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16) 주수도 JU그룹 회장

거대로펌 변호…그 돈 어디서?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범을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16화는 797억7500만원을 체납한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이다.

지난달 초 '제주 오라관광지구 개발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주도가 사업 승인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오라관광지구는 한라산국립공원을 마주해 투자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알려졌다. 1999년 12월부터 추진돼 온 개발사업은 사업 시행자가 네 차례나 바뀌면서 표류했다.

수감 생활은?

시행자 가운데는 JU그룹(제이유그룹) 계열사인 알바스트로개발(주)이 있었다. 알바스트로개발(주)은 지난 2005년께 오라관광지구 일대 토지와 개발사업권을 사들였다. 문제는 자금을 틀어쥐고 있는 JU그룹이 '부실 덩어리'였다는 것이다. JU그룹의 대표 주수도씨(이하 주수도)는 입찰 1년여 만에 2조원대 사기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그룹 재무상황이 악화되자 법인을 우회해 부동산에 투자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주수도는 2007년 6월 "60만평(200만m²)에 달하는 관광지구를 개발해 3000억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주수도는 구속수감돼 있었다. JU그룹의 뒤를 이어 사업에 참여한 건설사는 오라관광지구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다. 공정률은 10%에 머물렀다. 또 주수도는 500억원 규모의 '인천 강화 관광지구 개발사업권'을 따냈다고 주장했으나 지금껏 착공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주수도는 울산 출신의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알려졌다. 1980년대에는 영어강사로 활동했다. 강사 생활 몇 해만에 학원을 세울 정도로 사업수완이 남달랐다고 한다. 1987년에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김종필 당시 신민주공화당 후보를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수도는 1990년대 중반부터 다단계 사업을 시작했다. 다단계 업계에선 나름 신화적인 인물이다. 1999년 자신의 이름을 딴 주코라는 회사를 설립했고, 2002년 JU(제이유)네트워크로 상호를 변경했다. 제이유네트워크는 설립 3년 만에 연매출 2조원에 달하는 JU그룹으로 성장했다.

주수도의 '이름값'을 믿은 수만명의 투자자(그룹 내에선 사업자이자 소비자)는 빚을 내서라도 JU그룹에 투자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투자자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주수도는 다단계 업체를 운영하며 사기 혐의로 두 차례나 구속된 전과자였다.

주수도는 '소비생활 공유 마케팅'이라는 그럴싸한 판매기법을 내세워 눈먼 투자자들을 현혹했다. 핵심 원리는 간단했다. 제품을 더 많이 사면 더 많은 수당을 받는 것이다. 주수도는 물건 구매가의 250%에 달하는 '고배당'을 약속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수익구조지만 30여만명의 사업자는 그의 말을 맹신했다.

주수도는 거의 매일 JU그룹 회원들이 볼 수 있는 화상회의를 통해 '소비'를 독려했다. 한편으로는 외부 강연으로 신규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2005년 JU그룹은 세계적인 다단계 회사 암웨이를 제치고 국내 다단계 판매업체 1위에 등극했다. 참여정부를 패닉에 빠뜨린 '단군 이래 최대 사기사건'은 그 무렵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JU그룹은 처음부터 천문학적인 수당을 지급할 능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외연을 확대해 피해규모를 키웠다. 수당을 지급받지 못한 피해자가 속출하자 주수도는 "내 사재를 털어서라도 수당은 주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해가 바뀌도록 피해자들은 수당을 받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JU그룹에 납품하던 생산업체들마저 줄줄이 도산했다.

주수도는 2006년 8월 사기 혐의로 구속됐지만 옥중 경영을 시도했다. JU그룹은 제이유피닉스, 불스홀딩스, RESD 등 간판만 바꾼 채 같은 수법으로 영업을 계속했다. 도리어 주수도는 "국정원이 암웨이와 짜고 거짓 보고서를 만들어 나를 함정에 빠뜨렸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국정원은 'JU그룹의 정·관계 로비설'과 관련한 보고서를 언론에 흘린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227억2700만원
국세청 570억4800만원
다단계 사기 피해액 2조


주수도의 문어발 인맥은 각계에 포진해 있었다. 국회의원·탤런트·아나운서를 비롯한 명망가들이 JU그룹의 '얼굴마담'을 자처했다. 특히 JU그룹은 일부 유력 신문사에 후원을 하고 그 대가로 광고를 하는 등 이미지 마케팅에 주력했다. 그 결과 주수도의 '사기 마케팅'은 중소기업의 '성공 신화'로 둔갑했다.

주수도는 2007년 2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징역 12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검찰은 주수도가 투자자 11만여명으로부터 2조1000억원의 투자금을 편취하고, 회삿돈 284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그해 대법원은 징역 12년을 확정 판결했다. 주수도와 JU그룹에는 거액의 세금이 부과됐다.

주수도는 2005년 8월부터 취득세 등 11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세할 체납액은 4억49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주수도는 2001년부터 법인세 등 40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둘 체납액은 570억4800만원이다.

서울시 고액체납 법인 명단을 보면 JU개발과 JU네트워크가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JU개발은 2005년 7월부터 주민세 등 39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체납액은 113억3200만원이다. JU네트워크도 2005년 8월부터 주민세 등 40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서울시가 과세한 지방세는 109억4600만원이다. 두 회사 법인 대표란에는 주수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

반면 국세청 고액체납 법인 명단에는 주수도의 이름이 빠져있다. JU개발은 윤모씨, JU네트워크는 이모씨가 각각 대표로 기재돼있다. 이 가운데 윤씨는 JU시설관리 대표를 겸하고 있다.

국세청이 추징할 JU개발의 국세는 104억9700만원(2005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26건)이다. JU네트워크는 434억300만원(2005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3건), JU시설관리는 409억4100만원(2005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11건)을 각각 국세청에 내야 한다.

박모씨가 대표로 있는 JU백화점도 2006년부터 부가가치세 등 18건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 확인된 체납액은 218억3000만원이다. JU그룹으로부터 파생된 체납액의 합은 1166억7100만원에 이르렀다. 주수도 개인에게 물린 세금 797억7500만원까지 더하면 세수의 합은 2000억원에 육박했다.

그런데 주수도는 몇 년째 거대 로펌의 변호를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재심을 신청해 양형을 낮추고자 했다. 거대 로펌 B사와 D사가 그의 변호인으로 선임됐다. 법원은 최근 재심에서 2007년 있었던 원심을 확정했다. 그 사이 주수도는 별건(사기)으로 기소돼 벌금 2000만원을 추가로 선고 받았다. 그러나 주수도는 벌금 역시 내지 않고 있다.

비자금 의혹

그가 구속 전 지분을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 중국 '금사력가우'는 연매출 4000억원 규모의 방문판매업체다. 주수도의 재심이 결정되자 JU 측 인사들은 언론에 접근해 '금사력가우의 지분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이후 금사력가우가 어떻게 됐는지는 감감무소식이다.

지난해 10월 JTBC는 "주수도가 같은 해(2014년) 1∼9월까지 변호인 접견을 1465회 신청했다"라고 보도했다. 사실상 전담 변호사를 두고 하루 평균 7차례 접견한 셈이다. 그 많은 돈은 어디서 조달되는 것일까.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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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