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피순대와 개운한 국물로 꽁꽁 언 몸 녹여요

전국 겨울 별미 특집 ⑤순창시장 순대골목

순창읍 재래시장 골목에는 순댓집이 여러 군데다. 2대째 한다고 ‘2대째순대’, 대를 이어 연달아 해서 ‘연다라전통순대’, 먹어봉깨(보니) 맛있더라 해서 ‘봉깨순대’…. 상호도 투박하니 정감이 넘친다. 터미널 맞은편에 연다라전통순대가 보이고 그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2대째순대, 봉깨순대 등이 연이어 나온다. 골목 안팎으로 예닐곱 집이 성업 중이다.

인조 껍질, 찹쌀, 당면 NO
돼지 창자, 선지, 야채 YES

순창 순대는 인조 껍질, 찹쌀, 당면을 쓰지 않는다. 여러 번 깨끗이 씻은 돼지 창자에 선지와 콩나물, 마늘, 양파, 당근 등을 넣어 순대를 채운다. 선지를 넣는다 하여 피순대다. 팔팔 끓는 물에 삶은 순대는 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다. 순대 껍질은 쫄깃하고 선지는 고소하다. 채소가 적당히 씹는 맛과 선지의 고소함을 더해준다.
순대만 먹어도 좋고, 개운한 국물을 넣고 끓인 순댓국도 좋다. 콩나물이 들어가 느끼하지 않고 해장국처럼 개운하다. 여러 명이라면 순대에 머리 고기, 채소까지 푸짐하게 올린 순대전골이 어울린다.

전국 각지 손님 위해
다양한 양념 준비

상차림은 투박하다. 깍두기와 갓김치, 배추김치가 한 접시, 부추겉절이가 한 접시, 양파와 풋고추, 나머지는 양념이다. 전국에서 손님이 오다 보니 양념도 초장, 된장, 양념 소금, 새우젓 등 다양하다. 참기름에 후춧가루와 소금으로 무친 부추겉절이가 입에 착 붙는다.
질긴 껍질만 떼고 주면 아이들도 피순대를 잘 먹는다. 피순대는 예부터 선조들이 마을 잔치나 큰 일이 있을 때 돼지를 잡아 해 먹던 요리다. 저지방 저칼로리 음식으로 단백질과 비타민, 철분, 섬유질이 풍부해 어린이나 여성, 임산부에게 최고 영양식이라고 한다. 

장터의 순댓집은 매일 문을 열지만, 장날이나 주말에 특히 붐빈다. 인근의 광주는 물론 수도권, 부산 등지에서도 찾는다. 순창 장날(끝 자리 1·6일)에는 시장 앞 터미널까지 들어와서 세워주는 군내버스에서 내린 노인들이 길 건너 시장 골목으로 들어선다. 몇 명은 어물전으로, 몇 명은 뻥튀기 쪽으로, 몇 명은 그저 구경 온 듯 시장통을 오간다.
제각각 장보기를 마치고 한군데서 만나니 바로 순댓집이다. 장보고 먹는 순댓국 한 뚝배기가 어르신들 보양식이다. 요즘처럼 꽁꽁 얼어붙는 날씨엔 순댓국으로 장보기를 시작하기도 한다. 뚝배기에 펄펄 끓인 순댓국 한 그릇이면 언 몸이 절로 녹으면서 뱃속까지 따뜻해진다. 값이 저렴해 돈벌이 없는 농한기 시골 어르신이 한 끼 식사하기에도 부담 없다.


어린이·여성·임산부에 최고 영양식
안 사고 못 배기는 구수한 청국장

순창시장은 제법 규모가 큰데도 겨울이라 그런지 장 보러 나온 이는 많지 않다. 설날 같은 대목장이라야 장 분위기가 산다고. 장터에서 그나마 붐비는 곳은 뻥튀기 집이다. 멥쌀, 현미, 가래떡을 튀기기도 하고, 검은콩이나 옥수수도 단골 메뉴다. 요즘 새롭게 등장한 것은 말린 돼지감자. 집에서 잘 말린 돼지감자를 튀겨서 끓여 마시면 보리차보다 구수하단다. 손님이 많지 않아도 구수한 시골 장터 인심은 그대로다. 

순창의 겨울을 제대로 느끼려면 강천산을 걸어야 한다. 겨우내 눈에 쌓여 하얗게 빛나는 강천산은 곳곳에 폭포가 쏟아지고, 계곡 위에 걸린 구름다리까지 볼거리가 많다. 매표소를 지나 현수교(구름다리)에 다녀오는 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길이 평탄해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만하다. 폭포수가 떨어지다 빙벽을 이루고, 차가운 계곡 위로 드리운 나뭇가지에서 눈덩이가 툭툭 떨어진다.
아담한 강천사도 잠시 들러보자. 강천산의 명물 현수교를 건너려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현수교에 올라서니 눈 덮인 강천산이 그려낸 겨울 산수화가 눈부시다.

장류 체험하고
고추장 받아가세요~

고추장을 만들고 장을 활용한 요리 체험도 해볼 수 있는 순창장류체험관은 아이들 손잡고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보통 3~4가지 체험이 패키지로 진행된다. 먼저 고추장 소스를 발라 피자를 만들고, 체험관 마당으로 나가 금방 튀긴 뻥튀기를 맛본다. 쿵덕쿵덕 떡메를 쳐서 인절미를 만들고, 준비된 고추장 재료를 잘 섞으면 체험 완료.
체험이 끝나고 고추장 500g 한 통을 가져갈 수 있다. 고추장은 6개월 이상 발효해야 하는데, 집에서는 맛있게 발효하기 힘들다. 체험객이 만든 고추장은 전문 업체에 맡겨 발효하고, 체험객에게는 잘 발효되어 바로 먹을 수 있는 고추장을 준다.
고추장 체험을 한 뒤에는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을 둘러볼 차례. 가문의 비법대로 장을 빚어온 고추장 명인들이 저마다 손맛을 자랑한다. 한옥 마당에 들어찬 항아리며, 처마에 매단 메주가 보기 좋다. 판매장은 대부분 시식할 수 있게 해두었다. 구수한 청국장에 짭짤한 장아찌, 감칠맛 나는 고추장과 된장 등은 한번 맛보면 사지 않고 못 배긴다.
지금은 고추장 체험을 위해 순창장류체험관을 주로 찾지만, 순창 고추장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곳은 따로 있다. 구림면 회문산 자락에 있는 만일사가 바로 그곳.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자 1만 일 동안 기도했다는 절이다. 무학대사를 찾아가던 이성계가 순창 어느 농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해 진상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만일사 대웅전 옆에는 순창 고추장 시원지 전시관이 있다.
만일사가 자리한 회문산은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가 남은 곳이다. 자유와 저항, 투쟁을 외치던 남부군 사령부가 있었으나, 결국 국군의 추격에 쫓겨 지리산과 덕유산으로 흩어졌다가 목숨을 잃었다. 깊은 계곡에 자리한 회문산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숲에 포근히 안긴 형태다. 회문산 등반을 하기에도, 고즈넉한 겨울 풍광에 취하기에도 좋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오일장 탐방 : 순창시장 순대골목→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강천산→만일사
눈꽃 트레킹 : 강천산→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회문산자연휴양림→순창시장 순대골목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순창시장 순대골목→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강천산→회문산자연휴양림
둘째 날 : 만일사→장군목유원지→훈몽재 유지→전라북도산림박물관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순창군 문화관광 http://tour.sunchang.go.kr
· 순창장류체험관 www.janghada.com
· 회문산자연휴양림 www.huyang.go.kr

문의 전화
· 순창군청 문화관광과 063-650-1612
· 순창군 종합관광안내소 063-652-2378
· 순창장류체험관 063-650-5432
·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 063-653-0277
· 강천산 군립공원 관리사무소 063-650-1672
· 회문산자연휴양림 063-653-4779
· 만일사 063-653-5283

대중교통 정보
서울-순창 :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5회(09:30~16:10) 운행, 3시간 30분 소요.
광주-순창 :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하루 45회(05:50~22:20) 운행, 1시간 소요.
* 문의 :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 이지티켓 www.hticket.co.kr
· 광주종합버스터미널 062-360-8114, www.usquare.co.kr

자가운전 정보
호남고속도로 전주 IC→27번 국도→순창고교교차로에서 남원·순창 IC 방면 좌회전→관서삼거리 우회전→순창8길→남계로→순창시장 주차장

숙박 정보
· S모텔 : 순창읍 옥천로, 063-653-3960 (굿스테이)
· 영빈장모텔 : 순창읍 순창로, 063-653-6060 (굿스테이)
· 회문산자연휴양림 : 구림면 안심길, 063-653-4779, www.huyang.go.kr

식당 정보
· 2대째순대 : 전통 순대, 순창읍 남계로, 063-653-0456
· 연다라전통순대 : 전통 순대, 순창읍 남계로, 063-653-3432
· 봉깨순대 : 전통 순대, 순창읍 남계로, 063-653-2789
· 강천풍경식당 : 산채비빔밥, 팔덕면 강천산길, 063-652-2620

주변 볼거리
장군목유원지, 훈몽재 유지, 향가리유원지, 전라북도산림박물관, 예향천리 마실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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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