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주무르는 ‘예산소위’ 두 얼굴

‘쪽지예산’ 없다더니 실제로는 ‘문전성시’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예산정국의 하이라이트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이하 예산소위)가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예산소위는 국회 상임위원회(이하 상임위) 예비심사를 거쳐 올라온 정부 예산안을 최종심의·결정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기구다. 그간 예산정국 때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른바 ‘쪽지예산’도 예산소위 심사단계에서 기승을 부려왔다. 이를 막기 위해 여야는 앞다퉈 “이번만큼은 쪽지예산이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과연 그럴까.

내년 예산안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예산소위가 지난 16일 첫 회의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이에 발맞춰 예산소위 회의장과 예산소위 위원 사무실 앞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정부부처 공무원, 국회의원들이 예산소위의 예산 삭감을 막거나 쪽지예산을 끼워 넣기 위해 로비를 하고자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예산소위의 힘

당초 376조원 가량이었던 정부 예산안은 상임위 심사에서 13조5690억원 가량 증가돼 예산소위로 넘어왔다. 상임위 심사 증가분 중에는 지역구 선심성 쪽지예산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간 쪽지예산은 예산소위 심사에서 갑자기 생겨 최종 확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여야가 앞다퉈 “이번에는 쪽지예산이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며 상임위 예비심사 단계에서 쪽지예산이 대폭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새누리당 예결특위 간사인 이학재 의원은 “국회가 매년 밀실·졸속예산을 편성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예산을 힘의 논리, 친소관계로 끼워 넣으니 엉터리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는 쪽지뿐 아니라, 카톡·문자예산 모두 받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예결특위 간사인 이춘석 의원도 “일체의 쪽지예산을 없애고 예산심사의 투명성을 확보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러나 “쪽지예산을 없애겠다”는 발언은 매년 나왔고,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지역구 예산을 많이 끌어올수록 능력있는 의원으로 평가받는 우리나라 정치풍토상 이런 행태가 매년 반복된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여야의 공언이 허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쪽지예산을 제도적으로 없애기 위해 발의된 법률 개정안이 2년이 다 되도록 소관 상임위에 방치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싣는다. 매년 되풀이하듯 쪽지예산 근절을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의지조차 없다는 얘기다.

정부부처 공무원, 국회의원 로비 ‘여전’
매년 하는 ‘근절 약속’ 이번에도 허언?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2년 내에 제출된 국회법 개정안 가운데 각 상임위의 예산안 예비심사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은 모두 6건이다. 이 개정안들은 예산소위가 상임위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경우를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새정치연합 이언주 의원이 지난해 1월 발의한 개정안은 예산소위가 상임위에서 심사한 예산을 증액 또는 감액하는 모든 경우에 상임위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쪽지예산을 막기 위한 개정안이 수년간 잠자고 있는 것은 국회가 이를 바꿀 의지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특히 홍문표 예결위원장은 “선의(?)의 쪽지예산은 집어넣겠다”며 쪽지예산 경쟁에 공개적으로 불을 지폈다. ‘선의’의 개념이 모호한 만큼 일단 지역구를 챙기고 보자는 식의 묻지마 로비가 이뤄질 여지를 열어준 것이다.

비교섭단체라는 이유로 예산소위에 한 명의 위원도 참여시키지 못한 정의당도 쪽지예산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유감스럽게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역시 예산소위가 교섭단체인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국회의원들로만 꾸려졌다"며 “하지만 심의기간 동안 가만히 있지 않겠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예산을 만들기 위한 쪽지예산을 매일 예산소위에 공개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예산소위 위원으로 내정됐다가 첫 회의를 앞두고 갑자기 교체된 이정현 의원이 “예산소위 복도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호남 예산 지키기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것도 상임위 심사에서 밀어 넣은 예산은 지키고, 추가로 쪽지예산을 확보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쪽지예산 반복?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지난해 예산소위 위원을 맡을 때 지역구 예산을 두둑이 챙겼던 것이 사실”이라며 “만약 올해까지 했다면 지역구에 큰 건물 몇 채를 더 지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임위 심사에서 이미 13조원 가량의 예산이 증가했지만, 예산소위 심사에서 추가로 쪽지예산이 증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정상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밀실·졸속 편성된 쪽지예산이 늘어나면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올해 1~8월 누적 재정적자가 글로벌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인 34조7000억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쪽지예산을 통한 예산 증가는 국가재정에도 상당한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carpedie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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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