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자금' 국내 유입설 진상

김정일 공작금으로 선거 지원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심판 과정에서 북한발 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졌다. "현역 국회의원 2명이 북한에서 건너온 자금을 지원받아 선거에 출마했다"는 내용이다. 지난 21일 주체사상 이념서인 '강철서신'의 저자로 알려진 김영환씨는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정당 해산심판 청구 16차 공개변론에 정부 측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의혹의 당사자인 두 의원이 법적대응을 불사하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어 만만치 않은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고도로 계획된 '종북몰이'일까. 아니면 밝혀지지 못한 '진실'이 있는 것일까.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헌법재판소에서 관련한 증언이 나온 게 빌미가 됐다. 그리고 이 '말'을 하루 종일 특종으로 보도할 수 있는 'TV'가 있다는 게 과거와 다른 점이다.

민족민주혁명당(이하 민혁당) 총책이었던 김영환씨는 지난 21일 헌법재판소에서 구미가 당길 증언을 했다. 이날 김씨는 "1995년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상규·김미희(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각각 500만원씩 자금을 지원했고, 이 돈이 북한에서 받은 공작금이었다"고 말했다. 현역 국회의원이 과거 북한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주장에 언론은 관심을 기울였다.

김영환 '배신'
이석기 '감옥'

김씨는 1990년대 북한과 연계된 지하혁명조직 민혁당의 창당공신으로 알려져 있다. 다수 언론은 그를 '주사파의 대부'라고 칭하지만 이제 '대부'라는 수사는 적절치 않다는 게 '운동권'의 시각이다.

실제 김씨는 북한이 관리하는 점조직원에 불과했다. 지하조직의 핵심 인물들은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서로의 얼굴도 모른 채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는 일이 잦았다.


서울대 82학번이었던 김씨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북한의 주체사상을 공부했다. '독재자'에 맞서기 위해 또 다른 '독재자'를 흠모한 것이다. 그의 필명으로 사용된 '강철(Steel)'은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을 추종해 지어졌다고 한다.

김씨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1989년 김씨는 북에서 남파된 간첩 진운방(가명·현재 사망)과 접촉했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 김씨는 북쪽에서 내려 보낸 잠수함을 타고 황해도 해주에 발을 디뎠다. 김씨는 북한이 제공한 헬기를 타고 김일성 주석이 있는 묘향산에 도착했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김 주석에게 남한지하조직 건설을 승인받았다. 남한으로 내려온 김씨는 1992년 3월 비밀조직 민혁당을 결성했다. 민혁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적시했다.

당사자 두 의원 결백 주장
"왜 수사 안했나" 강력 반발

김씨는 이 과정에서 북한으로부터 비밀리에 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도내용을 참조하면 북한은 공작금 명목으로 인천 강화도 인근에 미화 40만달러를 매립했다. 김씨는 이 돈을 땅에서 파낸 뒤 필요할 때마다 환전해 사용했다.

민혁당 중앙위원장(사실상 서열 1위)이었던 김씨는 당 하부조직에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총선에 입후보하라고 지시했다. 김씨는 해당 지시를 북한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했다. 민혁당의 결정에 따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성남에서는 김미희 의원이, 구로에서는 이상규 의원이 각각 시·구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김씨는 "이때 후보 1명당 500만원씩 자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김씨 주장에 신빙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관련 보도와 민혁당 사건 판결문을 일부 참조했다. 훗날 김씨는 민혁당 사건에 연루돼 이른바 '사상전향'을 하게 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김씨가 체포될 당시 민혁당 중앙위원회는 모두 3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지금은 수학강사인 하모씨와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가 된 박모씨, 그리고 김씨가 중앙위원회 멤버였다.

이들 중 김씨는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아 조직을 장악했다. 민혁당 사건에서 국정원은 주사파 조직인 '반제청년동맹'을 민혁당의 전신으로 지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직의 총책은 하씨였다고 전해진다.


과거 한총련 지근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북한과 직접 접선하는 연락책이 있었다"며 "하지만 그들만의 후계구도가 명확해 후계자로 낙점되지 못하면 누가 연락책인지 알 수 없었고, 외부로도 그 사실을 발설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운동권 문화 특성상 북한과 직접 연락을 취하는 비밀 조직원이 이른바 '판'을 주도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여러 사정을 종합할 때 북한을 다녀온 김씨가 조직의 최종 결정권자였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김씨는 1995년 민혁당 자진 해산을 결정한다. 북한정권에 회의감을 느꼈다는 게 주된 이유다. 박씨 역시 해산에 동의했다. 하지만 하씨는 신념에 따라 끝내 해산을 거부했다. 이후 하씨는 1999년 민혁당 사건 핵심인물로 지목돼 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2003년 참여정부 당시 특별사면)했다.

일부 보수언론은 과거 하씨가 민혁당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하부조직인 경기남부위원회를 장악했었다는 점을 들어 통합진보당 내분사태의 배후로 엮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경기남부위원회의 위원장은 내란선동죄로 수감된 이석기 의원이었다.

그러나 하씨는 2012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수언론이) 나를 도구로 이용해 북과 연결시키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며 "지난해 아버님 상 당했을 때 문상 온 것 말고는 이석기 의원과 10여년 동안 만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기록 있는데
믿을 수 있나

그런데 하씨는 김씨에 의해 또 다시 과거로 소환됐다. 먼저 김씨는 1995년께 문제의 자금을 하씨를 통해 이상규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씨는 같은 기간 하씨를 통해 이석기 의원에게 돈을 건넸는데 이 돈이 결국 김미희 의원에게 전달됐다고 주장했다. 이때 이상규 의원은 민혁당 수도남부지역사업부장을 맡고 있었다. 이상규 의원과 김씨는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며 같은 서클에서 활동한 바 있다.

1999년 <한겨레>와 <동아일보> 등이 보도한 민혁당 사건 수사결과를 종합하면 김씨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이상규 당시 후보 등에게 500만∼1000만원을 지급했고, 1996년 총선에서는 이모씨 등에게 1000만원을 지급했다. 자금을 받은 것으로 의심된 사람은 모두 6명이었고, 재판 과정에서 이상규 의원의 이름은 실제로 등장한다. <민중의 소리>는 "김씨가 1995년 지방선거에서 이상규 당시 후보를 포함한 3명에게 각 500만원을, 1996년 총선에서는 이모 후보 등 2명에게 각 1000만원을 지원한 것으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

단 김미희 의원은 판결문에 언급되지 않았다. 김씨는 복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재판기록에 김미희 의원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또 김씨는 "김미희 의원이 민혁당 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북한 돈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가까이 지난 일인 데다 자금 흐름이 불분명해 이 돈이 실제로 전달됐는지는 돈을 주고받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다. 한 가지 의문점은 김씨가 1996년에도 부산지역 총선에 출마한 이씨에게 자금을 대줬다는 사실이다. 김씨는 1995년께 민혁당 해산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김씨가 민혁당 활동에서 손을 뗀 시기는 이보다 늦은 1997년께로 추정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후 민혁당 당원들은 대부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렇듯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민혁당 사건은 1998년 남한으로 내려왔던 진운방이 북한으로 돌아가려다 사망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당시 진운방은 타고 있던 반잠수정 안에서 남한군의 공격으로 최후를 맞았다. 3개월이 지난 1999년 1월 인양된 반잠수정 안에선 북쪽이 작성한 각종 암호문이 나왔고, 이 가운데는 민혁당과 관련한 핵심 정보가 있었다. 국정원은 자체 해산한 민혁당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중국 체류 중이던 김씨는 한국으로 입국해 자수했다. 김씨는 사상전향서를 쓰고 공소보류 처분을 받았다. 함께 활동한 조유식(현 알라딘서점 대표)씨 등도 수사에 협조한 대가로 기소되지 않았다. 민혁당 해체 후 조직 재건에 나섰던 하씨 등 일부만이 중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수사망을 피해 은신한 이석기 의원은 2002년 체포돼 반국가단체구성 혐의 등으로 뒤늦게 실형(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관련 재판에서 이석기 의원은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는 존재하지 않는 조직"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부인이 증인으로 나서 민혁당 활동을 진술한 사실이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석기 의원이 북한 자금을 받아 선거에 활용한 혐의는 판결문을 통해 확인되지 않았다. 이석기 의원과 그의 부인은 민혁당 사건 후 법정 이혼했다.

통진당 해산심판 과정서 의혹 제기
김영환 정부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


김씨의 증언 다음날 김미희·이상규 의원은 허위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김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는 본인의 새빨간 거짓말에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허무맹랑한 종북선동에 연민의 정마저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이번 망언은 검찰과 법무부, 국정원이 공모해 진보당을 없애려는 해산 선동"이라고 규정하고 "김영환의 망언에 대해 향후 법적인 책임을 물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두 의원은 언론사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도 "김씨의 주장은 허위사실"이라며 "진술이 그대로 인용 보도되면서 진위와 관계없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향후 김씨가 한 증언의 진위 여부가 가려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통진당 반발
김영환 고소


이상규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북에서 준 자금으로 20년 전에 선거를 치렀다고 한다면, 왜 저는 단 1원도 구경을 못 했느냐"며 "그 자금 당장 갖고 오라"고 비판했다.

또 YTN과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만약 그런 돈을 기부해 준 사람이 있다면 (현행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조사를 받지 않았다"며 "통합진보당은 북한을 추종하거나 폭력혁명노선을 추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미희-<TV조선> 무슨 일이…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은 지난 22일 '신분 속인 기자와 TV조선에 공식사과 촉구'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최모 기자는 이날 오전 11시 카메라기자 등과 함께 의원실로 들어와 연합뉴스에서 왔다며 전날(21일) 김영환씨가 증언한 것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인터뷰에 불응했다. 이어 "명함을 달라"고 했다. 하지만 최 기자는 "명함이 없다"며 서둘러 의원실을 나갔다. 김 의원은 "이로부터 13분 후 최 기자가 의원실로 전화를 걸어 사실은 TV조선기자인데 인터뷰를 거절할까봐 연합뉴스라고 속였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보도자료에서 "사전 약속 없이 들이닥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신분을 속인 것은 기자윤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의원에 대한 모독이며 사기다"라며 "최 기자와 소속언론사인 TV조선에게 강력히 항의하는 바이며, 진심어린 공개사과를 촉구한다"고 전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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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