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명장 류중일 삼성 라이온즈 감독

사자들 조련 “쉽지 않았죠”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 프로야구의 새 역사를 썼다.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연거푸 제패하면서 통합우승 4연패라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과거 해태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 4연패를 일궈낸 적이 있지만 그 중 정규시즌 우승은 한 번 뿐이었다. 삼성, 그리고 류중일 감독이 만들어낸 통합 4연패는 그 의미가 깊다. 명장의 리더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과였을 지도 모른다.

 
류중일 감독이 사상 첫 통합 4연패 금자탑을 쌓았다. 삼성 라이온즈는 지난 1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와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11-1로 완승을 거두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삼성은 2011시즌 이후 4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며 통합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 프로야구
새 역사 썼다
 
류 감독은 경기를 끝낸 뒤 “기분이 굉장히 좋다. 11월11일은 평생 못 잊을 거 같다. 1이 네 개라 1등을 네 번 하는 날”이라며 “삼성을 사랑하는 팬들이 성원해준 덕분에 선수들이 힘을 내서 4연패를 할 수 있었다. 팬 분들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동안 ‘용병 잔혹사’를 겪은 삼성은 올 시즌 마운드에서는 밴덴헐크와 마틴, 타선에서는 나바로의 덕을 제대로 봤다. 이에 류 감독은 “올해는 용병 덕을 봤다. 그동안 용병 복이 없었는데 올해는 마틴, 헐크, 나바로가 잘 해줘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류 감독은 “시리즈 MVP는 나바로인테 혹시 추천하고 싶은 선수가 있냐”는 질문에 “윤성환을 추천하고 싶다. 첫 게임에서 지고 작년처럼 홈에서 두 번 지면 어떡하냐 했는데 윤성환이 잘 막아줬다”며 “5차전도 극적으로 이겼지만 내일까지 갔으면 밴 헤켄에게 말려서 우승 놓칠 수도 있었는데 윤성환이 잘 끊어줬다”고 대답했다.
 

류 감독은 덕장이라는 말 보다는 지장이라는 소리를 더 듣고 싶어 했다. 그는 “(지장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우리 그룹에 ‘스타비스(통합전략 야구정보시스템)’라고 타자와 투수 정보가 다 들어있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걸 틈나는 대로 많이 봤고 상대 선발 투수 유형도 보고 컨디션 좋은 타자들도 보고 공부를 많이 했다. 앞으로 늘 공부해서 내년 5년차도 우리 선수들을 알고 더 잘 대처하겠다. 상대 전력도 더 파악해서 선수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2011년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우승했던 것과 지금을 비교해달라는 질문에는 “지금이 더 좋다. 지난 것은 다 잊어버린다”며 “항상 지금이 가장 기분 좋다. 올해는 좀 개인적으로 조금 기가 많이 빠졌었다. 아시안게임도 힘들게 했고, 그때 금메달 못 땄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도 들고, 우리가 매직 넘버를 남겨두고 5연패해서 2위로 떨어질까도 걱정했다. 신경을 많이 썼다. 다행히 정규리그에서 4연패하고 약 보름 이상 훈련을 많이 했는데 생각 외로 여러 가지 작전 야구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오늘은 편하게 야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년을 걱정했다. 류 감독은 “내년에도 최선을 다 하겠다“며 5연패 프로젝트 가동을 예고했다.
 
사상 첫 통합우승 4연패 쾌거 달성
2011년부터 정규·한국시리즈 우승
 
류중일 감독은 프로야구 사상 첫 통합 4연패를 이끌었다. 류 감독은 2011년 삼성 사령탑에 임명된 이후 4년 모두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운과 복이 따르는 지도자라는 얘기도 돌았다. 세간에는 선동열 전 감독의 성과가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통합 4연패는 감독의 역량이 매우 중요한 성적이다. 리더의 지도력과 열정 없이는 이뤄낼 수 없는 것이다. 이번 기록은 구단과 선수뿐 아니라 야구인 모두가 인정하는 대기록이다. 과거 ‘왕조 해태’와 현대, SK 등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류 감독은 최강팀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그는 스스로 운장, 복장, 덕장이라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제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BB아크’라는 야구사관학교를 만든 그는 올 시즌 최고 히트 상품으로 꼽은 박해민을 비롯해 이지영·심창민 등의 성장을 유도하며 세대교체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류 감독은 믿음야구의 선구자다. 그의 야구는 신뢰가 중심이다. 이승엽과 임창용 등 베테랑 선수가 부진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박한이는 “감독님은 베테랑에게도 똑같이 기회를 준다. 내가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것도 감독님의 영향이 컸다”고 고마워하기도 했다. 넥센과의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박석민과 김상수가 부진했다. 이에 대해 류 감독은 “믿어야지 우야겠노”라며 6경기 모두 선발 명단에 포함시켰다. 이러한 감독의 믿음이 선수단에게 용기가 되어 통합 4연패를 달성했다는 것이다.
 

류 감독을 얘기할 때 ‘형님 리더십’도 빼놓을 수 없다. 코칭스태프 및 선수들과 소통하는 대표적인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 1월13일 구단 시무식에서는 1·2·3군 코칭스태프 회의를 소집해 3시간 여의 마라톤 회의를 했다. 1월 초 류 감독이 마련한 1박2일 골프 및 워크숍에 참석한 한 코치는 유익한 시간이라고 반기기도 했다.

푸르게 빛난
신뢰의 리더십
 
의견을 주고받을 때는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 감독을 무서워하면서도 할 얘기는 다 한다. 그만큼 열린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감독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다고 전해진다.
 
물론 언제나 유한 건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강하게 몰아붙이며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류 감독은 시즌 초 “올 시즌에는 엄마 리더십을 갖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면서도 무서운 사람이 엄마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4승8패로 부진하던 지난 4월17일 대구 두산전이 우천 연기된 뒤에는 비 내리는 그라운드에서 투수·타자 합동 러닝을 지시하기도 했다. 시즌 막판 5연패에 빠졌을 때에는 아직 1등을 확정한 게 아니라고 했고, 2승2패로 KS 5차전을 앞둔 휴식일에는 “후회없이 하자”며 전원 훈련을 유도했다. 그는 중요한 순간에 선수들을 소집해 독려한다.
 
류 감독은 “우승하고 환호하고 헹가래 받고 인터뷰가 끝나면 ‘아, 내년에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밖에 안 한다”고 말했다. 5연패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에는 큰 과제가 있다. 바로 ‘노령화’ 문제다. 삼성은 노장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진갑용은 올해 40세이며 이승엽과 임창용은 내년에 39세, 박한이는 36세, 배영수와 윤성환은 34세, 채태인은 33세가 된다. 신·구의 조화를 꾀하며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진행하고 있지만, 삼성 노장들의 존재감이 무겁기에 세대교체의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외부적인 환경의 변화도 크다. 내년부터 KT가 1군 무대에 진입하면서 10개 구단 체제가 가동된다. 새 감독이 5명 등장한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삼성 외에도 걸출한 FA가 여럿 시장에 나온다. SK는 최정(27)을 포함해 6명, 롯데는 4명, LG·KIA·넥센은 2명씩 FA 자격 취득이 가능하다. FA의 이동은 내년 시즌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류 감독 리더십은 이러한 요소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뛰어나기에, 기대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류 감독의 야구역사가 곧 삼성야구의 역사다. 류 감독은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 경북고를 졸업하고 1987년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그해 한국시리즈에 처음 출전했지만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버티고 있는 해태에 4전 전패를 당해 잠실구장을 밟지도 못했다. 김재박 이후 최고의 유격수로 평가받으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신인왕의 영광고 빙그레 이정훈에게 내주고 말았다.
 
9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LG트윈스에게 4전 전패를 당했다. 잠실구장에서 2번, 대구구장에서 2번을 모두 지는 치욕을 겪었다. 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또 해태를 만났다. 삼성은 4차전까지 앞서고 있어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삼성은 잠실구장에서 열린 5, 6, 7차전에서 내리 3연패를 당했다. 이렇듯 선수시절 류 감독에게 잠실구장은 암흑 그 자체였다. 류 감독은 한국시리즈 기간 “선수로서 원 없이 우승해본 박한이가 부럽기도 하다”라며 묘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래도 류 감독은 4연패도 선수시절의 한을 풀었다.
 
지도자 후 선수시절 한 풀었다
취임 후 한번도 우승 안 놓쳐
 

류 감독은 선수 생활 은퇴 이후 2000년 곧바로 김응용 감독 밑에서 수비 및 작전주루 코치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명암이 교차됐다.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코치로 활동하던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2승4패로 무릎을 꿇었다. 이때 김응용 감독의 ‘불패신화’가 깨졌고 류 감독은 또 땅을 쳐야했다.
 
2004년 한국시리즈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비 내리는 날 잠실에서 사상 처음으로 9차전이 열렸다. 삼성은 현대에게 패해 2승3무4패로 패권을 내줬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5년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선동열 감독 시절 류중일 코치는 2005년과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잇따라 축배를 들었다. 2005년에는 두산에 4전 전승을 거뒀고 2006년에는 한화를 4승1무1패로 따돌렸다.
 
당시 류 감독은 코치로서 11년간 엄청난 경험을 쌓으면서 좋은 감독이 될 자격을 하나씩 갖췄다. 현재 삼성야구의 근간 중 하나인 촘촘한 수비 역시 류 감독이 코치시절 확립한 수비시스템이 보완돼 발전한 것이다.
 
류 감독은 선수와 코치로 국내 최고 감독들을 전부 다 모셔봤다. 그 중에는 김응용, 김성근, 선동열 등 내놓으라 하는 명장들이 포함돼 있었다. 류 감독은 언젠가 그 감독들의 좋은 점만을 본받은 게 지금 감독 생활을 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고 했다. 김응용 감독의 뚝심과 김성근 감독의 철두철미한 마운드 운영 등 지금도 회자되는 명장들은 확실히 참고할 점이 있다. 류 감독을 그걸 포용하는 매우 중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이 SK에 4전 전패를 당하자 선동열 감독이 경질되면서 류 감독이 마침내 삼성 유니폼을 입은 지 24년만에 사령탑에 올랐다. 류 감독은 준비가 돼 있었다. 믿음과 신뢰, 확실한 선수육성 및 관리 시스템으로 승승장구했다. 감독으로 처음 나선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과거 삼성 선배였던 이만수 감독이 이끄는 SK를 4승1패로 제압했다. 5차전이 열린 잠실구장에서 초보감독으로 영광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이듬해에도 SK 이만수 감독을 상대로 잠실에서 2회 연속 정상에 올랐다. 당시 류 감독은 우승 직후 “2010년대는 삼성이 지배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담은 그대로 적중했다.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두산을 꺾었고, 2014년에는 넥센을 맞아 잠실에서 4승2패로 4회 연속 우승을 확정했다. 
 

류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뒤 삼성은 4번의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했다. 3번은 잠실구장에서, 1번은 대구구장에서 샴페인을 터뜨렸다. 이번 한국시리즈 5차전을 앞두고 류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잠실만 오면 잘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삼성은 대장정의 마침표를 승리로 마무리했다. 
 
이처럼 지난 4년 간 실패를 몰랐던 삼성이지만, 최근 2년간 부상, FA, 해외진출 등으로 팀 전력이 많이 약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리 준비한 매뉴얼에 따라 플랜B를 적시에 가동했다. 지난 2년 연속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아시안게임으로 잠시 삼성을 돌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삼성은 흔들리지 않았다.
 
류 감독 개인의 성장이 곧 삼성의 성장이었다. 류 감독이 최고의 유격수에서 최고의 감독으로 올라서는 동안, 만년 우승문턱에서 주저 않았던 삼성야구도 우승을 밥 먹 듯하고, 한국야구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리딩구단으로 거듭났다. 류 감독 스스로가 최고의 리더가 되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류 감독이 강한 리더로 거듭나면서 삼성야구도 강력해졌다.

쉬지 않는 야통
내년 5연패 시동
 
류 감독은 선수시절부터 감독을 맡고 있는 올 시즌까지 28년간 삼성에서 뛰었다. 삼성야구에 류중일 감독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류 감독과 삼성은 함께 성장했고, 새 역사를 창조했다.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는 삼성야구의 업적임과 동시에 류 감독이 일궈낸 업적이기도 하다. 그의 뜨거운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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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