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계약서 ‘김석동 사인’ 수수께끼

두 장의 2·17 합의서…진본은?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외환은행이 새 주인을 맞이한다. 하나금융지주다. 하나금융은 지난 20012년 2월17일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3년 만에 깨졌다. 그런데 당시 약속했던 ‘2·17 합의서’를 두고 최근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조가 진실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같은 합의서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사인이 있는 문서와 없는 문서로 갈렸다. 각자 가지고 있는 문건 둘 중 하나는 가짜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가 조기통합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서명이 들어간 문건을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하나는 진짜
하나는 가짜

2·17 합의서는 지난 2012년 2월17일 하나금융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사들이면서 맺어진 것이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외환은행 노조가 서명 주체로 돼 있다. 합의서의 주요 골자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5년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인위적인 인원감축 금지, 생산성 향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이익배분제 도입 등의 세부적 내용도 담겨 있다.

합의 당사자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정부 측 입회인 자격으로 합의서 조인식에 참석했다. 당시 노사 양측은 합의서에 각각 서명하고 문건을 나눠 보관했다.

그런데 최근 이 문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서명을 했는지가 논란거리다. 함께 작성한 2·17 합의서는 김석동 위원장의 서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개로 나눠졌다. 애초에 두 가지 버전의 합의서가 만들어졌다느니, 원본에 없는 김 전 위원장의 서명이 나중에 들어갔다느니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노조 측이 갖고 있는 합의서에는 김 전 위원장의 서명이 담겨 있다. 5년간 독립보장을 주장하는 외환은행 노조는 당시 김 위원장이 참석해 서명한 것을 근거로 2·17 합의 일종의 노사정 합의라고 의미를 부여해왔다. 하지만 사측이 보관중인 합의서에는 김 전 위원장의 이름과 서명이 없다. 이렇게 되면 하나는 진짜, 하나는 가짜가 된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국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내용의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 추진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감에서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17 합의서에 대해 정부차원의 보증을 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합의서 마지막에 ‘노사정 합의서’라고 병기돼 있으면 노사정 합의라는 것”이라며 “입회인 자격으로 서명했지만 노사정 합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과거 합의 당시 김 전 위원장이 서명한 것에 대해서 별다른 의미가 없다”며 “노사정 합의라기보다 노사합의의 성격”이라고 회피했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단순 입회자로서 참여했다는 이야기다.

이어 그는 “고용노동부와 협의가 있는데 노사정 합의라기보다 노사합의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부처의 의견”이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합의서에는 ‘입회인, 금융위원장 김석동’이라는 김 전 위원장의 사인이 있는데 사인이 없는 합의서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구속력 있는 합의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중국에서 체류중이던 김승유 전 하나금융회장도 국감장에 출석했다. 김 전 회장은 2·17 합의에 대해 노사 간 합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노사 합의인데 김석동 전 위원장이 서명하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합의서 원본에는 당시 김석동 전 위원장의 서명은 물론 이름 자체도 없다”고 답했다.

당사자인 김석동 전 위원장의 입장은 들을 수 없는 상태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지난 3월 시민단체로부터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임에도 외환은행 인수 및 철수를 승인한 혐의로 고발당한 바 있다. 외환은행 인수 당시 금융당국 책임자로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산업자본임을 알고서도 이를 묵인한 혐의에서다.

하나-외환 노조 조기통합 앞두고 대립
론스타 매매 때 맺은 문건 놓고 공방


외환 노조는 합의서에 김석동 전 위원장의 직위와 이름이 들어갔고, 김 전 위원장이 직접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당시 합의가 노사정 합의에 해당하며, 이 합의를 깨는 조기통합 관련 협상은 정부가 중재해야 응할 수 있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아울러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 2·17 합의서에 서명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한 의원은 사진을 통해 김승유 전 회장이 위증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 의원이 공개한 사진에는 김 전 위원장이 김승유 전 회장과 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의 사이에 앉아 서명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김승유 전 회장이 김기철 전 노조위원장이 서명하는 모습, 서명을 마치고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김승유 전 회장과 김기철 노조위원장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도 공개됐다.

한 의원은 “금융위 국정감사에서 김 전 회장이 ‘노사정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금융위원장의 사인이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은 위증”이라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금융위가 조기통합 문제에 뒷짐 지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애초 두개 버전?
나중에 서명했다?

그동안 2·17 합의서는 하나와 외환은행의 합병 기준으로 인식돼왔다. 하나금융지주는 5년간 독립경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3년 만에 깨졌다. 지난 7월 김정태 하나지주 회장은 조기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올해 안에 통합하겠다는 의중을 보였다. 이후 하나금융그룹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한 2·17 합의를 깨고 3년 만에 조기통합을 추진한 명분은 경영 위기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지 3년이 다 돼가지만 그룹 계열사 간 시너지는 전무하고, 외환은행의 기초 체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금융은 투 뱅크(two bank) 체제로는 조직의 장기적 생존기반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외환 은행은 통합 이사회를 개최하고 공식적인 통합절차에 착수했다. 29일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인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결국 합병 계약을 맺었다. 하나·외환 은행은 이날 각각 이사회를 열어 조기 합병을 의결했다. 이어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를 거쳐 두 은행 간 합병 계약을 맺었다. 합병 비율은 하나은행 보통주 1주당 외환은행 보통주 2.97주다. 사실상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흡수 합병하는 셈이다.

하나금융은 이달 초 금융 당국에 합병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승인에 최소 60일가량 걸릴 예정이다. 주주총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통합법인은 내년 2월쯤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도 통합법인 출범 일을 일단 내년 2월1일로 잡고 있다.

하나금융은 조기통합 시 연간 비용절감 2692억원에 수익증대 효과 429억원까지 더해 매년 3121억원에 이르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도 두 은행이 합병하게 되면 연내 총자산 334조원의 메가뱅크가 탄생하게 된다. KB국민은행(292조원), 우리은행(273조원), 신한은행(263조원)을 압도한다.

‘5년 독립보장’ 금융위원장 서명
외환 쪽 문건 ○…하나 쪽 문건 X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하나·외환은행 간의 통합을 명분으로 30일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내년 3월 임기를 4개월 남기고 은행장직을 내려놓은 것. 통합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외환은행 인수 이후 국내 금융환경이 변화하면서 투 뱅크 체제를 유지하는데 한계에 직면했다는 점도 조기 통합의 이유다.


합병에 따른 존속법인은 외환은행으로 남기기로 했다. 순익 규모가 더 적은 외환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해야 법인세를 더 적게 내는 등 세테크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합병당하는 외환은행 임직원들의 화를 달래보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나금융의 존속법인 양보에는 은행의 명칭을 염두한 또 다른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합병 은행 명칭은 통합추진위원회에서 추후 결정하기로 했지만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하나금융지주는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아직 명칭에 대해 ‘하나’라고 결정된 바 없고, 통합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저희로서는 저성장, 저마진에 직면한 상태인 만큼 빨리 합쳐서 다른 은행에 없는 장점으로 위기를 돌파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와의 대화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사회가 끝났다고 대화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대화를 할 것이고, 지켜봐 달라”고 답했다.

내부적인 합병 절차를 마무리 짓고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이미 공표한 대로 조만간 물러난다. 초대 합병은행장으로는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달 초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소통’에서 돌연 ‘강경’으로 태도를 바꿔 직원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다. 외환은행은 지난 18일부터 인사위원회를 열어 대규모 직원 징계 조치에 들어갔다.

지난 3일 외환은행 노조가 개최하려던 임시조합원 총회에 참석했거나 참석하려던 직원 898명을 징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금융권 사상 단일사안으로는 최대 규모의 징계 조치였다. 내부에서는 통합은행장에 대한 야심이 외환은행 출신 ‘외환맨’인 김 행장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김 행장은 외환은행 일부 직원들에게서 ‘선배가 배신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외환은행은 노동조합의 조합원 총회 참석과 관련해 사상 최대 규모로 추진하던 직원 징계를 풀어주기로 했다. 당초 900명이던 징계 대상을 38명으로 대폭 축소하기로 한 것. 애초 898명에 2명이 추가된 900명이 징계 대상으로 분류되다가 이 가운데 862명(95.8%)이 제외된 것이다. 외환은행에 따르면 징계 대상인 38명은 견책 이하 경징계 21명, 중징계 17명(정직 3명, 감봉 14명)이다. 중징계 대상은 애초 56명으로 분류됐으나, 이 역시 약 3분의 1로 줄었다.

이러한 사측의 결정에 외환노조도 태도를 바꿨다. 사측과의 대화를 거부했던 외환 노조도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를 하나금융지주에 제의했다. 이로써 평행선을 달리던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 작업이 급물살을 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어떤 합의서가
법적효력 있나

노조는 “조건 없이 사측과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조기통합 반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은 “노조의 입장은 변함이 없고 대화는 2·17 합의 기반으로 진행돼야 한다”면서도 “조직과 직원들, 금융산업의 발전 등을 위한 것이라면 2·17 합의를 뛰어넘는 조건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하나금융과 외환노조가 각각 가지고 있는 2·17 합의서의 위조 여부를 떠나 어떤 합의서에 법적효력이 있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 둘 중 하나의 법적효력이 있는 2·17 합의서가 하나-외환 통합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원히 묻히는 론스타 의혹들

외환은행은 한때 훌륭한 국산 금융브랜드로 꼽혔다. 능력있는 직원들이 모인 유망했던 은행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2003년 론스타의 매각 후 외환은행은 이제 새 주인을 맞이한다. 하나금융지주 품에 안기면서 외환은행도 조만간 금융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은행 관계자들은 아직까지도 외환은행에 대해 이대로 사라지기엔 아까운 은행으로 평가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매각됐지만 그렇게 쉽게 사라질 은행이 아니었다는 부연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던 과정은 아직도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론스타 게이트의 ‘몸통’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인지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시계추를 돌려 2003년 론스타로의 외환은행 매각이 사심이 끼어든 음모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관련자 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외환은행 직원이 돌연사로 죽었고, 금감원 직원은 과로사로 죽었다. 두 사람은 외환은행 매각의 심사 서류를 다룬 핵심 실무자였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핵심 비밀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외환은행의 BIS 자기자본 비율을 6.1%대로 낮춰 잡은 의문의 팩스는 외환은행 직원의 컴퓨터에서 작성됐다. 금감원 직원은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51%에 달하는 외환은행 지분을 취득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현재 두 사람의 근거 자료는 모두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검찰 수사도 중단된 상태다. 이제 운명의 수레바퀴는 외환은행이 새 주인 하나금융지주를 만나는 지점까지 왔다. 론스타로부터 하나금융으로 다시 팔린 외환은행은 앞으로 간판마저 내려야 할 판이다. 기구한 운명 속에서 외환은행 직원들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의 이면에는 구조조정 대상이 돼야 했던 직원들의 아픔과 희생이 서려있다. 은행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으로 들어가면서 실타래처럼 얽힌 론스타의 인수 과정 의혹도 이대로 묻혀질까 우려하고 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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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