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계약서 ‘김석동 사인’ 수수께끼

두 장의 2·17 합의서…진본은?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외환은행이 새 주인을 맞이한다. 하나금융지주다. 하나금융은 지난 20012년 2월17일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3년 만에 깨졌다. 그런데 당시 약속했던 ‘2·17 합의서’를 두고 최근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조가 진실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같은 합의서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사인이 있는 문서와 없는 문서로 갈렸다. 각자 가지고 있는 문건 둘 중 하나는 가짜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가 조기통합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서명이 들어간 문건을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하나는 진짜
하나는 가짜

2·17 합의서는 지난 2012년 2월17일 하나금융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사들이면서 맺어진 것이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외환은행 노조가 서명 주체로 돼 있다. 합의서의 주요 골자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5년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인위적인 인원감축 금지, 생산성 향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이익배분제 도입 등의 세부적 내용도 담겨 있다.

합의 당사자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정부 측 입회인 자격으로 합의서 조인식에 참석했다. 당시 노사 양측은 합의서에 각각 서명하고 문건을 나눠 보관했다.

그런데 최근 이 문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서명을 했는지가 논란거리다. 함께 작성한 2·17 합의서는 김석동 위원장의 서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개로 나눠졌다. 애초에 두 가지 버전의 합의서가 만들어졌다느니, 원본에 없는 김 전 위원장의 서명이 나중에 들어갔다느니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노조 측이 갖고 있는 합의서에는 김 전 위원장의 서명이 담겨 있다. 5년간 독립보장을 주장하는 외환은행 노조는 당시 김 위원장이 참석해 서명한 것을 근거로 2·17 합의 일종의 노사정 합의라고 의미를 부여해왔다. 하지만 사측이 보관중인 합의서에는 김 전 위원장의 이름과 서명이 없다. 이렇게 되면 하나는 진짜, 하나는 가짜가 된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국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내용의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 추진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감에서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17 합의서에 대해 정부차원의 보증을 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합의서 마지막에 ‘노사정 합의서’라고 병기돼 있으면 노사정 합의라는 것”이라며 “입회인 자격으로 서명했지만 노사정 합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과거 합의 당시 김 전 위원장이 서명한 것에 대해서 별다른 의미가 없다”며 “노사정 합의라기보다 노사합의의 성격”이라고 회피했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단순 입회자로서 참여했다는 이야기다.

이어 그는 “고용노동부와 협의가 있는데 노사정 합의라기보다 노사합의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부처의 의견”이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합의서에는 ‘입회인, 금융위원장 김석동’이라는 김 전 위원장의 사인이 있는데 사인이 없는 합의서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구속력 있는 합의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중국에서 체류중이던 김승유 전 하나금융회장도 국감장에 출석했다. 김 전 회장은 2·17 합의에 대해 노사 간 합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노사 합의인데 김석동 전 위원장이 서명하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합의서 원본에는 당시 김석동 전 위원장의 서명은 물론 이름 자체도 없다”고 답했다.

당사자인 김석동 전 위원장의 입장은 들을 수 없는 상태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지난 3월 시민단체로부터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임에도 외환은행 인수 및 철수를 승인한 혐의로 고발당한 바 있다. 외환은행 인수 당시 금융당국 책임자로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산업자본임을 알고서도 이를 묵인한 혐의에서다.

하나-외환 노조 조기통합 앞두고 대립
론스타 매매 때 맺은 문건 놓고 공방


외환 노조는 합의서에 김석동 전 위원장의 직위와 이름이 들어갔고, 김 전 위원장이 직접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당시 합의가 노사정 합의에 해당하며, 이 합의를 깨는 조기통합 관련 협상은 정부가 중재해야 응할 수 있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아울러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 2·17 합의서에 서명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한 의원은 사진을 통해 김승유 전 회장이 위증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 의원이 공개한 사진에는 김 전 위원장이 김승유 전 회장과 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의 사이에 앉아 서명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김승유 전 회장이 김기철 전 노조위원장이 서명하는 모습, 서명을 마치고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김승유 전 회장과 김기철 노조위원장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도 공개됐다.

한 의원은 “금융위 국정감사에서 김 전 회장이 ‘노사정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금융위원장의 사인이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은 위증”이라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금융위가 조기통합 문제에 뒷짐 지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애초 두개 버전?
나중에 서명했다?

그동안 2·17 합의서는 하나와 외환은행의 합병 기준으로 인식돼왔다. 하나금융지주는 5년간 독립경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3년 만에 깨졌다. 지난 7월 김정태 하나지주 회장은 조기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올해 안에 통합하겠다는 의중을 보였다. 이후 하나금융그룹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한 2·17 합의를 깨고 3년 만에 조기통합을 추진한 명분은 경영 위기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지 3년이 다 돼가지만 그룹 계열사 간 시너지는 전무하고, 외환은행의 기초 체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금융은 투 뱅크(two bank) 체제로는 조직의 장기적 생존기반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외환 은행은 통합 이사회를 개최하고 공식적인 통합절차에 착수했다. 29일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인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결국 합병 계약을 맺었다. 하나·외환 은행은 이날 각각 이사회를 열어 조기 합병을 의결했다. 이어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를 거쳐 두 은행 간 합병 계약을 맺었다. 합병 비율은 하나은행 보통주 1주당 외환은행 보통주 2.97주다. 사실상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흡수 합병하는 셈이다.

하나금융은 이달 초 금융 당국에 합병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승인에 최소 60일가량 걸릴 예정이다. 주주총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통합법인은 내년 2월쯤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도 통합법인 출범 일을 일단 내년 2월1일로 잡고 있다.

하나금융은 조기통합 시 연간 비용절감 2692억원에 수익증대 효과 429억원까지 더해 매년 3121억원에 이르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도 두 은행이 합병하게 되면 연내 총자산 334조원의 메가뱅크가 탄생하게 된다. KB국민은행(292조원), 우리은행(273조원), 신한은행(263조원)을 압도한다.

‘5년 독립보장’ 금융위원장 서명
외환 쪽 문건 ○…하나 쪽 문건 X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하나·외환은행 간의 통합을 명분으로 30일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내년 3월 임기를 4개월 남기고 은행장직을 내려놓은 것. 통합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외환은행 인수 이후 국내 금융환경이 변화하면서 투 뱅크 체제를 유지하는데 한계에 직면했다는 점도 조기 통합의 이유다.


합병에 따른 존속법인은 외환은행으로 남기기로 했다. 순익 규모가 더 적은 외환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해야 법인세를 더 적게 내는 등 세테크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합병당하는 외환은행 임직원들의 화를 달래보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나금융의 존속법인 양보에는 은행의 명칭을 염두한 또 다른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합병 은행 명칭은 통합추진위원회에서 추후 결정하기로 했지만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하나금융지주는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아직 명칭에 대해 ‘하나’라고 결정된 바 없고, 통합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저희로서는 저성장, 저마진에 직면한 상태인 만큼 빨리 합쳐서 다른 은행에 없는 장점으로 위기를 돌파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와의 대화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사회가 끝났다고 대화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대화를 할 것이고, 지켜봐 달라”고 답했다.

내부적인 합병 절차를 마무리 짓고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이미 공표한 대로 조만간 물러난다. 초대 합병은행장으로는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달 초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소통’에서 돌연 ‘강경’으로 태도를 바꿔 직원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다. 외환은행은 지난 18일부터 인사위원회를 열어 대규모 직원 징계 조치에 들어갔다.

지난 3일 외환은행 노조가 개최하려던 임시조합원 총회에 참석했거나 참석하려던 직원 898명을 징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금융권 사상 단일사안으로는 최대 규모의 징계 조치였다. 내부에서는 통합은행장에 대한 야심이 외환은행 출신 ‘외환맨’인 김 행장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김 행장은 외환은행 일부 직원들에게서 ‘선배가 배신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외환은행은 노동조합의 조합원 총회 참석과 관련해 사상 최대 규모로 추진하던 직원 징계를 풀어주기로 했다. 당초 900명이던 징계 대상을 38명으로 대폭 축소하기로 한 것. 애초 898명에 2명이 추가된 900명이 징계 대상으로 분류되다가 이 가운데 862명(95.8%)이 제외된 것이다. 외환은행에 따르면 징계 대상인 38명은 견책 이하 경징계 21명, 중징계 17명(정직 3명, 감봉 14명)이다. 중징계 대상은 애초 56명으로 분류됐으나, 이 역시 약 3분의 1로 줄었다.

이러한 사측의 결정에 외환노조도 태도를 바꿨다. 사측과의 대화를 거부했던 외환 노조도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를 하나금융지주에 제의했다. 이로써 평행선을 달리던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 작업이 급물살을 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어떤 합의서가
법적효력 있나

노조는 “조건 없이 사측과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조기통합 반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은 “노조의 입장은 변함이 없고 대화는 2·17 합의 기반으로 진행돼야 한다”면서도 “조직과 직원들, 금융산업의 발전 등을 위한 것이라면 2·17 합의를 뛰어넘는 조건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하나금융과 외환노조가 각각 가지고 있는 2·17 합의서의 위조 여부를 떠나 어떤 합의서에 법적효력이 있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 둘 중 하나의 법적효력이 있는 2·17 합의서가 하나-외환 통합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원히 묻히는 론스타 의혹들

외환은행은 한때 훌륭한 국산 금융브랜드로 꼽혔다. 능력있는 직원들이 모인 유망했던 은행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2003년 론스타의 매각 후 외환은행은 이제 새 주인을 맞이한다. 하나금융지주 품에 안기면서 외환은행도 조만간 금융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은행 관계자들은 아직까지도 외환은행에 대해 이대로 사라지기엔 아까운 은행으로 평가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매각됐지만 그렇게 쉽게 사라질 은행이 아니었다는 부연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던 과정은 아직도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론스타 게이트의 ‘몸통’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인지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시계추를 돌려 2003년 론스타로의 외환은행 매각이 사심이 끼어든 음모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관련자 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외환은행 직원이 돌연사로 죽었고, 금감원 직원은 과로사로 죽었다. 두 사람은 외환은행 매각의 심사 서류를 다룬 핵심 실무자였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핵심 비밀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외환은행의 BIS 자기자본 비율을 6.1%대로 낮춰 잡은 의문의 팩스는 외환은행 직원의 컴퓨터에서 작성됐다. 금감원 직원은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51%에 달하는 외환은행 지분을 취득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현재 두 사람의 근거 자료는 모두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검찰 수사도 중단된 상태다. 이제 운명의 수레바퀴는 외환은행이 새 주인 하나금융지주를 만나는 지점까지 왔다. 론스타로부터 하나금융으로 다시 팔린 외환은행은 앞으로 간판마저 내려야 할 판이다. 기구한 운명 속에서 외환은행 직원들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의 이면에는 구조조정 대상이 돼야 했던 직원들의 아픔과 희생이 서려있다. 은행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으로 들어가면서 실타래처럼 얽힌 론스타의 인수 과정 의혹도 이대로 묻혀질까 우려하고 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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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