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통장 ‘1억 증발’ 미스터리

믿고 맡겼는데…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갔다

[일요시사 경제팀] 한종해 기자 = 사람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는 이유는 뭘까? 이자를 받기 위해서?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만 가는 금리에 이자 수익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지 오래다. 사람들은 분실과 도난 위험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은행에 예금한다. 은행의 본질적인 기능이다. 그런데 이 본질이 깨졌다. 통장에 있던 거액의 돈이 증발했다. 예금주는 1억1800만원이 사라질 때까지 낌새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해당 사건이 발생한 농협과 금융당국은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농협 통장에서 1억원이 넘는 돈이 주인도 모르게 빠져나간 사실이 알려졌다. 사건은 지난 7월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양에 거주하는 평범한 가정주부 이모씨는 이날 돈이 필요해 농협 CD기로 20만원 인출을 시도했지만 ‘잔액 부족’이라는 메시지를 보게 됐다.

이씨는 단순 오류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통장 잔액은 1억1800만원이었기 때문. 결혼생활 25년 만에 장만한 집을 팔고 통장에 넣어놓은 돈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단독주택을 장만하면서 잔금을 치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어 등장한 통장 잔액을 알리는 메시지를 본 이씨는 충격에 휩싸였다.

남은 건 -500만원

잔액은 마이너스 498만원. 이씨 통장은 마이너스 500만원까지 인출이 가능한 통장이었다. 이씨는 농협 창구를 찾았다. 경위를 듣게 된 이씨는 절망에 빠졌다. 6월26일 밤 10시51분부터 사흘 동안 11개 은행 15개 계좌로 한번에 299만원, 298만원씩 총 41차례에 걸쳐 돈이 빠져나갔다는 것. 기록에는 정상적인 텔레뱅킹으로 남아있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금액 인출 이전에 누군가가 이씨의 아이디로 농협 홈페이지에 접속한 흔적을 발견했다. 인터넷 뱅킹 접속 지점은 중국이었다. 문제는 이씨가 평소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인터넷 뱅킹은 가입한 적도 없고, 은행 업무는 거의 출퇴근 시간에 은행ATM기 또는 텔레뱅킹으로 이용했다.

보이스 피싱이나, 스미싱, 파밍 등 금융사기를 당한 적도 없다. 또한 돈이 빠져나간 시간 이씨의 휴대폰에는 통화기록도 없었다. 각종 비밀번호와 보안카드를 유출하거나 분실한 적도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1억1800만원이 송금된 계좌는 제3자 이름으로 된 이른바 ‘대포통장’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게 전부였다. 경찰은 범인의 윤곽은 물론 계좌 접근 방식조차 밝혀내지 못했다. 결국 대포통장 이름을 빌려준 4명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입건하는 선에서 지난 9월10일 수사를 공식적으로 종결했다.


사고가 여론의 관심을 받자 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보강 수사를 시작했다. 금융감독원도 지난 27일 IT금융정보보호단과 상호금융검사국 등을 농협중앙회에 투입해 조사에 착수했다. 금감원과 경찰은 해당 지역조합의 IT정보보안 실태와 내부 통제 상황을 점검하고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조사력을 모을 방침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도 상황파악에 나섰다.

사고 원인만큼이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보상 여부다. 전자금융거래법 제9조에 따르면 ▲접근매체의 위·변조로 발생한 사고 ▲계약체결 또는 거래지시의 전자적 전송이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전자금융거래를 위해 전자적 장치 또는 정보통신망에 침입해 부정한 방법으로 획득한 접근매체의 이용으로 발생한 사고 등에 대해 해당 금융사가 손배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용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 그 책임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자의 부담으로 할 수 있다고 예외 규정을 두고 있다.

예금 1억1800만원 감쪽같이 인출
범행수법 오리무중…보상은 누가?

하루 아침에 1억1800만원을 날린 이씨는 월세살이를 전전하고 있다. 농협은 사건이 전해진 초기 ‘내부정보 유출 등 책임이 없어 보상하기 힘들다’며 ‘버티기’에 돌입했다가 파장이 커지자 그제서야 보험사를 통해 보상심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현재 농협은 농협손해보험의 ‘전자금융업자배상책임보험’에 가입돼 있다. 보험금 지급을 심사 중인 농협손보가 이번 사고를 보험금 지급 사유라고 판단할 경우, 전액이 해당 농협에 보험금으로 지급된다.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는 사안은 신종 해킹이나 피싱 등 전자금융사기다. 농협 측의 관리부실이나 보안시스템 허점, 예금자의 과실로 이번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지면 농협손보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농협 측의 보안상 문제라면 배상 책임은 농협이 져야한다.


농협 측은 “텔레뱅킹 이체는 고객 계좌번호, 통장 비밀번호, 자금이체 비밀번호, 보안카드번호, 주민등록번호, 고객전화번호가 있어야 가능하다”며 “이들 정보가 유출되는 경우는 고객의 고의·과실이나 금융기관 내부 유출에 의한 것인데 자체 확인한 결과 내부에서 정보가 유출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이씨가 농협카드도 만든 적이 없어 올해 초 발생한 카드사 정보유출 대란 때 신상 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도 낮다.
 

일부 전문가들은 보안카드번호가 유출됐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보안카드번호를 제외한 계좌번호, 통장·자금이체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는 이미 알려진 해킹기술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전자금융사기 피해소송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이준길 변호사는 이씨의 전화가 도·감청이 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휴대폰으로 보안카드번호를 누를 때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진 번호 소리를 범인들이 분석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농협은 주파수 도·감청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2007년부터 도입했다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은행은 모르쇠

농협의 허술한 보안시스템도 구설수에 올랐다. 현재 국내 금융사들은 해킹 등에 대비해 기존에 발생한 해킹 기업을 본부 전상망에 데이터베이스화 해놓고 해킹이 감지되면 차단하는 시스템인 모니터링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부 금융사에서는 고객의 평상시 거래 패턴을 데이터베이스화 해 이상한 거래형태가 나타나면 고객에게 통지하고 확인하는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농협은 모니터링시스템만 갖춰 놓았다. 농협이 FDS를 도입했다면 나흘 간 41차례 인출이 일어나는 중간에 이씨에게 확인 전화가 갔고 사고를 중간에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농협은 현재 FDS에 대한 테스트 중에 있다. 빠르면 12월 초, 늦어도 1월 중순안으로 구축을 완료할 예정이다.

사건이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농협 고객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농협 통장을 옮기겠다는 사람들까지 나오고 있다.

 

<han10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대카드 ‘15억 증발’ 미스터리

현대카드에서 전산 오류로 인해 1300명이 넘는 고객의 카드대금이 이중 결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카드 내부 전산시스템에 문제가 발생해 고객 1364명의 계좌에서 약 15억원의 카드대금이 이중으로 결제됐다.


피해를 본 고객들을 은행이 아닌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카드 결제계좌로 해놓고 매달 24일을 카드 결제일로 지정한 고객들이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CMA 계좌는 금융결제원을 통해 카드대금이 인출되는데 결제일인 24일 정상 인출된 것을 내부 전산시스템이 읽어내지 못해 26일 다시 인출됐다”며 “이중 출금된 금액을 바로 환불 처리해 입금을 완료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이번 사고의 원인과 과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대카드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해>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