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랩' 육영재단 사태-정윤회 파문 전격비교

그 집안 그 문제 ‘섬뜩한 데자뷰’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정국의 태풍의 핵으로 부상한 가운데 20여년 전 일어난 ‘육영재단 사태’와 유사한 흐름으로 사건이 흘러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두 사건에는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가족과 ‘최태민 일가’가 등장하고, 사건의 발단과 전개 과정이 유사하다. 마찬가지로 결과도 유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로 닮은 육영재단 사태와 정윤회 파문을 전격 비교했다.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은 관련자들의 주장이 엇갈리며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에서 작성한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유출 및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 청와대와 정윤회씨는 “찌라시 수준의 문건을 작성자 측(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전 행정관 등)에서 유출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십상시 vs 7인회
진실공방 돌입

실제로 청와대는 문건 작성을 주도한 조 전 비서관이 이른바 ‘7인회 모임’에서 허위정보를 양산하고,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의 내부 감찰조사 결과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가뜩이나 박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으로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던 터에 아예 쐐기를 박은 셈이다.

청와대가 적시한 ‘7인회’ 멤버는 조 전 비서관, 박 전 행정관, 오모 청와대 행정관, 고모 전 국정원 고위간부, 박지만 EG회장의 측근 전모씨, 언론사 간부 김모씨, 박모 대검찰청 수사관 등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7인회’에 박 회장의 측근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청와대가 조 전 비서관의 배후로 박 회장을 지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 측은 “7인 모임은 조작”이라며 정씨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시나리오를 짜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매체는 “정씨가 끝까지 거짓말을 하면 그때는 박 회장이 직접 나설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두 일가 인물 등장에 비슷한 갈등 구조
사건 발단·전개 과정 유사……결과도?

‘정윤회 문건’에 나오는 십상시 모임을 부인하는 십상시 측 인사들이 청와대 감찰 결과 드러난 7인회 모임을 부인하는 7인회 측과 다투는 희안한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24년 전 1차 육영재단 사태와 유사한 점이 많다. 1990년 8월 당시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1982∼1990)은 동생 박근령·박지만씨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A4용지 12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사퇴한다.
 

2007년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된 편지에는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에게 철저히 속은 죄밖에 없다.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하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다. 언니와 저희들을 최태민의 손아귀에서 건져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최태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언니인 박근혜의 청원(최태민을 옹호하는 부탁)을 단호히 거절하는 방법 외에 뾰족한 묘안이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최씨도 다스릴 수 있고, 언니도 최씨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최태민 vs 동생들
힘겨루기 결과는?

특히 편지에는 “최태민이 언니 박근혜의 말 한마디면 어떤 위기도 모면할 수 있고 또 어떤 상황에서도 구출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며 그의 비위와 전횡을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다. 편지에 담긴 최씨의 전횡은 크게 ▲금전편취 ▲유가족에 대한 인격 모독 ▲부모님에 대한 명예훼손 등 20여건이다.


이 사태로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고 박근령씨가 이사장직을 맡게 됐다는 것이 세간의 일반적 평가다. 외형상 측근 최태민과 동생들 간의 힘겨루기에서 동생들이 이긴 셈이다. 

그러나 당시 박근령·박지만씨가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쓴 이유는 박 대통령을 몰아내려는 의도보다 최씨를 쫓아내기 위한 조치였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동생들보다 최씨의 편을 들어줬다. 즉 동생들의 진짜 목적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내가 아는 한도에서 지금까지 최씨에 대한 의혹의 실체는 없다”며 “만약 최씨에게 문제가 있었으면 아버지 시대나 이후 정권에서 법적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변함없는 믿음을 보냈다.

사고 터져도 끝까지 감싸
혈육보다 우대받는 가신들

1994년 최씨 사망 이후에도 최씨 일가와 박 대통령은 매우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최씨의 다섯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순실씨와 박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내다 10·26 이후 말벗을 하며 깊은 신뢰를 쌓아왔고, 1995년 순실씨와 정윤회씨가 결혼한 이후에는 정씨가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정씨는 1998년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했을 당시 비서실장 역할을 하며 현재의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인선도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04년 이후 공식적으로 박 대통령 주변에서 사라졌지만,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정윤회가 능력이 있어 실무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정씨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심지어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정씨에게 전화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과거도 현재도
혈육보다 측근?

결국 1차 육영재단 사태에서 최씨의 손을 들어줬던 박 대통령이 이번 정윤회 파문에서는 그의 사위였던 정씨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나 현재나 혈육보다 측근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노회찬 전 의원은 지난 9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 동생들이 ‘최태민 일가가 육영재단의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며 문제제기를 해 큰 알력 싸움이 있었다. 그 때 박 대통령은 형제가 아닌 최씨 일가의 편을 들었다”며 “그 최씨 일가가 오늘 날 어찌 보면 정윤회씨와 그 부부로 이름이 내려오는 것이다. 정씨와 대립하는 다른 한 축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과거 육영재단을 둘러싼 갈등이 재현되는 것처럼 보이다. 박 대통령이 그때와 비슷하게 형제보다 측근의 편을 들고 있다”고 말했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육영재단 사태는?


육영재단 사태는 크게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박지만 남매가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최태민씨의 비위 사실을 적시한 편지를 보내 최씨를 무턱대고 비호하는 박근혜의 행동을 저지해 달라고 요청해 벌어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최씨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최씨의 편을 들었고, 그해 11월 이사직을 동생 박근령에게 넘기고 육영재단에서 물러나게 된다. 당시 표면적 사퇴 이유는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재단 안팎의 사퇴 요구지만, 실제로는 동생들에게 밀린 강제 하차라는 분석이 많다. 

2차 육영재단의 사태는 2008년 당시 박근령 이사장을 밀어내기 위한 동생의 공격으로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박 이사장이 직을 내려놓게 되면서 박지만 EG회장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은 부지만 13만2000㎡(4만평)에 달해 개발할 경우 수조원의 차익을 올린 것으로 예상되는 알짜배기 재단으로 평가된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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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