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비밀조직 양우공제회 실체 '소문과 진실'

고급 정보로 수천억 굴린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실소유주가 국정원이라는 의혹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국정원 내 비밀조직인 '양우공제회'를 통해 세월호에 투자했다는 가설이다. <일요시사>는 가설 검증을 위해 확인 가능한 사실을 모았다. 양우공제회가 벌려 놓은 투자는 상상 이상이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권위주의 시절 국가안전기획부(구 중앙정보부)가 자신들의 원훈으로 삼았던 말이다. 김대중정부 들어 국가안전기획부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김대정정부는 국정원의 원훈도 "정보는 국력이다"로 바꿨다. 하지만 정권이 네 차례 바뀌는 동안 '양지를 지향하는' 국정원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의문투성이
양우공제회

국정원 퇴직자들의 모임인 '양지회'는 자신들의 원훈인 '양지'에서 비롯됐다. 국정원 직원들은 설립 초기부터 '양지(陽地)'란 단어를 즐겨 사용했다. 국정원 직원들의 상조모임인 양우공제회에도 양지가 숨어있다. 양우에서 양은 볕 양(陽)자, 우는 벗 우(友)자를 쓴다. 양우공제회는 1970년 발기된 후 지금껏 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양우공제회의 실체는 외부로 공인된 바 없다. 국정원 직원들의 복지를 위한 상조회 내지는 친목모임이라는 게 정설처럼 여겨진다. 이에 반해 양우공제회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쪽에선 '정치자금 관리'나 '불법 자산증식' 등을 문제 삼고 있다.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 또다시 고개
이재명 시장 주장…공제회 통해 투자설


일반인들에게 양우공제회는 '먼 나라'의 얘기다. 대선개입 의혹과 간첩조작 혐의로 국정원이 수세에 몰렸던 상황에서도 양우공제회만큼은 특별히 문제되지 않았다. 정치권도 건들지 않았다. 여기에 국정원 특유의 '비밀주의'가 더해져 양우공제회는 어디에도 감시받지 않는 '금고'로 남아있다.

수면 아래 있던 양우공제회는 2014년 연말 뜻밖의 사건으로 재조명됐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SNS를 통해 '국정원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을 제기했다. 이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청해진(해운) 명의로 등록된 세월호의 실제 소유자는 누구일까? 나는 여전히 국정원 소유임을 확신하며 '양우공제회'의 존재로 그 확신이 더 커졌다"고 주장했다.

이 시장은 주장의 근거로 3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세월호 선박의 화장실 휴지에서부터 직원 휴가까지 80여 가지 사항을 국정원이 시시콜콜 지적한 점. 둘째, 세월호 선박 사고 시 가장 먼저 국정원에게 보고토록 한 점, 셋째, '양우공제회'가 선박투자 경력이 있다는 점이다. 이 시장은 양우공제회를 취재한 <월간중앙>의 기사도 함께 링크했다.

이 시장은 "양우공제회는 국정원 기조실장이 이사장을 맡고 국정원 현직 직원들이 운영하는 법적근거도 없는 투자기관으로 모든 운영사항이 비밀로 취급된다"며 "수천억대 자산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국정원이 선박을 취득·운항한 사실까지 확인됐으니 '세월호는 국정원 소유'라는 확신이 더 커졌다"고 덧붙였다.

다음날에도 이 시장은 '국정원 지적사항'을 공개하며 "국가정보기관 입장에서 한 것일까요? 아니면 실소유자로서 한 것일까요?"라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세월호 실소유주
연이은 의혹제기

앞서 <일요시사>는 '국정원 세월호 개입설 진상(인터넷판 2014년 8월4일)'이란 기사에서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 및 세월호 보고체계와 관련한 의혹을 추적한 바 있다. 문건은 A4용지 5장 분량이며 2013년 2월26일 오전 11시56분께 저장한 것으로 돼 있다. 작성자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세월호 참사 때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세월호 선주인 청해진해운 소속으로 알려졌다.


문건의 정확한 제목은 '선내 여객구역 작업 예정 사항-국정원 지적사항'이다. 항목별로 94가지의 작업 내용이 적혀있고, 5가지의 불량 항목이 기재돼있다. 문서에 적시된 사항은 대체로 국정원 고유의 업무와는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것들이다. 갤러리룸(전시실) 천정 칸막이 및 도색작업, 분리수거함 및 재떨이 위치선정, 레스토랑·편의점 유리 파손면 썬팅보수, 여성샤워실 누수 부분 용접 및 배수구 분리작업 등이 체크리스트에 표기돼 있다.

기자는 문서를 들고 해양대를 졸업한 일등항해사와 만났다. 그는 문건에 적힌 항목을 보고 의아해했다. "국정원이 왜 지적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모두 단순 작업이다. 집으로 비유하면 형광등을 가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또 "조타기·전자변 수리, 비상발전기·마그네틱콘텍터 보수, 메인 엔진 베어링 교환 등 점검 사항이 많을 텐데 그런 사항은 전혀 언급이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직원 휴가계획서 작성·제출, 작업수당 보고서 작성 등의 대목에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보호장비 지정을 위한 합동예비조사(보안측정 등)였다"고 해명했다. 이들은 ▲보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CCTV 추가 신설(2건) ▲비상시를 대비한 객실 내 일본어 표기 아크릴판 제거 ▲탈출 방향 화살표 제작·부착 등만 지시했고, 나머지 사항(96가지)에 대해선 국정원과 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국정원 출신인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도 "(국정원이 아니라) 항만청을 포함한 6개 기관(인천해양항만청·항만공사·해운조합·인천해경·기무사·국정원)의 합동 지적사항이었다"고 거들었다.

선박투자부터
부동산투자까지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혹은 여전했다. 왜 하필 문서 제목을 '국정원' 지적사항이라고 했던 것일까. 기자는 문건에 등장한 P사, G사, '차장님' 임모씨 등과 차례로 접촉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작업을 실제로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불분명했다.

이 시장의 주장대로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 직후 최우선 보고 대상이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의 '해양사고 보고 계통도'에 따르면 세월호는 사고 직후 국정원 제주지부와 인천지부에 보고토록 돼 있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은 '국정원 지적사항'이 작성되기 전날인 2013년 2월25일 작성됐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은 "'국내 1000t급 이상 내항 여객선의 운항관리규정'을 모두 분석한 결과 해양사고 시 국정원에 별도의 보고체계를 갖췄던 여객선은 세월호가 유일했다"고 밝혔다. 가장 규모가 큰 '씨월드고속훼리'의 '씨스타크루즈'도 국정원보고 체계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청해진해운이 정한 것이지 국정원이 문서 작성에 관여한 바 없다"고 못박았다.


그렇다면 국정원의 선박투자는 어떻게 된 일일까. 국정원이 세월호에 투자했다는 직접 증거는 없다. 단 국정원의 상조회이자 외곽조직인 양우공제회가 '선박사업'에 투자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양우공제회에 '의무가입'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례(2010두14800)는 국정원이 작성한 '퇴직금 산출 명세서'에 '양우공제회 퇴직금 산출' 항목이 '공무원연금공단 퇴직금 산출' 항목과 병행 기재돼 있음을 지적했다. 국정원 직원의 급여명세서에는 '양우공제회 기여금 공제내역'이 기재돼 있었고, 국정원 측은 재판 과정에서 "양우공제회 퇴직금은 기여금을 운용하여 발생하는 수익금으로 지급된다"고 증언해 투자 사실을 확인했다.

상조회? 금고?…역할 해석 분분
직원들 급여 공제해 자금 운용

또 국정원 급여명세서에는 '기금' 명목의 돈이 월급에서 빠져나가거나 환급된 것으로 처리돼있었다. 명절비는 현금으로 지급됐는데 '기타 보너스' 항목을 살펴보면 창립기념일, 휴가, 명절은 물론 크리스마스나 김장 명목으로도 현금이 지급된 것으로 드러났다. 일선 경찰관은 "명절 때 보너스는 고사하고 선물세트도 구경해 본 일이 없다"며 "크리스마스 때까지 보너스를 지급한 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국정원의 이런 '현금'은 어디서 난 것일까. 과거 <신동아>는 '양우공제회 미스터리'란 기사에서 '딥 스로트(내부 고발자)'의 말을 인용해 "국정원은 국정원 예산과 양우공제회 기금을 분명히 구분해서 운영하고 있는가"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양우공제회는 국정원법이 아닌 민법에 의거하여 설립됐으나 사실상 국정원의 비밀금고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논지였다.


지금도 양우공제회의 존재는 공무원집단의 영리추구를 금지한 법령(국가공무원복무규정 25조 1호)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교직원공제회'나 '군인공제회' 등 유사 '영리 공제회'는 각각 현직이 아닌 퇴직 공무원이나 경영 전문가를 두고 운영 중이다. 국정감사도 받는다. 하지만 양우공제회는 감사는커녕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 2002년 4월 시민사회단체인 '참여연대'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파크밸리골프장(18홀)의 대주주인 양우공제회를 상대로 감사원의 감사를 촉구했다. 당시 국정원은 파크밸리골프장의 원소유주인 삼양식품으로부터 현금 500억원을 주고 해당 골프장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작성된 파크밸리골프장의 감사보고서를 보면 양우공제회는 운영사인 강원레저개발 주식 100%를 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골프장에 500여억원을 빌려주고 연 8.5%의 이자도 받고 있었다.

양우공제회의 골프 사랑은 남다르다. <월간중앙>은 이들이 소유한 충북 충주시 골프장 부지(약 50만평)가 약 600억원 규모라고 봤으며, 2007년에는 중국 현지의 골프클럽 조성사업을 위한 펀드에 60억원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2006년에는 골프장 개발업체인 제피로스㈜의 지분을 292억원에 인수했으며, 이후 700억원을 투자했다고 전했다.

기자는 양우공제회가 소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N골프장을 추가로 확인했다. 이들이 특정 사업을 위해 국토교통부에 도로점용허가나 도로연결허가 등의 민원을 넣은 사실도 확인했다. 골프 사업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정원 퇴직자들의 모임인 '양지회'는 경기 안양 등에 골프연습장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양우공제회는 부동산 투자에도 관여했다. 검색으로 확인되는 부동산만 수십억원 규모였다. 땅은 물론 일반주택, 공장 등 분야를 가리지 않았다. 물론 직접 투자가 아닌 펀드조성을 통한 간접 투자로 명의를 세탁했다. 돈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다 보니 수익을 올리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지난 2006년 모 은행이 양우공제회 예금 120억원을 횡령했지만 국정원 측은 돈의 성격을 놓고 "비밀"이란 말만 중언부언했다.

국가기밀 핑계로
묻지마 자금운용


양우공제회와 관련한 모든 논란은 그들이 자초한 '비밀주의'에서 시작됐다. 비밀로 해야 할 정당한 근거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국정원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방부 보건복지관실이 2012년 제출한 자료를 보면 양우공제회는 2008년 미래에셋증권이 판매한 항공기펀드(2호)에 67억원을 투자했다. 항공기를 매입해 항공사에 빌려주고 임대료를 챙기는 구조였다. 그러나 태국의 소요사태로 항공기 운항이 중단되면서 양우공제회는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 원금의 10분의 1도 건지지 못했다고 한다.

양우공제회는 대신증권이 모집한 선박펀드에도 참여했다. 대신증권이 작성한 분기보고서(2013년 7월)를 보면 양우공제회로부터 19억69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대신증권은 해양상선에 투자했지만 배가 침몰하면서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혔다. 이 사건은 세월호 참사 후 "국정원이 선박사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근거로 활용됐다.

과연 이 시장의 주장대로 국정원이 양우공제회를 통해 세월호에 투자한 것일까. 이 시장이 피소된 명예훼손 소송에서 그 실체가 드러날지 관심이 집중된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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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