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30만 성매매녀 사생결단

거리로 나서는 성매매 여성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성매매특별법 도입 11년째를 맞았지만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성매매특별법 위헌여부를 가리기 위한 첫 공개변론이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성매매 처벌을 두고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각각의 입장으로 격론을 벌였지만 모범 답안은 이미 나와 있다고 보는 게 중론이다.

 
지난 2004년 시행된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특별법)’의 핵심조항인 21조 처벌규정을 두고 성매매여성 측과 정부가 법정에서 격돌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9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성매매특별법 21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의 공개변론을 열고 양측의 입장을 들었다.

성매매 처벌
찬반 엇갈려
 
성매매 여성 측은 “성매매특별법 21조는 생계형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며 성매매근절의 효과도 없어 위헌이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 측은 “심판 대상 조항은 근본적으로 성매매라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막고 선량한 성풍속과 질서유지를 보호하고 있어 합헌”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리면 성매매에 대한 무정부상태가 될 것이다”고 맞선다.
 
성매매특별법 21조 1항은 ‘성매매를 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매수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알선자, 성매매 여성을 모두 처벌하는 이 법의 핵심 조항이다. 이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은 이번이 처음이다. 벌금 50만원으로 약식기소 된 성매매여성 김모(44)씨의 신청을 받아들여 법원이 청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사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심판대상 조항이 성매매여성의 기본권 제한, 성매매 근절의 입법 목적과 정당성, 성매매 처벌규정이 과잉금지원칙 위배로 기본권을 침해하는지가 주 쟁점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양측의 공방으로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합헌성 전반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헌재 심판대 오른 성매매특별법
제청 2년4개월만에 첫 공개변론
 
이날 성매매여성 측 대리인으로 나선 법무법인 정률 정관영 변호사는 변론에서 “성매매특별법의 입법목적은 건전한 성풍속 보호”라며 “개인의 사생활과 관계된 내밀한 관계까지 형벌권을 가동하는 것은 헌법상 필요최소성의 원칙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또 “2007년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표면적으로는 성매매업소가 줄어들었지만 실제로는 음성적 성매매가 성행하는 등 풍선효과가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으로 떠올랐다”며 “실효성이 입증된 어떤 자료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특히 심판대상 조항은 실질적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성매매를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이른바 ‘생계형 성매매여성’들도 처벌하기 때문에 직업선택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침해한다”며 “최소한 국가가 지정한 구역(집창촌)에서 생계를 위해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 측 대리인은 성매매특별법이 보호하고 있는 선량한 성풍속과 질서유지 면에서 해당 조항은 합헌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법무공단의 서규영 변호사는 “성매매는 생계 목적이든 아니든 인간의 소중한 성을 상품화하는 것으로 인권침해이며 성매매사업은 사회적인 유해행위”라고 반박했다. 또 “성매매를 처벌하지 않으면 성매매사업이 확대되면서 인신매매 등 범죄가 확대되고 노동력의 흐름까지 왜곡시켜 국가의 산업을 기형화 시킬 수 있다”며 “이 문제는 단순한 사생활의 문제를 넘어서는 사회적 법익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양한 쟁점

뜨거운 설전
 
이어 “여성가족부 조사를 보면 법 시행 전보다 집창촌 규모가 줄어들었고 이것은 성매매 불법성에 대한 국민인식이 개선된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위헌결정을 내리면 성매매에 대한 무정부상태를 불러 여러 비극적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이 채택한 참고인들의 설전도 주목됐다. 성매매여성 측 참고인을 출석한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건전한 성풍속의 함양을 보호법익으로 본다면 간통 등 유사범죄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심판대상 조항으로 생계를 위해 성을 제공하는 여성들은 범죄자의 낙인이 찍혀 폭력적인 포주, 매수자들에게 고통을 받고 있으며 자의적인 수사당국의 단속에 떨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UN 등 국제 인권기구에서도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처벌은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다며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박 교수는 “현재 30만명으로 추산되는 생계형 성매매여성들이 심판대상 조항으로 인한 잠재적인 피해자들”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7세 아이와 아버지 부양을 위해 성매매를 하던 27세 여성이 투신자살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한때 ‘미아리 텍사스’를 집중 단속하면서 ‘미아리 포청천’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강자 전 종암경찰서장도(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객원교수)도 성매매여성 측에 서서 의견을 진술했다. 김 전 서장은 변론에서 집창촌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하면서 성매매특별법의 졸속 제정과 이후 시행된 정책 실패가 화를 불렀다고 비판했다.
 
그는 “성매매특별법이 군산 집창촌 화재사건을 직접적인 계기로 제정된 만큼 성매매여성들의 인권유린 문제를 집중적으로 점검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집창촌을 초토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며 “쫓겨난 여성들이 주택가로 스며들면서 음성형 성매매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법은 이를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인간 존엄성 훼손 vs 생계수단 처벌 안돼
끊이지 않는 논란…이번엔 결론날까 주목
 
이어 김 전 서장은 “특정지역에서는 생계형 성매매를 허용해야 한다”며 “음성 성매매를 하고 있는 여성들은 대부분 비생계형 성매매자이고, 집창촌을 극히 수치스러워하는 만큼 목적에 따른 분리는 자연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집창촌 화재 등을 계기로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유린을 막기 위해 성매매특별법을 도입했지만 인권보호 취지는 온데간데 없고 단속과 처벌만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정부 측 참고인인 오경식 강릉원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피해자 보호가 미흡하다고 위헌이라고 선언하면 사회적 혼란을 감당해야 한다”며 “위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정책적·제도적 개선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합헌론에 힘을 보탰다. 
 
 
최현희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도 “성매매는 여성의 몸과 인격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등 인간을 대상화하고 인격적 자율성을 침해한다”면서 “성적 자기결정권의 문제로 접근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성매매특별법 이후 변종 성매매가 증가한 것은 사회적 환경 변화에 따른 것이고 독일·네덜란드 등 성매매 합법화 이후에 오히려 성범죄나 성매매를 위한 인신매매가 더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번 변론 내용을 참고해 해당 조항의 위헌여부를 심리한 뒤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선고 기일은 이르면 올해 안에 결론지어진다. 


위헌? 합헌? 
올해 결정날까
 
성매매특별법의 위헌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공개변론이 헌법재판소에서 열리기 직전 한터전국연합·한터여종사자연맹 등 성매매 종사자들이 헌재에 이 법 폐지를 위한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대표자 김모씨 외 882명 명의로 된 탄원서에서 “착취나 강요가 없는 성매매는 피해자가 없다”면서 “성매매를 엄격히 단속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도덕적 가치가 향상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며 성매매특별법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성매매특별법이 음성적인 성매매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는다고 전제한 뒤 “개인 대 개인 거래 방식의 음성적 성매매의 경우 종사자가 폭력적인 상황에 놓이고서도 고발조차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부작용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이어 “개인 간의 성행위를 반사회적 범죄로 규정하고 형사 처분할 것인가”라며 “미성년자도 아닌 성인 여성의 자발적인 선택까지도 형벌로 다스린다는 것은 법의 최소개입(원칙)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기자회견과 탄원서 낭독에 앞서 ‘성매매 특별법 폐지’ ‘우리에게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등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특별법 폐지를 촉구했다.
 
성매매특별법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지난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군산 개복동 한 유흥업소에서 화재가 일어나 인명피해가 일어났다. 군산 개복동의 대가·아방궁 유흥 주점에서 무선 전화기의 전기 합선으로 화재가 발생해 15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전체 26평에 불과한 2층에만 1평이 조금 넘는 쪽방이 무려 7개가 설치돼 있었고 내부 통로는 겨우 한 명만이 오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 창문과 출입문은 쇠창살로 막혀있고 안과 밖에서 모두 잠글 수 있는 2중 자물쇠가 설치돼 있어 위급 상황 시 탈출이 불가능했다. 미로 같은 통로에서 여성 종업원 14명과 남성 지배인 1명 등 15명이 감금 상태에서 2층 철문 계단에서 질식해 숨졌다.
 
이후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취업 각서와 현금 보관 각서까지 쓴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이를 계기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그리하여 정치권에서 성매매특별법이 논의됐고 2004년 이 법이 제정돼 시행에 들어갔다. 시행 초기에는 성매매 집결지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게 사살이다. 그러나 풍선효과로 인해 오피스텔, 주택가 등 음지로 파고들면서 부작용을 낳았다. 근원적인 문제해결은커녕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후 성매매특별법은 줄곧 실효성 논란을 빚었다. 2012년 7월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서 화대 13만원을 받고 성매매를 하다 적발돼 재판에 넘겨진 여성 김모씨가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하면서 성매매특별법 위헌론이 고개를 들었다. 김씨는 당시 성매매가 아니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김씨는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것은 기본권과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북부지법은 이런 요청을 받아들여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했다.

명분·실리 두고
끝없는 도돌이표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던 조배숙 변호사는 10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성매매특별법 위헌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조 변호사는 “법이 제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법에 위반되는 일이 일어나다보니 실효성 논란이 있었다”며 “그러나 우리 사회가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기본적인 성 풍속, 성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발적인 성매매라고 하더라도 성은 인격권의 불가분의 핵심적인 요소인데 그것을 판매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독일과 네덜란드는 성매매를 합법화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부작용이 적지 않다. 일단 성매매 합법화 이후 성매매 여성이 눈에 띄게 급증했고 인신매매 등 각종 범죄가 늘어나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급기야 이를 막자는 풍자 캠페인 광고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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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