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피순대와 개운한 국물로 꽁꽁 언 몸 녹여요

전국 겨울 별미 특집 ⑤순창시장 순대골목

순창읍 재래시장 골목에는 순댓집이 여러 군데다. 2대째 한다고 ‘2대째순대’, 대를 이어 연달아 해서 ‘연다라전통순대’, 먹어봉깨(보니) 맛있더라 해서 ‘봉깨순대’…. 상호도 투박하니 정감이 넘친다. 터미널 맞은편에 연다라전통순대가 보이고 그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2대째순대, 봉깨순대 등이 연이어 나온다. 골목 안팎으로 예닐곱 집이 성업 중이다.

인조 껍질, 찹쌀, 당면 NO
돼지 창자, 선지, 야채 YES

순창 순대는 인조 껍질, 찹쌀, 당면을 쓰지 않는다. 여러 번 깨끗이 씻은 돼지 창자에 선지와 콩나물, 마늘, 양파, 당근 등을 넣어 순대를 채운다. 선지를 넣는다 하여 피순대다. 팔팔 끓는 물에 삶은 순대는 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다. 순대 껍질은 쫄깃하고 선지는 고소하다. 채소가 적당히 씹는 맛과 선지의 고소함을 더해준다.
순대만 먹어도 좋고, 개운한 국물을 넣고 끓인 순댓국도 좋다. 콩나물이 들어가 느끼하지 않고 해장국처럼 개운하다. 여러 명이라면 순대에 머리 고기, 채소까지 푸짐하게 올린 순대전골이 어울린다.

전국 각지 손님 위해
다양한 양념 준비

상차림은 투박하다. 깍두기와 갓김치, 배추김치가 한 접시, 부추겉절이가 한 접시, 양파와 풋고추, 나머지는 양념이다. 전국에서 손님이 오다 보니 양념도 초장, 된장, 양념 소금, 새우젓 등 다양하다. 참기름에 후춧가루와 소금으로 무친 부추겉절이가 입에 착 붙는다.
질긴 껍질만 떼고 주면 아이들도 피순대를 잘 먹는다. 피순대는 예부터 선조들이 마을 잔치나 큰 일이 있을 때 돼지를 잡아 해 먹던 요리다. 저지방 저칼로리 음식으로 단백질과 비타민, 철분, 섬유질이 풍부해 어린이나 여성, 임산부에게 최고 영양식이라고 한다. 

장터의 순댓집은 매일 문을 열지만, 장날이나 주말에 특히 붐빈다. 인근의 광주는 물론 수도권, 부산 등지에서도 찾는다. 순창 장날(끝 자리 1·6일)에는 시장 앞 터미널까지 들어와서 세워주는 군내버스에서 내린 노인들이 길 건너 시장 골목으로 들어선다. 몇 명은 어물전으로, 몇 명은 뻥튀기 쪽으로, 몇 명은 그저 구경 온 듯 시장통을 오간다.
제각각 장보기를 마치고 한군데서 만나니 바로 순댓집이다. 장보고 먹는 순댓국 한 뚝배기가 어르신들 보양식이다. 요즘처럼 꽁꽁 얼어붙는 날씨엔 순댓국으로 장보기를 시작하기도 한다. 뚝배기에 펄펄 끓인 순댓국 한 그릇이면 언 몸이 절로 녹으면서 뱃속까지 따뜻해진다. 값이 저렴해 돈벌이 없는 농한기 시골 어르신이 한 끼 식사하기에도 부담 없다.


어린이·여성·임산부에 최고 영양식
안 사고 못 배기는 구수한 청국장

순창시장은 제법 규모가 큰데도 겨울이라 그런지 장 보러 나온 이는 많지 않다. 설날 같은 대목장이라야 장 분위기가 산다고. 장터에서 그나마 붐비는 곳은 뻥튀기 집이다. 멥쌀, 현미, 가래떡을 튀기기도 하고, 검은콩이나 옥수수도 단골 메뉴다. 요즘 새롭게 등장한 것은 말린 돼지감자. 집에서 잘 말린 돼지감자를 튀겨서 끓여 마시면 보리차보다 구수하단다. 손님이 많지 않아도 구수한 시골 장터 인심은 그대로다. 

순창의 겨울을 제대로 느끼려면 강천산을 걸어야 한다. 겨우내 눈에 쌓여 하얗게 빛나는 강천산은 곳곳에 폭포가 쏟아지고, 계곡 위에 걸린 구름다리까지 볼거리가 많다. 매표소를 지나 현수교(구름다리)에 다녀오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길이 평탄해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만하다. 폭포수가 떨어지다 빙벽을 이루고, 차가운 계곡 위로 드리운 나뭇가지에서 눈덩이가 툭툭 떨어진다.
아담한 강천사도 잠시 들러보자. 강천산의 명물 현수교를 건너려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현수교에 올라서니 눈 덮인 강천산이 그려낸 겨울 산수화가 눈부시다.

장류 체험하고
고추장 받아가세요~

고추장을 만들고 장을 활용한 요리 체험도 해볼 수 있는 순창장류체험관은 아이들 손잡고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보통 3~4가지 체험이 패키지로 진행된다. 먼저 고추장 소스를 발라 피자를 만들고, 체험관 마당으로 나가 금방 튀긴 뻥튀기를 맛본다. 쿵덕쿵덕 떡메를 쳐서 인절미를 만들고, 준비된 고추장 재료를 잘 섞으면 체험 완료.
체험이 끝나고 고추장 500g 한 통을 가져갈 수 있다. 고추장은 6개월 이상 발효해야 하는데, 집에서는 맛있게 발효하기 힘들다. 체험객이 만든 고추장은 전문 업체에 맡겨 발효하고, 체험객에게는 잘 발효되어 바로 먹을 수 있는 고추장을 준다.
고추장 체험을 한 뒤에는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을 둘러볼 차례. 가문의 비법대로 장을 빚어온 고추장 명인들이 저마다 손맛을 자랑한다. 한옥 마당에 들어찬 항아리며, 처마에 매단 메주가 보기 좋다. 판매장은 대부분 시식할 수 있게 해두었다. 구수한 청국장에 짭짤한 장아찌, 감칠맛 나는 고추장과 된장 등은 한번 맛보면 사지 않고 못 배긴다.
지금은 고추장 체험을 위해 순창장류체험관을 주로 찾지만, 순창 고추장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곳은 따로 있다. 구림면 회문산 자락에 있는 만일사가 바로 그곳.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자 1만 일 동안 기도했다는 절이다. 무학대사를 찾아가던 이성계가 순창 어느 농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해 진상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만일사 대웅전 옆에는 순창 고추장 시원지 전시관이 있다.
만일사가 자리한 회문산은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가 남은 곳이다. 자유와 저항, 투쟁을 외치던 남부군 사령부가 있었으나, 결국 국군의 추격에 쫓겨 지리산과 덕유산으로 흩어졌다가 목숨을 잃었다. 깊은 계곡에 자리한 회문산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숲에 포근히 안긴 형태다. 회문산 등반을 하기에도, 고즈넉한 겨울 풍광에 취하기에도 좋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오일장 탐방 : 순창시장 순대골목→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강천산→만일사
눈꽃 트레킹 : 강천산→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회문산자연휴양림→순창시장 순대골목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순창시장 순대골목→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강천산→회문산자연휴양림
둘째 날 : 만일사→장군목유원지→훈몽재 유지→전라북도산림박물관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순창군 문화관광 http://tour.sunchang.go.kr
· 순창장류체험관 www.janghada.com
· 회문산자연휴양림 www.huyang.go.kr

문의 전화
· 순창군청 문화관광과 063-650-1612
· 순창군 종합관광안내소 063-652-2378
· 순창장류체험관 063-650-5432
·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 063-653-0277
· 강천산 군립공원 관리사무소 063-650-1672
· 회문산자연휴양림 063-653-4779
· 만일사 063-653-5283

대중교통 정보
서울-순창 :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5회(09:30~16:10) 운행, 3시간 30분 소요.
광주-순창 :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하루 45회(05:50~22:20) 운행, 1시간 소요.
* 문의 :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 이지티켓 www.hticket.co.kr
· 광주종합버스터미널 062-360-8114, www.usquare.co.kr

자가운전 정보
호남고속도로 전주 IC→27번 국도→순창고교교차로에서 남원·순창 IC 방면 좌회전→관서삼거리 우회전→순창8길→남계로→순창시장 주차장

숙박 정보
· S모텔 : 순창읍 옥천로, 063-653-3960 (굿스테이)
· 영빈장모텔 : 순창읍 순창로, 063-653-6060 (굿스테이)
· 회문산자연휴양림 : 구림면 안심길, 063-653-4779, www.huyang.go.kr

식당 정보
· 2대째순대 : 전통 순대, 순창읍 남계로, 063-653-0456
· 연다라전통순대 : 전통 순대, 순창읍 남계로, 063-653-3432
· 봉깨순대 : 전통 순대, 순창읍 남계로, 063-653-2789
· 강천풍경식당 : 산채비빔밥, 팔덕면 강천산길, 063-652-2620

주변 볼거리
장군목유원지, 훈몽재 유지, 향가리유원지, 전라북도산림박물관, 예향천리 마실길 등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