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유승민 ‘4월 승부수’ 속내

2박3일 공들인 비수 ‘청와대 겨눴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4월 국회가 시작됐다.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해결해야 될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특히 세월호 1주기는 물론 공무원연금개혁, 자원외교국정조사 등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9대 국회를 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시험대가 막이 올랐다.

난항이냐 순항이냐. 4월 임시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에는 우려와 기대가 동시에 담겨있다.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안들의 무게가 경중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하기 때문이다. 여당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어깨가 그만큼 무거워질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현안산적
책임막중

유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이번 임시국회가 위기이자 기회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2일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후 리더십을 보여줄 확실한 기회가 그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등 몇몇 사안에 대해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김무성 대표와 겹쳐 폭발력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이완구 흔적지우기’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도 이번 임시국회는 유 원내대표에게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임 원내대표였던 이완구 의원이 총리로 부임하면서 넘겨준 현안들이 아직 많다. 이번 4월 국회를 통해 확실히 털고 가지 못한다면 원내대표단의 사기도 저하될 수 있다.

이에 지난 8일 유 원내대표를 포함한 원내대표단은 이완구 총리와 긴급 오찬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도의 한 중식당에 모인 그들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비롯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경제활성화 법안처리 등 4월 임시국회 주요 입법 현안도 함께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회동은 이 총리의 제안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청 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양쪽 모두에게 필요한 자리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알려지기로 이 총리는 오찬에서 주로 공무원연금법, 경제활성화법 등 법안 통과에 관해 언급했다. 공무원연금법에 관해서는 소통을 통한 합의의 과정에 대해 말하며 야당의 적극적 지원을 끌어낼 것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창조경제 해법 아냐 증세없는 복지 허구” 일침
청와대 “논평 삼가겠다” 함구 속으론 부글부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수정이나 인양 문제에 대해서는 회동 때 특별한 얘기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회동이 끝난 후 이 총리가 “유가족들의 입장을 헤아리고 경청하며 국민 통합이나 화합 등 전체적인 면을 균형 있게 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오찬 회동이 있기 전 유 원내대표는 취임 후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가졌다. 그런데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서 ‘명연설’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여당과 청와대에서는 ‘개인의 생각’으로 치부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유 원내대표가 연설을 끝내고 단상에서 내려오자 야당 의원들이 몰려들어 덕담을 전했을 만큼 연설문 내용에는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 중 일부에 대해선 실패했다고 평가했으며 정책기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도 거론이 됐다. 유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의 대선공약이었던 134조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점을 반성한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현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인 창조경제에 대해서는 “성장의 해법이 아니다”라고 다소 단언하듯이 말했다. 당내 경제통으로 불리는 유 원내대표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날카롭게 들렸다는 후문이다.

세월호 인양
가족 한 풀자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이번 연설에 대해 “우리나라의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명연설”이라고 평가했다. 집권여당을 향한 이례적인 칭찬이었다. 또한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교섭단체대표 연설에 찬사를 보낸다”며 “드디어 보수가 꿈을 꾸기 시작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례적인 여당 대표의 연설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새정치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개인 SNS를 통해 “야당 원내대표가 연설하는 줄 알았다”면서도 “말은 여당도 옳고 야당도 옳다는 황희 정승 같은 말씀이었다. 민생경제 파탄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처방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야당의 한 당직자는 “어차피 선거용 아니냐”며 평가 절하했다.

반면 새누리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연설이 끝난 후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 박수소리가 나왔지만 당황한 듯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의원들의 모습도 포착됐다.

김무성 대표의 반응도 화제가 됐다. 김 대표는 ‘유 원내대표의 연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신선하게 잘 들었다”면서도 “당 방침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유 원내대표의 연설에 포함되어 있는 재벌개혁에 관한 내용이 김 대표를 불쾌하게 만들었다고 내다봤다. 유 원내대표는 “재벌도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며 “재벌대기업은 천민자본주의의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해 재계를 중심으로 파문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유 원대대표의 연설에 대해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는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석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켜세운 점도 한 원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양극화를 말했다.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그 분의 통찰을 저는 높이 평가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정부 경제기조 비판에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다”고 전했다. JTBC가 뉴스를 통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 중 한 명은 평가 절하하는 어투로 “참 잘하더라. 대단한 정치인의 정치철학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원내대표의 연설을 두고 정치적으로 영리한 연설이라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들은 이번 연설로 여당 지도부와는 대립각을 세우게 됐지만 야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고 내다봤다. 이는 4월 국회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계산이 전제된 행보라는 것이다.

특히 ‘대화가 통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4월 국회를 마지막으로 임기가 종료가 되기 때문에 유 원내대표 입장에서 시간을 끌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금·복지 문제를 여야합의기구를 통해 해결해 나가자고 유승민·우윤근 양 원내대표가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만큼 둘 사이는 정책적으로 ‘통’하는 것이 있다.

재벌·대기업
천민자본주의


새정치연합과 긴밀한 합의를 이뤄야 하는 개혁안은 ▲공무원연금개혁 ▲노동시장개혁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크게 3가지가 꼽힌다. 공무원연금개혁은 새누리당 입장에서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연금특위 활동 시한을 두고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우 원내대표도 4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할 과제로 공무원연금개혁을 꼽은 만큼 대타협기구를 통한 합의 도출에 집중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시장개혁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도 주요 현안으로 분류된다. 노동시장개혁과 관련해서는 최근 한국노총이 대타협 결렬을 선언한 상태라 여·야 간 긴밀한 논의가 불가피하게 됐다. 향후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정부 주도의 법·제도 정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측면에서 자칫 노동계의 반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경우에는 박 대통령과 김무성·문재인 대표가 지난달 17일 청와대 회동에서 4월 국회 처리를 합의했을 정도로 내수 진작과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당초 새정치연합이 요구한대로 보건·의료 부문을 제외키로 합의했기 때문에 조속한 처리가 예상된다.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질 전망이다. 특히 사드 같은 경우에는 한국배치를 놓고 청와대와 유 원내대표 간 갈등기류를 빚고 있어 결과가 더욱 주목된다. 유 원내대표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야당은 북한이 핵 공격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란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당초 청와대·친박계의 만류에도 지난 1일 ‘사드 의원총회’를 강행했던 그였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공산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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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월 국회에서 다루어질 가장 중요한 현안은 따로 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세월호 1주기가 그것이다. 그동안 방치되다시피 한 세월호 인양 문제에 대해 4월16일 전에 윤곽을 잡지 못한다면 전국적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질 공산이 크다.

이미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6일 세월호 선체 인양과 관련한 긴급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인양해야 한다’가 65.8%로 ‘인양하지 말아야 한다’의 16.0%와 비교해 4배가 넘는 수치로 나타났다. 만약 인양 문제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진다면 후폭풍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유 원내대표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대표연설을 세월호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했다. 특히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안산 단원고 2학년 허다윤양의 이름을 부르며 연설을 시작했다는 점은 국민여론을 많이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다윤 양과 함께 조은화, 남현철, 박영인 학생, 양승진, 고창석 선생님, 권재근씨와 권혁규군 부자, 이영숙씨…이렇게 9명의 실종자가 돌아오지 못했다”며 단상에서 세월호 실종자 이름을 한명씩 불렀다.
새정치연합 박완주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세월호 인양에 대한 의지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개선을 정부에 촉구한 점은 특히 야당으로서 환영한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유 원내대표의 세월호 언급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새정치연합이 ‘세월호 심판론’을 들고 나와 4·29재보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기위한 목적으로 세월호를 이용한 것이라 주장한다.

보수 새지평
진보 아젠다

수많은 해석이 난무하고 있는 유 원내대표의 승부수. A4용지 87매 분량, 40분 가량 진행된 연설문을 이틀 밤낮을 새며 직접 썼을 정도로 유 원내대표는 이번 연설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당내에서 사전조율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유 원내대표의 연설 내용을 몰랐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여당 지도부내에 갈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박심(朴心)’으로 통하고 있는 이정현 최고위원은 MBC와의 인터뷰에서 “당내 조율과정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언급했고, 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할 문제”라고 밝힌 바 있다.

보수성향의 정치전문가들 중 유 원내대표가 경솔했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 연설이 대정부질문이라면 괜찮지만 대표연설이기에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말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는 당 지도부가 대표연설문 내용을 서로 공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새누리당 지도부 내에서 정책 방향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가족 울린 유승민 연설, “실종자 가족 한 풀어드려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지난 8일 선보인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이 화제다.

취임 후 처음 가진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유 원내대표는 “세월호를 온전히 인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설이 있었던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는 삭발을 한 세월호 유가족이 참석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유 원내대표는 유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희생자 295명, 실종자 9명, 그리고 생존자 172명을 남긴 채 1년 전의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의 가슴에 슬픔과 아픔, 그리고 부끄러움과 분노를 남겼다”면서 “희생자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국가는 왜 존재합니까? 우리 정치가 이 분들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물어 유가족의 공감을 얻었다.

그는 이어서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인양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이 말씀이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지난 1년의 갈등을 씻어주기를 기대한다”며 “기술적 검토를 조속히 마무리 짓고, 그 결과 인양이 가능하다면 세월호는 온전하게 인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세월호를 인양해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던 정부의 약속을 지키고, 가족들의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며 세월호에 대한 연설을 마무리했다.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는 인양비에 대해서는 “세월호 인양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막대한 돈이지만 정부가 국민의 이해를 구하면 국민들께서는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하고 동의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전명선 세월호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유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바른 생각”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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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