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물 만난 유승민 새누리당 새 원내대표

‘할 말 하는’ 화통한 대구 사나이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짤박’(짤린 친박) 유승민(57·대구 동을) 의원이 새누리당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유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4선인 이주영 의원과 원내대표 자리를 놓고 경선을 펼친 결과, 투표 참여의원 149명 중 84표를 얻어 새 원내대표로 확정됐다. 

 
유 원내대표에게는 수많은 꼬리표가 붙어 다닌다. 첫 번째는 ‘원박(원조박근혜)’이고, 두 번째는 ‘탈박(탈박근혜)’, 세 번째는 ‘경제정책통’이다. 거침없는 화법으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직언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지난 2일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에 올랐다. 15년간 수많은 정치적 부침을 겪다가 이룬 쾌거란 평가다.  유 원내대표는 당선 소감에서 “앞으로 고쳐나갈 것이 많을 것”이라며 “변화와 혁신을 얘기했는데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와 긴밀하게 진정한 소통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하자마자…
미스터 쓴소리
 
이어 “민심이 무엇인지, 무엇이 더 나은 대안인지 같이 고민하는 찹쌀떡 같은 공조를 이루겠다”며 “대신 대통령과 청와대 식구들, 장관들도 더 민심에 귀 기울여주고 당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함께 총선 승리를 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유 원내대표는 굴곡진 정치 역정을 걸어왔다. 그는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여당 인사다. 정치 무대 한가운데서 화려하게 활동을 하다가도 한순간 무대에서 사라져 버릴 정도로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을 가지고 있어서다. 
 
그는 1958년 대구 출생으로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등을 졸업하며,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만기 제대를 했다. 이후 1987년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까지. 전형적인 ‘TK(대구경북)’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특히 그가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 위스콘신대학교는 현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청와대 안종범 경제수석이 거친 것으로 유명하다.
 
1983년부터 4년간 위스콘신대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시장의 자율을 중시하는 신고전학파 학풍과 달리 정부 개입의 필요성 등 소신을 피력하고는 했다는 후문이다. 1985년부터 1991년까지 위스콘신대에서 유학(박사과정)한 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 경제수석과는 상반된 경제철학을 가진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당·정·청의 경제정책 수뇌부가 위스콘신 출신이지만 결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실제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부동산 부양 등 거시정책을 과감하게 확장 운영해야 한다는 최 경제부총리, 안 경제수석과 달리 유 원내대표는 “국가와 시장만으로는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며 소규모 공동체 중심의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적 경제론’을 펴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19대 국회로 3선 반열에는 올랐지만, 그의 정치 경륜은 생각만큼 길지 않다. 유 원내대표는 박사학위 취득 이후 1987년부터 2000년까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그의 젊음을 바쳤다. 이 당시 그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해소 연구에 주력했으며, 우리나라 공정거래정책 연구에 초석을 놓은 사람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유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중장기적 ‘중부담 중복지’ 원칙을 제시하고 스스로 “외교·안보는 보수지만 복지·고용·노동 분야는 리버럴(진보)”이라고 밝힌 그의 철학이 이때 형성된 것이다.
 
전형적인 엘리트코스 TK 출신 

거침없는 화법으로 직언 날려 
 
그는 지난 2000년 초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1982년 초부터 KDI에서 15년여를 근무(미국 위스콘신대 박사와 UC샌디에이고 대학원 초빙교수 기간 제외)했다. 그는 IMF 구제금융 사태인 1997년 말 전에 ‘기업의 투명성 제고와 기업지배구조 개선’ 연구를 내놓았다. 당시 그의 연구주제를 보면 대기업의 성장과 생산성, 민영화 정책, 무역과 산업 정책, 규제개선, 제조업의 기술적 효율성 등 다양하다. 
 
KDI에서 같이 근무했던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는 재벌이나 경제력 집중 연구도 많이 했으며 인간성이 따뜻하고 박사 중심 엘리트주의인 KDI에서 석사 연구원을 배려하는 등 젊은 연구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술회했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시장경제와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 등 공동체적 가치에 충실했던 학자”라며 “논리정연하고 글발 좋은 스타 박사였고 동료들과 후배들과 잘 어울렸다”고 기억했다. 다른 KDI 출신 관계자는 명문가(부친이 대구에서 13대(민정당), 14대(민자당) 의원을 역임한 유수호 전 의원) 출신이지만 잘난 척하지 않고 강남좌파 느낌이 좀 났다”고 전했다.
 
경제연구에 몰두
최경환과 각세워
 
이처럼 그는 주로 학계에 몸담고 있었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것은 지난 2000년이다. 그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임명됐다. 그의 영민함과 정책 능력을 주류 정치권이 인정한 것이다. 이 전 총재의 경제 과외교사 역할을 하며, 2002년 대선에서 최측근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2002년 대선에서 패하면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1년여 공백기를 거쳐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사퇴 후 대구 동을에 출마해 지역구에 당선됐다.  
 
지금은 다소 소원해진 관계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역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을 빼놓고는 설명이 어렵다. 무엇보다 초선 시절이던 2005년 흔들리던 한나라당에 박 대통령이 대표가 돼 원군을 자청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당을 맡아 재건에 나설 당시 비서실장으로 2005년 1월부터 약 10개월간을 보필한 사람이다. 그해 유 원내대표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선 정책메시지 단장을 맡아 박 대통령 캠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원조 친박’으로 분류됐다. 이 인연이 이어져 그는 2007년 이명박 당시 후보 측과 벌인 전대미문의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 책사(정책메시지총괄단장)를 맡는 등 정치적인 도약을 하게 된다.
 
 
그는 당시 대선 후보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BBK 주가조작 사건’과 재산 은닉 의혹 등 이명박 당시 경선후보와 관련된 온갖 의혹들을 파헤치는 ‘이명박 저격수’ 역할을 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이 내세운 대운하의 비현실성을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국민이 가진 식수원 오염 가능성이나 환경파괴 우려에 대한 답이 안 됐다” 대운하를 비판했다. 이어 MB가 골재로 8조원을 충당하겠다는 것도 물량이 동시에 시장에 나오면 가격 폭락이 벌어지는 등 현실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굴곡진 정치 인생사…여권의 숨은 잠룡

청와대 공개 비판 “당청관계 변화 예고” 
 
사실상 ‘유승민’이라는 이름 석자가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다. 이때 유 원내대표는 활동 범위를 넓혀 이 후보 측의 강력한 네거티브 공세를 전면에서 방어하는 등 비로소 '정치인 유승민'으로 재탄생했다. 정가에서 그의 계파 성향을 원조 친박으로 분류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1차 칩거'에 돌입했다.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사안별로만 자기 목소리를 냈다. 특히 4대강 사업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다. 친박계의 수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침묵으로 4대강 사업에 동조하는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만 비판적 목소리를 계속 냈다.
 
2010년 8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남한강 이포보에서 고공농성 당시 시민단체는 야당과 함께 한나라당도 참여하는 국회 차원의 4대강 검증을 요구했다. 이때 한나라당에서는 유일하게 유승민 원내대표만이 찬성 입장을 보내왔다. 이런 행보를 보였기 때문에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한나라당 내에서는 드물게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그러던 중 2011년 개최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용감한 개혁’을 슬로건으로 친박계 주자로 나서 홍준표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전면에 복귀, 화려하게 지도부에 입성했다.
 
이후 ‘유승민표’ 정책을 차근차근 내놨고, 이듬해 대선에서 박 대통령은 그의 복지·분배 정책을 차용했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는 만족하지 않았다. 2012년 총선 직전 박 대통령이 주도한 당명 개정에 가장 강력히 반대했고, ‘충성심과 약속’으로만 똘똘 뭉친 친박의 테두리 안에 자신을 가둬두지 않았다. 
 

한때 친박계 선봉
지금은 짤박 신세
 
그는 비록 원조 친박이지만 소신이 뚜렷하고 직언을 서슴지 않는 스타일로 박 대통령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다. 복지와 분재 강화라는 여권 내에서는 파격적인 개혁 정책들을 피력하면서 점차 친박 주류와 거리가 멀어졌다. 
 
박 대통령도 최근에는 그를 중용하지 않는다. 이후 비판적인 발언이 주목을 받으면서 현재 ‘탈박’으로 분류될 정도로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평가다.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박 대통령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박 전 위원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도울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등의 비판적 목소리를 낸 것도 비슷한 시기다. 또한 그는 사석에서 가끔 이때를 회상하며 “최측근이었지만, 직언을 마다치 않았다”고 말하곤 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광도 잠시, 2012년 최구식 의원 측 비서가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해 디도스 공격을 벌였던 것이 알려졌고, 급기야 5개월 만에 지도부 책임론에 밀려 총사퇴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더욱, 그는 ‘원조 친박’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이어 들어선 박 대통령의 비대위 체제에서 배제되면서 결국 세력권과 멀어졌다. 
 
 
이후 '2차 칩거'에 들어갔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였다. 그는 독특한 색깔의 ‘탈박’이고자 했다. 비박(비박근혜) 성향이 강한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을 규합해 지지그룹을 형성했다는 말도 나왔다. 지난해 7월 전대에선 김무성 대표가 아닌 친박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을 지원하는 파격도 선보였다. 
 
유 원내대표는 이제 새로운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누군가의 참모’ 이미지를 벗고 ‘자기 정치’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벌써부터 그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당·청 관계는 물론 여당 전반의 폭넓은 개혁을 선도할 것이란 기대다. 
 
지난해 10월에는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얼라들’이라며 청와대 비서실 인사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 뒤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으로 ‘문고리 3인방’, ‘십상시’등이 회자되면서 그날의 발언이 다시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른바 ‘K·Y설’로 정윤회씨 문건 유출 배후로 김무성 대표와 함께 거론돼 주목받기도 했다.
 
지난해 9월 ‘거리의 인문학자’로 알려진 최준영 작가가 여·야 대권주자에 대해 짧은 평이 회자가 됐다. 그는 유 원내대표를 “아직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여권의 히든카드”라고 평가했다. 유 원내대표에 대한 이런 우호적인 평가는 입때껏 그가 보여준 상식에 맞는 행보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이후 원내대표로서 어떤 행보를 할지,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한편 유 원내대표의 등장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여전히 전략 등의 부재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야당의 심각한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정기국회 때까지 ‘증세’냐 ‘복지 축소’냐의 결론을 내겠다는 유 원내대표는 그동안 부동산 부양 등 ‘초이노믹스’에 대해 “돈만 날릴 뿐”이라고 비판했다. 김세연·이종훈·민현주 의원 등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 회원들이 이번에 그를 집중 지원한 것도 그의 이 같은 철학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가 국책 싱크탱크에서 정책제언을 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야당에서도 서민 이슈를 선점당할까 봐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19대 총선 때 KDI 연구원 시절 작성한 논문의 중복게재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상대 후보의 과도한 흠집내기란 평가가 우세했다. 
 
유 원내대표는 17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총 26건의 법안 발의를 했다. 경제정책통 정치인에겐 다소 적은 개수다. 전문분야인 경제와 동떨어진 국방위원회에서 간사와 위원장을 역임했다. 최근 인권교육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부수단체의 반발에 못 이겨 철회해 아쉬움을 남겼다. 
 
새누리당 텃밭 대구에 지역구를 두고있을 뿐 아니라 대구 지역을 넘어 TK 맹주로 떠올랐다. 이 지역 의원들의 공천과 당선에 영향력을 미칠 전망이다. 친이, 친박 이후 뚜렷한 계파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 가운데 이른바 ‘유승민계’를 형성해 독자 세력 가능성을 보여준다. 청와대의 관계에 의문부호가 따라붙은 후 김무성 당 대표와 갈등 관계를 해소해 당내 기반을 강화했다.  향후 김 대표와 관계를 어떻게 풀어낼지 관건이다.
 
파격적인 정책들
독자세력 가능성
 
화통한 대구 사나임은 틀림없다.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서 가장 약점으로 지적된 것이 동료 의원들과 친화력이다. 대중적인 이미지 또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공감 요소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재산규모는 2013년 말 기준으로 30억6400만원, 지역구인 대구뿐 아니라 서울 강남과 경기도 분당 일대에 약 14억원 상당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유승민은?]
 
▲1958년 대구 ▲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 위스콘신대 경제학박사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공정거래위원장 자문관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장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 ▲한나라당 박근혜 선거대책위 정책메시지 총괄단장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 2012년 국회 국방위원장 ▲17·18·19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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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