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물러난 김기춘 ‘그동안 무슨 일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18개월 천하’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해 “사심 없는 분”이라며 변함없는 신뢰를 내비쳤다. 당시 보수 언론조차 김 전 실장을 사퇴를 촉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왕실장. 청와대는 지난 2월17일 김 전 실장의 사의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정국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그의 18개월을 되짚어봤다.

김 전 실장은 1939년 경상남도 거제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9년 21세에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이후 1962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광주와 부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근무했다. 박정희 정부 집권 말기 청와대비서관을 지냈다. 1991년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그는 현 정권의 전형적인 TK엘리트다. 
 
‘우리가 남이가’
전형적 TK엘리트
 
김 전 실장의 논란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부인 육영수 여사 이름을 따서 만든 ‘정수장학회’출신이며, 장학생들이 만든 모임인 ‘상청회’의 회장을 지냈다.
 
김 전 실장은 1972년 법무부 과장 시절 유신헌법 제정 실무팀 일원으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핵심 역할을 했다. 초안에는 민주주의를 위협한 핵심 조항인 '긴급조치권'을 현실화시켰다.
 

같은 해 12월 김 전 실장은 대검찰청이 발행한 ‘검찰’ 48호에 ‘유신헌법 해설’ 이란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글에서 ‘유신헌법은 우리 현실에 가장 알맞은 민주주의 제도로 이 땅 위에 뿌리박아 토착화시키는 일대 유신적 개혁의 시발점’이라고 주장하며, 독재정권을 옹호하기도 했다. 
 
그가 활약했던 중앙정보부 5국은 공안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었다. 인혁당 사건과 같은 용공조작 사건도 대부분 김기춘의 5국에서 담당했다. 
 
1974년 육영수 저격 사건 당시 그는 중앙정보부 5국의 파견 검사로 해당 사건을 맡았다. 그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문세광을 하루 만에 설득해 범행 과정 일체를 자백 받아 기소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건의 조작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있다. 
 
김 전 실장의 출세 배경 자체가 공안과 정보 조작, 고문을 담당했던 중앙정보부 5국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경력 덕분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년에는 청와대 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부’라고 불리기도 했다. 
 
유신독재 박정희 전 대통령을 섬겼던 김 전 실장은 현 정부의 제2인자로 올라설 수 있는 완벽한 존재였다. 
 
내정부터 퇴임까지 조용한 날 없어
각종 논란·파문에도 꿋꿋하게 버텨
 

검찰총장이던 1989년 8월12일 기자간담회에서는 “더 많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 등 피의자의 변호인 접견권에 일시적 제한·금지가 필요하며 이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안기부(현 국가정보원)·검찰에 의한 변호인 접견 금지에 대해 변호인들이 변호인 접견금지 취소청구준항고를 법원에 내자 법원은 접견금지가 위법이라는 결정을 잇달아 내린 바 있다.
 
92년 대선을 앞둔 12월 부산 ‘초원복집’에서 김 전 실장은 당시 전 법무부 장관과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등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모아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 감정을 부추기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대화를 나눴다. 이 비밀회동에서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와 같은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발언을 했다. 이 내용을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이 도청해 언론에 폭로했다. 
 
 
하지만 김영삼 후보 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했다. 주류 보수 언론은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해 사건의 본질을 호도했다. 이 때문에 통일국민당은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영남 지지층을 집결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으로 김 전 실장은 기소됐으나 무혐의로 풀려났다. 오히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했다. 김 전 실장이 15대 신한국당 의원 후보로 나올 당시 ‘초원복집 사건’으로 낙선대상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5대부터 내리 한나라당 3선 의원직으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정치공작 전문가?
욕먹고 못들은척
 
2004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업이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이었다. 박정희를 위한 유신헌법을 만들었던 김 전 실장에게 헌법을 이용한 탄핵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참여정부 시절 김 전 실장은 법사위원장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고,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과정에서 소추위원 역할을 맡았다.
 
2006년 김 전 실장은 한나라당 긴급 의원 총회에서 “대통령은 이미 정치적으로 하야한 만큼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발언했다. 또한 “노무현은 사이코다. 자기 검정 조절하지 못하고 자제력이 없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그녀의 멘토단인 ‘7인회’의 좌장격인 김 전 실장을 정치 한복판으로 불러냈다. 2013년 김 전 실장 임명을 놓고 시민단체와 여론은 ‘잘못된 인사’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시민 단체와 여론은 ‘유신의 부활’ 혹은 ‘김기춘식 세계관의 정치가 복원될 것’이라는 예측을 쏟아냈다. 
 
특히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는 “초원복집 사건 김기춘의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을 취소하라” 등 성명을 내고 청와대를 질타했다. 이어 “1974년부터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에서 근무했으며, 민주주의를 파괴한 유신헌법 초안 마련을 주도한 인물”이라며 “청산해야 할 과거의 주역을 되살리는 이번 인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논평도 빼놓을 수 없다. 경실련은 “이번 청와대 수석비서진 부분 교체는 취임 후 줄곧 지적됐던 인사실패를 자인한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현재 시스템으로 국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불통으로 내린 인사”라고 주장했다. 지난 18개월 동안 이런 주장은 현실이 됐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당시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해 7월7일 대통령비서실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한 김 전 실장은 ‘사라진 7시간'에 대해 두루뭉술한 답변을 해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일었다.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 전 실장은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날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제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 “대통령이 집무실에 있었느냐, 비서실장이 모르면 누가 아느냐”는 질문에도 “대통령의 위치에 대해서는 제가 알지 못한다. 비서실장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결국 이 논란은 8월 일본 산케이 신문의 <박근혜 세월호 7시간 미스테리>라는 스캔들 기사로 번지는 단초가 됐다. 이후 김 전 실장은 한참 뒤인 11월 국회에서 “(대통령의 위치를)모른다고 했지만, 그 이후에는 국가 원수 경호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문의 7시간과 관련해 김 전 실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김 대표는 “그런 유언비어가 퍼진 건 국회에서 답변을 잘 못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에 출석한 김 실장이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보를 분 단위로 밝혔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김 실장이 국회에 열 번이라도 나와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고 거듭 김 실장의 책임을 지적했다. 
 
“사심 없는 분”
대통령 절대신임
 

세월호 사고 당시 구원파 신도들은 금수원애 ‘김기춘 비서실장 갈데까지 가보자. 우리가 남이가’라는 현수막을 걸어, 김 전 실장과 유병언의 교감설이 주목 받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후보자 낙마율은 14.5%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김 전 실장이 재임 당시 안대희 총리 후보자에 이어 문창극 후보자가 낙마했다. 이 외에 사회부총리를 겸할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와 송광용 청와대 교육문화비서관 등 교육 분야 최고위직 두 명은 논물 표절도 밝혀졌다.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등 구린 구석이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은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맡고 있다. 당시 인사위원장은 비서실장이 겸하고 있었다. 김 전 실장은 인사위원장으로 두 차례나 총리 후보자를 부실하게 검증한 책임에 벗어나기 어려웠다. 여당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김 실장이 인사와 공천에 개입한 것은 잘못”이라며 김 전 실장의 책임론을 공론화하고 나선 적도 있다.
 
하지만 인사 실패에 대한 책임도 김 전 실장의 자리를 위태롭게 할 수 없었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낙마했을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경질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자진 사퇴 때는 인사 수석실을 신설했다. 부실 검증 논란이 일 때마다 언제나 김 전 실장에게는 일종의 출구가 마련돼 있었다.  
 
당시 문창극 후보자의 낙마 시도에 친박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가세하면서 청와대의 갈등설도 불거졌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의 조정력은 전혀 발휘되지 못했다.   
 
김 전 실장의 외아들 김성원씨가 2013년 12월31일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중앙대 의대를 졸업한 인재로 재활의학 병원을 개원해 운영하던 시기에 발생한 사고였다.  
 
김 전 실장은 아들이 사고가 난 날 오후 5시에는 “대통령은 전혀 개각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긴급 브리핑을 하고 확산되는 개각 논란의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3일에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4 신년 인사회’에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를 만나는 등 자리를 지켰다. 청와대 수석들도 그의 흔들림 없는 행보에 아들이 위중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박정희 시절부터 인연…지금도 무한신뢰
시민단체·여론은 여전히 “잘못된 인사”
 
김 실장은 모든 일과가 끝난 후 병원을 찾아 아들 옆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그의 잦은 병원 출입에 일각에서는 김 전 실장의 이상설 등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지난 1월9일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김 전 실장은 “개인적으로 자식이 병원에 누워 사경을 헤맨 지 1년이 넘었는데 자주 가지 못해 인간적으로 매우 아프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비선실세 의혹을 받았던 정윤회 논란이 일파만파 퍼졌다. 이 가운데 불길이 김 전 실장에게 옮겨붙었다. 사건의 핵심은 정씨와 청와대의 권력자들이 정기적으로 청와대와 정부의 동향을 논의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내용이 자신이 지휘하는 비서실에서 작성되 대량으로 유출됐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박지만 EG그룹 회장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명의의 문건이 대량 유출된 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김 전 실장에게 제안했다. 더구나 지난해 1월6일 작성된 ‘정윤회씨 국정개입’ 보고서를 처음으로 보고 받은 뒤 당사자인 ‘문고리 3인방’ 등에게 사실이 아니라는 확인만 받고, 이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3∼4월과 6월에 내부 문서 유출 사실이 확인된 이후 최소한 4차례의 문서 회수 기회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다시 말해 알고도 이를 방치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정윤회와 박지만의 권력투쟁이 밖으로 드러날 경우 박근혜 대통령에게 피해가 갈 수 있기에 무조건 덮어버리려고 했을 것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당시 김 전 실장의 입장에서 치부가 드러나는 일은 막아야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정윤회와 박지만, 두 비선라인의 싸움을 통해 어부지리를 취하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검찰장악이라는 큰 명제를 해결한 김 전 실장은 두 비선라인한테 토사구팽을 당해야 할 인물이었다. 그런 견제를 막기 위해 김 전 실장은 오히려 내부 갈등을 키워 자신은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계획일 수도 있었다는 주장이다. 무엇이 됐든 김 전 실장은 문고리 권력이라는 사실이 둘오넌 계기였다.
 
문건 공개 이후 벌어진 특별검찰 때 오모 행정관에 대한 강압조사 논란이 벌어지고, 한모 경위에 대한 청와대 회유 의혹이 불거진 것에 대한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에 대한 이런 비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재신임’ 탓에 공허한 지적으로 막을 내리는 분위기였다. 
 
정윤회 후폭풍 
온몸으로 막어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월2일 김 실장의 시무식 발언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하는 것으로 김 실장에 대한 자신의 재신임에 ‘쐐기’를 박은 바 있다. 
 
김 실장은 시무식에서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직원들에게 “국가원수를 모시면서 개인의 영달이나 이익을 위해 직위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충(忠)이 무엇인가? 중심(中心)이다. 중심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 이심(異心)을 품어서는 안 된다” 며 질책을 했다. 이더 “저도 분발하겠다”며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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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