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동 민원 급증 속사정

“섹스동영상 삭제해 주세요”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애인과 성관계하는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이 유출됐다며 ‘야동(음란동영상)’을 삭제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보통 ‘XX녀’란 이름으로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다 뒤늦게 화면 속 여성이나 그 대리인이 민원을 제기해 삭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삭제된 야동은 지난해 무려 1400건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성 개방 풍조 확산과 디지털기기 관리 미숙으로 인해 벌어지는 풍경이다.

  
‘일반인’ ‘XX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성관계 동영상은 대부분 커플들이 셀카로 찍은 것들이다. 성관계를 가지면서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하더라도 보관을 목적으로 동의를 얻었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지난달 24일 나왔다. 상대 동의하에 촬영했고 외부로 유포하려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사생활로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다.

보복성 유출
혹은 실수
 
그렇다면 동영상 속 커플이 헤어진 뒤 한쪽이 일방적으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면 어떻게 될까. 촬영 시점에 합의했다 하더라도 상대방 동의 없이 유포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영리 목적으로 영상을 공개하면 가중처벌이다. 연인시절에 동영상 한번 잘못 찍었다가 자신의 알몸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 따르면 지난해 “내가 나오는 성관계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삭제해달라”는 민원이 1404건이었다. 하루 약 4명 꼴로 ‘야동 민원’을 넣었다. 동영상 속 주인공들은 영상이 유포된 사실조차 몰랐거나, 알고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경우까지 합치면 이 같은 민원은 한 해 수천건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야동 유출에 따른 고민을 토로하는 글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직장인 여성 A씨는 3년 전 소개팅을 통해 남성 B씨를 만났다. A씨는 잘생긴 외모와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있는 B씨에게 호감을 느꼈고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주말 데이트의 종착점은 언제나 모텔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B씨는 A씨에게 ‘섹스 모니터링’을 제안했다.
 
스마트폰으로 자신들의 성관계 모습을 촬영해보자는 것이었다. 처음에 A씨는 정색을 하며 거부했다. 그러나 B씨의 끈질긴 설득 끝에 동영상 촬영을 허락했다. A씨와 B씨는 스마트폰을 삼각대로 고정시킨 채 성관계를 가졌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몇 달 동안 연애를 했다. 그러다 마음이 맞지 않아 이별을 맞이했다.
 
문제는 헤어지고 3년 뒤에 터졌다. A씨는 단짝 이성친구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됐다. 야동을 검색하던 중 A씨로 의심되는 야동을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A씨는 즉시 그 야동을 재생했고 동영상 속 주인공이 자신임을 알게 됐다. A씨는 ‘멘붕’에 빠졌다. 야동은 이미 다양한 경로로 유출된 상태였다. A씨는 B씨의 휴대폰 번호를 급하게 찾았지만 알 수 없었다.
 
신고를 할까 고민을 했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남자친구가 알게 될까 조마조마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이였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컸다. A씨의 야동은 여전히 인터넷 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하루 3.8건 요청
 
일반인들의 성관계 동영상의 유출은 최근 증가 추세다. 방심위에 따르면 ‘본인 성관계 동영상’ 삭제 요청은 2013년에는 1166건이 제기됐다. 2013년과 2014년 1년 사이 20%가 증가했다. 방심위에 제기되는 개인 초상권 침해 관련 전체 시정요구 중에서 이런 동영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늘었다. 2013년에는 초상권 관련 시정요구가 1964건 접수돼, 본인 성관계 동영상(1166건)의 비중이 59%였다. 2014년에는 초상권 관련 시정요구 1679건 가운데 개인 성행위 영상이 1404건으로 83%를 차지했다.
 

유출된 동영상은 올라오기가 무섭게 파일 공유 서비스, 인터넷 게시판 등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간다. 유포자는 대부분 남성으로 알려져 있다. 이별한 뒤 보복성으로 영상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주요 유출 경로다. 이들에 의해 유포된 동영상의 제목은 보통 피해 여성의 특징을 짧게 묘사한 ‘XX녀’ 혹은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XX대학교 12학번XX녀’ 등이다.
 
 
방심위는 스마트폰 대중화로 인해 영상 유출이나 삭제 민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영상을 찍으려면 전용 촬영 장비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성능이 좋아져서 무선 인터넷 속도도 점점 빨라져 신속한 촬영이 가능하게 됐다. 영상을 찍는 것도 쉽지만 그만큼 유포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어 일반인들의 성관계 동영상이 꾸준히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인터넷·SNS에 퍼져
지인들 볼까 두려워…고민하다 고해성사
 
성관계 동영상 삭제 요청은 인터넷으로 받는다. 동영상이 올라와 있는 곳의 인터넷 주소(URL)는 필수 입력 사항이다. 피해자 본인이 삭제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위임장을 받은 대리인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민원이 제기되면 방심위에서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차단 조치한다. 영상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경우 해당 게시판 운영자나 포털사이트 등에 요청해 삭제한다.
 
해외로 퍼져나가면 국내법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터넷 망 사업자(SKT·KT·LG유플러스)에 요청해 국내에서 해당 정보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정보가 무한 복제되는 인터넷 특성상 영상이 한번 유포되면 사실상 100% 차단 및 삭제는 어렵다.
 
방심위 관계자는 “좋은 감정에서 찍었던 동영상이 유출되는 경우가 다반사로, 유출에 조심한다기보다는 무엇보다 찍지 않은 게 최선”이라고 당부했다. 개인 성관계 동영상을 온라인에 유포할 경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관한 특례법’ 등에 따라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방심위는 개인 성관계 동영상 민원이 제기되면 삭제 조치와 함께 민원인에게 유포자를 추적해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동영상 유출 피해자들은 자신이 나온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서 사라지길 바란다. 하지만 해외 음란사이트로 퍼지는 순간 모든 건 물거품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출된 성관계 동영상을 지우는 대행 서비스도 성행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하다. 
 
성관계 동영상 유출본 상당수는 보복성인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기기 분실로 인한 유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스마트폰, 컴퓨터 수리기사 등이 기기를 다루면서 고객 신상정보와 고객의 기기 속 영상을 합쳐 유포한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전 남친 섹스동영상
현 남친 볼까 두려워
 
과거에는 ‘일반인’을 검색하면 헤어진 연인에 대한 복수 등을 위해 의도적으로 유출한 ‘몰카’ 야동 일색이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영상 속 자막 또는 파일 이름에 개인 신상정보가 들어 있는 일반인 성관계 동영상 천지다. ‘일반인’ ‘XX녀’ 등 자연스러운 야동이 인기다. 그런데 야동의 제목과 내용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안양 XX동 XXX’ ‘광주 XX여상 3학년 XXX’ 등 구체적인 주소나 소속, 이름 등이 적혀 있는 영상과 전혀 상관없는 신상정보를 담은 야동들이 나돌고 있는 것은 ‘생생함’을 추구하는 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인물 이름을 빌려와 영상 제목을 지어 호기심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본다. 
 
이 같은 행위는 영상 속 인물과 신상정보가 일치하지 않더라도 명예훼손 및 음란물 유포 혐의로 처벌 대상이 된다. 최근 들어 S넷 B닷컴 등 음란물 사이트 또는 파일공유 사이트에는 일본AV(Adult Video) 등 연출 제작된 야동보다는 ‘실제상황’을 다룬 몰카 및 셀카 음란물이 압도적으로 많이 올라온다. 일반인 야동에 불을 지핀 건 과거 ‘가수 백양’ ‘탤런트 오양’ 등 연예인들의 음란물 영향이 컸다. 
  
문제는 이 같은 야동 유출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남자라면 한 번쯤은 봤을법한 ‘선배녀’ 동영상이 대표적이다. 선배녀로 불리는 동영상 속 여성은 자신의 야동이 수년 간 인터넷을 떠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모든 걸 내려놓고 자살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검색하면 ‘XX녀’시리즈 넘쳐
삭제 안 돼…수치심에 자살 결심
 
‘딱풀녀’라는 이름의 야동도 마찬가지다. 인천 모 여자고등학교에 재학중이던 이모양은 자신의 얼굴이 나온 야동이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학교 인근 아파트 28층에서 투신해 자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강의실녀’라는 이름의 야동 속 여성도 자살했다는 글들이 나돌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모 대기업에서 계약직 비서로 근무하다가 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지지 않은 루머지만 ‘XX녀’ 자살설은 여전히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모텔 몰카도 여전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모텔에 미리 투숙해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후 원격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해 당사자를 협박하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3일 서울 강동경찰서는 모텔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설치해 원격조종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찍고 협박한 혐의로 30대 이모씨를 구속했다.

몰카 촬영하고
금품 협박까지

이씨는 지난 2월21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 강동구의 한 모텔에 미리 투숙한 후 객실 내 화장대 아래에 휴대전화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자신의 집에서 원격조종하는 방식으로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씨는 28일 첫 번째 동영상에 찍힌 투숙객의 신원을 알아내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연락해 “돈을 주지 않으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피해자는 곧장 경찰에 신고했고, 이씨는 출동한 경찰에 의해 긴급체포됐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동영상 촬영 사실과 협박 등에 대한 모든 혐의를 인정했지만 피해자에게 요구한 돈의 액수나 연락처를 알아낸 방법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이씨의 전자기기에 해당 영상 말고도 여러 건의 영상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의 영장실질검사를 담당한 서울 동부지법 양재호 판사는 “이씨가 자료를 삭제함으로써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디지털 유산 상속 논란
죽어도 그대로 ‘어찌하리오’
 
페이스북이 구글에 이어 ‘디지털 유산 상속’ 정책을 내놨다. 사망한 사용자의 계정을 지정된 사람이 관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이용자가 사망할 경우 해당 이용자의 페이스북 계정은 열람만 가능했다.
페이스북은 제도 도입 배경을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다수의 이용자로부터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페이스북의 ‘디지털 유산 상속’ 정책에 의해 이를 상속받은 이용자는 고인 계정에 접속, 프로필 사진을 바꾸거나 추모에 관한 알림 글 등을 개제할 수 있게 된다. 단 고인의 프로필에는 ‘추모(Remembering)’라는 머릿글을 달아 악용을 방지하고 고인을 추모하는 사용자와 상속자 간 소통을 가능케 했다.
 
다만 고인의 개인적 메시지와 같은 개인 정보는 상속자에게 전달되지 않으며 생전에 ‘잊혀질 권리’를 행사하고 싶을 경우 사망 후 계정이 폐쇄되도록 미리 지정할 수 있다.
 
이에 앞서 구글은 ‘휴면계정관리자’라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일정 기간 사용하지 않는 계정에 대해 만일 사태에 대비해 사진, 이메일, 문서 등의 데이터를 다른 사람에게 미리 보내도록 설정할 수 있게 한 기능이다. 이용자는 휴면 계정이 되기 위한 미접속일을 미리 설정하고 데이터를 보낼 지인을 10명까지 지정할 수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잊혀질 권리’에 대한 정책을 실시하자 국내 누리꾼들 사이에서 디지털 상속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에서는 이를 둘러싼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에서 이용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개인 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어 디지털 자산을 상속자에게 넘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등 주요 포탈 업체들은 이용자 사망 시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계정 접속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속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서도 “상속인에게 피상속인의 계정 접속권을 원칙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족에 대한 위로 차원에서 사망자의 공개된 게시물에 대한 백업 정도를 지원하고 민법상 재산권으로 보장되는 사이버머니나 뮤직, 전자책 등 웹콘텐츠 사용권만 상속인에게 승계된다. 계정을 해제하거나 탈퇴하려면 별도의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국내에서 사망자의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규정 마련 여부는 검토단계에 불과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2016년까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 뒤 법제화 여부를 본격적으로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대법원도 지난해 5월이 돼서야 사법제도 비교연구회를 중심으로 해외 사례 등을 검토해 국내에 디지털 유산 관련 소송이 들어올 경우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연구에 돌입한 상태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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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