고 새로 발생할 각종 규제에 대한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글로벌 식품기업으로서의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있다.
 
닭 가공업체에서 시작한 하림이 성장을 거듭해 대기업집단에 포함되기까지의 과정은 인상적이다.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은 11살 때 외할머니가 사준 병아리 10마리를 되파는 방식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김 회장은 당시 병아리를 키워 닭 10마리를 판 돈으로 병아리 100마리를 다시 샀고, 그 병아리를 또 키워 파는 방식으로 돈을 벌어 초등학교 6학년 때 돼지 18마리를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78년 전북 익산시 황등면의 육계공장을 설립했고 1986년에는 하림식품을 세워 사육·사료·가공·유통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그리하여 하림그룹은 연매출 4조원이 넘는 국내 최대 축산업체로 자리매김했다. 닭고기 등 육류 수요가 증가하면서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하림그룹은 지난해 주력 산업과는 다른 업종인 해운운송업체 팬오션 인수전에 뛰어들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림은 축산업에 필요한 옥수수, 대두박 등 사료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팬오션을 무리 없이 인수할 경우 곡물을 실어 나르는 벌크선 인프라를 갖추게 된다. 그러면 운송비용을 절감하고 유통망을 안정화할 것으로 보인다. 
 
팬오션 인수로 총 자산규모 9조
내년 4월 대기업집단 편입 예정
 
하림그룹은 더 나아가 팬오션의 해운 물류망을 통해 미국·남미 등에서 곡물을 직접 수입해 동북아시아에 공급함으로써 하림그룹을 세계 최대 곡물 회사 ‘카길’에 버금가는 글로벌 곡물 유통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구상도 세우고 있다. 동시에 계열사 엔에스쇼핑을 주축으로 한 식품전문유통 기업으로서의 비전과 목표를 공고히 하고 있다.
 
하림그룹 관계자는 “팬오션 인수를 통한 곡물 유통업 진출은 축산·사료업의 연장선 상에 있다”며 “해외 곡물을 유통하는 국내 유일 기업으로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하림그룹은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 반열에 오르기 전에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될 문제가 있다. 바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다. 김 회장의 아들 준영씨는 안심·다리 등 닭고기 부위별 판매사 ‘올품’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내부거래 매출이 700억원 이상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하림그룹은 지주사 ‘하림홀딩스’ ‘제일홀딩스’, 상장사 ‘하림’ ‘팜스코’ ‘선진’, 비상장사 ‘제일사료’ ‘엔에스쇼핑’(NS홈쇼핑) 등 31개 계열사를 갖고 있다. 지주사는 2개로 알려져 있지만 올품도 실질적인 지주사다. 
 

올품은 지난해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내역을 살펴보면 제일사료, 팜스코, 하림, 선진, 조하, 엔에스쇼핑, 에코캐피탈, 기타회사 등 72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품 전체 매출액의 21%인 347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
 
올품은 한국썸벧, 제일홀딩스, 하림홀딩스로 연결되는 고리의 정점에 있다. 하림그룹의 또 하나의 지주사라고 불린다. 때문에 올품이 그룹 상속의 도구가 아니냐는 불편한 시각이 나온다. 편법상속을 꾀한다는 의혹을 떨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현행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총수 및 친족이 지분 30%(비상장사 2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중 내부거래 매출액 비중이 12% 이상이거나 200억원 이상인 기업이다. 하림그룹이 아직 대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하림그룹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자는 올품의 내부거래 비중이라고 입을 모은다.

내부거래 풀어야
 
김 회장은 지난해 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상징과 같은 이각 모자를 모자 경매 가격으로는 역대 최고인 188만4000유로(한화 약 25억8000만원)에 낙찰 받았다. 당시 하림 측은 현재 건설 중인 강남 논현동 신사옥을 위해 이 모자를 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회장이 평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1세의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정신을 높이 사왔으며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의미에서 마침 경매로 나온 모자를 구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나폴레옹 이각 모자 때문일까. 지금 하림그룹을 보면 말을 탄 나폴레옹이 연상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김 회장이 말한 기업가 정신을 다시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림그룹의 숙제
 
하림그룹이 팬오션 인수에 들인 자금은 1조79억5000만원이다. 그룹 측은 ‘제2의 카길’을 외치고 있지만 인수·합병 과정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제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가 이뤄짐으로써 하림그룹이 큰 부담을 안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기존의 거대 곡물메이저들과 협력 경쟁구도 속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해야하는 과제를 안게 돼 마냥 웃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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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