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자금' 국내 유입설 진상

김정일 공작금으로 선거 지원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심판 과정에서 북한발 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졌다. "현역 국회의원 2명이 북한에서 건너온 자금을 지원받아 선거에 출마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21일 주체사상 이념서인 '강철서신'의 저자로 알려진 김영환씨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정당 해산심판 청구 16차 공개변론에 정부 측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의혹의 당사자인 두 의원이 법적대응을 불사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어 만만치 않은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고도로 계획된 '종북몰이'일까. 아니면 밝혀지지 못한 '진실'이 있는 것일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헌법재판소에서 관련한 증언이 나온 게 빌미가 됐다. 그리고 이 '말'을 하루 종일 특종으로 보도할 수 있는 'TV'가 있다는 게 과거와 다른 점이다.

민족민주혁명당(이하 민혁당) 총책이었던 김영환씨는 지난 21일 헌법재판소에서 구미가 당길 증언을 했다. 이날 김씨는 "1995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상규·김미희(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각각 500만원씩 자금을 지원했고, 이 돈이 북한에서 받은 공작금이었다"고 말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과거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주장에 언론은 관심을 기울였다.

김영환 '배신'
이석기 '감옥'

김씨는 1990년대 북한과 연계된 지하혁명조직 민혁당의 창당공신으로 알려져 있다. 다수 언론은 그를 '주사파의 대부'라고 칭하지만 이제 '대부'라는 수사는 적절치 않다는 게 '운동권'의 시각이다.

실제 김씨는 북한이 관리하는 점조직원에 불과했다. 지하조직의 핵심 인물들은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 잦았다.


서울대 82학번이었던 김씨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북한의 주체사상을 공부했다. '독재자'에 맞서기 위해 또 다른 '독재자'를 흠모한 것이다. 그의 필명으로 사용된 '강철(Steel)'은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을 추종해 지어졌다고 한다.

김씨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1989년 김씨는 북에서 남파된 간첩 진운방(가명·현재 사망)과 접촉했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 김씨는 북쪽에서 내려 보낸 잠수함을 타고 황해도 해주에 발을 디뎠다. 김씨는 북한이 제공한 헬기를 타고 김일성 주석이 있는 묘향산에 도착했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김 주석에게 남한지하조직 건설을 승인받았다. 남한으로 내려온 김씨는 1992년 3월 비밀조직 민혁당을 결성했다. 민혁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적시했다.

당사자 두 의원 결백 주장
"왜 수사 안했나" 강력 반발

김씨는 이 과정에서 북한으로부터 비밀리에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도내용을 참조하면 북한은 공작금 명목으로 인천 강화도 인근에 미화 40만달러를 매립했다. 김씨는 이 돈을 땅에서 파낸 뒤 필요할 때마다 환전해 사용했다.

민혁당 중앙위원장(사실상 서열 1위)이었던 김씨는 당 하부조직에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총선에 입후보하라고 지시했다. 김씨는 해당 지시를 북한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했다. 민혁당의 결정에 따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성남에서는 김미희 의원이, 구로에서는 이상규 의원이 각각 시·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김씨는 "이때 후보 1명당 500만원씩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김씨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련 보도와 민혁당 사건 판결문을 일부 참조했다. 훗날 김씨는 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이른바 '사상전향'을 하게 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씨가 체포될 당시 민혁당 중앙위원회는 모두 3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지금은 수학강사인 하모씨와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가 된 박모씨, 그리고 김씨가 중앙위원회 멤버였다.

이들 중 김씨는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아 조직을 장악했다. 민혁당 사건에서 국정원은 주사파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을 민혁당의 전신으로 지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직의 총책은 하씨였다고 전해진다.


과거 한총련 지근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북한과 직접 접선하는 연락책이 있었다"며 "하지만 그들만의 후계구도가 명확해 후계자로 낙점되지 못하면 누가 연락책인지 알 수 없었고, 외부로도 그 사실을 발설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운동권 문화 특성상 북한과 직접 연락을 취하는 비밀 조직원이 이른바 '판'을 주도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여러 사정을 종합할 때 북한을 다녀온 김씨가 조직의 최종 결정권자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김씨는 1995년 민혁당 자진 해산을 결정한다. 북한정권에 회의감을 느꼈다는 게 주된 이유다. 박씨 역시 해산에 동의했다. 하지만 하씨는 신념에 따라 끝내 해산을 거부했다. 이후 하씨는 1999년 민혁당 사건 핵심인물로 지목돼 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2003년 참여정부 당시 특별사면)했다.

일부 보수언론은 과거 하씨가 민혁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하부조직인 경기남부위원회를 장악했었다는 점을 들어 통합진보당 내분사태의 배후로 엮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경기남부위원회의 위원장은 내란선동죄로 수감된 이석기 의원이었다.

그러나 하씨는 2012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수언론이) 나를 도구로 이용해 북과 연결시키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며 "지난해 아버님 상 당했을 때 문상 온 것 말고는 이석기 의원과 10여년 동안 만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기록 있는데
믿을 수 있나

그런데 하씨는 김씨에 의해 또 다시 과거로 소환됐다. 먼저 김씨는 1995년께 문제의 자금을 하씨를 통해 이상규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씨는 같은 기간 하씨를 통해 이석기 의원에게 돈을 건넸는데 이 돈이 결국 김미희 의원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이때 이상규 의원은 민혁당 수도남부지역사업부장을 맡고 있었다. 이상규 의원과 김씨는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며 같은 서클에서 활동한 바 있다.

1999년 <한겨레>와 <동아일보> 등이 보도한 민혁당 사건 수사결과를 종합하면 김씨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이상규 당시 후보 등에게 500만∼1000만원을 지급했고, 1996년 총선에서는 이모씨 등에게 1000만원을 지급했다. 자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된 사람은 모두 6명이었고, 재판 과정에서 이상규 의원의 이름은 실제로 등장한다. <민중의 소리>는 "김씨가 1995년 지방선거에서 이상규 당시 후보를 포함한 3명에게 각 500만원을, 1996년 총선에서는 이모 후보 등 2명에게 각 10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단 김미희 의원은 판결문에 언급되지 않았다. 김씨는 복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판기록에 김미희 의원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또 김씨는 "김미희 의원이 민혁당 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북한 돈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지난 일인 데다 자금 흐름이 불분명해 이 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는 돈을 주고받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한 가지 의문점은 김씨가 1996년에도 부산지역 총선에 출마한 이씨에게 자금을 대줬다는 사실이다. 김씨는 1995년께 민혁당 해산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김씨가 민혁당 활동에서 손을 뗀 시기는 이보다 늦은 1997년께로 추정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후 민혁당 당원들은 대부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렇듯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민혁당 사건은 1998년 남한으로 내려왔던 진운방이 북한으로 돌아가려다 사망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당시 진운방은 타고 있던 반잠수정 안에서 남한군의 공격으로 최후를 맞았다. 3개월이 지난 1999년 1월 인양된 반잠수정 안에선 북쪽이 작성한 각종 암호문이 나왔고, 이 가운데는 민혁당과 관련한 핵심 정보가 있었다. 국정원은 자체 해산한 민혁당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중국 체류 중이던 김씨는 한국으로 입국해 자수했다. 김씨는 사상전향서를 쓰고 공소보류 처분을 받았다. 함께 활동한 조유식(현 알라딘서점 대표)씨 등도 수사에 협조한 대가로 기소되지 않았다. 민혁당 해체 후 조직 재건에 나섰던 하씨 등 일부만이 중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수사망을 피해 은신한 이석기 의원은 2002년 체포돼 반국가단체구성 혐의 등으로 뒤늦게 실형(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관련 재판에서 이석기 의원은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인이 증인으로 나서 민혁당 활동을 진술한 사실이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석기 의원이 북한 자금을 받아 선거에 활용한 혐의는 판결문을 통해 확인되지 않았다. 이석기 의원과 그의 부인은 민혁당 사건 후 법정 이혼했다.

통진당 해산심판 과정서 의혹 제기
김영환 정부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


김씨의 증언 다음날 김미희·이상규 의원은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는 본인의 새빨간 거짓말에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허무맹랑한 종북선동에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번 망언은 검찰과 법무부, 국정원이 공모해 진보당을 없애려는 해산 선동"이라고 규정하고 "김영환의 망언에 대해 향후 법적인 책임을 물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두 의원은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김씨의 주장은 허위사실"이라며 "진술이 그대로 인용 보도되면서 진위와 관계없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향후 김씨가 한 증언의 진위 여부가 가려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통진당 반발
김영환 고소


이상규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에서 준 자금으로 20년 전에 선거를 치렀다고 한다면, 왜 저는 단 1원도 구경을 못 했느냐"며 "그 자금 당장 갖고 오라"고 비판했다.

또 YT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만약 그런 돈을 기부해 준 사람이 있다면 (현행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조사를 받지 않았다"며 "통합진보당은 북한을 추종하거나 폭력혁명노선을 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미희-<TV조선> 무슨 일이…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은 지난 22일 '신분 속인 기자와 TV조선에 공식사과 촉구'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최모 기자는 이날 오전 11시 카메라기자 등과 함께 의원실로 들어와 연합뉴스에서 왔다며 전날(21일) 김영환씨가 증언한 것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인터뷰에 불응했다. 이어 "명함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최 기자는 "명함이 없다"며 서둘러 의원실을 나갔다. 김 의원은 "이로부터 13분 후 최 기자가 의원실로 전화를 걸어 사실은 TV조선기자인데 인터뷰를 거절할까봐 연합뉴스라고 속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사전 약속 없이 들이닥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신분을 속인 것은 기자윤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의원에 대한 모독이며 사기다"라며 "최 기자와 소속언론사인 TV조선에게 강력히 항의하는 바이며, 진심어린 공개사과를 촉구한다"고 전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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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