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수사설' 포스코 사정 난항 막전막후

검찰 무리수?…벌써 출구전략 찾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포스코 수사가 암초에 부딪혔다. 수사의 중심이 비자금 용처에 맞춰지면서 혐의 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요란했던 시작과 달리 벌써부터 '배임죄' 얘기가 나오는 등 사실상 출구전략을 찾는 모양이다. 첫 관문인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은 자신만만한 분위기다. 그 '윗선'인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는 갈 길이 멀다.

"언론이 대단한 것처럼 얘기 하는데 성진지오텍 건은 별 의미가 없다. 이미 과거에 한두 차례씩 의혹이 제기됐던 것들이다. 지금과 같은 '먼지털이'로는 안 된다. 수사가 잘되고 있는지는 '그곳'을 들추는가 보면 알 수 있다."

박근혜정부
레임덕 기로

포스코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난 25일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진행 중인 포스코 수사와 관련한 여러 에피소드를 전하며 언론에 친숙한 몇몇 이름을 꺼냈다. '영포회' '정준양' '박영준' '이상득' '이명박' 등등. 그러나 이 관계자는 "그 핵심에 이를 수 없을 것"이라며 수사 과정에 의문을 표했다. "다른 대기업 수사와 비교해 속도가 너무 더디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관계자가 지칭한 '그곳'은 동양종합건설이다. 최근 사정당국은 "동양종합건설 배성로 회장을 출국금지했다"라고 발표했다. 동양종합건설은 인도 제철소 건설공사를 포함해 2009년부터 4년간 포스코에서 해외공사 7건을 따낸 것으로 파악됐다. 수주된 공사 규모는 2400억원에 달했다.

동양종합건설이 포스코가 발주한 공사에 참여한 시기는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의 재임 기간과 대부분 일치한다. 포스코 안팎에선 '정준양이 배성로와 사적인 친분 때문에 해외공사 수주를 밀어줬다'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두 회장님'은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이번 포스코 수사에 착수하면서 동양종합건설과 관련한 폭넓은 계좌추적에 들어갔다. 동양종합건설의 법인계좌와 배성로 회장의 개인계좌를 동시에 추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한 관계자는 "정 전 회장보다 그의 측근인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과의 금전 거래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비자금을 조성했더라도 정준양 측에게 직접 전달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관련 부분까지 확인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 언론사 사주를 겸직한 배 회장은 대구·경북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힌다. 정·관계에도 폭넓은 인맥을 갖고 있다. 이상득 전 의원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이명박정부 시절 '배 회장의 인맥'으로 불렸다. 포스코 내부에선 '올 것이 왔다'라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포스코 잡도리
동양종건 관건

사정권에 들어온 동양종합건설은 펄쩍 뛴다. 해외공사 수주 특혜나 비자금 조성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 회장 측은 "(포스코를 믿고) 해외공사에 참여했다가 오히려 손해를 봤다"라며 "포스코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반박했다.

이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배 회장과 이른바 영포회 간의 커넥션 의혹은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해외사업 기준 2010년 20억원대 매출을 올렸던 동양종합건설은 이명박 대통령 퇴임 무렵, 무려 6배 이상이 증가한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특히 동양종합건설은 국가가 발주한 관급공사에서도 막대한 이득을 올렸다. 4대강 공사 당시 낙동강 5개 공구 가운데 3곳에 입찰했고, 3곳 모두 계약을 따냈다. 30공구에서는 공사를 책임진 포스코건설과 호흡을 맞췄다.


지난 정권에서 동양종합건설은 일종의 '금기어'였다고 한다. 'S라인'(서울시 공무원 출신)으로 힘의 결이 다른 원세훈 전 국정원장 쪽이 황보건설과 가깝게 지냈다면 영포회 쪽은 동양종합건설을 비호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로써는 검찰 수사의 방점이 정·관계로 흘러간 비자금 확인에 있는 만큼 관련 주장의 진위 여부가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동양종합건설을 온전히 수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영포회 내부 결속이 강해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역공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영포회를 오랫동안 취재해 온 한 포스코 출입기자는 흥미로운 지적을 했다. 취재원들이 배 회장을 '대구의 박연차'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 입장에서 동양종합건설은 드러나선 안 되는 '저수지'다. 여기서 말하는 저수지는 돈이 고여 있는 곳이다. 자원외교 비리 혐의로 수사가 진행 중인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보다 배 회장에 대한 수사가 훨씬 민감하다고 전해진다. 이는 수사 첫 개시를 동양종합건설이 아닌 성진지오텍으로 했던 이유로 추정된다.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면서 성진지오텍조차 바로 겨누지 못하고 포스코 동남아사업단을 우회했다. 지난 2월 포스코 수사를 앞두고 만난 사정기관 관계자는 "명분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묵은 비리를 들춰내겠다는 것인데 '의도'는 있지만 '계기'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당시 검찰의 고민은 압수수색을 위한 구실 찾기에 있었다.

동남아 비자금 규명 암초 "속도 더뎌" 
동양종건 배성로 회장 출금 '승부수'
기획은 청와대가 수습은 검찰이?

포스코에 대한 사정작업은 올 1월 초 시작됐다. 앞서 검찰은 포스코 내부 관계자를 통해 포스코 안에서 일어난 동남아사업단 감사 결과를 접했다. 이를 '크로스체킹'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정보가 샜다. '정준양 체제'에 반감을 갖고 있던 일부 인사들은 신문기자와 접촉했다. 유명 언론매체가 취재에 들어가자 포스코로부터 '억대 인사'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 과정에서 기자도 은폐된 감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지난해 8월 포스코건설 상무급 간부 2명이 베트남 파견업무(고속도로 공사) 중 보직해임 돼 한국으로 돌아왔다'라는 내용이다.

당시 복수 경로로 전해진 비위 사실과 사건 개요는 이랬다. 두 박모씨(모두 구속)는 2010∼2012년 포스코건설이 운영 중인 동남아사업단에서 100억원이 넘는 비자금을 조성했다. 직원 10여명과 공모해 하도급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을 이용했다. 1인당 20억원씩 백머니(뒷돈)를 챙겼고, 남은 돈은 어디론가 상납했다. 두 박씨는 즉시 귀국했다.

이제부터 본 게임
정동화 구속 고비

그러나 포스코는 별도 조치 없이 이들을 대기발령 상태로 놔뒀다. 올 초 정기인사에서도 비상근 임원직을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포스코 측은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또 다른 상무인 권모씨를 동남아사업단으로 급파했다. 한 가지 수상한 점은 전임자인 두 박씨와 후임자인 권씨 모두 '정동화의 측근'으로 통했다는 것이다.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은 이번 수사에서 정 전 회장만큼이나 비중 높은 인사로 거론된다. 검찰은 '양정(정준양·정동화)'의 구속을 통해 '대기업 사정'을 '영포회 게이트'로 확대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포스코건설 토목환경사업본부장인 최모 전무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알려졌다. 최 전무는 두 박씨가 베트남법인장(동남아사업단)으로 일할 당시 한국 본사의 담담 상무였다. 두 박씨가 만든 돈이 최 전무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정 전 부회장에게 갔다는 주장인데 이와 관련 검찰은 "우리도 밝히고 싶은 부분이다"라며 "최 전무의 비자급 상납 여부를 알아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우선 검찰은 비자금으로 확인된 107억원 중 47억원가량이 하도급업체를 거쳐 국내로 반입됐고, 이 과정에서 최 전무가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속된 두 박씨는 비자금 조성 및 전달 혐의에 대해 부인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지만 최 전무는 '꼬리'일 뿐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주된 시각이다. 비자금 상납에 관계된 것으로 알려진 김모 전 부사장 등 연결고리는 최소 대여섯명에 이른다는 것이 검찰의 조심스런 설명이다. 때문에 정 전 부회장까지 복잡하게 얽힌 자금흐름은 단박에 규명될 가능성이 낮다.

그 윗선인 정 전 회장과 더 윗선인 친이계 인사까지 가려면 못해도 한 달은 넘게 수사가 이어질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그야말로 '구름 같은 이야기'다. 차라리 자원외교나 방위사업 비리 수사에서 이 전 대통령의 책임론이 대두될 확률이 높다. 포스코 수사가 처음 의도했던 바가 무엇이든 일부 언론이 추측하는 것처럼 MB를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지난 2월26일 <세계일보> 보도를 시작으로 박근혜정부는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포스코를 비롯한 대기업 사정이 핵심 과제였다. 이 총리는 지난 1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총리가 판을 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7일 화상 국무회의에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뿌리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벌려 놓은 기획은 검찰이 실행하고 있다. '기획수사'인 탓에 여론전은 하지만 수습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검찰은 지난 2월부터 '내부 고발자'를 찾아왔다. 수사 과정은 물론이고 재판 과정까지 '양정'의 비리를 일관되게 진술해 줄 핵심 증인을 구했다.

증거는 있나
선심성 봐주기?


그러나 포스코 안팎의 상황을 지켜보면 그 같은 조력자가 남아 있는지 의문이다. 당장 언론은 포스코가 쏟아내는 홍보기사에 잠식됐고, 일부 검찰 관계는 수사 정보를 포스코 쪽에 넘기고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두 박씨를 포함한 사건 관련자들에게 '플리바게닝'을 적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돌고 있다. 그들의 '입'을 열지 않고는 더 이상 수사를 위로 뻗어나갈 수 없어서다. 현재 수사팀 밖에서는 비자금 용처 규명에 실패할 것을 대비해 정준양 개인에 대한 배임죄 적용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정준양체제 당시 포스코가 인수한 부실기업 쪽으로 언론의 초점을 바꾸려는 시도다.

지난 정권 당시 검찰은 배임건과 관련한 의혹을 모두 묵살했다. 이제 와서 묵은 비리를 재수사하면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을 자인하는 꼴이다. 지난 27일 오후 검찰은 정 전 부회장의 자택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다급한 검찰의 승부수가 통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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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