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 민원 급증 속사정

“섹스동영상 삭제해 주세요”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애인과 성관계하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유출됐다며 ‘야동(음란동영상)’을 삭제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보통 ‘XX녀’란 이름으로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다 뒤늦게 화면 속 여성이나 그 대리인이 민원을 제기해 삭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삭제된 야동은 지난해 무려 1400건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성 개방 풍조 확산과 디지털기기 관리 미숙으로 인해 벌어지는 풍경이다.

  
‘일반인’ ‘XX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성관계 동영상은 대부분 커플들이 셀카로 찍은 것들이다. 성관계를 가지면서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하더라도 보관을 목적으로 동의를 얻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달 24일 나왔다. 상대 동의하에 촬영했고 외부로 유포하려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사생활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보복성 유출
혹은 실수
 
그렇다면 동영상 속 커플이 헤어진 뒤 한쪽이 일방적으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 어떻게 될까. 촬영 시점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상대방 동의 없이 유포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영리 목적으로 영상을 공개하면 가중처벌이다. 연인시절에 동영상 한번 잘못 찍었다가 자신의 알몸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따르면 지난해 “내가 나오는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삭제해달라”는 민원이 1404건이었다. 하루 약 4명 꼴로 ‘야동 민원’을 넣었다. 동영상 속 주인공들은 영상이 유포된 사실조차 몰랐거나, 알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경우까지 합치면 이 같은 민원은 한 해 수천건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야동 유출에 따른 고민을 토로하는 글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직장인 여성 A씨는 3년 전 소개팅을 통해 남성 B씨를 만났다. A씨는 잘생긴 외모와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있는 B씨에게 호감을 느꼈고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주말 데이트의 종착점은 언제나 모텔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B씨는 A씨에게 ‘섹스 모니터링’을 제안했다.
 
스마트폰으로 자신들의 성관계 모습을 촬영해보자는 것이었다. 처음에 A씨는 정색을 하며 거부했다. 그러나 B씨의 끈질긴 설득 끝에 동영상 촬영을 허락했다. A씨와 B씨는 스마트폰을 삼각대로 고정시킨 채 성관계를 가졌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몇 달 동안 연애를 했다. 그러다 마음이 맞지 않아 이별을 맞이했다.
 
문제는 헤어지고 3년 뒤에 터졌다. A씨는 단짝 이성친구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됐다. 야동을 검색하던 중 A씨로 의심되는 야동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A씨는 즉시 그 야동을 재생했고 동영상 속 주인공이 자신임을 알게 됐다. A씨는 ‘멘붕’에 빠졌다. 야동은 이미 다양한 경로로 유출된 상태였다. A씨는 B씨의 휴대폰 번호를 급하게 찾았지만 알 수 없었다.
 
신고를 할까 고민을 했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남자친구가 알게 될까 조마조마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였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컸다. A씨의 야동은 여전히 인터넷 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하루 3.8건 요청
 
일반인들의 성관계 동영상의 유출은 최근 증가 추세다. 방심위에 따르면 ‘본인 성관계 동영상’ 삭제 요청은 2013년에는 1166건이 제기됐다. 2013년과 2014년 1년 사이 20%가 증가했다. 방심위에 제기되는 개인 초상권 침해 관련 전체 시정요구 중에서 이런 동영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다. 2013년에는 초상권 관련 시정요구가 1964건 접수돼, 본인 성관계 동영상(1166건)의 비중이 59%였다. 2014년에는 초상권 관련 시정요구 1679건 가운데 개인 성행위 영상이 1404건으로 83%를 차지했다.
 

유출된 동영상은 올라오기가 무섭게 파일 공유 서비스,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간다. 유포자는 대부분 남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별한 뒤 보복성으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주요 유출 경로다. 이들에 의해 유포된 동영상의 제목은 보통 피해 여성의 특징을 짧게 묘사한 ‘XX녀’ 혹은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XX대학교 12학번XX녀’ 등이다.
 
 
방심위는 스마트폰 대중화로 인해 영상 유출이나 삭제 민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영상을 찍으려면 전용 촬영 장비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성능이 좋아져서 무선 인터넷 속도도 점점 빨라져 신속한 촬영이 가능하게 됐다. 영상을 찍는 것도 쉽지만 그만큼 유포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 일반인들의 성관계 동영상이 꾸준히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인터넷·SNS에 퍼져
지인들 볼까 두려워…고민하다 고해성사
 
성관계 동영상 삭제 요청은 인터넷으로 받는다.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 곳의 인터넷 주소(URL)는 필수 입력 사항이다. 피해자 본인이 삭제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위임장을 받은 대리인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민원이 제기되면 방심위에서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차단 조치한다. 영상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경우 해당 게시판 운영자나 포털사이트 등에 요청해 삭제한다.
 
해외로 퍼져나가면 국내법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터넷 망 사업자(SKT·KT·LG유플러스)에 요청해 국내에서 해당 정보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정보가 무한 복제되는 인터넷 특성상 영상이 한번 유포되면 사실상 100% 차단 및 삭제는 어렵다.
 
방심위 관계자는 “좋은 감정에서 찍었던 동영상이 유출되는 경우가 다반사로, 유출에 조심한다기보다는 무엇보다 찍지 않은 게 최선”이라고 당부했다. 개인 성관계 동영상을 온라인에 유포할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관한 특례법’ 등에 따라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방심위는 개인 성관계 동영상 민원이 제기되면 삭제 조치와 함께 민원인에게 유포자를 추적해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동영상 유출 피해자들은 자신이 나온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서 사라지길 바란다. 하지만 해외 음란사이트로 퍼지는 순간 모든 건 물거품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출된 성관계 동영상을 지우는 대행 서비스도 성행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성관계 동영상 유출본 상당수는 보복성인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기기 분실로 인한 유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스마트폰, 컴퓨터 수리기사 등이 기기를 다루면서 고객 신상정보와 고객의 기기 속 영상을 합쳐 유포한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전 남친 섹스동영상
현 남친 볼까 두려워
 
과거에는 ‘일반인’을 검색하면 헤어진 연인에 대한 복수 등을 위해 의도적으로 유출한 ‘몰카’ 야동 일색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영상 속 자막 또는 파일 이름에 개인 신상정보가 들어 있는 일반인 성관계 동영상 천지다. ‘일반인’ ‘XX녀’ 등 자연스러운 야동이 인기다. 그런데 야동의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안양 XX동 XXX’ ‘광주 XX여상 3학년 XXX’ 등 구체적인 주소나 소속, 이름 등이 적혀 있는 영상과 전혀 상관없는 신상정보를 담은 야동들이 나돌고 있는 것은 ‘생생함’을 추구하는 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 이름을 빌려와 영상 제목을 지어 호기심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본다. 
 
이 같은 행위는 영상 속 인물과 신상정보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명예훼손 및 음란물 유포 혐의로 처벌 대상이 된다. 최근 들어 S넷 B닷컴 등 음란물 사이트 또는 파일공유 사이트에는 일본AV(Adult Video) 등 연출 제작된 야동보다는 ‘실제상황’을 다룬 몰카 및 셀카 음란물이 압도적으로 많이 올라온다. 일반인 야동에 불을 지핀 건 과거 ‘가수 백양’ ‘탤런트 오양’ 등 연예인들의 음란물 영향이 컸다. 
  
문제는 이 같은 야동 유출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남자라면 한 번쯤은 봤을법한 ‘선배녀’ 동영상이 대표적이다. 선배녀로 불리는 동영상 속 여성은 자신의 야동이 수년 간 인터넷을 떠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모든 걸 내려놓고 자살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검색하면 ‘XX녀’시리즈 넘쳐
삭제 안 돼…수치심에 자살 결심
 
‘딱풀녀’라는 이름의 야동도 마찬가지다. 인천 모 여자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이모양은 자신의 얼굴이 나온 야동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학교 인근 아파트 28층에서 투신해 자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의실녀’라는 이름의 야동 속 여성도 자살했다는 글들이 나돌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모 대기업에서 계약직 비서로 근무하다가 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루머지만 ‘XX녀’ 자살설은 여전히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모텔 몰카도 여전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모텔에 미리 투숙해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후 원격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해 당사자를 협박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 강동경찰서는 모텔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설치해 원격조종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찍고 협박한 혐의로 30대 이모씨를 구속했다.

몰카 촬영하고
금품 협박까지

이씨는 지난 2월21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 강동구의 한 모텔에 미리 투숙한 후 객실 내 화장대 아래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자신의 집에서 원격조종하는 방식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씨는 28일 첫 번째 동영상에 찍힌 투숙객의 신원을 알아내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연락해 “돈을 주지 않으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피해자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이씨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긴급체포됐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동영상 촬영 사실과 협박 등에 대한 모든 혐의를 인정했지만 피해자에게 요구한 돈의 액수나 연락처를 알아낸 방법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씨의 전자기기에 해당 영상 말고도 여러 건의 영상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의 영장실질검사를 담당한 서울 동부지법 양재호 판사는 “이씨가 자료를 삭제함으로써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디지털 유산 상속 논란
죽어도 그대로 ‘어찌하리오’
 
페이스북이 구글에 이어 ‘디지털 유산 상속’ 정책을 내놨다. 사망한 사용자의 계정을 지정된 사람이 관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이용자가 사망할 경우 해당 이용자의 페이스북 계정은 열람만 가능했다.
페이스북은 제도 도입 배경을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다수의 이용자로부터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의 ‘디지털 유산 상속’ 정책에 의해 이를 상속받은 이용자는 고인 계정에 접속, 프로필 사진을 바꾸거나 추모에 관한 알림 글 등을 개제할 수 있게 된다. 단 고인의 프로필에는 ‘추모(Remembering)’라는 머릿글을 달아 악용을 방지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사용자와 상속자 간 소통을 가능케 했다.
 
다만 고인의 개인적 메시지와 같은 개인 정보는 상속자에게 전달되지 않으며 생전에 ‘잊혀질 권리’를 행사하고 싶을 경우 사망 후 계정이 폐쇄되도록 미리 지정할 수 있다.
 
이에 앞서 구글은 ‘휴면계정관리자’라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는 계정에 대해 만일 사태에 대비해 사진, 이메일, 문서 등의 데이터를 다른 사람에게 미리 보내도록 설정할 수 있게 한 기능이다. 이용자는 휴면 계정이 되기 위한 미접속일을 미리 설정하고 데이터를 보낼 지인을 10명까지 지정할 수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잊혀질 권리’에 대한 정책을 실시하자 국내 누리꾼들 사이에서 디지털 상속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에서 이용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개인 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어 디지털 자산을 상속자에게 넘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등 주요 포탈 업체들은 이용자 사망 시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계정 접속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속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서도 “상속인에게 피상속인의 계정 접속권을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족에 대한 위로 차원에서 사망자의 공개된 게시물에 대한 백업 정도를 지원하고 민법상 재산권으로 보장되는 사이버머니나 뮤직, 전자책 등 웹콘텐츠 사용권만 상속인에게 승계된다. 계정을 해제하거나 탈퇴하려면 별도의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내에서 사망자의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규정 마련 여부는 검토단계에 불과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2016년까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법제화 여부를 본격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대법원도 지난해 5월이 돼서야 사법제도 비교연구회를 중심으로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국내에 디지털 유산 관련 소송이 들어올 경우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연구에 돌입한 상태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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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