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박근혜 '닮은꼴 정치' 전격 비교

'박근혜 시대'에 드리운 '박정희 그림자'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최근 박근혜정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정치적 사건이 박정희정부 때 일어났던 사건들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닮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부녀지간이라는 태생적 유사성을 감안하더라도 30여년의 시대적 간격을 무시한 닮음은 시대의 역행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박정희-박근혜 부녀의 '닮은꼴 정치'를 들여다봤다.

"헌법재판소의 의원직 상실 결정은 '박근혜 시대'의 헌법재판소가 박정희 때의 헌법 규정으로 국회의원직 상실을 결정한 것이다."
김미희·김재연·오병윤·이상규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에 이은 의원직 상실 결정은 '권한 없는 자의 법률행위'로 무효"라며 이 같이 말했다.

박정희 빼닮은
박근혜식 정치

실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군사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1962년 12월26일 개정한 헌법에는 '소속정당이 해산된 때 그 자격이 상실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는 이와 같은 규정이 사라졌다.

해산된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헌법뿐 아니라 다른 어떠한 법률에도 명시적 규정이 없다. 다만 2004년 헌법재판소가 발간한 책자에는 정당해산 시 '원칙적으로 국회의원의 자격은 상실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은 "박근혜정권은 박정희정권과 데칼코마니다. 박정희정권의 독재정치를 그대로 빼닮았다"라며 "헌재의 정당해산 판결은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으로 정당정치를 후퇴시키고,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외신들도 유사한 평가를 내놨다. <뉴욕타임스>는 통합진보당이 박 대통령에 대해 1961년부터 1979년 사이 철권통치를 한 군사독재자 '박정희의 화신'이라고 가장 강하게 비판해왔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박 대통령과 그의 국가정보원 그리고 법무부의 정치적 승리"라며 "박 대통령의 부친을 포함한 독재자들은 독단적으로 의회와 정치단체를 해산하고 야당을 탄압하기 위해 정당의 활동을 금지하곤 했었다"고 전했다.

<AP통신>도 "헌재의 이번 결정이 박근혜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좌우 정치적 대립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박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1979년 암살당할 때까지 18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사하다고 진보진영이 비판해왔다"고 보도했다.

위기 국면 공안몰이로 전환
표현·집회·결사의 자유 침해

박 대통령은 헌재의 이번 결정을 "민주주의를 지키는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했지만, 안팎에서 '시대를 거스른 역사적 평가'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과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유사하다는 평가도 있다. 8명의 무고한 생명을 사법부의 칼날을 이용해 앗아간 인혁당 사건과 10만명의 당원이 있는 통합진보당을 일부 인사의 문제를 이유로 없애버린 것이 닮았다는 것이다.

인혁당 사건은 유신에 반대하는 인사들에게 대법원이 사형선고를 내린지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한 사건으로, 이후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유인태 의원은 "역사가 40년 전으로 되돌아갔다"고 말했다. 2014년은 1974년과 비교할 수 없는 제도적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지만 헌재의 정당해산 판결은 합법적 테두리를 이용한 역사의 후퇴라는 의미다.


박정희-박근혜
유신 대 신유신

'정윤회 문건 파문'에 대한 박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도 박정희 유신시대 긴급조치 1호와 묘하게 겹친다. 문건이 공개된 직후 나온 박 대통령의 "찌라시 때문에 나라가 흔들리고 있다"는 발언은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2013년 8월 대검찰청은 '사이버 명예훼손사범 엄정처리 지침'을 통해 '영리목적으로 찌라시를 제작, 유포한 경우 구속수사'가 원칙이라는 찌라시 유포에 대한 강경 대응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4년 발표한 긴급조치 1호 3항에 담긴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는 규정과 유사하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연합 서영교 의원은 "아버지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행위를 '유언비어'로 규정했고, 딸 박근혜는 청와대 비선실세를 얘기하는 행위를 '찌라시'라고 단정지었다"며 "두 정권 어디에서도 '국민'이라는 존재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이 나서 국민의 입을 막을 수 있었던 유신독재시절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박근혜정권의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도 과거 독재정권에서나 나올법한 일이다. 유씨의 간첩 혐의는 2심까지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사건 변론을 맡았던 장경욱 변호사는 "박근혜정권이 낡은 공안통치 수법으로 다시 유신시절 간첩조작과 비슷한 사례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21세기 판 '박정희식 정치' 외신들도 우려
시대적 간격 무시한 닮은 정치는 시대역행

일각에서는 박정희정권을 유신정권, 박근혜정권은 신(新)유신정권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민청학련계승사업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4·9통일평화재단 등이 지난 10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두 정권의 통치 패러다임을 "아버지 박정희가 '오리지널 권위주의 체제'였다면 박근혜정권은 '짝퉁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정의했다. 박근혜정권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아버지와 달리 선거로 권력을 장악했지만 억압적인 통치 패러다임은 같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두 정권의 공통점으로 ▲경제성장 일변도 정책 추구 ▲정당과 국회의 역할에 대한 무시와 경시 ▲검찰·국정원 등 억압적 국가기구의 동원과 이용 ▲여론 통제를 포함한 권위주의적 통치 선호 등을 꼽았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모델'을 참조하고 있다"며 "그것도 18년 통치 기간 가운데 '가장 나쁜 박정희'였던 집권 후반 '권력의 동맥경화증'에 걸린 모습을 따라 배웠다"고 지적했다.

태생적 유사성
후천적 유사성

사실 박근혜정권과 박정희정권은 닮을 수밖에 없다. 부녀지간이라는 태생적 유사성을 차지하더라도 박 대통령이 가장 닮고자 했던 사람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사춘기를 청와대에서 보냈고, 20대의 5년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권력의 심장부에서 아버지의 유신정치를 지켜봤다. 

박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이유가 아버지가 만든 나라가 1997년 IMF 등으로 무너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어서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저서에서 "박근혜에게 대한민국은 우리 아버지가 만든 '나의 나라' 이 나라 국민은 아버지가 긍휼이 여긴 '나의 국민' 청와대는 '나의 집' 대통령은 '가업'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이 박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와 현재 사이에는 30여년이 넘는 시대적 간격이 존재한다. 이 간격을 무시하고 '박정희식 정치'를 되풀이하는 것은 시대의 역행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보수언론의 박정희-박근혜 용인술 비교
"박정희의 사람들보다 못한 박근혜의 사람들"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대표적 보수언론이 박근혜 대통령의 용인술을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앞다퉈 내놔 눈길을 끈다.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지난 15일 칼럼을 통해 "박정희 시대를 보고 오늘을 다시 본다면 박 대통령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며 "박정희의 사람들은 도덕성은 별개로 치더라도 능력은 확실했지만 박근혜의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특히 김 논설위원은 "이런 식으로 3년이 더 흘러가면 미래는 더 암담하다"며 "'박정희를 떠올리고 박근혜를 찍은 것이 잘못'이라는 소리가 50대 이상에서 계속 나올 경우, 박 대통령은 영영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없다"고 우려했다.


앞서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도 지난 13일자 칼럼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지도자에게 큰 빚을 졌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이제 그의 후손을 보며 맥 빠진 표정들"이라며 "잦은 인사 실패, 권력 내부의 핵분열만 보고 그러는 것은 아닌 성싶다. 대통령이 '권력의 진돗개들' 싸움에 휘둘려 불황 탈출에 관심이나 있겠느냐고들 한다. 정권 출범 때 성장 목표조차 내놓지 않았던 이유도 알 만하다고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송 주필은 "새해가 들어서면 '아버지에게 신세 진 것 갚는 심정으로 지지한다'던 부채 의식에서 해방됐다는 분들이 부쩍 늘어날 듯하다"며 박 대통령 절대지지층인 50대 이상의 대거 이탈을 경고했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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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