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업계 '크루즈 투자' 노림수

'장례+여행' 묶어 파는 속셈이…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상조업계에서 크루즈 상품 도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장례'와 '여행'이라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한데 묶여 판매 중이다. 그런데 크루즈 상품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상조업체 간 출혈 경쟁과 그에 따른 재정 불균형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결혼은 안 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죽는 건 피할 수 없잖아요. 기업 입장에서는 이만한 장사가 없죠. 우리나라 특유의 보여주기식 장례 문화도 있고요." 지난 2일 한 상조업계 관계자는 상조산업의 전망을 묻자 이 같이 답했다. 상조산업은 한때 블루오션의 상징이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시장은 넓어졌고 업체 입장에선 매월 안정적으로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법망 피하고

그런데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팽창한 상조시장이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사실상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와 국회 등 국가기관은 상조업체에 대한 제제를 강화했다.

지난 2011년 6월 대법원은 '보람장의개발'이란 장례서비스 대행업체를 차려 놓고 보람상조개발㈜ 등 그룹 계열사와 불공정 계약을 통해 돈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모두 301억원을 횡령한 최철홍 보람상조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당시 최 회장은 횡령액을 대부분 변제해 양형을 낮추는 한편 부인인 김미자 보람상조 부회장에게 경영을 맡겨 위기를 극복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공시된 사업자 정보공개를 보면 보람상조는 모두 9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다. 이 가운데 4개 회사를 김 회장이 나머지 5개 회사를 김용섭·오준오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 중이다. 이들 9개 회사의 총 자산은 4383억여원으로 집계됐다.


업계 1위로 알려진 프리드라이프(구 현대종합상조)의 총 자산은 4357억여원이다. 공시에 따르면 보람상조보다 자산규모가 적다. 하지만 부채 규모에서 보람상조와 차이를 보인다. 프리드라이프의 부채 총계는 4356억여원으로 5286억여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보람상조보다 재무건전성에서 앞선다. 단 상조업체의 부채는 상조서비스를 받지 않은 고객의 납입금이 일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선불식할부거래사업자(상조회사) 평균 부채비율이 116%라는 것이다. 자산대비 부채비율은 부채총계를 자산총계로 나눈 값으로 회사 입장에선 이 비율이 낮을 수록 안정적인 기업경영이 가능하다.

그런데 앞서 밝혔듯 상조업체는 고객으로부터 매월 납입금을 받아 이를 장부상 부채로 처리하며 때로는 상조서비스 이외의 용도로 사용한다. 만약 상조회사가 부도를 내거나 폐업한다면 이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최악의 경우엔 납입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이 같은 폐해를 막기 위해 할부거래법은 선불식 할부거래 시 고객이 납입한 돈의 50%를 공제조합에 예치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를 지키지 못한 업체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공정위는 "전국에 등록된 253개의 상조업체 중 24곳이 선수금 법정 보전비율(50%)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상조업체 수는 2011년 300개에서 꾸준한 감소세를 보였다.

너도나도 삼매경…유행처럼 번져
업체 출혈경쟁 책임 소비자 전가
구조조정 과정서 변종 상품 출시

할부거래법 도입과 함께 상조시장은 비자발적 구조조정을 겪었다. 총 가입자 389만명, 총 선수금 3조3600억원에 달하는 이 거대시장은 자본력이 있거나 영업망을 갖춘 업체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상품이 바로 크루즈 여행 패키지다. 프리드라이프, 보람상조는 물론이고 부모사랑상조, 한강라이프 등 대부분의 업체에서 크루즈 상품을 취급하고 있다.

상조업체가 직접 크루즈 선박을 매입해 여행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은 아니다. 크루즈 선박은 건조비만 수천억원에 이르고, 하루 소비되는 유류비만 따져도 수천만원이 넘는다. 상조업체의 크루즈 상품은 사실상 여행사가 취급하는 상품과 동일하다. 대부분의 상조업체는 유명 여행사와 공동으로 크루즈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크루즈 산업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 필요한 면허만 해도 관광업·주류업·숙박업 등 30여개에 이른다. 무엇보다 선상카지노가 허용되지 않아 수익성에 결함이 있다. 최근에야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켜 발전 방향을 논의 중이다. 내수도 크지 않다. 2014년 기준 해외여행객 수는 160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중 크루즈를 이용한 여행객은 1만5000명 안팎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렇다면 상조업체들은 왜 크루즈 시장에 눈을 돌린 것일까. 업계 관계자가 꼽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상조업체가 취급하는 크루즈 상품은 모두 외국 선박을 이용한 해외여행이다. 여행사가 모집해도 될 일이지만 일반 여행사에는 없는 상조업체만의 특징이 있다. 바로 할부거래다.

여행사가 취급하는 상품은 선불제가 압도적으로 많다. 후불제 여행사도 있지만 극소수다. 반면 모든 상조업체는 할부제다. 상조업체가 고가의 크루즈 상품을 중계하면 고객 입장에서 목돈 없이도 여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회사에서 실제 크루즈로 벌어들이는 소득은 5% 안팎이다"며 "신규 상조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업체 간 출혈경쟁은 2000년대 후반부터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공정위는 일명 '퍼주기 마케팅'으로 타사 가입고객을 뺏어온 부모사랑상조에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상조업체의 '덤핑 판매'는 회사 재무는 물론이고 시장 경쟁력을 악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된다.

더불어 어학연수 지원, 줄기세포 보관과 같은 변종 상품은 본업인 상조서비스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크루즈 여행 역시 아직은 전문 노하우를 갖춘 기업이 드물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둘째, 할부거래법의 맹점과 관련이 있다. 기존 할부거래법은 '장례 또는 혼례를 위한 용역 및 이에 부수한 재화'를 제공하는 회사와 그 서비스를 규제토록 돼 있다. 장례나 혼례에 속하지 않는 크루즈 여행은 법률 적용에 애매한 지점이 있다. 때문에 일부 업체는 크루즈 상품을 끼워 팔아 납입된 돈을 공제조합에 예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측은 "법률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확인했다.

상조업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해약이다. 대다수 업체는 환급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크루즈 상품으로 가입된 고객은 법률에 규정된 수준의 환급금을 약속받기 어렵다. 기존 상조 상품에서도 계약해지 및 환급금 관련 피해가 증가세인 것을 감안하면 회원들의 권익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장밋빛 홍보

업계 관계자는 "상조시장이 구조조정을 겪으면서도 회원을 유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명단을 양도·양수하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며 "크루즈 상품도 중도해약이 가능한지, 업체가 합병돼 상품이 없어졌을 시 환급이 가능한지에 대해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크루즈 산업 육성 방안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크루즈 패키지. 각 상조 업체들은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 업계에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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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