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야구역사 새로 쓴 ‘안타 제조기’ 서건창

없는 길 걷다 뒤보니 길이 나 있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넥센 히어로즈에 진짜 영웅이 나타났다. 내야수 서건창이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달성하면서 이종범·이병규·이승엽을 넘어 ‘안타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넥센 입단 3년 만에 이뤄낸 쾌거다. 절실하게 매달렸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그의 성공 신화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간승리’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그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봤다.

 
‘안타 제조기’ 서건창의 돌풍이 예사롭지 않다. 연일 신기록 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서건창은 최근 역대 단일 시즌 최다안타 2위에 오르더니 1994년 이종범(전 해태 타이거즈)이 기록한 단일 시즌 최다기록을 넘어섰다. 이승엽과 이병규까지 뛰어 넘으면서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신고 선수 
전설 넘다
 
서건창의 나이는 25세다. 비교적 어린 나이지만 미래 넥센의 주장감이라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늘 솔선수범하며 리더가 될 만한 성품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서건창은 2012년 넥센에서 신인왕에 오르고 중심타자가 될 때까지 긴 무명 시절을 이겨냈다.
 
서건창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힘든 시절을 보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자신을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지극정성을 다해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이를 꽉 물고 절박한 마음으로 야구를 했다. 서건창의 눈빛은 언제나 빛났다.
 

이러한 그의 열정이 주변에 전달됐고 당시 넥센 2군 코치였던 박흥식 코치(현 롯데 타격코치)의 눈에 띄어 신고선수 테스트에서 합격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험난한 여정이 시작됐다. 신고선수 입단, 1년 만의 방출, 경찰야구단 불합격, 현역 군입대, 다시 신고선수 입단 등 고통의 시간이 지속됐다. 그러나 서건창은 불굴의 의지로 자신을 더욱 더 단단하게 단련시켰다. 결국 2012년 신인왕을 받았고 ‘독기’를 인정받았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건창은 2년생 징크스를 겪기도 했다. 오른 발가락 부상도 있었지만 핑계 대지 않고, 오직 야구에 몰입해 캠프를 보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타격이 나올까 끊임없이 고민했고,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독득한 타격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서건창은 왜소한 체격에도 870g 배트를 사용했는데 2015시즌부터는 이 무게를 890g까지 올릴 계획이다. 890g의 배트는 4번타자 박병호가 쓰는 배트의 중량과 똑같다.
 
서건창 이전에 이전에 광주일고 최대 안타 신기록을 가지고 있던 선수는 고교 선배 이종범이었다. 기록은 기아전에서 만들어졌는데 상대팀 기아 선동열 감독과 소속팀 넥센 히어로즈 염경엽 감독 역시 모두 광주일고 출신이다. 서건창에게 안타를 얻어맞은 상대투수 김병현 또한 광주일고가 낳은 스타 출신이며 기록이 만들어진 구장은 그의 고향의 홈구장이다. 광주일고와의 묘한 인연이 있다. 올 시즌 서건창과 시즌 최우수 선수(MVP) 타이틀을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는 라이벌 강정호까지도 광주일고 출신이다.
 
광주일고는 전통적인 야구 명문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일본 무대로 진출한 투수 선동열과 타자 이종범을 비롯해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등을 줄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시켰다. 서건창이 선배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무명의 반란’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이종범은 프로에 입단할 때부터 거물로 평가받았다. 이 같은 평가를 증명하듯 그는 신인시절부터 펄펄 날며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우승시킴과 동시에 MVP까지 받았다. 타율-장타력-도루 능력 등을 고루 갖춘 전천후 유격수였기에 ‘천재’라는 공식 별명을 사용한 유일한 인물이다.
 
쳤다 하면 진루…시즌 최다안타 대기록
이종범 이승엽 이병규 뛰어 넘은 ‘뚝심’
 

반면 서건창은 2008년 LG 신고선수로 들어가 한 번 타석에 서서 삼진을 당한 것이 1군 경력의 전부였다. 고교 선배 이종범과는 또 다른 과정을 거치며 전설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서건창이 정규리그 MVP까지 받게 된다면 이종범 이후 키스톤 포지션(유격수-2루수)에서 최우수선수에 등극하는 두 번째 선수가 된다. 역대 정규리그 MVP의 경우 타자들은 이종범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포형 선수들이 가져갔다. 이종범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올려놓을 경우, 또 다른 전설을 쓰게 된다.
 
노력형 천재 서건창의 별칭은 안타와는 거리가 먼 ‘서교수’다. NC의 안경 쓴 내야수 노진혁이 ‘노검사’로 불리는 것과 달리 서건창의 외모는 딱히 교수답지 않음에도 서건창이 교수라 불리는 이유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의 댓글 때문이다. 서건창은 2012시즌 신인왕에 올랐지만 지난 시즌 부상과 함께 86경기만 뛰며 타율 2할6푼6리로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서건창의 별명은 ‘서멍창’ 등으로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그러나 올 시즌 초 서건창이 좋은 타격을 보이기 시작하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서건창이 왜 이렇게 잘하냐’는 글이 올라왔다. 그리고 한 이용자가 ‘서건창이 네 친구냐, 선생님이라고 불러라’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 댓글은 이상하리만큼 큰 호응을 받았고, 다들 ‘선생님’이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서건창의 성적이 계속 상승하자 ‘선생님이 뭐냐, 교수님이라고 불러라’라는 식으로 별명이 승진을 거듭했다. 결국 서건창은 이렇게 ‘서교수’가 됐다. 서건창의 ‘서’를 따서 ‘프로페 서’라고 부르기도 한다.
 
안타왕이 된 이후엔 더욱 승승장구해 유럽축구 스티븐 제라드를 두고 ‘스티븐 더 풋볼 제라드’라고 하는 것처럼 최근에는 ‘서 더 베이스볼 건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별명이 승진한 것은 서건창만이 아니다. 박병호는 2012시즌 처음 홈런왕이 됐을 때만 해도 건장한 체구에다 영화 <어벤저스>의 영향으로 ‘헐크’라 불렸으나 3년 연속 홈런왕에 오르자 최근에는 ‘신’으로 상승했다. ‘갓병호’라는 별명과 함께 ‘파괴의 신’으로 불린다.ㄹ
 
서건창은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을 구사한다. 일반적으로 훈련을 통해 후천적으로 우투좌타가 된 선수는 태생적으로 타구의 비거리가 나오기 힘든 편이다. 따라서 많은 우투좌타 타자들은 정교함을 앞세운 레벨스윙과 밀어치기 타법을 주로 가져가는 편이다.
 
그러나 서건창은 레벨스윙과 당겨치기 타법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그래서 변화구에는 상대적으로 대처하기 쉬우나 1, 2루 간을 좁히는 가르시아 쉬프트에는 취약한 편이다. 2012시즌에는 홈런을 1개만 기록했을 정도로 장타력은 좋지 않았지만, 파워히터인 가르시아처럼 타구가 거의 우익수 방면으로 치우쳐져 있고 1, 2루 땅볼 범타율이 상당히 높다.

거침없는 배트
물오른 타격감
 
과거 어깨부상의 여파로 강견은 아니지만,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좌우 수비폭과 수비전환능력을 살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12시즌에는 정규타석을 채운 2루수 중 최소 실책(7개)를 기록했다. 그러나 전후 수비폭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어서 2012시즌에는 머리 위쪽으로 넘어가는 타구를 잘 처리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광주일고 시절부터 키스톤 콤비를 이뤘던 강정호도 13시즌부터 리그 정상급 유격수 수비를 보여주고 있어서, 넥센 히어로즈의 키스톤 콤비만큼은 여러 구단 중 정평이 나 있다.
 
서건창은 넥센 히어로즈 입단 이후 염경엽 주루코치의 지도를 통해 주루실력을 향상시켰다. 또한 타구판단과 베이스를 돌 때의 가속이 좋은 편이라, 한 베이스를 더 진루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족한 장타력을 주루능력으로 커버하는 셈이다. 그래서 2012시즌에는 3루타 10개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2012∼2013 시즌에는 테이블세터의 강점을 보이지 못했다.
 
올해 들어서는 타격이 만개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기존에도 뛰어났던 도루는 물론, 타율, 출루율, 장타율에서 어마어마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1번타자가 이정도면 리그폭격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타격폼도 날이 갈수록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다. 배트 스피드가 빨라지면서 장타가 늘어나고 있다. 서건창은 배트 위치를 귀에서 가슴으로 내림으로서 투수 공을 기다리는 시간에 불필요한 힘을 없애고 긴장감을 줄인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8월에는 두산 베어스의 정수빈이 서건창의 폼을 따라하며 생애 첫 만루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서건창의 도플갱어가 정수빈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독특한 서건창의 타격폼을 두고 염경엽 감독은 “국내에서 누구보다 공을 가까이에 놓고 치는 타자라고 보면 된다”라며 “완벽한 타격폼”이라고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그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다. 서건창은 올 시즌을 앞두고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력을 길러 달라진 타격폼을 들고 나왔다.
 
서건창은 광주일고 시절에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중학교 때까지는 유격수였으나 어깨 부상으로 인해 2루수로 전향했다. 1년 후배인 허경민에게 밀리기도 했다. 고교 시절의 평가는 공, 수, 주를 두루 갖춘 ‘야구를 알고 하는 선수’로 알려졌다. 1학년이던 2005년, 팀이 우승한 황금사자기에서 2번 타순에 출장하며 당시 1학년 타자 중에서 유일하게 두각을 드러냈다.
 
이때 테이블세터를 맡기도 했다. 2학년 때는 부상으로 거의 출장하지 못했으나 3학년 때는 주로 3번 타순에 출장했다. 이후 서건창은 비교적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지명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8년 드래프트에서 미지명되면서 좌절을 맛봤다. 야구선수치고는 작은 신장과 부상이 있었던 몸 상태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전화위복’ 어려운 환경 속
방출생 오명 벗고 ‘우뚝’
내친김에 MVP까지 노린다
 

이후 서건창이 대학교에 진학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서건창은 LG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해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애초부터 대학진학은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고려대학교 감독이었던 양승호 감독이 스카우트를 위해 노력했지만 서건창은 바로 프로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2008년 단 한 경기에 나온 후, 어깨 부상으로 방출당하고 현역으로 입대하면서 프로선수로서의 생활에서 멀어졌다.
 
이후 경찰청야구단에 지원했지만 실패하고 2009년, 광주 31사단 일반병 현역으로 입대했다. 무사히 군복무를 마쳤다. 2011년 9월, 광주일고 김선섭 감독의 추천으로 넥센 히어로즈의 테스트에 응시했다. 당시 김선섭 감독은 서건창을 광주일고 타격코치로 영입하려고 했지만, 서건창은 프로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결국 김선섭 감독은 NC다이노스의 트라이아웃에 응시할 생각을 했던 서건창을 넥센 히어로즈에 우선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서건창을 테스트해 발탁한 사람은 당시 2군 감독이었던 현 롯데코치 박흥식으로 그는 서건창에 대해 “아직 기량은 부족하나 절심함이 묻어 있다”고 평가하며 구단에 서건창의 영입을 추천했다. 당시 박흥식 2군 감독이 구단 프런트에 “딱 2000만 더 쓰자(신고선수의 연봉이 2000만원이니까)”고 하면서 신고선수로 그를 영입했다. 서건창은 훈련에서부터 상당히 주목을 받았고 연습경기에서 4할을 치면서 주목받더니 2012년 1월에 정식 선수로 등록됐다.
 
우여곡절 끝에 정식 선수로 등록됐지만, 넥센 히어로즈에는 주전 2루수인 김민성이 있었다. 그가 1군 무대에 오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많았다. 다소 회의적인 시각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시즌 시작 전 김민성이 부상을 당하면서 서건창은 빠르게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2012년 시험경기에서는 장기영을 대신해 1번 타순에 기용되기도 했다. 이후 빠른 발과 안정적인 작전수행 능력을 인정받아 개막전에서부터 선발 라인업에 기용되면서 5월 이후부터는 수비 뿐 아니라 타격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넥센 히어로즈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이후로도 서건창은 꾸준히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도루 부문 2위(39도루)에 오르면서 2012년 신인상을 수상했다. 팬들이 유력후보로 꼽혔던 안치홍을 제치고 2루수 부분 골든글러브에 뽑히기도 했다. 1경기만 뛰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뻔했던 선수가 일약 넥센 히어로즈의 신데렐라가 되어 2012년 최고 스타가 된 것이다. 2013년에는 수비 도중 새끼발가락 부상으로 인해 86경기 출전에 그쳤다. 재활에 전념해 다시 복귀했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큰 힘을 보탰다.
 
2014년 시즌 초반에는 다른 타자들이 폭발하는 와중에 홀로 저조하여 안 좋은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현재 서건창은 역대급 시즌을 보내고 있다. 정근우의 2루수 시즌 최다안타, 최다득점 기록을 경신했고,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 이종운의 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을 경신했다. 1994년 이종범이 기록한 196안타 기록을 20년 만에 경신하기도 했다. 새로운 신화가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기록·스토리
모두 다 ‘MVP’
 
서건창은 기존의 넓은 수비범위에 강습타구 처리능력을 향상해 리그 최고수준의 수비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장타력이 개선되면서도 주력이 떨어지지 않아 여전히 리그 최고수준의 주자로 활약하며 팀의 창단 최초 2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멀티 포지션 수비가 불가능하고 군필이라는 이유로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2루수 후보로 거론됐다가 탈락의 쓴맛을 보기도 했지만 지금 서건창은 전설의 고지를 넘고 빠르게 비상 중이다.
 
<khlee@ilyosisa.co.kr>
 

[서건창은?]
 
▲광주 출생
▲광주일고 졸업
▲2008 LG트윈스
▲2012 넥센 히어로즈
▲수상(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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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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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