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상시' 국정농단 민낯 드러낸 '김무성 수첩' 파문

음종환 뒤에 검은 그림자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민감한 내용을 담은 수첩 메모가 카메라에 포착되며 불거진 이른바 '수첩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 행정관이 집권여당의 대표와 중진의원을 '정윤회 문건 파동'의 배후로 지목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겼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검찰이 애써 덮은 '십상시 국정농단 의혹'이 재점화되는 것은 물론 가뜩이나 살얼음판을 걷던 당·청관계에도 치명적 악재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윤회) 문건 파동 배후는 K, Y. 내가 꼭 밝힌다. 두고 봐라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적힌 수첩을 보는 모습이 한 인터넷 매체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곧바로 K는 김 대표, Y는 같은 당 유승민 의원이고 이 발언을 한 인사는 음종환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2급)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음 전 행정관은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작성한 '정윤회 문건'에서 십상시 멤버로 거론됐던 인사다. 청와대·검찰이 "정윤회 문건은 허위"라고 공표한 상황에서 일개 행정관이 집권여당의 대표와 중진의원을 저격하려고 했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 내부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십상시 행정관
K·Y배후설 주장

우선 음 전 행정관의 발언이 언론에 공개된 과정부터 살펴보자. 지난달 18일 음 전 행정관과 이동빈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 신용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위원장, 손수조 부산 사상구 당협위원장,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등이 참석한 술자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음 전 행정관이 "(정윤회) 문건 파동의 배후는 김 대표와 유 의원이다"라고 말한 것을 이 전 비대위원이 지난 6일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의 결혼식 뒤풀이 자리에서 김 대표와 유 의원을 비롯한 전·현직 새누리당 의원 12명에게 공개했다.


김 대표는 이 전 비대위원이 전한 얘기가 가볍지 않다고 여겨 'K(김무성)·Y(유승민)' 이니셜로 수첩에 메모해 뒀다. 그리고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 대표가 수첩을 뒤적이는 과정에서 한 언론사의 카메라에 관련 메모가 포착됐다.

검찰서 애써 덮은 '십상시' 또 불쑥
일개 행정관이 집권여당 대표 저격?

김 대표는 이 전 비대위원이 전한 얘기를 들었을 당시 크게 격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함께 있던 인사들에 따르면 김 대표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것들이 미쳤나" "청와대 애들 가만히 안 놔두겠다" 등의 발언을 내뱉을 정도로 분개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김 대표와 유 의원은 음 전 행정관의 발언을 전해들은 직후 각각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과 안봉근 청와대 제2부속실 비서관에게 항의 및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 청와대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는 불투명하다. 해당 사실이 언론에 알려진 13일까지 청와대는 발언을 직접 듣고 김 대표와 유 의원 등에게 전한 이 전 비대위원에게 사실관계를 단 한 차례도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와 유 의원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음 전 행정관에 대한 별다른 조치 없이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이 전 비대위원으로부터 전해 듣고 메모한 것을 본회의장에서 꺼낸 것이 청와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일부러 본회의장 뒤편에 자리 잡은 사진기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유도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음해다. 의도적으로 사진 찍히기 위해서 그런 것(수첩을 펼쳐 보인 것)이 아니다"라고 강력히 부인했다. 김 대표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의 수첩 메모가 언론에 포착돼 논란이 커지자 지난 14일 김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당과 청와대는 한몸으로 공동운명체"라며 확전을 자제할 뜻을 내비쳤다. 이에 청와대가 음 행정관을 면직 처리하며 화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일개 청와대 행정관의 술자리 발언에 대해 정면으로 문제 삼은 것은 '격'이 맞지 않아서이지 속내는 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김 대표가 아무리 화가 난다고 해도 행정관과 붙으면 모양새가 우습지 않겠느냐"며 "결과적으로 (언론에 알려졌으니) 청와대에 경고를 준 셈"이라고 말했다.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유 의원은 오는 5월로 예정된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앞두고 친박계와 각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성급한 봉합
"또 터질라"

그러나 음 전 행정관과 그의 발언을 전한 이 전 비대위원 간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당·청이 서둘러 봉합하려는 모습으로 비춰지면서 조만간 상처난 부위가 또 터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박 대통령의 힘이 빠지고, 계파 갈등이 고조되면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겠냐는 것.

김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김성태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수평적이고 건강한 당·청관계를 위해서는 청와대 비서진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시급하다"며 "청와대 사람들이 김 대표를 계속 삐딱하게 쳐다본다면 '참는다, 참는다' 인내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음 전 행정관은 이 전 비대위원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김 대표와 유 의원을 문건 파동의 배후로 지목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김 대표와 유 의원을 언급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문건 유출) 배후다. 조 전 비서관은 김 대표와 유 의원에게 줄을 대 배지를 달려는 야심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이 전 비대위원은 "당시 술자리에서 음 전 행정관 등은 3~4시간째 술을 마셨다. 나 혼자 제일 늦게 도착해 술에 취하지 않았고 언쟁이 길게 오갈 정도였기 때문에 관련 발언을 오해했다는 것은 잊을 수 없다"며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서로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나 문자메시지 전체를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진실공방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청와대 기강 해이 도 넘어
정권 비판인사 불법사찰도?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의혹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이 전 비대위원은 "내가 방송에서 했던 발언들을 음 전 행정관이 비판하면서 '출연을 못하게 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며 "내가 전혀 만난 적이 없는 여성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누구누구를 만나고 있지 않으냐'며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이 전 비대위원이 각종 방송에 출연해 박근혜정부의 실정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던 터에 나온 이러한 음 전 행정관의 발언은 청와대의 불법사찰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대표와 유 의원을 문건 파동의 배후로 지목한 음 전 행정관의 발언이 단순한 개인의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음 전 행정관이 문고리 권력 3인방(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과 가까운 만큼 이들도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음 전 행정관의 인식이 청와대 비서진의 일반적인 인식이 아니냐는 우려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음 전 행정관이 관련 발언을 한 다음 날 박 대통령이 친박 중진의원들만 따로 불러 만찬을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와대 운영
십상시 주도?

이에 대해 이상돈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실제로 굴러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현 청와대의 민낯을 다 보여줬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김무성 수첩 파문'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핵심관계자는 "음 전 행정관 한 사람 자른다고 덮을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라며 "십상시의 국정농단이 실제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만큼, 국정정상화를 위해 청와대의 일대쇄신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사찰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는 마당에 일개 행정관이 한 짓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며 "진상 규명을 위해선 특검 밖에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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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