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MB 자원외교 조작 결정적 증거 공개

1조4000억 인수한 정유사 계약 직전 알맹이 팔렸다

[일요시사 경제팀] 윤병효 기자 = MB 자원외교가 엉터리라는 결정적 증거가 나왔다. 한국석유공사가 캐나다 정유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돈만 날린 게 아니라 철저하게 농락까지 당한 사실이 본지를 통해 확인됐다. 캐나다 정유사는 석유공사로 인수되기 직전에 핵심분야라 할 수 있는 원유공급과 기름판매의 독점권을 미리 빼돌려 알맹이는 제3자에게 팔아먹고 석유공사에는 부채뿐인 껍데기만 매각한 것이다. 당시 자원외교를 총괄 지시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정조사 출석에 대해 “구름같은 얘기”라고 둘러댔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자원외교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야권의 출석 요구 압박은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9년 10월 21일 한국석유공사는 캐나다 석유기업 ‘하베스트에너지 트러스트’를 39억5000만달러(당시 한화 4조7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초 석유공사는 하베스트의 석유개발 부문만 인수하려 했으나 하베스트의 요구로 자회사인 NARL 정유사까지 인수하게 됐다. 석유공사가 NARL의 인수금으로 책정한 금액은 1조3700억원. 
 
껍데기 회사 인수
 
석유공사는 NARL 인수에 앞서 자문사인 메릴린치에 경제성평가를 의뢰했다. 하지만 메릴린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일. 메릴린치는 하베스트가 건내 준 회계장부만 살펴보고 ‘수익성 밝음’으로 보고했다.
그러나 메릴린치 평가와는 반대로 NARL이 계속해서 적자가 발생하자 결국 석유공사는 4년 10개월 만인 지난해 8월 329억원에 미국회사로 매각했다.
 
이로 인해 석유공사가 입은 손해액만 1조3370억원이며, 그동안 지출한 운영비와 이자비까지 더하면 총 2조원이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는 모두 국가예산으로 충당된 금액으로, MB정권에서 벌어진 부실 자원외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여기까지는 감사원 발표로 공개된 사실이다. 그런데 본지가 좀 더 세밀하게 취재한 결과 M&A 과정에서 석유공사가 하베스트 경영진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한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 석유공사가 NARL을 인수한 시점은 2009년 10월 21일. 이로부터 9일전인 10월 12일에 하베스트는 비톨(Vitol)이라는 다국적 에너지물류기업과 NARL의 원유공급 및 기름판매에 관한 독점권을 부여하는 SOA(Supply and Offtake Agreement)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석유공사 캐나다 석유기업 인수
나중에 알고 보니 ‘기름판매권’ 없어 
 
계약에 따르면 NARL에 원유공급을 할 수 있는 곳은 비톨뿐이고, NARL이 생산한 기름의 해외판매도 오로지 비톨만이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더구나 양사간 계약기간은 2년이며, 만료되면 2년을 자동연장할 수 있도록 명시돼 있어 사실상 계약기간은 4년으로 설정됐다.
 
실제로 석유공사 확인 결과 NARL이 생산한 기름 중 10%는 정유사가 위치한 캐나다 지역에 공급하고 나머지 90% 해외판매량은 모두 비톨이 수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비톨은 2009년 11월 1일부터 2013년 10월 31일까지 4년의 계약기간을 모두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약으로 인해 석유공사는 NARL의 오너기업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로 기름 한 방울 가져올 수 없는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정유사의 핵심분야인 원유수급, 정제, 제품판매 가운데 원유수급과 제품판매 권한을 비톨이 가져 갖고, 정제는 석유공사의 비전문 분야임에 따라 사실상 석유공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석유공사는 철저하게 하베스트 경영진들에게 농락당한 격이다.
 
당초 석유공사는 하베스트의 석유개발 부문만 인수하려고 했다. 석유공사 경영진은 50여일간 하베스트 경영진과 만나 협상을 벌였다. 그런데 협상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갑자기 하베스트 경영진이 어깃장을 놨다. 다짜고짜 석유공사에 NARL 정유사까지 인수할 것을 요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협상을 파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석유공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해외 석유기업 M&A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지만 번번이 자금력을 앞세운 중국기업에 뺏기던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석유공사의 추진력을 문제 삼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은 공개석상마다 최대한 빨리 M&A를 성사시키겠다고 밝히고 다녔다. 그리고 이는 외신을 통해 세계 곳곳에 그대로 전달돼 M&A에 조급해 하는 석유공사의 상황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 
 
M&A라는 게임판에서 석유공사는 모든 패를 드러낸채 게임에 임했던 것이다. 하베스트는 석유공사의 다급함을 읽고 협상 막판에 NARL을 끼워넣는 강수를 두었고, 하베스트 인수를 무산시킬 수 없었던 석유공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NARL을 인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타 회사로 매각 모르고 ‘사인’
엉터리 자문하고 수수료 날려
 
석유공사가 NARL과 비톨간의 계약 내용을 파악한 것은 하베스트 인수를 확정한 후의 일이다. 이와 관련해 석유공사 관계자는 “날에 대한 실사기간이 4일밖에 되지 않아 그에 앞서 체결된 비톨과의 계약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고 털어 놓았다. 석유공사는 전적으로 실수를 인정하고 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국민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조3700억원의 국가예산이 투여되는 해외거래가 이처럼 허술하게 진행됐다는 것은 MB의 자원외교가 근본도 없이 허세 속에서 진행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수백억원의 자문료를 챙기고 석유공사에 엉터리 자문을 한 메릴린치도 책임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메릴린치는 석유공사에 4건의 M&A 자문을 하면서 총 248억원의 자문료를 챙겼다. 하지만 자문한 사업 대부분이 적자 상태이고 엉터리 계약 내용까지 밝혀지면서 메릴린치의 부실 자문에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메릴린치가 자문사로 선정될 당시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은 MB의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 전 청와대 비서관의 아들인 김형준 씨로 밝혀져 특혜 의혹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의혹 밝혀지나
 
이러한 가운데 여야는 오는 4월 6일까지 100일간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증인출석 대상을 놓고서는 아직까지 이견을 보이고 있다. 야권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최경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의 출석을 요구 중이고, 여권은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증인으로 채택되면 출석하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름 같은 얘기다. 추정해서 말하면 안된다”며 야권의 요구를 일축했고, 최경환 부총리는 “자원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자원빈국이 손놓고 있으면 되겠냐”며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ybh@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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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