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1000호 특별기획 ②> 본지 달군 최고의 뉴스메이커 100인

말 많고 탈 많았던 그때 그 사람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1996년 5월 창간한 <일요시사>는 김대중정부의 탄생을 지켜봤고, 6·15남북공동선언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 등 역사적인 사건을 두루 경험했다. 한나라당의 정권 탈환과 미국발 금융위기,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은 <일요시사>에게도 큰 사건이었다. <일요시사>는 지령 1000호를 맞아 본지 지면을 달궜던 뉴스메이커 100인을 선정했다. 100인의 면면을 통해 <일요시사>가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봤다.

<일요시사>는 지난 4일 편집국 회의를 통해 1996∼2015년까지 신문에서 중점적으로 다뤘던 뉴스메이커 100인을 선정했다. 정치인, 기업인, 유명인, 연예인, 스포츠스타를 비롯해 범죄자를 항목에 집어넣었다. 각 포털사이트에서 매년 발표하는 '올해의 검색어'도 일부 참고했다. 표기의 혼란을 막기 위해 경어를 생략하고 본명 그대로 싣는다.

[편치 않았던]
[정치 20인]

1997년 12월 대한민국은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다. 김영삼정부는 IMF를 상대로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른바 'IMF 사태'라고 불리는 사건의 요체다. 물론 대한민국이 어느 날 갑자기 부도를 맞게 된 것은 아니다. 김영삼정부의 외환관리정책은 너무 미숙했다.

더구나 김영삼정부는 부패했다. '소통령'으로 불렸던 YS의 차남 김현철(1)은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장에 불려나왔다. TV로 생중계된 청문회는 많은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다. 김현철은 권력형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

김대중(2)은 우리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룩했다. 6·15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은 김현철과 마찬가지로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 한국 현대사의 증인 김대중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는 말을 남기고 2009년 숨을 거뒀다.


6·15 선언의 또 다른 주역은 김정일(3)이었다. 김정일은 남북협력을 약속하고 일부 영토를 개방했다. 하지만 세계의 이목을 피해 핵개발을 추진하는 등 한반도 평화를 위협했다. 우리 언론은 김정일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악마'라는 평가와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라는 평가가 교차했다. 독재자로 살았던 김정일은 2011년 사망했다.

그의 아들 김정은(4)은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했다. 왕좌에 오르자 대규모 숙청작업을 단행했다. 2014년 초 '김정은 사망설'이 유포됐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충청권의 맹주였던 김종필(5)은 DJP연합을 통해 국무총리에 내정됐다.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한 그는 국회의원에 아홉 번이나 당선(또는 내정)된 실력자였다. 김대중정부와 결별한 뒤로는 독자 노선을 걸었다.

이회창(6)은 김영삼정부가 낳은 스타였다. 대법관으로 재직했을 당시 '대쪽 판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지냈다. 한나라당 소속 대선 후보로 대권을 노렸지만 두 번 다 낙선했다. 독자 출마한 17대 대선에서도 큰 표 차로 낙선했다.

노무현(7)은 대통령 당선 전후의 파격 행보로 기대를 모았다. 의회는 노무현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상정해 의결했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했으나 노무현에 대한 기성언론의 공세는 계속됐다. 검찰 수사를 받던 노무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후임인 이명박(8)은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국밥을 먹는 홍보영상이 크게 히트했다. 임기 중에는 '촛불 수사' '4대강 사업' 등 크고 작은 논란에 휩싸였다. 이명박으로부터 서울시장 자리를 물려받은 오세훈(9)은 한때 잠재적인 대권 후보로 부상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박원순(10)은 시민단체 출신으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2014년에는 재선에까지 성공했다. 그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던 안철수(11)는 18대 대선에 출마했다가 자진 사퇴했다. 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에 입당해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노무현정부의 국무총리였던 고건(12)은 탄핵 정국 당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했다. 이명박정부의 국무총리였던 정운찬(13)은 '세종시 수정안'을 설계했으나 계획대로 입안하지 못했다. 충청권 출신인 이인제(14)는 민선 1기 경기도지사를 지내고 대선에 두 차례 나왔으나 모두 낙선했다. 당을 옮겨 다니면서도 국회의원 6선에 성공해 '피닉제'라는 별명이 붙었다.

소통령 대쪽판사 피닉제 등 별명 다양
경영싸움 폭행사건 등 재계 명암 뚜렷

박근혜(15)는 18대 대선에서 51.6%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근혜에게는 늘 아버지의 그림자가 따라 붙었다. 원세훈(16)은 국정원장 자리에서 댓글을 통한 대선 개입을 지시해 실형을 선고받았다. 전두환(17)은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다가 2013년에야 완납 의사를 밝혔다.

'친박'의 상징이었던 전여옥(18)은 대변인 당시 내뱉은 말들이 화제가 됐다. 비슷한 예로 유시민(19)은 논리정연한 말과 글솜씨로 주목받았다. 허경영(20)은 '화성인'스러운 돌출 행동으로 웃음을 안겼다. "내 눈을 바라봐"와 같은 희대의 유행어도 남겼다.

[신화와 몰락]
[기업 20인]

1998년 6월 남북관계의 물꼬가 터졌다. 정주영(21)은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에 당도했다. 이를 기점으로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까지 유치했다. 그러나 정주영은 편히 눈감지 못했다. 그룹 후계구도를 놓고 이른바 '왕자의 난'이 발발했다.

차남 정몽구(22)와 5남 정몽헌(23)이 대립각을 세웠다. 정몽헌은 2003년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정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지는 아내인 현정은(24)이 물려받았다. 정몽구는 현대자동차그룹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지만 2007년 횡령·배임 사건 피의자로 법정에 섰다.

이건희(25)는 '삼성 신화'를 대한민국에 아로새겼다. 2009년에는 헌정 이래 최초로 단독 사면을 받았다. 2014년에는 건강이 악화돼 병원에 입원했다. 그의 장남인 이재용(26)은 사실상 그룹 후계자로 지목됐다.

허창수(27)는 지난 2011년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됐다. GS그룹 총수 외에도 프로축구 구단 FC서울 구단주를 겸임 중이다. 박용만(28)은 두산그룹 회장이 된 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수락했다. 현대가처럼 '왕자의 난'을 겪고 법정에도 섰지만 트위터를 통한 소통 행보로 그룹 이미지를 제고했다.

김승연(29)은 지난 2007년 보복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렇지만 프로야구 구단 한화에 쏟은 투자가 많은 팬의 칭송으로 돌아왔다. 천안함 승조원 유가족을 그룹 채용에 배려하는 등 사회적인 활동에도 열심이다. 최철원(30)은 이른바 '멧값 폭행'으로 국민적인 지탄을 받았다. SK그룹 재벌 2세인 그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이외에도 많은 기업인이 손가락질을 받았다. 정태수(31)는 한보그룹 사태가 터지자 휠체어에 앉았다. 고액체납자가 된 그는 행방불명 상태다. 김우중(32)은 1999년 대우그룹 해체와 함께 해외로 도피했다. 국내로 귀국해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2007년 사면됐다.

강덕수(33)는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몰락했다. 현재현(34) 역시 동양그룹 사태로 수많은 서민을 울렸다. 유병언(35)은 세월호 참사로 파생된 수사 과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요란했던 '삼성X파일' 수사의 주인공은 이학수(36)였다. 통일교의 창시자 문선명(37)은 2012년 숨질 때까지 여러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문국현(38)은 한때 창조한국당 당수로 대권에 도전했으나 정권에 밉보인 죄로 정계를 은퇴했다.

대상그룹 장녀인 임세령(39)은 2009년 이재용과 이혼했다. 최근에는 연예인과 열애설에 휩싸였다. 엔씨소프트 김택진(40)은 '리니지'라는 게임으로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파문의 주인공]
[사회 20인]

밀레니엄 열풍이 불었던 1999년 도올 김용옥(41)은 국내 철학 강의의 새 지평을 열었다. 뒤이어 등장한 구성애(42)는 '아우성'이란 프로그램으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강금실(43)은 노무현정부 당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법무부장관이 됐으며, 호주제를 폐지했다.

이라크에서 피랍된 김선일(44)은 2004년 유명을 달리했다. 다음해에는 이른바 '줄기세포 스캔들'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황우석(45)은 그해 가장 많이 검색된 인물이었다. 2007년에는 신정아(46)라는 이름이 연일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같은 해 심형래(47)는 문제작 <디워>를 내놨다. 문화평론가 진중권(48)은 이 논쟁에 참여해 이름을 알렸다. 장자연(49)의 유서는 연예계의 판도라를 열었다. 불행히도 사건은 흐지부지 됐다. 신영철(50)은 이명박정부의 뇌관인 '촛불재판'에서 외압 논란을 자초했다. 사법부의 독립성이 땅에 떨어졌다. 조현오(51)는 잇따른 막말로 구설에 올랐다. 경찰청장으로 이명박정부를 적극 호위했다.


한국 가톨릭계의 큰 어른인 김수환(52)은 2009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였다. 수많은 패러디를 낳았던 앙드레김(53)도 2010년 작고했다. 그를 기리는 각계의 추모 메시지가 쏟아졌다.

성접대 스폰서 혼외아들 발칵
연쇄·토막살인 아동폭행 경악

언론인 손석희(54)는 MBC를 떠나 JTBC로 옮기면서 화제가 됐다. 아나운서 김주하(55)는 불우한 가정사가 노출됐다. 혼혈인이자 성공한 뮤지컬 음악 감독인 박칼린(56)은 일약 스타가 됐다. '트위터 대통령' 이외수(57)는 존경과 모멸을 한 몸에 받았다.

남성연대로 유명세를 치렀던 성재기(58)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검찰총장후보로 거론됐던 김학의(59)는 사상 초유의 성접대 스캔들에 휘말렸다. 그를 밀어낸 채동욱(60)은 혼외아들 의혹으로 낙마했다.

[뜨거나 지거나]
[스타 20인]

1998년 개그맨 김국진(61)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유동근(62)은 사극 <용의 눈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홍석천(63)은 국내 연예인 가운데 최초로 커밍아웃했다. 그룹 GOD(64)의 콘서트장에는 수만명의 팬이 몰렸다.

배용준(65)은 드라마 <겨울연가>를 통해 한류스타로 등극했다. 유승준(66)은 병역기피 논란으로 국내에서 추방됐다. 개그맨 박준형(67)은 2003년 <개그콘서트>에 출연해 연말 시상식을 휩쓸었다. 같은 해 이효리(68)는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섹시'의 대명사가 됐다.

이영애(69)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 드라마 <대장금>을 성공시키며 최고의 여배우가 됐으나 결혼과 동시에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 2007년에는 걸그룹 원더걸스(70)가 '텔미'를 유행시켰다. 2008년 최진실(71)의 자살은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해가 가도 애도 분위기가 이어졌다.

<슈퍼스타K>란 오디션 프로그램은 허각(72)의 인생을 바꿨다. 이듬해 신정환(73)은 원정도박 사건에 연루되며 방송가에서 퇴출됐다. 가수 싸이(74)는 '강남스타일'로 미국 음원차트를 휩쓸었다. 배우 설경구(75)는 재혼을 둘러싼 여러 루머로 몸살을 앓았다.

전지현(76)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김구라(77)는 '막말 파문' '억대 보증' 등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방송가에서의 존재감은 빛을 발했다.

방송인 노홍철(78)은 케이블TV에서 시작해 공중파를 장악했다. 현재는 음주운전 논란으로 자숙 중이다. 유재석(79)은 '유느님'으로 불리며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소신 있는 가수였던 신해철(80)은 최근 의료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국민에 힘 준]
[스포츠 15인]

IMF 사태로 온 국민이 시름하고 있던 당시 메이저리거 박찬호(81)와 프로골퍼 박세리(82)의 활약은 큰 힘이 됐다. 박세리와 함께 깜짝 스타가 된 '땅콩' 김미현(83)은 상당한 인기를 구가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히딩크(84)와 태극전사들의 땀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축구선수 박지성(85)은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해 해외축구 붐을 일으켰다.

농구계에 혜성같이 등장한 김승현(86)은 코트를 휘저었다. '홈런왕' 이승엽(87)은 아시아 홈런기록을 갈아치웠다. '피겨여왕' 김연아(88)는 벤쿠버올림픽에서 전설적인 연기로 금메달을 따냈다. '마린보이' 박태환(89)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다른 메이저리거 추신수(90)는 초대형 계약으로 잭팟을 터뜨렸다. 쇼트트랙 영웅 안현수(91)는 러시아에 귀화해 선수 생활을 잇고 있다. 역도 금메달리스트 장미란(92)은 세계를 들어 올렸다.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93)은 격투기 선수로 변신했다. 배구 여신 김연경(94)은 해외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였고, e스포츠 선수였던 홍진호(95)는 방송인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충격과 경악]
[범죄자 5인]

신창원(96)은 1997년 탈옥을 감행해 우리 사법당국을 농락했다. 조두순(97)은 아동 성폭행을 저질러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다. 살인마 유영철(98)은 죄 없는 여성 수십명을 죽였고, 오원춘(99)은 경기 수원에서 끔찍한 토막살인을 저질렀다. '범서방파' 두목 김태촌(100)은 출소 이후에도 연예인 협박 사건에 연루되며 체면을 구겼다가 2013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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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