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아하고 동양적인 매력을 지닌 배우 한지혜가 이준익 감독의 신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으로 <허밍>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기존에 보여주었던 밝고 귀여운 모습에서 벗어나 이준익 감독에 의해 새롭게 발견된 한지혜는 이 작품을 위해 가야금과 시조창을 능숙하게 익히는 등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정통 사극 도전에 나선 한지혜를 만났다.
순정 가득한 기생 백지 역…처음으로 정통 사극 도전
한복 입고 환상적인 비주얼 선보여…캐릭터 완벽 소화
지난 2005년 <왕의 남자>로 1000만 관객을 모은 이 감독이 <황산벌>과 <왕의 남자>에 이어 세 번째로 연출한 사극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은 임진왜란 직전 혼돈의 시대를 뒤엎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이몽학(차승원)과 그에 맞서 세상을 지키려는 맹인 검객 황정학(황정민)의 운명적 대결을 그렸다. 또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견자(백성현)와 이몽학을 사랑하는 기생 백지(한지혜)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이 영화는 뛰어난 작품성으로 국내외에서 인정받은 박흥용 화백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한지혜가 연기한 백지는 조선 최고의 기생으로 도도한 매력을 지녔지만 마음속은 연인인 이몽학을 향한 순정으로 가득차 있다. 이몽학의 대의와 꿈을 사랑한 백지는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할 각오를 하지만 꿈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모두 제거해 버리는 이몽학에게 한 순간에 버림받는다. 백지는 사랑과 오기, 그리고 미련이 뒤섞인 한을 안고 이몽학을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 목숨을 건 여정을 떠난다.
“백지를 연기하면서 울 뻔한 걸 참느라고 입술을 수도 없이 깨물었어요. 한 남자를 가슴에 품은 채 평생 그를 바라본 백지의 사랑은 여자로서 슬프기도 하지만 부럽기도 해요.”
강인한 아름다움 발산
데뷔 이후 처음으로 나선 정통 사극 도전이다 보니 감독에게 구박을 받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나중에는 동료 배우 황정민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인정했을 정도.
“백지는 한이 많은 여자인데 제 마음에는 한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께 구박을 받아서 한이 생겼어요. 감독님의 꾸지람이 한을 간직한 백지를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어요.”(웃음)
송혜교, 하지원, 김민선 등 그동안 사극영화에 출연한 역대 여배우들 중 가장 장신의 키인 171cm로 한복을 입고도 환상적인 비율의 비주얼 라인을 선보인 한지혜.
“한복은 가슴이 눌려서 답답해요. 처음에는 숨쉬기가 힘들었는데, 며칠 지나니 적응이 됐어요. 머리도 쪽머리를 해야 하고, 준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힘들고 불편했어요. 감독님이 구박을 많이 했다고 했는데, 한복도 몇 벌 안 해줬어요. 처음에는 두 벌만 입고하라고 하다가 나중에 한 벌 더 해줬어요.”
사실 한지혜가 한복을 입은 것보다 힘들었던 것은 남자들 사이에서 홍일점으로 지낸 것.
“모두 잘 해주셨는데, 가끔 외로울 때도 있었어요. 남자들끼리 통하는 공감대가 있잖아요. 소외감을 느낄 때 친분이 있는 엄지원 언니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봤는데 ‘그래도 여자 둘이 나오는 것보다는 낫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여자들은 기싸움을 심하게 하니까, 그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즐겁게 촬영하려고 했어요.”
중국 드라마 캐스팅
2001년 슈퍼 모델 대회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으니 벌써 데뷔 10년차. 연기자 활동을 오래했지만 사실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여섯.
“어릴 때는 커서 배우가 될지 꿈에도 몰랐어요. 그냥 세계를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 만나고 재미있는 체험을 하고 사는 게 막연한 꿈이었죠. 드라마 촬영 때문이지만 비슷하게 살고는 있으니 어느 정도는 꿈을 이룬 셈이네요. 슈퍼 모델도 고등학교 때 친구가 적극 추천하면서 원서를 직접 써서 제출했는데 얼떨결에 선발됐어요. 연기도 마찬가지였어요. 2001년에 상영됐던 영화 <굳세어라 금순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단역으로 우연하게 출연했거든요. 벌써 10년이 다 돼 가네요.”
한지혜는 현재 중국 드라마 <천당수>의 여주인공에 캐스팅돼 중국에서 촬영이 한창이다. <천당수>에서 그녀는 한국의 천재 자수 디자이너 전채희 역을 맡았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함께 내면의 아픔을 표현해야 하는 인물.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힘든 역경을 이겨내지만 그런 만큼 내면에 갖고 있는 아픔이 더욱 큰 인물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캐릭터의 감정선 유지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다른 촬영 환경에 아직 낯선 것이 사실이지만, 감독님을 비롯한 현지 스태프들의 배려로 매 순간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시는 팬 여러분들께 한층 발전된 모습으로 찾아 뵐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