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한옥 ①전남 구례 쌍산재

지리산과 섬진강에 기댄 명당서 쉬다

지리산에 기대어 섬진강을 바라보는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 일대는 풍수지리의 대가로 꼽히는 도선국사가 머물며 그 이치를 깨달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사도리 상사마을에 자리한 쌍산재는 약 1만6500㎡가 넘는 집터에 살림채 여러 동, 별채와 서당채 등 부속건물, 대숲, 잔디밭까지 있는 가옥이다. 모든 건물이 숙소로 꾸며져 호젓하고 편안한 한옥 체험이 가능하다. 주인장의 고조부가 지은 서당인 쌍산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인 당몰샘이 집 앞을 지킨다. 사도리와 이어지는 토지면 오미리는 천하명당 ‘금환락지’로 알려진 마을이며, 1776년 지어진 고택 운조루와 1929년에 지어진 곡전재가 있다. 따뜻한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지리산온천랜드도 일정에 넣어보자.

고조부가 지은 서당 ‘쌍산재’ 그대로
토지면 오미리 천하명당 ‘금환락지’

땅의 기운이 사람을 살리는 것일까, 사람의 손길이 땅의 힘을 키우는 것일까? 지리산에 기대어 섬진강을 바라보며 자리한 구례군 마산면과 토지면 일대를 돌아보면 땅의 기운과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다루는 풍수지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풍수지리의 대가로 꼽히는 신라 말기의 승려 도선국사가 이곳에 머물며 그 이치를 깨달았다니, 폐부로 들어오는 공기의 맛 또한 예사롭지 않다.

도선국사가 머무른 사도리, 그중에서 윗마을에 속하는 상사마을 초입에 있는 쌍산재에서 하룻밤 묵는다. 해주 오씨인 주인장의 6대조 할아버지가 처음 터를 잡은 뒤, 고조부가 집 안에 서당인 쌍산재를 지어 오늘에 이르는 한옥이다. 여러 차례 보수와 증축을 거친 탓에 고택의 자취는 미미하지만, 약 1만6500㎡가 넘는 집터에 살림채 여러 동, 별채와 서당채 등 부속건물, 대숲, 잔디밭까지 자리한 가옥이다. 모든 건물이 숙소로 꾸며져 호젓하고 편안한 한옥 체험이 가능하다. 개별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갖춰져 불편함도 없다.

폐부로 들어오는
공기의 맛

쌍산재로 들어서기 전에 눈길을 끄는 것은 당몰샘이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인 샘으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그 맛이 달기로 유명하다. 전국 1위 장수마을인 원인이 이 물에 있다 하여 지금도 인근에서 수시로 물을 길러 온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영험한 샘 덕분에 쌍산재의 대문은 왼편 모퉁이로 물러나 있다.
당몰샘 물맛을 보고 쌍산재의 아담한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가 마주 보고, 오른쪽에 무심한 듯 비켜 앉은 건너채가 있다. 갓 쓴 선비 대신 푸성귀 다듬는 할머니가 앉아 계실 듯 정겨운 구조다. 목에 힘이 들어간 양반 가옥이 아니라 소박한 여염집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이유가 특별하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책을 가까이하며 검소하게 살고자 한 선대의 가풍 때문이라는게 주인의 설명이다.


대문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것은 울창한 대숲 사이로 난 돌길이다. 한 발 한 발 돌을 디디며 처마가 멋들어진 별채와 아담한 정자인 호서정을 차례로 만난다. 최근에 새로 지었지만 대숲의 바람 소리와 어우러져 운치 있다.
대숲이 끝나면 아래쪽과는 또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쌍산재의 보석과 같은 공간이 자리한 이곳에서는 두 번 감탄사를 터뜨리게 된다. 대숲이 끝나고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면 첫 번째 감탄사가 나온다. 대숲의 깊은 그늘을 빠져나와 만나는 빛의 세상으로, 하늘과 잔디밭, 동백나무에 둘러싸인 서당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 번째 감탄사는 쌍산재 쪽문을 열어젖히는 순간에 터져 나온다. 쪽문 안으로 쌍산재와 나란히 자리한 저수지가 와락 안겨든다. 물안개 피어오르는 겨울 아침에 조용히 쪽문을 열고 나가 저수지를 산책하는 것은 쌍산재에 머물며 만나는 즐거움 중 하나다.
너른 옛집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서당채는 집안의 자제들이 모여 글을 배우던 곳으로, 이 집의 주인도 서당채에서 천자문을 떼고 학교에 들어갔다고 한다. 글 읽는 소리 들으며 자란 동백나무, 치자나무, 산수유나무가 호위하는 공간이다.

툇마루에 앉아 나무 사이로 내려앉는 햇살을 즐기는 겨울이 따사롭다.집안 아녀자들이 푸성귀를 심어 가꾸던 텃밭은 잔디밭으로 바뀌어 부모 따라 여행 온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돗자리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는 공간이 되었다. 겨울 한옥 체험의 즐거움 중 하나는 따끈한 아랫목을 즐기는 것이다. 쌍산재의 모든 숙소는 아궁이에 불을 지필 수 있다. 보통은 보일러를 가동하지만, 손님들이 원할 경우 직접 아궁이에 불을 땔 수 있도록 준비해준다. 나뭇가지로 불을 피우고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특별한 추억을 남겨보자.
쌍산재에 머물며 지리산 둘레길과 이어진 상사마을을 산책하는 시간도 특별하다. 구불구불한 마을길을 걷고,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카페 ‘단새미’에서 차 한잔과 빵으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 마을 앞으로 펼쳐진 들녘을 바라보며 걷는 산책길은 지리산과 섬진강의 맑은 기운이 전해진다.

지리산 온천랜드서
따뜻한 온천욕

마산면과 이어진 토지면 오미리에는 1776년에 지어진 운조루(중요민속자료 8호)가 있다. 조선 후기 양반가옥의 모습을 보여주는 고택으로, 당시 삼수부사 유이주가 지은 것이다. 안채와 사랑채, 긴 행랑채, 섬진강 건너편 오봉산과 삼태봉의 화기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 전해지는 연지를 볼 수 있다. 가난한 이들이 쌀을 퍼 가도록 ‘타인능해(他人能解)’라 새겨놓은 나무 뒤주도 남아 있다. 10인 이상 단체는 하루 전까지 구례군청 문화관광과로 예약하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둘러볼 수 있다. 

운조루 인근에 자리한 곡전재(구례군 향토문화유산 2003-9호)는 높고 긴 돌담이 독특한 고택이다. 1929년 승주에 사는 부호 박승림이 지은 것을 이교신이 인수해 현재는 성주 이씨 24대손이 거주하며 관리한다. 5채 51칸 규모로 관람 안내 표시를 따라가며 둘러볼 수 있고, 한옥 체험도 가능하다.
섬진강 변에 자리한 섬진강 어류생태관은 다양한 민물 어류를 전시하는 공간으로, 아이들과 함께 둘러볼 만하다. 구례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지리산 온천랜드에서 따뜻한 온천욕을 즐겨도 좋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문화유적탐방 코스 : 쌍산재→운조루→곡전재→화엄사→천은사
생태 코스 : 지리산 둘레길 걷기(운조루, 곡전재, 쌍산재 포함된 오미-방광 구간)→섬진강 어류생태관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쌍계사→최참판댁→운조루→곡전재→쌍산재(숙박)
둘째 날 : 쌍산재→화엄사→천은사→지리산 온천랜드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쌍산재  www.ssangsanje.com
· 운조루  www.unjoru.net
· 곡전재  www.gokjeonjae.com
· 섬진강 어류생태관  www.sjfish.or.kr
· 지리산 둘레길   http://jirisantrail.kr

문의 전화
· 쌍산재   010-3635-7115, 061-782-5179
· 운조루  010-9177-7705, 061-781-2644
·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6
· 곡전재  010-5625-8444
· 섬진강 어류생태관   061-781-3665
· 지리산 둘레길 구례센터  061-781-0850

대중교통 정보
버스> 서울-구례 :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10회(06:30~22:00) 운행, 약 3시간 10분 소요.
구례공영버스터미널에서 구례-문수 농어촌 버스 승차, 상사 정류장 하차.
구례공영버스터미널에서 쌍산재까지 약 4.4km, 택시 약 5700원.
* 문의 : 서울남부터미널 02-521-8550
           전국시외버스통합예약안내서비스 www.busterminal.or.kr
           구례공영버스터미널 061-780-2731
기차> 용산역-구례구역 : KTX 하루 2회(05:20, 13:50), 새마을호 하루 2회(08:35, 18:15), 무궁화호 하루 9회(06:30~22:45) 운행, 3시간~4시간 30분 소요. 구례구역에서 쌍산재까지 약 9.7km, 택시 약 1만 원.
구례구역-구례 : 구룡 농어촌버스 승차, 구례공영버스터미널정류장 하차, 구례-문수 : 농어촌 버스로 환승, 상사 정류장 하차.
* 문의 : 레츠코레일 1588-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정보
순천완주고속도로 구례화엄사 IC→톨게이트 빠져나와 용방교차로에서 구례·지리산국립공원 방면 우측 방향→산업로 따라 약 7.8km 이동→하동·화엄사·마산·토지 방면 우측 방향→구례로 따라 약 600m 이동, 냉천삼거리에서 화엄사·천은사 방면 좌회전→화엄사로 따라 약 1.41km 이동, 당몰샘로 방향 우회전→약 1.16km 이동, 상사리 입구 도착, 마을 초입에 쌍산재.

숙박 정보
· 지리산1박2일펜션 : 토지면 섬진강대로, 010-3450-6696, 061-782-6596, http://jiriilbak.com (굿스테이)
· 섬진강은빛물결펜션 지리피아 : 토지면 섬진강대로, 010-3561-7469, www.jiripia.com (굿스테이)
· 쌍산재 : 마산면 장수길, 010-3635-7115, www.ssangsanje.com
· 한화리조트 지리산 : 마산면 화엄사로, 061-782-2171, www.hanwharesort.co.kr
· 오미은하수행복마을 : 토지면 운조루길, 061-781-5225(오미마을회관), www.omiri.net
· 전망좋은집 : 토지면 섬진강대로, 010-6354-3049, www.goodview.co.kr

식당 정보
· 섬진강 : 다슬기수제비, 토지면 섬진강대로, 061-781-9393
· 지리산회관 : 메기탕, 구례읍 섬진강로, 061-782-3124
· 산아래첫집 : 산채비빔밥, 토지면 직전길, 061-782-7460, www.namdominbak.go.kr/minbak/sanarae
· 송죽원 : 대통밥·돌솥밥, 마산면 화엄사로, 061-782-4015

주변 볼거리
사성암, 화엄사, 천은사, 최참판댁, 쌍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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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