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 몰린 MB ‘물귀신작전’ 막전막후

쥐도 궁지 몰리면 고양이 문다?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사상초유의 국부유출 사건이라 불리는 ‘사자방(4대강사업·자원외교·방위사업)’ 비리 혐의로 궁지에 몰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양한 반격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야권과 시민단체의 국정조사 등을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 요구에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응할 조짐을 보이자,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통령의 반격카드는 과연 무엇일까.

야권에 따르면 지난 국정감사에서 실체가 드러난 사자방 비리로 증발한 국민혈세는 무려 100조원에 이른다. 사상초유의 국부유출사건인 만큼 야권에서는 국정조사 등을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시민단체들도 가세하며 국민여론이 점차 악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침묵하던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서도 “이제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정권실세 넘어
MB 직접 겨냥

당장 야권에서는 이명박정권의 실세들을 넘어 이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해외자원개발 국부유출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노영민 의원은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무총리실 문서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과 측근들이 자원외교 전반을 조직적으로 주도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명박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에너지협력외교지원협의회’를 설치해 자원외교를 주관했다”고 폭로했다.

노 의원은 이어 “이 협의회는 2008~2012년까지 국무총리실장 주재로 총리실 차장과 각 부처 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18차례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에서는 VIP 자원외교 사전조사와 후속조치, 신규사업 발굴, UAE 원전수출, 셰일가스 개발 등 굵직한 자원정책 전반을 기획했다. 실질적 총책임자는 이 전 대통령으로, 필요하다면 국정조사에 당연히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이날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정권의 핵심 국책사업인 사자방은 예산낭비와 투자실패, 부정·비리 등 의혹으로 얼룩져 있다”며 “철저하고 성역 없는 국조와 검찰 조사를 실시하고 책임자는 엄정히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MB, ‘사자방 비리’ 국조 수용 기류에 분노
잦은 회동으로 결속력 강화…친박과 일전?

이처럼 사자방 비리를 규탄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박 대통령도 침묵을 깨고 이 전 대통령 압박에 나서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말 청와대에서 개최한 국무회의에서 “과거부터 내려온 방위사업 비리 문제, 국민혈세를 낭비해온 문제들에 대해서 과감하고 단호하게 가려내서 국민 앞에 밝혀내야 할 것”이라며 “이것은 타협이 될 수 없다. 반드시 밝혀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사자방 비리 중 직접 거론한 것은 방위사업뿐이지만, ‘국민혈세를 낭비해온 문제들’이 4대강사업과 자원외교를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상 사자방 비리 전반에 대한 진상규명을 주문한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이 이미 4대강사업·자원외교 비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또 방위사업 비리에 대해서는 지난달 21일 검찰, 국방부, 경찰청,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 7곳의 사정기관에서 105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정부합동수사단이 출범해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전방위적 압박에
반격카드 만지작

이처럼 전방위적 압박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도 여러 대응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먼저 이 전 대통령이 ‘자서전’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측근들을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당초 자서전에는 동반성장, 저탄소 녹색성장, G20 정상회의·핵안보정상회의 개최, 한·미, 한·EU FTA 등 스스로 치적으로 꼽는 부분들에 대한 경험과 논란이 되고 있는 4대강사업과 자원외교 추진에 대한 당위성 등을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친박계에서 사자방 국조를 수용해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친이계에서는 “이명박·박근혜 관계에 대한 비화는 없다”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겠다” “과거 수집했던 박근혜 X파일 활용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 등 상반된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사자방 조사 및 수사의 키를 쥔 청와대를 향한 친이계의 고도의 심리전으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이 전 대통령은 친이계 결속력 강화를 위한 행보에도 나서고 있다. 친이계 인사들과 잦은 만찬회동을 가지는 한편, 회동에서 사자방 비리에 대해 언급한 “사자방 비리라는 것은 정쟁에 불과하다” “문제없다” 등의 발언을 일부 언론을 통해 흘리고 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이 오는 19일에 열기로 한 만찬에는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이군현 사무총장, 주호영 정책위의장, 김영우 대변인, 김용태·조해진 의원, 김기현 울산시장,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친이계 거물급 인사가 대거 참석해 세를 과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MB자서전 출간 예고로 ‘경고장’
고도 심리전 구사…‘X파일’ 거론

이처럼 이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친이계가 결속력을 강화하며 목소리를 높여나갈 경우 정치적 앙숙인 친박계와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일부 친이계 강경파들은 친박계와의 전면전도 불사할 태세다. 한 친이계 의원은 한 매체를 통해 “2007년 대선후보 경선과정과 지난 정부에서 모았던 ‘박근혜 X파일’ 활용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간 정치권에 소문이 무성했던 박근혜 X파일의 실체가 드러난 적은 없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 측이 지난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국가정보원 등을 동원한 불법사찰로 박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수집했다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다.

김무성 대표 선출 이후 당내 친박계 영향력이 정권 초보다 많이 쇠퇴한 상황에서 친이계가 조직적 행동에 나설 경우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한 친이계 인사는 “4대강은 성공한 사업이고, 자원외교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사업”이라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국조를 받아들인다면 당의 분란이 클 수밖에 없다.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친이계의 거센 반발로 야권의 3대 국조 요구 중 정치적 부담이 비교적 적은 방위사업 비리 국조를 수용하는 선에서 협의점을 찾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방위사업 비리에 대해서만 대규모 정부합동수사단이 출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전 대통령이 <중앙일보>를 통해 4대강사업과 자원외교에 대해 “자원외교의 경우 투자가 성과로 돌아오려면 5~10년 정도는 지켜봐야 하고, 4대강 주변에 실제로 거주하는 일반 국민이나 지방자치단체장들, 특히 호남지역 야당 지자체장들조차 잘된 사업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점을 직접 강조하기도 했다.

죽은 권력 vs
살아있는 권력

친이계의 강한 반발에 박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이정현 최고위원이 사자방 국조 찬성 입장을 밝혔지만, 또 다른 핵심 친박인사인 홍문종 의원이 “지금 단계에서 국조를 얘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대조적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친박계 내부가 혼선을 보이며 이명박정권을 계속 감싸다가는 이 전 대통령을 향한 국민적 분노가 박 대통령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권 출범 3년 차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지금 선긋기를 하지 않을 경우 ‘이명박근혜’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권말기까지 끌려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죽은 권력’인 이 전 대통령의 도발에 ‘살아있는 권력’인 박 대통령이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고 끌려갈 경우 ‘약점이 잡힌 것 아닌가’라는 세간의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전 대통령의 반격에 박 대통령이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주목된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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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