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초폐기 수사로 본 '정치검찰' 오명 잔혹사

'대통령과 맞장' 패기 어디갔나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지록위마. 검찰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다. '사초(史草) 폐기' 수사는 삭제돼야 할 초본을 대통령기록물로 해석한 검찰의 '의도된 실수'였다. "야당을 겨냥한 무리한 기소였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가운데 중립성을 잃어버린 검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대통령의 치부를 파헤쳤던 검찰은 '이명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정치 검찰'이란 오명을 자초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참여정부 초기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 말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적개심은 TV를 통해 여과 없이 송출됐다. 정권이 바뀌고 노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됐다. 검찰은 되는대로 피의사실을 흘렸다. 언론은 받아 썼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후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대한민국은 고인을 기리는 노란 물결로 출렁였다.

노무현과 악연
정치검찰 전락

검찰은 김영삼정부가 하나회를 숙청하자 손꼽히는 권력기관으로 부상했다. 정치권은 정적을 제거하고자 할 때 검찰을 이용했다. '정치 검찰'이란 표현은 역대 정부마다 예외 없이 등장했다. '정치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에 관대하고, 지난 권력에 가혹한 검찰을 꼬집는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이들이 늘 살아 있는 권력의 시녀였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3년 있었던 대선자금 수사는 오히려 살아 있는 권력에 가혹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청와대와 각을 세우며 뚝심 있게 수사를 밀어붙였다. 당시 안 전 대법관은 '국민 검사'란 애칭을 얻었다.

16대 대선자금 수사는 SK 비자금 수사에서 시작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로 확대됐다.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에서 370억원, LG에서 150억원, 현대자동차와 SK에서 각각 100억원씩을 받았다. '4대 기업'의 후원금만 720억원에 이르렀다.

한화, 대한항공, 대우건설, 금호, 롯데(이상 금액순) 등 대기업도 10억∼40억원의 대선자금을 건넸다. 당비 형식으로 모은 13억원의 비자금까지 더하면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은 848억원에 달했다.

한나라당은 '표적 수사'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노무현캠프가 한나라당 대선자금의 10분의 1을 더 썼다면 사퇴하겠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말은 독이 됐다. 당시 수사를 총괄했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33대)은 퇴임 후 숭실대 강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의 10분의 1보다 더 썼다면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검찰은 10분의 2∼3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진보에겐 가혹
보수에겐 관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노무현캠프의 대선자금 규모는 113억6200만원이었다. 삼성만 놓고 봤을 때는 10분의 1보다 적었다. 삼성은 30억원을 노무현캠프에 전달했다. SK의 후원금은 10억원으로 정확히 10분의 1이었다. 이외에도 금호, 현대자동차, 롯데, 대한항공(이상 금액순) 모두 한나라당보다 적은 정치후원금을 노무현캠프에 건넸다. 친노무현 그룹으로 알려진 태광실업조차 한나라당에 두 배 더 많은 돈을 후원했다.

그러나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에 분개했다고 한다. 수사의 칼날을 현 정권에 들이민 이유다. 송 전 총장은 같은 강연에서 "더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이 "(후원금을 건넨) 기업인을 처벌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하자 안 전 대법관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이 아닌가"라고 되받았다. 박근혜정부 들어 청와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금과옥조로 지켜온 지금의 검찰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당시 안 전 대법관은 최도술씨(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가 부산지역 중소기업들로부터 걷은 3억3700만원을 비롯해 썬앤문그룹, 대아건설, 서해종건이 건넨 대선자금까지 찾아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의 외압으로 수사가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발끈한 안 전 대법관은 "입증된 대로 기소하고 발표했다"며 "검찰이 한나라당 쪽 피의자들보다 노무현캠프 쪽 피의자들을 더 오래 붙잡아놓고 조사하는 것을 본 한나라당 쪽 변호인단이 '지독하다'고 얘기할 정도였다"고 반박했다.

참여정부 시절 검찰은 '독립성'의 상징이었다. 2004년 3월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를 보고 받지 못한 강금실 당시 법무부장관은 진장조사를 지시했다. 그러자 송 전 총장은 "조사하고 싶으면 나를 조사하라"고 배짱을 부렸다. 송 전 총장은 2년 임기를 마치고 정상 퇴임했다.

후임으로 내정된 김종빈 전 검찰총장(34대)은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과 대립각을 세웠다. 김 전 총장은 2005년 10월 '6·25는 통일전쟁'이란 발언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했다. 하지만 천 전 장관은 수사 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수사 방침을 전달했다. 김 전 총장은 "구속수사가 옳다"고 고집했다. 결국 김 전 총장은 '자진 사퇴'란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대선자금 수사'로 노무현과 대립각
'정치 검사' 박근혜정부서 승승장구

정권이 바뀌고 검찰은 이명박정부에 줄을 섰다. 노 전 대통령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이명박정부는 청와대 민정수석을 고등검사장 이상의 검찰 고위직으로 임명했다.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을 지키는 한편 참여정부에 대한 '청산 작업'에 돌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연루된 BBK 주가조작 사건은 무혐의 처분됐다.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에 대한 수사도 무혐의 종결됐다.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은 황당했다. "증거 인멸에 상부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만 유죄(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를 판결 받았다. <검사님의 속사정>이란 책을 펴낸 이순혁 기자는 당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적당히 하라'는 검찰 수뇌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명수사 받아
검찰총장 후보로

참여정부 인사들에게는 가혹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수사팀 소속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선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며 "전담 인력만 100여명 가까이 됐는데 그 많은 사람들의 눈을 어찌 속일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최종 판결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검찰 수뇌부는 이른바 TK·고대 인맥으로 채워졌다. 수뇌부에 줄을 댄 김광준 검사(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는 수억원대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 받았다. 망가진 검찰은 '벤츠 여검사' '스폰서 검사' '성추문 검사' 사건 등으로 잇달아 망신당했다.

그렇지만 권력으로부터 이른바 '하명수사를 받은 검사는 인사 때마다 승승장구했다. 미네르바 사건을 지휘한 김수남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이명박정부 말기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승진했다. 박근혜정부 들어선 검찰 '넘버2'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지난 6일에는 대검 차장으로 발탁돼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유력시되고 있다.

MBC <PD수첩> 사건을 수사한 전현준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은 검찰 내 요직인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을 거쳐 이명박정부 말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발령 났다. 그는 수원지검 안산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이번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복귀했다.

MB정부 들어 참여정부 출신 줄줄이 폭격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 주도 채동욱 보복

박근혜정부 들어 검찰은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입었다. 현 정부의 '리지터머시(정통성)'를 건드린 채동욱 전 검찰총장(39대)이 혼외아들 의혹으로 낙마한 것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는 시작부터 내부 견제에 직면했다. 수사팀에 속한 일부 검사조차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했다고 전해진다.

2013년 6월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참여정부 당시 천 전 장관이 그랬던 것처럼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하지만 대학교수 개인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과 국가기관의 조직적 대선개입 사건은 사안이 가진 무게가 달랐다.

황 장관은 수사 대상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도록 압박했다. 하지만 특별수사팀 입장에서 범죄 사실은 명백했다. 채 전 총장은 황 장관과 맞섰다. 참여정부 이래 정치적인 사건에서 소신을 지킨 지휘부는 채 전 총장이 유일했다.

우여곡절 끝에 채 전 총장은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채 전 총장은 <조선일보>의 '혼외아들' 보도 직후 옷을 벗었다. <조선일보>의 보도 배경에 청와대 차원의 '뒷조사'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윗선'을 밝히지 못했다. '법률가의 양심'으로 끝까지 수사를 밀어붙인 윤석렬 전 특별수사팀장은 '항명 파동'으로 좌천됐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1심 판결의 요지는 "정치개입은 했지만 대선개입은 없었다"이다. 판결 직후 '지록위마'란 사자성어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라왔다. 지난 2013년 8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난 대선 동안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2심은 원 전 원장의 선거법위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신상털기'를 당한 채 전 총장은 여전히 은둔 중이다.

굵직한 수사마다
새누리당 면죄부

후임인 김진태 검찰총장(40대)은 이명박정부 때 있었던 정치 검찰의 행로를 답습하고 있다. 정국을 흔들었던 정윤회 국정개입 파문은 대통령이 내린 가이드라인에 따라 마무리됐다. 청와대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으로 규정됐다. 조응천 전 공직기강비서관은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그런데 이번 '사초 폐기' 사건에서 법원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초본'이 대통령의 승인을 얻지 않은 문서이기 때문에 대통령기록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참여정부 인사인 백종천 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명균 전 통일외교안보정책비서관은 지난 6일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는 대통령의 결재를 얻지 않은 청와대 문건은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는 판단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실제로 검찰은 회의록 유출 혐의를 받았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상기 의원, 권영세 당시 주중대사, 남재준 전 국정원장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관련 회의록에 대해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라고 자체 규정했다. 참여정부가 당시 국정원에 보관토록 한 '회의록'임에도 같은 문건에 다른 법리를 적용한 것이다.

나아가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두 비서관에게 지시해 회의록을 일부러 폐기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전 노 전 대통령은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검찰의 미래를 예견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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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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