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대권키 쥔 '백소회' 실체해부

대권플랜 가동? 반 총장 결심만 남았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반기문 대망론’이 새해에도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정작 본인은 차기 대선 출마설에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연초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UN사무총장은 압도적인 지지율로 1위에 올랐다. 그런데 반기문 대망론이 뜨면서 일반 국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백소회(총무 임덕규)’라는 단체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백소회는 어떤 단체이고 왜 지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백소회의 실체를 해부해봤다.

‘반기문 대망론’이 새해부터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서울신문>과 에이스리서치가 지난달 26~2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반기문 UN사무총장은 무려 38.7%p의 지지를 얻어 2, 3위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9.8%p)과 박원순 서울시장(7.4%p)을 크게 앞질렀다.

반 총장은 국내에서 유력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될 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반 총장을 향한 이 같은 국민적 지지도 때문에 반기문 대망론은 정치권에서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깊은 애향심
충청 대망론

한편 반기문 대망론과 함께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는 단체가 바로 ‘백소회(총무 임덕규)’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백소회는 지난 1992년 임덕규 총무가 주도해 만든 단체다. 백소회에는 회장 없이 총무만 두고 있는데 총무가 사실상 회장 역할을 하고 있다. 임덕규 총무는 백소회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총무직을 맡아오고 있다.

백소회는 ‘백제의 미소’ ‘100번 웃자’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충청권 사람들이 모여 후배를 돕고 지역발전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현재 백소회에는 전현직 장·차관, 국회의원, 법조인, 금융인 등 충청권 출신의 수많은 저명인사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 안상수 전 인천시장, 박병석 전 국회부의장, 송인준 전 헌법재판관 등은 직접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고,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나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서청원 의원 등 충청권 출신 유력 정치인들도 모두 백소회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국내 조직 없다고? 물밑 조직 탄탄
반 총장은 완전무결점 대권후보

안철수 캠프 출신으로 정치권에서는 ‘킹메이커’로 통하는 윤여준 전 장관도 백소회 소속이다. 강 전 의장은 충청권 최초의 국회의장으로 당선된 이후 백소회 회원 수십명을 초청해 만찬을 가지기도 했다. 그 위세가 실로 대단하다.

충청 연고 기업인 한화는 백소회의 든든한 후원자다. 한화그룹은 지난달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 루비홀에서 열린 백소회의 송년회를 후원하기도 했다. 특히 백소회는 ‘충청권 사람들이 모여 후배를 돕고 지역발전을 도모하자’는 창립 취지처럼 모임 때마다 충청권 인재 육성에 주력하자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반 총장 역시 충북 음성 출신으로 충청권 인사다. 실제로 한 백소회 회원에 따르면 “모임 때마다 회원들 사이에서 반 총장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백소회 지도부급 인사들은 회원들이 입방정을 떨어 아직 사무총장 임기 중인 반 총장에 누가 될까 입단속을 하는 분위기지만 아마 반 총장이 다음 대통령이 되길 누구보다 바라는 것은 그들 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 탄탄
무결점 후보

하지만 반 총장이 단지 충청권 출신 인사이기 때문에 백소회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백소회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반 총장과 임덕규 총무와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 총무는 “한 달에 평균 2~3회 (반 총장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안부를 묻고 국내 중요소식도 전한다. 지난해 반 총장이 서울을 방문해 국내 외국대사들과 가진 포럼에서는 저를 지칭하며 ‘한국에서 대사직을 잘 수행하려면 임덕규 회장과 친하게 지내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언급을 하기도 했다”며 반 총장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 총무는 반기문 대망론이 정치권에 불거지자 “저는 일부 정치권에서 전하는 반 총장의 최측근은 아니다”라며 반 총장과 선을 긋고 있다.

사실 임 총무는 반 총장을 UN사무총장으로 만드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임 총무와 반 총장은 지난 1972년 각각 한국·인도 친선협회 간사와 인도대사관 3등 사무관으로 처음 만난 이후 같은 충청권 출신 인사라는 공통점 때문에 지금까지도 매우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임 총무는 반 총장이 UN사무총장에 선출되는 과정에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벤치마킹한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만들어 직접 회장을 맡아 반 총장의 선거운동을 돕기도 했다.

임 총무는 지난 2005년 반사모를 결성한 이후 반 총장의 선거운동을 하면서 외국 대사들을 만나 인사를 할 때면 한국말로 ‘반사모!’를 복창시킬 정도로 반사모 활동에 열성적이었다. 외교잡지 월간 <디플로머시>의 발행인이기도 한 임 총무는 30년 넘게 외교잡지를 발간하면서 구축한 전 세계 인적네트워크도 반 총장의 당선을 위해 모두 가동시켰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선거운동을 했던지 임 회장은 반 총장의 당선을 확인한 후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반 총장은 사무총장에 당선된 바로 다음 날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임 회장을 직접 문병하고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정치권이 백소회에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백소회가 반 총장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히든카드이기 때문이다. 대선후보로서 반 총장의 최대 약점은 국내에 별다른 조직이 없다는 점이다. 반 총장이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선거는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하부 조직의 역량에 따라 결과가 뒤집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물론 반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다면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이니 만큼 반 총장 주변에 수많은 인사들이 순식간에 모여들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짧은 기간 어중이떠중이 모여든 인사들로는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조직력을 기대할 수 없고, 대선캠프를 운영하면서 상당한 잡음에 시달릴 위험성이 농후하다.

임 총무는 UN사무총장 선거 당시 뛰어난 조직관리능력과 정치력으로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인물이다. 임 총무가 백소회를 통해 갈고 닦아놓은 국내조직을 잘 활용만 한다면 반 총장의 대권행보에 걸림돌이 될 것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반 총장이 만약 사무총장 임기를 마친 후 대권플랜을 가동시킨다면 임 총무와 백소회는 반기문 대권플랜의 가장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백소회 움직일까?
새로 조직 만들까?

하지만 백소회가 반 총장의 대선조직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은 크게 엇갈린다. 한 정치인 출신 백소회 회원은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한다고 해도 반 총장의 최측근인 임 총무나 백소회 회원 몇몇이 반 총장을 돕기는 하겠지만 백소회 전체가 반 총장의 대선조직으로 변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백소회에는 여당 성향을 가진 분들도 있고 야당 성향을 가진 분들도 있다. 나도 선거 때 백소회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진 못했다. 내가 보기엔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한다고 해서 백소회 전체가 반 총장의 대선조직화되기는 힘들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고위 공무원 출신의 한 백소회 회원은 “백소회의 회장격인 임 총무가 나서는데 어떻게 백소회가 안 나설 수 있겠나? 오히려 야당 성향 인사 몇몇을 빼곤 대부분의 백소회 회원들이 반 총장을 돕고 나설 것”이라며 “백소회에 여야 인사들이 골고루 참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당 보수성향이 더 강한 것은 분명하다. 백소회 회원 대부분이 반 총장에 대해 매우 큰 호감을 가지고 있다.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만 한다면 분명 백소회 회원 전체가 대동단결해 도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선 출마설 나올 때마다 거부반응
애향심 깊어 충청이 부르면 출마?

또 백소회에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서청원 의원 등 친박 핵심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최근 친박계는 반 총장을 차기 대권 주자로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친박 핵심인사들이 백소회 모임을 통해 반 총장의 최측근인 임 총무와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백소회가 반 총장의 영입 논의 창구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여러모로 백소회는 반기문 대권플랜의 중요한 퍼즐 조각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반 총장의 권력의지. 반 총장은 대권 출마설이 불거질 때마다 자신은 국내정치에 관심 없다며 선을 그어왔다. 그런 점에서 임 총무는 반 총장이 대선 출마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키맨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충청권 인사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충청 홀대론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충청 홀대론 극복
반 총장에게 달려


충청권 인사들은 충청권의 인구가 이미 호남을 추월한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충청권 출신 대통령이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심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 (※충남 아산 출신의 윤보선 대통령이 있지만 4·19혁명으로 이승만의 자유당정권이 붕괴된 이후 내각책임제하에서 선출됐고 재임기간도 2년이 채 안됐다.)

임 총무가 이끌고 있는 백소회도 이런 충청인들의 콤플렉스가 어느 정도 반영된 단체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충청권 관련 행사에 반드시 참석할 정도로 충청권에 대한 애향심이 깊은 반 총장에게 임 총무가 충청 홀대론을 앞세워 설득하면 먹혀들지도 모른다는 분석이다.

과연 반 총장은 충청권 최초의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백소회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반 총장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2016년 이후에는 그 실체가 확실히 드러날 전망이다.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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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