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오너 4세시대' 열전

창업주 증손자들 드디어 기지개 '쫘~악'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국내 기업들이 창립 60주년을 넘기면서 경영권 세대교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창업주의 2세와 3세에 이어 4세들에게도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설 채비를 갖춘 재벌가 증손자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4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이 어느덧 실전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향후 한국경제의 전망을 쥔 이들의 넓어지는 보폭에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벌가 자녀들
세대교체 시동 
 
최근 범삼성가 4세 중 처음으로 사내이사가 탄생했다. 조연주 한솔케미칼 기획실장(부사장)이 한솔케미칼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재벌가 4세가 사내이사로서 경영 전면에 등장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 부사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장손녀다. 조동혁 한솔그룹  명예회장의 1남2녀(연주·희주·현준) 중 장녀이기도 하다. 조 부사장은 한솔그룹 내에서는 3세지만 범삼성가에서는 4세가 된다.
 
1979년생인 조 부사장은 미국 웰즐리대학교를 졸업해 펜실베니아 와튼스쿨 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컨설턴트, 글로벌 속옷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의 애널리스트로 근무했다. 한솔케미칼에는 지난해 합류했다. 조 부사장은 지난달 18일 한솔케미칼 주식 60주를 장내 매수했다. 이로써 조 부사장의 보유 주식수는 기존 600주에서 660주로 지분율 0.01% 정도를 보유하게 됐다. 한솔그룹 오너 3세 가운데 주식을 직접 보유하고 있는 오너는 조 부사장이 유일하다.
 

조 부사장은 경영권 승계를 대비하고 있다. 지난달 한솔케미칼은 그린포인트 글로벌 미텔슈탄트 펀드 등과 미국 벤처기업인 니트라이드솔루션에 300만달러 투자를 직접 지휘했다. 지난해에는 OCI의 자회사인 OCI-SNF 지분 50% 인수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번 사내이사 선임으로 인해 경영 보폭이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조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으로 한솔그룹 내 계열 분리,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솔그룹은 1991년 고 이 회장의 장녀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 이인희 고문이 삼성으로부터 분리, 독립해 한솔제지로 사명을 바꾸고 새로 출범했다. 한솔그룹은 조동혁 명예회장이 1대 주주(14.34%)인 한솔케미칼과 동생 조동길 회장이 실권을 쥐고 있는 한솔제지 계열로 나뉜다. 한솔케미칼은 한솔제지를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에 편입돼 있지 않은 회사다.
 
유학 마친 4세들 속속 실전 경영수업
고속 승진…이미 전면 나선 황태자도  
 
한솔케미칼은 과산화수소, 라텍스, 제지용 케미칼, 고분자응집제, 차아황산소다, BPO에 이르는 정밀화학분야와 전자소재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솔케미칼의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2448억원이다. 이중 영업이익은 184억원이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외아들이자 범삼성가의 장손 이선호 CJ제일제당 사원도 CJ그룹 내 시스템 통합회사 지분을 아버지로부터 넘겨받아 주목을 끈 바 있다. 지난해 CJ그룹 계열 IT서비스 업체인 CJ시스템즈는 헬스, 뷰디스토어 CJ올리브영과 합병을 완료했다. 그러면서 간판도 CJ올리브네트웍스로 바꿨다. 이후 이선호씨는 이 회사의 지분 11.3%를 보유한 3대 주주로 등재됐다.
 
 
이 회장은 CJ시스템즈 2대주주로 31%가 넘는 지분을 보유했는데, 이중 절반인 15.9%를 합병 직전에 이선호씨에게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이선호씨의 CJ올리브네트웍스 3대 주주 등극이 승계작업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CJ올리브네트웍스의 전신인 CJ시스템즈는 계열사 물량을 발판으로 거침없이 성장했다. 2013년 계열사 물량이 2770억원 매출 중 82%에 달했고, 영업이익도 254억원에 웃돌았다. 지주회사인 CJ와 합병을 해도 무방하다고 할 정도로 탄탄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
 

이선호씨는 2013년 지주사인 CJ에 입사해 그룹 미래전략실을 경험하고 이후 CJ제일제당 영업지점과 바이오사업관리팀 등 계열사를 돌며 후계수업을 받는 중이다.

초고속 승진에
지분상속 척척
 
두산그룹도 4세 경영 체제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룹 안팎에서는 박용만 회장 3세 시대가 막을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 회장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외부행사에 치중하면서 경영에는 한 발 물러서 있기 때문이다.
 
현재 두산그룹 후계구도상 창업 4세 중 선두에 위치한 인물은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 겸 두산건설 회장이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회장은 그룹 4세 중 유일하게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두산의 지분율도 6.40%로 가장 높다. 그 다음으로 박용곤 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겸 두산 최고운영책임자(COO) 박진원 부회장을 꼽을 수 있다. 박 부회장은 두산의 지분율을 4.27% 보유하고 있다. 그룹 총수인 박용만 회장의 지분 4.17%다. 지분으로 봤을 땐 4세 두 명이 더 앞서고 있다.
 
이어 박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 산업차량·모트롤 부문 사장이 두산 지분을 3.64% 보유하고 있다. 차남인 박석원 두산엔진 부사장은 2.98%을 보유하고 있다. 박용현 이사장의 장남인 박태원 두산건설 사장은 2.69%를 보유 중이다. 그리고 최근 박용만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씨가 광고 관련 개인사업을 접고 오리콤 부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경영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박 부사장의 지분율은 1.96%다.
 
독특한 행보로 존재감 부각
승계 대비하면서 보폭 확대
 
박 부사장은 낙과 등 상처가 나 상품가치가 떨어진 과일로 만든 잼인 ‘이런쨈병’을 직접 론칭했다. 오리콤에 따르면 박 부사장의 두 번째 아이템은 3년 전 구상됐다. 당시 박용만 회장은 태풍으로 인한 농가의 피해를 덜어주고자 낙과를 구입해 전 계열사 임직원의 집으로 선물했다. 박 부사장은 “조금 먼저 떨어지거나 나뭇가지에 살짝 스쳤다는 이유로 맛이나 영양 면에서 차이가 없음에도 거래가 되지 않는 유통구조와 편견을 이런쨈병 같은 브랜드를 통해 조금씩 바꾸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쨈병의 수익금 전액은 자연 재해 등으로 피해를 본 농가에 돌려준다.
 
박 부사장은 지난해 미혼모를 방지할 목적으로 콘돔 브랜드 ‘바른생각’을 출시했다. 이 또한 수익금 전액이 사회공헌활동에 사용되고 있다. 그간 박 부사장은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그룹 총수의 장남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동생 박재원 두산 인프라코어 부장과 달리 박 부사장은 미국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뒤 광고제작 전문업체 빅앤트를 설립했다.
 
이후 박 부사장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그룹의 기업 광고를 직접 제작하는 등 그룹 일을 나서서 돕기도 했다. 그러면서 업계에서는 박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 뛰어들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박 부사장은 이를 부인해왔다. 하지만 박 부사장이 경영 후계 구도에 이름을 올리지 않더라도 지금의 독특한 행보가 향후에는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으로 재계는 내다보고 있다. 

슬슬 나타나는

그들의 존재감
 
LG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증손자 구광모 LG상무도 눈에 띈다. 구 상무는 부장 승진 2년 만에 올해 정기임원 인사에서 상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지금껏 LG가 후계구도를 보면 항상 장자들이 그룹을 경영해온 것을 미뤄볼 때 구 상무가 그룹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올해 임원 승진은 앞으로의 경영행보에 큰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범LG가인 GS그룹에도 4세 행보가 부각되고 있다. GS가 4세들이 주식 담보대출로 자금을 마련해 GS 지주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면서 4세 승계작업에 불을 당겼다. 그 후보는 허준홍 GS칼텍스 상무, 허서홍 GS에너지 가스 프로젝트 추진 부문장, 허원홍 GS건설 상무, 허윤홍 GS건설 상무 등이다.
 
이중 허서홍 부문장은 GS 4세들 중 가장 많은 지분을 끌어올린 인물이다. 허 부문장은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남으로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3일까지 20차례에 걸쳐 GS 주식 23만4000주를 매입했다. 허 부문장이 5개월여간 사들인 주식 규모는 102억원에 달한다.
 
코오롱그룹도 4세 경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부장도 현장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지원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의 증손자인 이 부장은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후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차장으로 입사했다. 경북 구미공장과 인천 송도 소재의 코오롱글로벌을 거치고 지난해 4월 부장으로 승진했다. 재계 전문가들은 그룹사 4세들의 존재감이 앞으로 더욱 부각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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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