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MB 자원외교 조작 결정적 증거 공개

1조4000억 인수한 정유사 계약 직전 알맹이 팔렸다

[일요시사 경제팀] 윤병효 기자 = MB 자원외교가 엉터리라는 결정적 증거가 나왔다. 한국석유공사가 캐나다 정유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돈만 날린 게 아니라 철저하게 농락까지 당한 사실이 본지를 통해 확인됐다. 캐나다 정유사는 석유공사로 인수되기 직전에 핵심분야라 할 수 있는 원유공급과 기름판매의 독점권을 미리 빼돌려 알맹이는 제3자에게 팔아먹고 석유공사에는 부채뿐인 껍데기만 매각한 것이다. 당시 자원외교를 총괄 지시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정조사 출석에 대해 “구름같은 얘기”라고 둘러댔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자원외교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야권의 출석 요구 압박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9년 10월 21일 한국석유공사는 캐나다 석유기업 ‘하베스트에너지 트러스트’를 39억5000만달러(당시 한화 4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초 석유공사는 하베스트의 석유개발 부문만 인수하려 했으나 하베스트의 요구로 자회사인 NARL 정유사까지 인수하게 됐다. 석유공사가 NARL의 인수금으로 책정한 금액은 1조3700억원. 
 
껍데기 회사 인수
 
석유공사는 NARL 인수에 앞서 자문사인 메릴린치에 경제성평가를 의뢰했다. 하지만 메릴린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일. 메릴린치는 하베스트가 건내 준 회계장부만 살펴보고 ‘수익성 밝음’으로 보고했다.
그러나 메릴린치 평가와는 반대로 NARL이 계속해서 적자가 발생하자 결국 석유공사는 4년 10개월 만인 지난해 8월 329억원에 미국회사로 매각했다.
 
이로 인해 석유공사가 입은 손해액만 1조3370억원이며, 그동안 지출한 운영비와 이자비까지 더하면 총 2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는 모두 국가예산으로 충당된 금액으로, MB정권에서 벌어진 부실 자원외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여기까지는 감사원 발표로 공개된 사실이다. 그런데 본지가 좀 더 세밀하게 취재한 결과 M&A 과정에서 석유공사가 하베스트 경영진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석유공사가 NARL을 인수한 시점은 2009년 10월 21일. 이로부터 9일전인 10월 12일에 하베스트는 비톨(Vitol)이라는 다국적 에너지물류기업과 NARL의 원유공급 및 기름판매에 관한 독점권을 부여하는 SOA(Supply and Offtake Agreement)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석유공사 캐나다 석유기업 인수
나중에 알고 보니 ‘기름판매권’ 없어 
 
계약에 따르면 NARL에 원유공급을 할 수 있는 곳은 비톨뿐이고, NARL이 생산한 기름의 해외판매도 오로지 비톨만이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더구나 양사간 계약기간은 2년이며, 만료되면 2년을 자동연장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어 사실상 계약기간은 4년으로 설정됐다.
 
실제로 석유공사 확인 결과 NARL이 생산한 기름 중 10%는 정유사가 위치한 캐나다 지역에 공급하고 나머지 90% 해외판매량은 모두 비톨이 수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비톨은 2009년 11월 1일부터 2013년 10월 31일까지 4년의 계약기간을 모두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약으로 인해 석유공사는 NARL의 오너기업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로 기름 한 방울 가져올 수 없는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정유사의 핵심분야인 원유수급, 정제, 제품판매 가운데 원유수급과 제품판매 권한을 비톨이 가져 갖고, 정제는 석유공사의 비전문 분야임에 따라 사실상 석유공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석유공사는 철저하게 하베스트 경영진들에게 농락당한 격이다.
 
당초 석유공사는 하베스트의 석유개발 부문만 인수하려고 했다. 석유공사 경영진은 50여일간 하베스트 경영진과 만나 협상을 벌였다. 그런데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갑자기 하베스트 경영진이 어깃장을 놨다. 다짜고짜 석유공사에 NARL 정유사까지 인수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협상을 파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석유공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해외 석유기업 M&A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지만 번번이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기업에 뺏기던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석유공사의 추진력을 문제 삼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은 공개석상마다 최대한 빨리 M&A를 성사시키겠다고 밝히고 다녔다. 그리고 이는 외신을 통해 세계 곳곳에 그대로 전달돼 M&A에 조급해 하는 석유공사의 상황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 
 
M&A라는 게임판에서 석유공사는 모든 패를 드러낸채 게임에 임했던 것이다. 하베스트는 석유공사의 다급함을 읽고 협상 막판에 NARL을 끼워넣는 강수를 두었고, 하베스트 인수를 무산시킬 수 없었던 석유공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NARL을 인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타 회사로 매각 모르고 ‘사인’
엉터리 자문하고 수수료 날려
 
석유공사가 NARL과 비톨간의 계약 내용을 파악한 것은 하베스트 인수를 확정한 후의 일이다. 이와 관련해 석유공사 관계자는 “날에 대한 실사기간이 4일밖에 되지 않아 그에 앞서 체결된 비톨과의 계약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석유공사는 전적으로 실수를 인정하고 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국민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조3700억원의 국가예산이 투여되는 해외거래가 이처럼 허술하게 진행됐다는 것은 MB의 자원외교가 근본도 없이 허세 속에서 진행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수백억원의 자문료를 챙기고 석유공사에 엉터리 자문을 한 메릴린치도 책임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메릴린치는 석유공사에 4건의 M&A 자문을 하면서 총 248억원의 자문료를 챙겼다. 하지만 자문한 사업 대부분이 적자 상태이고 엉터리 계약 내용까지 밝혀지면서 메릴린치의 부실 자문에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메릴린치가 자문사로 선정될 당시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은 MB의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비서관의 아들인 김형준 씨로 밝혀져 특혜 의혹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의혹 밝혀지나
 
이러한 가운데 여야는 오는 4월 6일까지 100일간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증인출석 대상을 놓고서는 아직까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야권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의 출석을 요구 중이고, 여권은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증인으로 채택되면 출석하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름 같은 얘기다. 추정해서 말하면 안된다”며 야권의 요구를 일축했고, 최경환 부총리는 “자원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자원빈국이 손놓고 있으면 되겠냐”며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ybh@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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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