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다발 검찰 대기업 수사 다음 타깃

"재벌비리 이슈 갈 데까지 끌고 간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대기업 사정 정국이 올 4월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각 수사의 핵심 인물들이 속속 검찰에 소환되면서 '부패와의 전면전'이 성과를 낸 것으로 홍보될 전망이다. 재계의 반발 속에 정부는 또 다른 대기업 수사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부만 도려내겠다"던 검찰의 공언은 지켜질 수 있을까.

재계가 아우성이다. 대기업 사정 정국에 온갖 경로로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김인호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검찰 수사로 정상적인 기업들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라며 재계 입장을 대변했다. 언론은 앞 다퉈 김 회장의 말을 받아썼다. 검찰 수사가 대기업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를 어렵게 만들 것이란 논지였다.

재계 아우성
검찰 의지는?

그러나 대기업 수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 실질적인 기소까지는 여러 과정이 남아 있다. 포스코와 경남기업, 동국제강에 대한 수사는 혐의 입증을 위해 퍼즐을 맞추는 단계다. 핵심 피의자는 손도 대지 못했다. 현 시점에서 수사가 어디까지 진전될지는 알 수 없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결국 의지에 달린 문제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일요시사>는 지난달 30일 '표적수사설 포스코 사정 난항 막전막후'란 기사에서 검찰의 포스코 수사와 관련한 여러 쟁점을 전한 바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은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도 잡지 못하는 ‘용두사미’ 수사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포스코 수사는 김진태 검찰총장이 부임한 후 기획된 첫 특수 수사다. 사정기관의 중추인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그간 기업이 아닌 인물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벌여 왔다. 대표적인 수사가 바로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수사 등 박근혜정부의 굵직한 대기업 수사는 대부분 전임인 채동욱 전 검찰총장 시절 이뤄졌다.


현재까지 나온 검찰의 공식적인 입장은 '대기업 수사를 불필요하게 확대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검찰 출입기자들은 신세계, 동부그룹 등이 연루된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더는 기사화하지 않는 분위기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달 17일 작심한 듯 발언했다. 대검찰청 간부회의 자리에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환부만 정확하게 도려내고 신속하게 (수사를) 종결함으로써 수사 대상자인 사람과 기업을 살리길 바란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날 김 총장의 발언은 일부 재계의 '민원'을 의식한 제스처로 풀이됐다.

재계 길들이기
정계 길들이기

한 대기업 관계자는 "퇴사자의 근거 없는 의혹 제기 때문에 검찰이 비자금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라며 "구체적으로 드러난 게 없어 억울하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 역시 "검찰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면서 기업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포스코 수사를 수습하지 못하면 다음 수사는 검찰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며칠 발품 뛰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는 아이템이 몇 개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아이템'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꺼렸다.

대기업 사정 정국의 서막을 알린 포스코 수사는 경남기업, SK건설 등 건설업계로 확대됐다. 이 가운데 포스코(포스코건설)와 경남기업 수사는 출구전략을 짜기가 쉽지 않다. 두 수사 모두 사실상 BH(청와대)의 하명을 받은 셈이라 '적당한 선에서 끝낼 수 없다'라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단 SK건설 건은 다르다. 새만금방수제 담합 의혹을 받고 있는 SK건설은 김 총장이 직접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요청권을 행사해 수사를 앞두고 있다. 위에서 내린 수사가 아닌 '아래'에서 올린 수사다.


포스코·경남·동국…잇단 수사
'김진태식' 특수수사 시험대

김 총장의 조직 장악력을 시험할 수 있는 수사지만 검찰 안팎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문제가 된 담합에서 더 나올 부분(비자금)은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이미 SK건설을 비롯한 관련 기업의 조사가 끝나 걱정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정부는 이중행보로 재계의 애를 태우고 있다. 대기업 사정 태풍이 '기업 길들이기'는 아니라면서도 은근히 별건 수사를 통해 묵은 비리를 들추는 형국이다. 지난 2일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는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교육부를 통해 중앙대에 특혜를 주는 대신 두산그룹으로부터 모종의 대가를 받은 정황을 잡고 수사 중"이라고 알렸다. 불과 며칠 전까지 확대해석을 경계했던 검찰은 이날 대기업을 겨냥한 전면적인 수사 가능성을 숨기지 않았다.

당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박 회장은 중앙대 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박 전 수석에게 특혜를 준 인물로 의심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수석이 청와대에서 퇴임한 지 1년만인 2013년 3월 두산그룹 계열사인 두산엔진의 사외이사로 선임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대가가 있는 보은 인사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관련 정황도 대부분 파악했다. 박 전 수석이 두산엔진으로부터 사외이사 급여로 5800만원을 지급받았고, 이사회에 8번 밖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언론에 흘러나왔다. 또 중앙대 서울캠퍼스와 안성캠퍼스의 통합, 적십자간호대학 인수 과정에서 박 전 수석이 교육부에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도 공개됐다.

이밖에도 박 전 수석은 동대문 두산타워 상가 두 곳의 임차권(전세권)을 두산그룹의 특혜를 받아 배우자 명의로 취득했다는 의혹, 자신의 장녀 박모씨를 중앙대 예술대 교수로 채용시키는 과정에서 청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모든 고리는 두산그룹과 연결돼 있으며, 박 회장에 대한 수사도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전망이 나온다. 수사의 방향이 이명박정부에서 두산그룹으로 옮겨진 모습이다.

재보선 앞두고
박 지지율 상승

사석에서 만난 한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다 털면 우리도 힘들고 기업도 힘들다"라면서 "서로 물고 뜯으면 이득 보는 사람이 있겠지"라고 말했다. 검찰 공식적으로는 '기획수사'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검찰 직원을 뺀 나머지 시민들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있다.

정치권은 박근혜정부가 정권의 지지율 상승을 위해 '부패와의 전면전'을 꺼냈다는 분석에 수긍하고 있다. 또 4·29재보선이 끝날 때까지 지금의 사정 드라이브는 계속될 것이란 게 주된 예측이다. 바꿔 말하면 검찰의 타깃이 된 기업 입장에선 29일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압수수색이다. 검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이 딜레마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수사의 시작은 압수수색이다. 압수수색은 수사 대상자에 대한 혐의를 찾기 위한 것도 있지만 상대를 불리한 상황으로 몰아넣기 위한 숨은 의도가 있다. 기업이 압수수색을 당하면 우리가 장부나 자료를 몽땅 가져가기 때문에 업무가 마비된다. 수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업은 손해를 본다. 때문에 대기업은 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호한다. 뺏긴 자료를 일찍 찾으려면 어느 정도 우리와 협상해야 한다. 검사는 그 협상 지점을 잘 안다. 처음부터 죄가 없다고 버티다가는 곤란해지는 것이다."

관련 설명을 적용하면 현재 검찰 수사의 두 축인 포스코와 경남기업은 서로 다른 수사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최근 경남기업의 경영권을 포기했고, 이미 회사는 경영악화가 진행돼 법정관리·상장폐지까지 내몰린 상태다. 성 회장은 금전적으로 잃을 것이 없다. 그래서인지 수사의 강도도 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해외자원개발 비리에 연루된 성 회장을 지난 3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압수수색으로부터 18일 만에 수사의 정점에 이른 것이다.

검찰은 이주 내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횡령,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성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다. 성 회장이 지난 정권과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만큼 상황에 따라 수사가 의외의 곳으로 전개될 수 있다. 박근혜정부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다.

반대로 포스코 수사의 핵심 인물인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미뤄지고 있다. 경남기업보다 수사 착수가 빨랐음에도 '윗선'에 이르지 못한 검찰이다. 수사의 분수령은 정 전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다. 사정기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의혹을 정리해가는 중인데 그 시점은 4월 중순 정도가 아니겠느냐"라고 예측했다.

'부패와의 전면전' 올인
업군별 수사확대 가능성

변수는 포스코 현 경영진의 개입이다. 법조계에서는 포스코가 받고 있는 피해가 큰 만큼 회사 차원에서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적당한 선에서 '제물'을 찾아 올릴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비자금이 워낙 복잡한 경로로 상납됐기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는 전언이다.

각각 철을 다루는 포스코와 동국제강이 비자금 수사를 받고 있는 까닭에 향후 수사가 제철업계로 번질 것이란 시각도 있다. 그러나 '빅3' 가운데 하나인 현대제철은 제철뿐 아니라 자동차 산업에도 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가능성이 낮게 점쳐진다.


오히려 롯데쇼핑 비자금 조성 의혹에서 파생된 유통업계로의 수사 가능성이 더 그럴 듯 하게 회자된다. 그럼에도 롯데그룹 혹은 신세계그룹 전체를 향한 수사는 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사정 설설설
진짜 수사는?

현 권력지형상 주목되는 기업은 A사다. 언론에 오르내리진 않았지만 지난 정권과 관계가 있어 잠재적인 사정 대상으로 지목된다. 대기업 B사는 몇몇 하청업체가 임금 명목으로 돈을 만들어줬는데 관련 비자금을 수합하는 과정에서 명망가가 개입했다는 주장이 있다. 특수부 가운데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서가 관련 사건을 맡을 것이란 소문도 돌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첨단범죄수사부의 칼끝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라고 짚었다. 최근까지 주로 다른 수사팀을 지원하는 역할을 했지만 상반기 내에 독자적인 사건을 터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신들을 둘러싼 여러 소문에 검찰은 불편해하고 있지만 정작 불편해하는 쪽은 부정한 돈을 만든 기업 쪽이 아닌가 싶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검찰 출신 모시기 경쟁

대기업들이 법조계 고위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기 위해 경쟁 중이다. 공직자 부정부패 근절을 골자로 한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대신경제연구소가 주요 상장사 400개 정기 주주총회 의안을 분석한 결과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 가운데 법조인 출신은 15.5%에 달했다. 법원·검찰 출신은 5.8%, 법무법인 출신은 9.7%를 기록했다.

검찰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CJ오쇼핑은 검찰총장을 지낸 김종빈 화우 고문변호사를, CJ대한통운은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 최찬묵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를 각각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효성은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을 사외이사로 4연임시켰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동국제강은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을 지낸 정진영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포스코는 서울동부지검장 출신 선우영 법무법인 세아 대표변호사를 선임했다. 대한항공은 지주사 한진그룹이 한강현 전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를 사외이사로 재선임했다. LG전자는 홍만표 전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은 2013년 GS에서 3년 임기의 사외이사로 선임된데 이어 기아자동차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앞서 이 전 장관은 자신이 수사를 지휘했던 오리온그룹에 고문으로 영입되며 논란을 빚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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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