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랩' 육영재단 사태-정윤회 파문 전격비교

그 집안 그 문제 ‘섬뜩한 데자뷰’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이 정국의 태풍의 핵으로 부상한 가운데 20여년 전 일어난 ‘육영재단 사태’와 유사한 흐름으로 사건이 흘러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두 사건에는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가족과 ‘최태민 일가’가 등장하고, 사건의 발단과 전개 과정이 유사하다. 마찬가지로 결과도 유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로 닮은 육영재단 사태와 정윤회 파문을 전격 비교했다.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은 관련자들의 주장이 엇갈리며 진실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실에서 작성한 ‘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유출 및 언론에 공개된 것에 대해 청와대와 정윤회씨는 “찌라시 수준의 문건을 작성자 측(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전 행정관 등)에서 유출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십상시 vs 7인회
진실공방 돌입

실제로 청와대는 문건 작성을 주도한 조 전 비서관이 이른바 ‘7인회 모임’에서 허위정보를 양산하고,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의 내부 감찰조사 결과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가뜩이나 박 대통령의 ‘찌라시’ 발언으로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던 터에 아예 쐐기를 박은 셈이다.

청와대가 적시한 ‘7인회’ 멤버는 조 전 비서관, 박 전 행정관, 오모 청와대 행정관, 고모 전 국정원 고위간부, 박지만 EG회장의 측근 전모씨, 언론사 간부 김모씨, 박모 대검찰청 수사관 등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7인회’에 박 회장의 측근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청와대가 조 전 비서관의 배후로 박 회장을 지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하지만 조 전 비서관 측은 “7인 모임은 조작”이라며 정씨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시나리오를 짜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매체는 “정씨가 끝까지 거짓말을 하면 그때는 박 회장이 직접 나설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두 일가 인물 등장에 비슷한 갈등 구조
사건 발단·전개 과정 유사……결과도?

‘정윤회 문건’에 나오는 십상시 모임을 부인하는 십상시 측 인사들이 청와대 감찰 결과 드러난 7인회 모임을 부인하는 7인회 측과 다투는 희안한 진실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24년 전 1차 육영재단 사태와 유사한 점이 많다. 1990년 8월 당시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1982∼1990)은 동생 박근령·박지만씨가 노태우 대통령에게 A4용지 12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사퇴한다.
 

2007년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된 편지에는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에게 철저히 속은 죄밖에 없다.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하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다. 언니와 저희들을 최태민의 손아귀에서 건져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최태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언니인 박근혜의 청원(최태민을 옹호하는 부탁)을 단호히 거절하는 방법 외에 뾰족한 묘안이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최씨도 다스릴 수 있고, 언니도 최씨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혀있다.

최태민 vs 동생들
힘겨루기 결과는?

특히 편지에는 “최태민이 언니 박근혜의 말 한마디면 어떤 위기도 모면할 수 있고 또 어떤 상황에서도 구출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며 그의 비위와 전횡을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다. 편지에 담긴 최씨의 전횡은 크게 ▲금전편취 ▲유가족에 대한 인격 모독 ▲부모님에 대한 명예훼손 등 20여건이다.

이 사태로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고 박근령씨가 이사장직을 맡게 됐다는 것이 세간의 일반적 평가다. 외형상 측근 최태민과 동생들 간의 힘겨루기에서 동생들이 이긴 셈이다. 

그러나 당시 박근령·박지만씨가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쓴 이유는 박 대통령을 몰아내려는 의도보다 최씨를 쫓아내기 위한 조치였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이후에도 동생들보다 최씨의 편을 들어줬다. 즉 동생들의 진짜 목적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2007년 7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내가 아는 한도에서 지금까지 최씨에 대한 의혹의 실체는 없다”며 “만약 최씨에게 문제가 있었으면 아버지 시대나 이후 정권에서 법적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변함없는 믿음을 보냈다.

사고 터져도 끝까지 감싸
혈육보다 우대받는 가신들

1994년 최씨 사망 이후에도 최씨 일가와 박 대통령은 매우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최씨의 다섯 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난 순실씨와 박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내다 10·26 이후 말벗을 하며 깊은 신뢰를 쌓아왔고, 1995년 순실씨와 정윤회씨가 결혼한 이후에는 정씨가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정씨는 1998년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했을 당시 비서실장 역할을 하며 현재의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인선도 맡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04년 이후 공식적으로 박 대통령 주변에서 사라졌지만,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후보 검증 청문회에서 “정윤회가 능력이 있어 실무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정씨에 대한 강한 신뢰를 드러냈다.
 

심지어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정씨에게 전화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과거도 현재도
혈육보다 측근?

결국 1차 육영재단 사태에서 최씨의 손을 들어줬던 박 대통령이 이번 정윤회 파문에서는 그의 사위였던 정씨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나 현재나 혈육보다 측근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노회찬 전 의원은 지난 9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 동생들이 ‘최태민 일가가 육영재단의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며 문제제기를 해 큰 알력 싸움이 있었다. 그 때 박 대통령은 형제가 아닌 최씨 일가의 편을 들었다”며 “그 최씨 일가가 오늘 날 어찌 보면 정윤회씨와 그 부부로 이름이 내려오는 것이다. 정씨와 대립하는 다른 한 축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과거 육영재단을 둘러싼 갈등이 재현되는 것처럼 보이다. 박 대통령이 그때와 비슷하게 형제보다 측근의 편을 들고 있다”고 말했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육영재단 사태는?

육영재단 사태는 크게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근령·박지만 남매가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최태민씨의 비위 사실을 적시한 편지를 보내 최씨를 무턱대고 비호하는 박근혜의 행동을 저지해 달라고 요청해 벌어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최씨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최씨의 편을 들었고, 그해 11월 이사직을 동생 박근령에게 넘기고 육영재단에서 물러나게 된다. 당시 표면적 사퇴 이유는 방만한 경영으로 인한 재단 안팎의 사퇴 요구지만, 실제로는 동생들에게 밀린 강제 하차라는 분석이 많다. 

2차 육영재단의 사태는 2008년 당시 박근령 이사장을 밀어내기 위한 동생의 공격으로 이뤄졌다. 결과적으로 박 이사장이 직을 내려놓게 되면서 박지만 EG회장의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은 부지만 13만2000㎡(4만평)에 달해 개발할 경우 수조원의 차익을 올린 것으로 예상되는 알짜배기 재단으로 평가된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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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