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14주년 특별기획<2>여의도 입성 14년차 국회의원 현주소

‘어리바리’새내기 지금은 여의도 ‘주물럭주물럭’


정계에는 올해로 14돌을 맞은 <일요시사>와 동년배인 중견 정치인들이 많다. 1996년 당시 15대 총선을 통해 생애 첫 금배지를 달고 국회에 입성한 이들이 그 주인공이다. 등장 당시 ‘조연’에 지나지 않았던 이들은 현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정계의 ‘주연’으로 성장했다. 이제 여의도는 이들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술렁일 정도다. 지난 시간 굴곡진 삶을 견디고 거물급 인사로 성장한 정계 주요 인사들의 정치 여정을 되돌아봤다.


‘어르신’ 등에 업고 ‘조연’에서 ‘주연’ 고속성장
14년 정치인생… 말 한마디에 ‘웃다가 울다가’

    
15대 총선이 치러진 1996년은 여의도에 ‘새내기’ 의원들이 대거 등장한 때다. 90년대 ‘3김시대’로 대변됐던 정치권 세력은 15대 총선을 기준으로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서 혈기 왕성한 신인들이 다량 수혈됐다. 실제 당선된 국회의원 299명 중 46%인 137명이 초선의원일 정도다.

‘파릇파릇’ 새내기
“의젓하게 자랐네”

 
하지만 이들의 등장이 ‘혈혈단신’ 이뤄진 것은 아니다. 당시 정치권 최대 영향력을 자랑했던 ‘3김(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재)’의 든든한 후원이 성장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특히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러브콜은 신인 정치인들에게는 ‘핑크빛’ 미래에 대한 보장과 같았다. 15대 초선의원들 앞에 유독 ‘포스트 ○○○’, ‘○○○ 수제자’ 등의 수식어가 많은 까닭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1996년 정계 큰 어른들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성공적으로 국회에 자리매김한 대표 인사들은 누굴까. 최근 원내지휘봉을 잡게 된 김무성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가 그 중 하나다. 김 원내대표는 YS가 야당 총재이던 시절 그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 후 15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첫 입성했다. YS의 ‘정치적 수제자’로 불린 김 원내대표는 이후 16·17대까지 내리 3선에 성공하며 당내 중진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의 운세가 늘 상승곡선을 그린 것은 아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의 대책본부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친박계 좌장’으로 꼽혔던 그는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보복공천’의 희생양이 됐다. 그는 당을 떠나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YS는 김 원내대표의 후보 선거사무실을 직접 찾아 그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YS는 이 자리에서 “전국적인 인물이 된 김 의원은 앞으로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자신의 텃밭이었던 부산에서 4번째 금배지를 가슴에 매단 그는 당당히 한나라당으로 복귀했다. 김 원내대표의 정치적 역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당 원내대표직을 두고 3번이나 고배를 마셔야했다.

앞서 2006년 1월과 7월 두 차례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했지만 이재오 의원과 김형오 의원에게 잇따라 패했다. 지난해 5월엔 친이계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원내대표직에 추대됐지만 박 전 대표의 반대로 무산됐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 4일, ‘3전4기’ 도전 끝에 당 의원 만장일치로 신임 원내대표에 선출되는 영광을 안게 됐다.

김 원내대표의 정치적 역경만큼이나 굴곡진 시간을 견뎌 낸 국회입문 ‘동기’가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다. 홍 의원은 1993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하면서부터 정치권의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았다. 1995년 사직 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던 그는 당시 14대 대통령이었던 YS의 권유를 받고 정치에 입문했다. 신한국당에 입당한 그는 15대 총선에 출마, 서울 송파구 갑에서 승리를 거두며 정치인생을 걷게 됐다.

YS·DJ 내민 손
거물급 성장 발판

하지만 기쁨도 잠시.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하는 고초를 겪었다. 이를 계기로 2000년 2월 탈당을 선언하기도 했던 그는 다행히 2001년 서울 동대문구 을 선거구 보궐선거를 통해 복귀, 건재함을 자랑했다. 이후 17·18대 국회의원에 연이어 당선된 홍 의원은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위원장,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장 등을 지냈고, 2008년엔 한나라당 원내대표직을 맡아 정치권의 ‘주연’으로 자리매김했다.

홍 의원은 이제 당 대표직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김영선 국회 정무위원장(한나라당)도 15대 총선 당시 YS의 공천장을 받아 정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들 중 한 사람이다. 김 위원장은 당시 이재오, 김문수, 홍준표, 이윤성, 맹형규 등과 함께 공천을 받아 국회 배지를 달았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등장을 두고 ‘YS의 아들인 현철씨의 추천을 받았다’, ‘추미애(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에 대한 반격 카드로 영입됐다’ 등의 설이 나왔다.

이유야 어찌됐든 당시 초선의원이었던 김 위원장은 14년의 지난 시간동안 당 안팎으로 화려한 기록을 줄줄이 남기며 중진의원으로 성장했다. 여의도 입성 이전 변호사와 시민사회활동을 거친 김 위원장은 과거 경험을 살린 적극적인 당정 활동으로 15대 국회 최우수 의원에 뽑히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에도 그는 한나라당 ‘여성 최초 대변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2004년엔 최고위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DJ ‘러브콜’ 받고 ‘승승장구’ 추미애·천정배 
YS 발탁된 파워인사 김무성·김영선·홍준표


2006년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잔여 임기동안 당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비록 24일간의 임시직이었지만 그는 이 기간 동안 적극적인 행보로 자신의 이름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또한 그는 대표직을 승계하자마자 곧바로 ‘정치적 스승’인 YS를 찾아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6년간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을 맡았고, 최근에는 국회 정무위원장까지 역임하며 화려한 이력을 이어가고 있다.

4선의원인 김 위원장은 이제 국회에서도 한참 ‘고참’에 속한다. 그녀 위로는 6선의원인 홍사덕·정몽준 의원과 5선의원인 김형오·이상득 의원 등이 있을 뿐이다. 김 위원장이 YS의 후광을 입었다면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민주당)은 DJ의 후광으로 성장한 대표 인사다. 판사 출신의 추 위원장은 1996년 DJ의 적극적인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정계에 여성정치인 영입 바람이 거세게 부는 와중에 DJ가 고심 끝에 내놓은 히든카드였던 것이다.

덕분에 대구 태생으로 경상도의 ‘딸’인 김 위원장이지만 민주당의 텃밭인 전라도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15대 총선 당시부터 ‘포스트 DJ’로 불리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DJ 정부시절엔 행정자치부 장관 등 정부 요직인사에 수차례 노미네이트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는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마지막 명동유세에서 “우리에게 정동영, 추미애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추 위원장을 대권주자로 지목했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노무현 정부 수립 후 당 분열에도 열린우리당이 아닌 민주당을 지켰던 그는 몇 달 뒤 ‘탄핵 역풍’을 맞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만 것. 이후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는 2006년 8월말 귀국했다.

2년의 시간을 와신상담한 그는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17대 대통령선거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며 재기의 발판을 다졌고, 이듬해 18대 총선을 통해 민주당으로 복귀했다. 지난해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에 선출된 김 위원장은 최근 ‘노동법 파문’ 등으로 당내 입지가 흔들리고 있지만 여전히 차기 대권의 유력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민주당내 비주류로 분리되는 천정배 의원도 이 당시 정치권에 발을 들인 인물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천 의원은 일찍부터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때를 기다렸던 천 의원은 국민회의 창당을 추진하던 DJ의 부름에 응해 15대 총선을 거쳐 국회에 입문했다. 천 의원은 이후 빠른 속도로 명성을 얻었다. 1997년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부의장을 거쳐 2000년엔 민주당 수석원내부총무를 역임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을 적극 지지했던 그는 대선 이후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주도하기도 했다.

넘어지고 일어서고
역경 딛고 주연 ‘우뚝’

곧바로 2004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자리를 꿰찬 천 의원은 이를 계기로 국회 ‘거물’ 인사로 우뚝 섰다. 그는 이듬해 6월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면서 다시 한 번 세간에 명성을 넓혔다. 2007년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그는 18대 총선에서 다시 민주당 소속의원으로 출마, 4선의원이 됐다.

2009년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불만을 품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1월 복귀한 뒤 당 내 비주류의 핵심으로 고속성장 중이다. 일각에선 천 의원이 지방선거 직후 치러질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 획득을 목표로 세를 모으고 있다는 해석이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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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