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⑬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자택에 현금뭉치 쌓아두고 "배째라"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법인은 10억원 이상)의 체납범을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13화는 798억8700만원을 체납한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다.

 

지난 2012년 11월 삼성그룹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25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부근 선영에서 이뤄진 추모식에 삼성그룹 일가 임원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무리에는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하 조동만)이 있었다. 조동만은 이 회장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차남으로 이날 형제들과 함께 선영을 참배했다.

이병철 외손자

삼성가라는 후광이 있지만 조동만은 상습·고액체납자다. 2004년 3월부터 10년 넘게 주민세를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세할 세금은 84억100만원이다. 조동만은 2000년부터 양도소득세 등 2건의 국세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공개한 체납액은 714억8600만원이다.

2013년 8월을 기준으로 조동만은 주민세 84억1300만원을 체납했다. 1년 사이 서울시에 1200만원을 납부한 것이다. 그러나 2012년과 비교하면 체납한 세금은 58억4800만원에서 25억여원이 늘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2013년) 가택수색 이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며 "체납액이 많기 때문에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동만은 2008년 6월부터 한 달에 250만원씩 밀린 세금을 납부하기로 했다. 그러나 1억5000여만원만 납부하고 나머지는 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기자와 만난 한 인테리어 업계 관계자는 "한솔가 사람들이 집안 내부 구조를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계약 주체가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조동만의 집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의 주소지로 등록된 서울 중구 장충동에 있는 고급 빌라를 찾았다. 해당 빌라는 조동만의 소유였다가 세금 문제로 압류돼 2004년 공매에 넘어갔다. 현재 빌라는 조동만의 매제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거주자는 조동만이란 것이 과세당국의 판단이다.

바로 옆집은 조동만의 아내 이미성씨 명의로 돼 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가 가택수색을 했을 당시 조동만은 이씨의 집과 매제의 집을 연결해 쓰고 있었다. 매제의 집에선 비밀금고가 발견됐다. 5만원권 수십장이 묶인 뭉칫돈이 쏟아졌다. 초고가 패션브랜드인 에르메스 의류도 있었다. 하지만 조동만은 "수입이 없어 세금을 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15일 장충레지던스를 찾았을 때 빌라 관리인은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용역 계약을 맺은 지 얼마 안 돼서 모른다"고 회피했다. 그러나 관리인실 책상 곳곳에 붙어있는 메모들에는 '몇동 몇호 누구'의 명의로 된 사과박스 주문내역까지 꼼꼼히 기재돼 있었다. 지하 관리사무소를 찾았지만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중국인이 살고 있다"는 엉뚱한 대답만 돌아왔다.

장충대 일대는 이른바 '삼성타운'으로 불린다. 장충레지던스 맞은편에는 신라호텔이 있고, 장충레지던스 바로 옆 건물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주거지로 알려져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장충레지던스 인근에 토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장충레지던스 건물에는 조동만의 모친인 이 고문과 큰형인 조동길 한솔그룹 명예회장 등 한솔그룹 일가가 거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84억원 국세청 715억원 체납
한솔텔 전매차익 1900억 빼돌려 구속

조동만은 고액 체납자이지만 아내와 자녀는 부유하다. 아들 조현승씨는 한솔그룹 계열사인 한솔인티큐브 지분 9.98%(137만6300주)를 보유하고 있다. 주식 가치는 1월16일 기준 30여억원에 달했다. 아내 이씨도 주식부자다. 한솔인티큐브 지분 5.72%(78만8525주)를 갖고 있다. 주식 가치는 17억여원으로 환산됐다.

한솔인티큐브의 최대주주는 지분 22.36%(308만2877)를 갖고 있는 한솔PNS다. 조동만은 2000년대 초반 한솔PNS의 회장이었다. 현재 한솔PNS는 한솔그룹 지주회사인 한솔홀딩스가 지분 46.07%로 최대주주에 올라 있다. 한솔가 누구도 개인 주식은 갖고 있지 않다. 때문에 여전히 한솔PNS의 실질적인 사주가 조동만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과세당국은 한솔PNS의 주식이 조동만의 사유재산이라는 주장에 대해 입증할 수 없었다고 했다.


조동만은 1990년대 중반부터 IT사업에 진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안철수 의원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젊은 기업가 모임 '브이소사이어티'에서 주축으로 활동했다. 업계 평판은 '외향적이고 쾌활한 오너'였다고 한다. 조동만이 언론에 등장한 것은 IMF 전후로 확인된다. 김영삼정부 시절 조동만은 대통령의 아들인 김현철씨에게 15억원의 뇌물을 건넸고, 현철씨의 비자금 70억원을 관리하다가 검찰에 적발됐다.

앞서 조동만은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권력에 줄을 댄 것으로 의심 받았다. 조동만은 한솔그룹의 신성장동력을 이동통신사업에서 찾았다. 결과적으로 이동통신사업은 막대한 부가가치를 낳았다. 하지만 한솔그룹은 그 과실을 따먹지 못했다. 2004년 조동만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1999년 4월 한솔텔레콤 대주주였던 조동만은 자회사 한솔앰닷컴 주식 588만주에 대해 신주인수권(BW)을 헐값에 인수했다. 한 주당 가격은 200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조동만은 주당 7000원씩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가격을 부풀린 뒤 2000년 6월 2350억원을 받고 KT에 주식을 매각했다. 검찰이 파악한 전매차익은 1900여억원에 달했다. 이는 한솔텔레콤에 돌아가야 할 전매차익을 자신에게 빼돌린 범죄였다.

이후 조동만이 처분한 주식이 추가로 발견됐다. 국세청은 조동만에게 양도소득세를 가중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조동만은 주식매각 차익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과세된 세금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2004년 3월 서울시는 조동만에 대해 주민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명의로 된 모든 재산이 압류됐다.

2013년 정부가 발표한 기간통신사업자 명단에는 한솔아이글로브가 남아 있었다. 조동만은 한솔그룹 부회장보다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으로 소개되는 일이 더 많았다. 한솔그룹 측도 "조동만이 따로 IT사업군을 분리해 나갔음으로 그룹과는 관계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수천억 빼돌려

그러나 외부에선 여전히 조동만을 한솔그룹 후계자 가운데 한 명으로 보고 있다. 조동만의 아들 현승씨는 지난 1월 이른바 '황제 병역' 논란으로 검찰에 고발됐다. 현승씨에게는 한솔그룹 3세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현승씨는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을 이유로 대체복무 중인 방위사업체에 주 1~2회씩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업체 측은 현승씨를 위해 별도의 사무실을 제공했다. 한솔그룹 3세가 아니었다면 이런 특혜가 가능했을까.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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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