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잘못 만나 몰락한 호남 기업들 막전막후

김·노 때 ‘웃고’ 이·박 때 ‘울고’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호남 기업들을 휘감고 있는 공기가 심상치 않다. 그 어느 때보다도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호남 기업들은 그간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들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제 아래 숨통이 좀 트일 때까지 어깨 한번 제대로 펴지 못했다. 호남 기업은 이처럼 어렵게 성장해 왔다. 그런데 최근 잘나가는 호남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호남 기업의 씨가 마르고 있다.

   
▲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 임병석 C&그룹 회장,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우리나라 10대 그룹 중 호남 기업은 없다. 호남의 대표 기업 금호아시아나그룹이 17위에 랭크되어 있을 뿐이다. 50년대 1위 기업이던 삼양사는 30대 그룹으로 밀려난 지 오래고 60년∼90년대 사이 재계를 대표하던 기업인 율산그룹과 해태그룹, 나산그룹, 쌍방울그룹이 무너졌다.

고전하던 호남 기업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를 만나면서 어깨를 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C&그룹과 대주그룹이다.

C&그룹 자금난
대주 세무조사

임병석 C&그룹 회장의 고향은 전남 영광이다. C&그룹도 호남에 연고를 두고 성장해 왔다. 광주 석산고와 목포 해양대를 졸업한 임 회장은 항해사로 일하다가 30세 때인 1990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칠산해운을 설립했다.

사업 초기 임 회장은 선박과 화물 중개업으로 돈을 벌어 자기 배를 마련한 뒤 1995년 회사 이름을 쎄븐마운틴해운으로 바꾸고 해운업에 본격 진출했다. 2002년 법정관리 중이던 세양선박을 인수, 황해훼리, 필그림해운, 한리버랜드, KC라인, 진도, 우방, 생활경제TV 등을 잇달아 사들이며 C&그룹을 매출 2조원짜리 중경그룹으로 성장시켰다. 한때 계열사가 40개가 넘기도 했다.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도 임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이다. 광주공고를 나와 1981년 광주·전남을 기반으로 한 대주건설을 설립한 뒤 2008년 말 기준 2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주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당시 연매출은 2조2000억원에 달했다.

허 회장은 두림제지, 대한화재, 대한조선, 광주일보, 동아상호저축은행 등을 잇달아 먹어치운 데 이어 뉴질랜드 대주하우징, 대주개발, 대한기초소재, 함평다이너스티, 광주방송 등을 설립했다.

2005년에는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인수전 참가만으로도 당시 대주그룹의 사세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임 회장과 허 회장은 공교롭게도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C&그룹은 2007년 무리한 인수합병(M&A) 후유증을 겪다가 이듬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그룹 전체가 자금난에 빠졌다. 직원들의 월급까지 밀릴 정도로 사정은 나빠졌다.

버티다 못한 임 회장은 주요 계열사 매각에 나섰지만 인수자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급기야 임 회장이 불법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다 결국 사기 및 배임 등의 혐의로 2010년 10월 구속되면서 C&그룹은 워크아웃, 법정관리를 거쳐 사실상 파산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영남 기업들은 잘 나가는데…
정권 따라 달라진 엇갈린 운명

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0년,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고 이에 서울고법은 징역 5년에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후 임 회장은 지난 2013년 6월 재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받았다.


허 회장 역시 2007년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500억원대 탈세 사실이 드러나면서 먹구름이 드리웠다. 국세청은 허 회장을 탈세 지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허 회장은 2005년부터 2년 동안 법인세 508억원을 포탈하도록 지시하고 회삿돈 1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2심에선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대주건설이 최종 부도 처리되는 등 사실상 그룹은 와해된 상태다.

임석 전 솔로몬금융그룹 회장도 김대중·노무현정부 때 급성장했다가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몰락했다. 전남 무안 출신의 임 전 회장은 이리공고를 졸업하고 1988년 허위학력 논란이 일었던 퍼시픽 웨스턴대학을 졸업했다. 그해 한맥기업이라는 광고대행사를 설립하고 100억원가량을 벌어들인 그는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1999년 솔로몬신용정보를 설립하고 2002년 사실상 폐업 상태였던 골드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금융업에 진출했다. 

부동산PF 대출 상품을 개발해 부동산 붐을 타고 큰 수익을 거둔 솔로몬금융그룹은 출범한지 불과 3년 만인 2005년 자산기준 저축은행업계 1위로 급부상했다. 이후 한마음, 나라, 한진 등 저축은행에 이어 2008년에는 KGI증권마저 인수하면서 종합금융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임 전 회장은 '금융계 마당발'로 불릴 정도로 정재계 인사들과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 이 때문에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사업이 크게 성장한 배경에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임 전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외곽 조직으로 알려진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에서 조직국장을 지냈다. 1997년 대선 때는 새정치국민회의 '비상경제대책위원회'에도 몸담았다. 김대중정부 시절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의 핵심 측근인 김영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2003년 2월부터 1년여 동안 솔로몬저축은행 총괄회장을 맡기도 했다.

임 전 회장은 이명박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에도 살아남았다. 그 배경으로 정권 실세가 지목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의 이름이 주로 오르내렸다. 임 전 회장은 '소금회' 멤버로 활동했다. 소금회는 소망교회 금융인 선교회의 줄임말로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말 대선에서 당선되기 전까지 참여했던 모임이다. 이 전 의원도 소금회 멤버다.

순조롭게 질주하다
외풍 맞고 산산조각

2011년 2월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이후 2차 영업정지 대상을 발표할 때 "솔로몬저축은행이 다음 타깃일 것"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문제없이 넘겼다.

솔로몬금융그룹이 쓰러진 것은 이명박정부 말기인 2012년이다. 솔로몬저축은행은 2012년 5월 영업이 정지됐고 이듬해 3월 파산신청을 내고 파산했다. 계열사 아이엠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메리츠종금증권에 인수됐고 경기솔로몬저축은행은 투자회사 애스크로 넘어가는 증 솔로몬금융그룹은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임 전 회장은 솔로몬저축은행 본점 인테리어 공사비를 부풀려 비자금 121억원을 조성하고 대주주 대출을 금지한 상호저축은행법을 어기고 1120여억원의 부실 대출을 지시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 부산저축은행도 '부산'이라는 사명과는 다르게 호남 기업으로 분류된다. 박연호 전 부산저축은행 회장과 김영 전 부산저축은행 부회장, 김민영 전 부산·부산2저축은행 대표, 오지열 전 중앙부산저축은행장 등 주요주주와 임원들이 광주일고 출신이다.

조금만 밉보여도
모가지 날아간다


2011년 당시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이 지난 1980년 이후 설립한 SPC(특수목적법인)는 모두 120개. 이 가운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인 1998년부터 2002년 사이 설립된 SPC는 85개(3조1861억원)에 달한다. 특히 85개 가운데 무려 68개(2조4731억원)가 부실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초 살던 집이 경매에 나오는 굴욕을 당한 바 있는 백종헌 회장의 프라임그룹은 법정관리 중이다. 백 회장은 광주 출신이다. 프라임그룹은 강변 테크노마트 개발 성공 이후 동아건설 등을 인수하며 외형을 키우다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침체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주력 계열사인 프라임개발과 삼안이 2011년 8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백 회장이 동아건설 등 계열사와 보유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기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까지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호남 기업들은 현 정부 들어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팬택도 호남 기업이다. 창업주 박병엽 전 부회장은 전북 정읍 출생으로 대표적 호남 기업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인 금호타이어의 사외이사를 맡은 적도 있다.

맥슨전자 영업사원 출신의 박 전 회장은 지난 1991년 직원 6명과 자본금 4000만원으로 팬택을 설립했다. 1997년 LG정보통신(현 LG전자)으로부터 OEM 휴대전화 공급 계약을 체결해 휴대폰 사업에 발을 들였고, 1998년에는 모토로라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착실하게 성장하던 팬택이 질주하기 시작한 때는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이다. 2001년 현대전자 계열사 현대큐리텔을 인수한 데 이어 2005년에는 'SKY 시리즈'를 출시해온 SK텔레콤의 자회사 SK텔레텍을 집어 삼키는 등 '샐러리맨 신화'를 써왔다. 2006년 팬택의 매출은 3조원을 돌파했다.

C&·대주 이미 공중분해
로케트·팬택 존폐 기로

하지만 스마트폰 판매 부진에 따른 자금사정 악화 등으로 2006년 12월 1차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박 전 회장은 자신의 지분까지 내놓고 부채 보증을 서면서 재기를 노렸고 팬택은 4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지난해 2월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간 데 이어 같은 해 8월 법정관리에 돌입, 현재 새 주인을 찾고 있다.


69년 역사를 자랑하는 광주지역 토종기업인 로케트전기는 존폐 기로에 서 있다. 1946년 설립된 로케트전기는 건전지 전문업체로 호남전기를 전신으로 한다. '로케트 배터리'로 알려진 세방전지와는 별개의 회사다. 뿌리는 같지만 1978년 호남전기그룹 몰락 당시 호남전기는 광주일보 산하 기업으로 넘어가 로케트전기로 개명했고 진해전지는 세방그룹으로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로케트전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무구조가 악화됐고 '에너자이저' '듀라셀' 등 외국브랜드에 밀리면서 설 자리를 잃어갔다. 1998년 37%에 이르던 국내 시장 점유율은 현재 10% 이하로 내려갔다.

로케트전기는 2013 사업연도 감사보고서상에서 상장폐지 사유인 '의견거절'을 받고 지난해 3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고 같은 해 11월 무상감자, 출자전환에 의한 신주발생, 유상증자, 인수합병 추진계획 등이 포함된 최종 회생계획안을 냈으나 법원은 회생절차 폐지를 통보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강동민 의원에 따르면 호남지역에 사업장을 둔 기업 10곳 가운데 4곳이 지난 2013년 한 해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도 못 내는
기업들 수두룩

강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법인세 납부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호남지역 기업 4만9182곳 가운데 41.4%인 2만383곳의 총부담세액은 '0원'으로 결손법인이었다. 2012년 1만8748곳 보다 8.7%(1635곳) 늘어난 수치다. 지역별 결손법인 비율은 전남이 41.5%, 광주가 40.9%, 전북이 42.9%였다. 반면 대구는 1만6918개 기업 중 39.4%(6659개)가 결손법인이었다.

강 의원은 "현 정부 들어 지역간 불균형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며 "호남 기업들은 수도권에 비해 소득이 현저히 적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또 "경영난에 세금조차 못 내는 기업들이 많다”며 “도산 위기에 몰린 호남 기업을 구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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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