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의료기관 불법 리베이트 후폭풍

제약사-의사 딱걸린 '검은 공생'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수천억원. 혹은 수조원. 음성적인 의약품 리베이트 시장 규모다. 준 사람도 많고 받은 사람도 많아 정확한 통계조차 내기 어렵다. 최근 감사원은 의료기관의 불법적인 리베이트 관행을 적발했다. 한 의사가 2년 동안 2억원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리베이트를 받은 요양병원과 제약사 간의 커넥션 의혹이 제기됐다. 모 제약사는 점유율 90%에 가까운 의약품을 독점공급해 한 해 동안 3억원이 넘는 이득을 올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보건복지부는 뒤늦은 사태 수습에 나섰다. 소액 리베이트도 엄단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유명 제약회사 영업사원 A씨는 휴일인데도 넥타이 끈을 맸다. 전날 마신 술이 다 깨지 않았지만 검은색 에쿠스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새벽닭이 울지도 않은 새벽 5시 A씨는 한 대학병원 교수의 집앞으로 차를 몰았다. 초인종이 울리자 골프캡을 쓴 교수가 인사를 건넸다. 골프채를 가득 담은 캐디백(골프채 가방)은 언제나처럼 A씨의 어깨에 지워졌다.

의약계 만연

교수를 뒷좌석에 태운 A씨는 인천국제공항까지 가속페달을 밟았다. 해외 골프여행에 보태 쓰라며 돈 봉투도 건넸다. 예의상 거절하는 것을 '지난번 세미나 때 미지급한 강연료'라며 안심시켰다. 교수 일행이 출국하고 나서야 A씨는 비로소 잠이 들었다.

A씨는 이날 자신이 한 일이 리베이트라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 선배들에게 배웠다고 했다. '불법인데 문제가 되지 않겠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간단했다. "다들 하는데 뭐가 문제인가요?"

지난 2010년 의약품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쌍벌제(리베이트를 제공한 자와 수수한 자를 함께 처벌하는 제도)'가 도입됐지만 의료업계의 리베이트 관행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15일 경찰은 태평양제약으로부터 수년간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것으로 확인된 병원과 의사에 대한 조사결과 일부를 공개했다.

경찰에 따르면 리베이트를 수수한 병원은 전국 120곳이며, 회식 대납과 야구용품 제공 등 직·간접적으로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의사는 2800여명에 달했다. 적발된 의사 중에는 대형 대학병원 소속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의료법 위반 혐의로 실제 입건된 의사는 10명(0.3%)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가 행정처분 기준을 1인당 300만원으로 제한한 탓에 웬만큼 받지 않고서는 사법처리를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250~300만원 사이의 리베이트를 받고 법망을 빠져 나간 의사는 20명 안팎으로 알려졌다.

국립의료기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 1일 감사원은 2011~2012년 강의료 등의 명목으로 제약사로부터 1000만원 이상을 받은 의사가 627명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공공의료기관 소속 의사는 77명에 달했다.

서울대병원 등 공공의료기관 의사 10명을 표본조사한 결과를 보면 리베이트는 모두 303회에 걸쳐 이뤄졌다. 소속기관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39개 제약사로부터 강연료, 자문료, PMS(임상시험의 일종) 사례비 등의 명목으로 챙긴 돈은 1억7400여만원이었다.

서울대병원 의사 B씨는 한 제약사로부터 자사 의약품의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강의 요청을 받고, 2012년 7월 강남 모 음식점에서 동료 의사들을 상대로 강연했다. 13개 제약사는 B씨에게 강연료를 건넸다. 이 같은 수법으로 B씨가 챙긴 돈은 1350만원으로 파악됐다. 기타 리베이트로 챙긴 돈까지 더하면 211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같은 기간 B씨는 자신에게 강연을 요청한 15개 제약사의 의약품을 16억9100여만원어치나 처방했다.

국립암센터 의사 C씨는 "리베이트 창구로 활용될 수 있으니 PMS는 하지 말라"는 기관장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2008년 7월부터 2011년 5월까지 특정 제약사 제품에 대한 사례조사를 15회에 걸쳐 실시했다. C씨는 사례조사비로 1030여만원을 받았다. 사례조사 후 C씨는 자신이 제약사로부터 의뢰받은 의약품을 전년에 비해 3.2배 더 처방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문료를 가장한 리베이트도 있었다. 전북대병원 의사 D씨는 2012년 3월 한 제약사에게 의약품의 마케팅 방향성과 관련한 자문 요청 대가로 50만원을 받는 등 4회에 걸쳐 200만원을 수령했다. 이외에도 대한적십자사에서 리베이트를 제공받은 의사가 적발되는 등 감사원이 리베이트를 받았다고 판단한 의료기관은 모두 27곳이었다.

감사원 공공기관 의사 77명 적발
강연·자문료·PMS 등 수법 다양

감사원은 이들 공공의료기관 소속 의사 77명을 포함한 627명의 조사 및 처분을 보건복지부 쪽에 이관했다. 의약전문매체인 <메디파나뉴스>는 보건복지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의사 1명이 복수 제약사들로부터 2년 동안 2억원을 받은 사례가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국회 국정감사 이후로 조사를 유보했다.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공공의료체계 구축·관리 실태'(2014. 9)를 보면 보건복지부는 의료계에 리베이트가 만연돼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약사로부터 강연료 등 리베이트를 수령한 의료인에 대해 점검계획을 수립하는 등 지도·감독을 강화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제약사는 의료법을 교묘히 피해가는 수법으로 리베이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제약사는 의사들을 상대로 제품설명회를 개최할 경우 의사 1명에게 최대 10만원까지의 식음료만 제공하게끔 돼 있다. 그러나 제약사는 서류상 제품설명회를 연 것처럼 꾸며놓고 의사 1명당 10만원의 식음료를 제공한 것으로 계산해 리베이트 자금을 조성했다.

또 식당이나 일부 카드깡 업체에서 대금을 부풀려 계산한 뒤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돈을 만들었다. 이 같은 지하자금은 최소 수천억원에 이를 것이란 게 제약업계의 분석이다.

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의약품 리베이트 실태가 도마에 올랐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은 영업 대행사인 CSO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다. 그간 제약사는 사실상 자회사나 다름없는 CSO를 만들어 우회적인 경로로 리베이트를 해왔다. CSO가 의료관련 법인이 아니므로 의료법의 저촉을 피해갈 수 있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이렇다 할 제재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같은 당 최동익 의원은 전국 요양병원 중 특정 제약사로부터 50%가 넘는 의약품 공급을 받고 있는 요양병원이 37곳이라고 밝혔다. 전북 익산의 한 요양병원은 3억2000만원의 의약품 지출 중 86.4%인 2억8000만원어치 의약품을 해당 제약사에서 구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의 제약사는 다른 병원에 평균 113만원의 의약품을 공급하고 있었다.

수억 왔다갔다

다음날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소액 리베이트라도 엄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고질적인 감시 인력부족과 진화하는 리베이트 수법, 물렁한 처벌 규정 등은 전망을 어둡게 한다. 일각에선 감사원에 적발된 의사 627명에 대한 처벌 역시 솜방망이에 그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