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물 만난 유승민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

‘할 말 하는’ 화통한 대구 사나이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짤박’(짤린 친박) 유승민(57·대구 동을) 의원이 새누리당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유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4선인 이주영 의원과 원내대표 자리를 놓고 경선을 펼친 결과, 투표 참여의원 149명 중 84표를 얻어 새 원내대표로 확정됐다. 

 
유 원내대표에게는 수많은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첫 번째는 ‘원박(원조박근혜)’이고, 두 번째는 ‘탈박(탈박근혜)’, 세 번째는 ‘경제정책통’이다. 거침없는 화법으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직언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지난 2일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15년간 수많은 정치적 부침을 겪다가 이룬 쾌거란 평가다.  유 원내대표는 당선 소감에서 “앞으로 고쳐나갈 것이 많을 것”이라며 “변화와 혁신을 얘기했는데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와 긴밀하게 진정한 소통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하자마자…
미스터 쓴소리
 
이어 “민심이 무엇인지, 무엇이 더 나은 대안인지 같이 고민하는 찹쌀떡 같은 공조를 이루겠다”며 “대신 대통령과 청와대 식구들, 장관들도 더 민심에 귀 기울여주고 당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함께 총선 승리를 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유 원내대표는 굴곡진 정치 역정을 걸어왔다. 그는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여당 인사다. 정치 무대 한가운데서 화려하게 활동을 하다가도 한순간 무대에서 사라져 버릴 정도로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다. 
 
그는 1958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등을 졸업하며,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만기 제대를 했다. 이후 1987년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까지. 전형적인 ‘TK(대구경북)’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특히 그가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 위스콘신대학교는 현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이 거친 것으로 유명하다.
 
1983년부터 4년간 위스콘신대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시장의 자율을 중시하는 신고전학파 학풍과 달리 정부 개입의 필요성 등 소신을 피력하고는 했다는 후문이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위스콘신대에서 유학(박사과정)한 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 경제수석과는 상반된 경제철학을 가진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정·청의 경제정책 수뇌부가 위스콘신 출신이지만 결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부동산 부양 등 거시정책을 과감하게 확장 운영해야 한다는 최 경제부총리, 안 경제수석과 달리 유 원내대표는 “국가와 시장만으로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며 소규모 공동체 중심의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적 경제론’을 펴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19대 국회로 3선 반열에는 올랐지만, 그의 정치 경륜은 생각만큼 길지 않다. 유 원내대표는 박사학위 취득 이후 1987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그의 젊음을 바쳤다. 이 당시 그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해소 연구에 주력했으며, 우리나라 공정거래정책 연구에 초석을 놓은 사람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중장기적 ‘중부담 중복지’ 원칙을 제시하고 스스로 “외교·안보는 보수지만 복지·고용·노동 분야는 리버럴(진보)”이라고 밝힌 그의 철학이 이때 형성된 것이다.
 
전형적인 엘리트코스 TK 출신 

거침없는 화법으로 직언 날려 
 
그는 지난 2000년 초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1982년 초부터 KDI에서 15년여를 근무(미국 위스콘신대 박사와 UC샌디에이고 대학원 초빙교수 기간 제외)했다. 그는 IMF 구제금융 사태인 1997년 말 전에 ‘기업의 투명성 제고와 기업지배구조 개선’ 연구를 내놓았다. 당시 그의 연구주제를 보면 대기업의 성장과 생산성, 민영화 정책, 무역과 산업 정책, 규제개선, 제조업의 기술적 효율성 등 다양하다. 
 
KDI에서 같이 근무했던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는 재벌이나 경제력 집중 연구도 많이 했으며 인간성이 따뜻하고 박사 중심 엘리트주의인 KDI에서 석사 연구원을 배려하는 등 젊은 연구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술회했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시장경제와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 등 공동체적 가치에 충실했던 학자”라며 “논리정연하고 글발 좋은 스타 박사였고 동료들과 후배들과 잘 어울렸다”고 기억했다. 다른 KDI 출신 관계자는 명문가(부친이 대구에서 13대(민정당), 14대(민자당) 의원을 역임한 유수호 전 의원) 출신이지만 잘난 척하지 않고 강남좌파 느낌이 좀 났다”고 전했다.
 
경제연구에 몰두
최경환과 각세워
 
이처럼 그는 주로 학계에 몸담고 있었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 2000년이다. 그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영민함과 정책 능력을 주류 정치권이 인정한 것이다. 이 전 총재의 경제 과외교사 역할을 하며, 2002년 대선에서 최측근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2002년 대선에서 패하면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1년여 공백기를 거쳐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사퇴 후 대구 동을에 출마해 지역구에 당선됐다.  
 
지금은 다소 소원해진 관계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역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을 빼놓고는 설명이 어렵다. 무엇보다 초선 시절이던 2005년 흔들리던 한나라당에 박 대통령이 대표가 돼 원군을 자청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당을 맡아 재건에 나설 당시 비서실장으로 2005년 1월부터 약 10개월간을 보필한 사람이다. 그해 유 원내대표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선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아 박 대통령 캠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원조 친박’으로 분류됐다. 이 인연이 이어져 그는 2007년 이명박 당시 후보 측과 벌인 전대미문의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 책사(정책메시지총괄단장)를 맡는 등 정치적인 도약을 하게 된다.
 
 
그는 당시 대선 후보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BBK 주가조작 사건’과 재산 은닉 의혹 등 이명박 당시 경선후보와 관련된 온갖 의혹들을 파헤치는 ‘이명박 저격수’ 역할을 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이 내세운 대운하의 비현실성을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국민이 가진 식수원 오염 가능성이나 환경파괴 우려에 대한 답이 안 됐다” 대운하를 비판했다. 이어 MB가 골재로 8조원을 충당하겠다는 것도 물량이 동시에 시장에 나오면 가격 폭락이 벌어지는 등 현실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굴곡진 정치 인생사…여권의 숨은 잠룡

청와대 공개 비판 “당청관계 변화 예고” 
 
사실상 ‘유승민’이라는 이름 석자가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다. 이때 유 원내대표는 활동 범위를 넓혀 이 후보 측의 강력한 네거티브 공세를 전면에서 방어하는 등 비로소 '정치인 유승민'으로 재탄생했다. 정가에서 그의 계파 성향을 원조 친박으로 분류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1차 칩거'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사안별로만 자기 목소리를 냈다. 특히 4대강 사업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친박계의 수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침묵으로 4대강 사업에 동조하는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만 비판적 목소리를 계속 냈다.
 
2010년 8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남한강 이포보에서 고공농성 당시 시민단체는 야당과 함께 한나라당도 참여하는 국회 차원의 4대강 검증을 요구했다. 이때 한나라당에서는 유일하게 유승민 원내대표만이 찬성 입장을 보내왔다. 이런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한나라당 내에서는 드물게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그러던 중 2011년 개최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용감한 개혁’을 슬로건으로 친박계 주자로 나서 홍준표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전면에 복귀, 화려하게 지도부에 입성했다.
 
이후 ‘유승민표’ 정책을 차근차근 내놨고, 이듬해 대선에서 박 대통령은 그의 복지·분배 정책을 차용했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는 만족하지 않았다. 2012년 총선 직전 박 대통령이 주도한 당명 개정에 가장 강력히 반대했고, ‘충성심과 약속’으로만 똘똘 뭉친 친박의 테두리 안에 자신을 가둬두지 않았다. 
 

한때 친박계 선봉
지금은 짤박 신세
 
그는 비록 원조 친박이지만 소신이 뚜렷하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 스타일로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다. 복지와 분재 강화라는 여권 내에서는 파격적인 개혁 정책들을 피력하면서 점차 친박 주류와 거리가 멀어졌다. 
 
박 대통령도 최근에는 그를 중용하지 않는다. 이후 비판적인 발언이 주목을 받으면서 현재 ‘탈박’으로 분류될 정도로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평가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박 전 위원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도울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등의 비판적 목소리를 낸 것도 비슷한 시기다. 또한 그는 사석에서 가끔 이때를 회상하며 “최측근이었지만, 직언을 마다치 않았다”고 말하곤 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광도 잠시, 2012년 최구식 의원 측 비서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해 디도스 공격을 벌였던 것이 알려졌고, 급기야 5개월 만에 지도부 책임론에 밀려 총사퇴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더욱, 그는 ‘원조 친박’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이어 들어선 박 대통령의 비대위 체제에서 배제되면서 결국 세력권과 멀어졌다. 
 
 
이후 '2차 칩거'에 들어갔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였다. 그는 독특한 색깔의 ‘탈박’이고자 했다. 비박(비박근혜) 성향이 강한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을 규합해 지지그룹을 형성했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해 7월 전대에선 김무성 대표가 아닌 친박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을 지원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유 원내대표는 이제 새로운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누군가의 참모’ 이미지를 벗고 ‘자기 정치’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벌써부터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당·청 관계는 물론 여당 전반의 폭넓은 개혁을 선도할 것이란 기대다. 
 
지난해 10월에는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얼라들’이라며 청와대 비서실 인사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 뒤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으로 ‘문고리 3인방’, ‘십상시’등이 회자되면서 그날의 발언이 다시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른바 ‘K·Y설’로 정윤회씨 문건 유출 배후로 김무성 대표와 함께 거론돼 주목받기도 했다.
 
지난해 9월 ‘거리의 인문학자’로 알려진 최준영 작가가 여·야 대권주자에 대해 짧은 평이 회자가 됐다. 그는 유 원내대표를 “아직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여권의 히든카드”라고 평가했다. 유 원내대표에 대한 이런 우호적인 평가는 입때껏 그가 보여준 상식에 맞는 행보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이후 원내대표로서 어떤 행보를 할지,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한편 유 원내대표의 등장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여전히 전략 등의 부재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야당의 심각한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정기국회 때까지 ‘증세’냐 ‘복지 축소’냐의 결론을 내겠다는 유 원내대표는 그동안 부동산 부양 등 ‘초이노믹스’에 대해 “돈만 날릴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세연·이종훈·민현주 의원 등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 회원들이 이번에 그를 집중 지원한 것도 그의 이 같은 철학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가 국책 싱크탱크에서 정책제언을 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야당에서도 서민 이슈를 선점당할까 봐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19대 총선 때 KDI 연구원 시절 작성한 논문의 중복게재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 후보의 과도한 흠집내기란 평가가 우세했다. 
 
유 원내대표는 17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총 26건의 법안 발의를 했다. 경제정책통 정치인에겐 다소 적은 개수다. 전문분야인 경제와 동떨어진 국방위원회에서 간사와 위원장을 역임했다. 최근 인권교육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부수단체의 반발에 못 이겨 철회해 아쉬움을 남겼다. 
 
새누리당 텃밭 대구에 지역구를 두고있을 뿐 아니라 대구 지역을 넘어 TK 맹주로 떠올랐다. 이 지역 의원들의 공천과 당선에 영향력을 미칠 전망이다. 친이, 친박 이후 뚜렷한 계파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 가운데 이른바 ‘유승민계’를 형성해 독자 세력 가능성을 보여준다. 청와대의 관계에 의문부호가 따라붙은 후 김무성 당 대표와 갈등 관계를 해소해 당내 기반을 강화했다.  향후 김 대표와 관계를 어떻게 풀어낼지 관건이다.
 
파격적인 정책들
독자세력 가능성
 
화통한 대구 사나임은 틀림없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가장 약점으로 지적된 것이 동료 의원들과 친화력이다. 대중적인 이미지 또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감 요소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재산규모는 2013년 말 기준으로 30억6400만원, 지역구인 대구뿐 아니라 서울 강남과 경기도 분당 일대에 약 14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유승민은?]
 
▲1958년 대구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 위스콘신대 경제학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공정거래위원장 자문관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장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 ▲한나라당 박근혜 선거대책위 정책메시지 총괄단장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 2012년 국회 국방위원장 ▲17·18·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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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