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1억 배우’ 오달수

대작엔 꼭…빠지면 서운한 감초 "통했다"

[일요시사 경제2팀] 최현목 기자 = 씬 스틸러. 흔히 주연보다 잘나가는 조연을 두고 우린 이렇게 부른다. 그들은 주연보다 등장하는 ‘씬’은 적지만 단 몇 분 안에 관객의 시선을 ‘스틸’해 버리는 능력자들이다. 한국영화에도 이러한 자들이 있다. 고전적으로 감초라 불리는 그들은 밥상에 비유하자면 반찬과 같은 존재다. 반찬이 없다고 해서 밥을 못 먹겠냐마는 싱겁다 못해 넘길 수 없을 만큼 퍽퍽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감초가 없다면? 모르긴 몰라도 영화가 밍밍하다 못해 곤욕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한 달 후 최고의 반찬이 다시 한 번 우리를 찾아온다. 비록 최고급 재료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몇 공기는 뚝딱할 수 있는 반찬, 그런 밥 도둑 같은 배우 오달수가 <국제시장>에 이어 스크린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제 오달수는 <조선명탐정 : 사라진 놉의 딸>에서 ‘개장수’역을 맡아 관객에게 더욱 강력한 웃음을 선사할 준비를 마쳤다. 벌써부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작품은 2011년에 개봉해 470만명의 관객을 모은 동명의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의 후속작이다.

대학생 신분
극단에 진출

오달수는 1968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란 ‘경상도 사나이’다. 충무로에 진출하기 전까지 줄곧 경상도권에서 지낸 그는 말을 할 때 사투리의 강한 억양이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배우로 유명하다. 자칫 배우로서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는 이후 연기력을 바탕으로 이러한 선입견을 과감히 타파해 버린다.

송강호의 연기도 이러한 편견을 깨는데 일조했다. 서울에 있는 한 예술대학교 특강자리에서 오달수는 자신의 억양에 대해 “처음 서울에 올라와 연기를 시작했을 때는 사투리 때문에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다”며 “그런데 <넘버3>에서 송강호 선배의 사투리 연기가 확 뜨면서 사투리 연기에 대한 편견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연극을 통해 연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에 있는 동의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에 진학한 그는 당시 인쇄물을 배달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때 단골이던 ‘가마골소극장’에 자주 드나들 기회가 생겼고 그곳의 단원들과 함께 밥을 먹고 공연을 보는 등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 그는 당시 연기하던 배우들과 함께 연기자로 나아가게 된다.


1990년부터 그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하게 된다. 그곳에서 3개월을 지낸 후 <오구>라는 연극에서 처음 단역을 맡으며 무대에 선다. 이후 <남자충동> <인류최초의 키스> <흉가에 볕들어라> 등 다양한 무대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당시도 소극장 등에서 연극을 하는 배우의 삶은 넉넉하지 못했다. 최근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연극 무대에 설 때 월급이 15만원 정도 됐다”며 “다음 월급 날까지 끼니를 해결할 라면을 먼저 사 놓고 나머지를 생활비와 술값 등으로 사용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20대 청춘의 시절을 전부 연극에 바친 그이기에 가능한 생활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연극에 대한 열정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현재 그는 ‘신기루 망원경’ 극단을 운영하며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자신의 연기에 대해 “매번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서 후회한다. 아쉬운 게 너무 많다”면서도 “나도 그렇지만 우리 극단의 후배들도 작품을 통해 스스로 배웠으면 한다. 그래서 극단 후배들이 올리는 공연에 아쉬운 점이 보여도 간섭하지 않는다. 직접 느껴서 자기 살로 만들어야한다”며 후배들을 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영화 사상 최초 누적관객 1억명 돌파
충무로 미친 존재감…출연만 하면 구름 떼

그의 재능을 담기에 연극 무대가 너무 작았던 것일까. 그는 2002년 <해적, 디스코왕 되다>에 출연하여 본격적인 충무로 진출을 알린다. 비록 영화판에서는 신입이었지만 지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극무대에서 쌓아온 내공은 그의 가치를 퇴색시킬 수 없었다. 이후 그를 눈여겨 본 박찬욱 감독은 <올드보이>에서 사설감옥 사장 ‘철웅’역으로 오달수를 캐스팅한다.

그리고 다들 알고 있는 것과 같이 그는 이 영화에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극중 오대수(최민식)의 이빨을 뽑으려 할 때 “인간은 상상을 하기 때문에 비겁해지는 거래. 그니깐 상상을 하지마. 그럼 용감해질 수 있어”라는 대사와 함께 보이는 음흉한 미소는 잔인한 인간의 내면을 투영시키기에 충분한 연기였다. 극 속에서 오달수는 낯선 외모와 독특한 몸짓, 그리고 말투로 극사실주의 연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배우가 범할 수 있는 실수 중 하나는 바로 이미지의 고착화, 그리고 소진이다. 대표작이나 인상적인 연기로 호평을 받은 후 그 역할에 심취해 다른 연기를 선보이지 못하는 경우를 우린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오달수는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완벽히 자유로운 배우다. 그는 <올드보이>에서 섬뜩한 악역 연기를 한 후 곧바로 <효자동 이발사>에 출연해 코믹연기를 선보인다.


이후 그는 <달콤한 인생> <음란서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의 영화에서 때론 조폭으로 때론 주인공의 친구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는 것은 물론이고 본인의 연기 스펙트럼 또한 넓혀간다. 심지어 그는 놀랍게도 영화 <괴물>에서 한강에 방류된 독극물에 의해 돌연 변이된 ‘괴물’의 목소리 연기도 해낸다.

연기에 바친
20대 청춘

그렇게 그는 2002년부터 한해도 빠지지 않고 영화를 찍었고 결국 지난 3일 <국제시장>의 700만 돌파와 함께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누적관객 1억명을 돌파하는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국제시장> 전까지 12년 동안 서른아홉 작품에 출연해 만들어낸 쾌거였다. 지난해에는 <7번 방의 선물>과 <변호인>으로 한해 두 편의 1000만 영화에 출연한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제부터 그가 영화에 출연 할 때마다 충무로의 역사는 새로 쓰여지는 것이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CGV에서 열린 영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제작보고회에서 그는 1억 관객을 기록한 것에 대해 “관객 여러분 덕분이다”며 “새로운 마음가짐과 기분으로 더욱 더 겸손하게 시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 제가 출연한 작품의 총 관객을 굳이 따지자면 1억25만명 정도 된다”며 “25만명은 연극 무대를 찾은 관객이다. 힘들었지만 그때 극장을 찾은 25만의 관객을 나는 절대 잊을 수 없다”고 밝혀 어려운 연극생활에 힘을 준 관객에 대한 감사의 표시도 잊지 않았다. 누적 1억 관객 돌파는 꾸준한 작품 활동과 탄탄한 연기력, 그리고 관객을 불러 모으는 흥행적 요소가 없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대기록으로 평가된다.

현재 그가 영화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그와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흥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등에서 함께한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감독들이 누구나 캐스팅하고 싶어하는 워너비 배우로 거듭난다.

맡은 역할은 강하지만 그의 푸근한 인상과 인간적인 모습이 알려지면서 대중들에게 더욱 사랑받고 있다. 특히 그가 학창시절까지 보낸 부산에서는 팬들 사이에서 ‘달수 행님(형님의 경상도 사투리)’ 또는 ‘달수 오빠야’ ‘달수 아저씨’로 불린다고 한다.

그는 충무로에서 ‘바른 사나이’로 유명하다. 박찬욱 감독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만들어낸 ‘너무 예의바른 남자’ 캐릭터가 오달수를 보고 만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을 정도로 항상 겸손하고 깍듯한 모습을 유지한다. 또한 그는 ‘충주중앙병원’에서 환자 위문행사와 토크쇼를 갖는 등 바쁜 와중에도 선행을 이어가고 있다.

후배를 위하는 배려심에 있어서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배우다. ‘금정 예술공연지원센터’에서 개최한 토크콘서트인 ‘부산의 청춘들아 기죽지 마라’에서 그는 ‘영화배우 오달수가 되기 전’이라는 주제로 연극단 활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시절을 관객과 공유했다. 이어서 그는 예술가의 눈으로 보는 서울과 부산의 청년문화를 비교해 현실적이면서 진솔한 얘기를 전했고 부산의 청년문화가 서울보다 부족한 부분, 더 나은 부분 등을 관객들과 함께 토론했다. 그리고 관객과 격이 없는 대화의 시간도 잊지 않았다.

그의 이런 모습 때문일까. 동료 배우들 사이에서도 인기남이다. 이번에 함께 영화에 출연하게 된 김명민은 4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오달수에 대해 “현장에서 달수 형과의 조합이면 더할 것도 없이 행복한 작업이다”며 “어떤 헤어진 집사람을 다시 만나서 사는 그런 기분이 든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한 곧 1000만 관객을 넘을 것으로 보이는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은 극중 달구 역할은 오달수가 아니면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신뢰감을 표현했다.

호흡 맞는 배우?
송강호와 황정민

그와 가장 많이 호흡을 맞춘 배우는 송강호다. ‘국민 배우’라 불리는 송강호는 오달수와 <효자동 이발사>를 시작으로 <괴물> <우아한 세계>를 비롯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쥐> <푸른 소금> <변호인> 등 총 7개의 작품을 함께 했다. 평소 오달수가 가장 존경하는 배우로 꼽히는 송강호는 <변호인> 촬영 당시 서로의 호흡에 대해 “상황에 몰입하면 기가 막히게 나를 받아낸다”며 “굉장히 흡수력이 강하고 이질적인 느낌이면서도 가장 잘 어울리는 연기를 보여준다”라고 그의 연기를 칭찬했다.
 

최근 개봉한 1000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국제시장> 속 오달수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잇따른 흥행으로 어느새 주연으로까지 성장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황정민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극중 주인공 덕수(황정민)의 절친한 죽마고우 달구(오달수)로 나오는 그는 기존의 친구 캐릭터와 사뭇 다른 모습을 연기한다. 주인공의 친구는 일반적으로 극의 전개에서 끌려가기 마련이지만 달구는 오히려 덕수를 이끌고 간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사건을 물어다 주는 등 극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꾼으로 나온다.

맛깔 나는 밑바닥 연기 일품
남다른 열정…서민적인 배우


뿐만 아니라 그는 그 세대를 살던 사람들의 옷가짐, 행동은 물론 정서까지 적절하게 표현해 관객에게 리얼리즘을 불어넣었다. 극중 유행에 민감한 부산 청년인 달구는 그 당시만 해도 낯선 청바지에 빨간 가죽 자켓을 걸치고 머리를 한껏 빗어 넘긴다. 이후 한국에까지 여성 팬을 확보하게 될 제임스 딘을 따라한 것이다.

또한 뭔가 흐느적거리며 껄렁한 걸음걸이를 통해 그 당시 한창 잘나가시던 형님들의 모습을 온전히 담아내는 데 성공했고 무도회에서 현란한 손목 스냅과 발재간을 이용해 트위스트를 추던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잘나가던 오빠들의 그것과 같았다. 비록 <국제시장>이 영화적으로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은 아니라는 평을 듣고 있지만 황정민과 김윤진, 그리고 오달수라는 연기 귀재들이 있었기에 자칫 유치해 질 수 있었던 이야기를 지금과 같은 휴먼 영화로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거지, 조폭…
다양한 연기색

데뷔 초기에는 배우 오광록과 유사하다며 헷갈려하는 관객이 있을 정도로 그의 이름 석자를 알아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색깔 있는 연기와 변화무쌍한 모습, 그리고 인간적인 냄새와 거기에서 배어나오는 내면의 아름다움은 그를 더이상 재야에 묻어둘 수 없는 배우로 만들었고 이젠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지닌 연기자로 거듭났다.

거의 모든 배우들은 영화 시나리오를 받게 되면 매니저 또는 소속사의 담당 직원이 먼저 검열을 한다. 그러나 오달수는 <올드보이>를 시작으로 지난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신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 읽어보고 선택한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의 꼼꼼함과 연기에 대한 고민, 노력이 뒷받침되었기에 지금과 같은 대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 ‘조족지혈’과 같던 분량을 가진 배우에서 이젠 ‘군계일학’의 연기를 선보이는 오달수, 그는 분명 이 시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임에 틀림없다.

 

<chm@ilyosisa.co.kr>

 


[오달수 주요 출연작은?]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
▲달콤한 인생(2005)
▲괴물(2006)
▲음란서생(2006)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박쥐(2008)
▲방자전(2010)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
▲7번방의 선물(2012)
▲도둑들(2012)
▲변호인(2013)
▲국제시장(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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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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