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못할 신춘호의 '3가지 고민'

‘절대강자’ 농심이 흔들린다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는 농심. 요즘 농심의 행보는 질주 그 자체다. 그만큼 신춘호 농심 회장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 라면시장의 강자로 군림하던 농심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탓인지 지난해부터 농심의 대리점주를 향한 ‘갑질’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신 회장이 직접 이름까지 지어 야심차게 내놓은 ‘강글리오’는 커피시장에서 굴욕을 맛봤다. 생수시장에서는 삼다수를 빼앗기고 백산수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백산수의 취수원을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고 표기한 사실이 드러나 국내 소비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라면 황제 농심은 요즘 경쟁사들의 성장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국물 없는 라면 전성시대가 오면서 시장판도가 서서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라면 ‘춘추전국시대’가 예고되고 있다. 경쟁사들이 이 같은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식품업체들은 다양한 라면을 출시하고 화려한 마케팅을 펼치며 농심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다급해진 농심
갑의 횡포 논란

올해 들어 농심의 성장 동력은 떨어진 모습이다. 그동안 독점해왔던 라면 점유율(판매수량 기준)도 감소했다. 시장조사업체 AC닐슨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62.8%의 점유율을 기록한 이후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농심의 2분기 라면 시장점유율은 61.4%로 전년보다 4.6%, 전분기보다 2.9% 떨어졌다.

지난 6월 57.2% 점유율을 기록하며 독주체제를 회복한 모습이지만 경쟁업체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같은달 오뚜기의 라면시장 점유율은 18.2%로 전년 동월 대비 2.3% 상승했다. 후발주자들의 도전에 농심은 맥을 못 추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떨어졌다. 농심의 2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9%, 19.8% 감소한 4320억원과 103억원을 기록했다. 반면 오뚜기와 삼양식품의 매출은 각각 17%와 23% 늘어났다.


여파는 주가로 이어졌다. 지난 8월 농심의 주가는 떨어졌다. 농심 라면 리뉴얼 소식에 9월 이후 다시 오름세를 탔지만 증권가에서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농심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 한 연구원은 “볶음면을 중심으로 한 국물 없는 라면 제품 인기 확대와 국물 있는 라면 부문에서 경쟁사들의 판촉확대 영향이 지속되며 농심의 라면 부문 매출 감소와 영업이익 감익 추세가 하반기에도 지속될 전망”이라며 “전통적인 비수기인 3·4분기를 지나 4·4분기 이후 점유율의 재상승 여부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진단했다.

위기감을 느낀 농심은 승부수를 던졌다. 28년 만에 주력상품인 신라면을 리뉴얼하기로 한 것이다. 맛과 포장까지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농심의 높은 라면 의존도를 우려하고 있다. 농심 전체 매출에서 라면만 7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신 회장이 자신의 성을 따 직접 작명해 1986년 세상에 내놓은 신라면은 농심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최근 라면시장에서 경쟁사들의 마케팅에 밀리면서 농심 전체 실적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농심의 부진이 4분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신라면을 리뉴얼하면서 광고로 판감비를 많이 지출했을 것으로 보여 전체적으로는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농심의 영업이익과 라면 점유율이 전년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창립 50주년 앞두고…입지 흔들려
다급해진 탓? 대리점에 갑질 도마

이처럼 라면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면서 농심은 갈수록 다급해진 모습이다. 지난해부터 농심의 대리점주를 향한 ‘갑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갑의 횡포’를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최근 <JTBC>는 농심의 행태를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농심은 라면 대리점에 사실상 판매 목표를 강제 할당했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손해를 보면서까지 팔도록 압박했다. 보도 내용은 이렇다. 지난 5월 27일 농심 본사는 라면 대리점에 월 판매목표 100%를 맞추라며 남은 기간 동안 라면 2800만원어치를 더 팔라고 강요했다. 농심 영업사원은 대리점주에게 이를 강제로 할당하고 받은 물량을 매입가보다 10%가량 더 싸게 팔라고 지시했다.

팔아야 할 라면은 대리점에 사실상 강제 할당됐다. 이렇게 받은 물량은 매입가보다 10% 더 싸게 팔아 없애라는 압박이나 마찬가지였다. 본사 측은 대리점 손실분 10% 중 6%는 따로 보전해 주겠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본사가 전산 서류상에 결제한 보전액은 599만원이지만 실제 이 돈을 대리점에 지급한 영업부의 결제서류에는 544만원으로 적혀 있었다. 55만원이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농심은 대리점주들 명의로 개설된 ‘마이너스 통장’을 통해 물건대금을 빼갔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대리점주가 계좌개설 당시 은행에 가지도 않았는데 농심 직원이 대신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한 정황이 포착됐다. 농심이 처음 대리점 계약을 맺는 점주들에게 마이너스 통장개설을 권하고 매월 떼가는 물품대금을 이 통장에서 가져갔다는 게 농심특약점협의회의 주장이다.

지난해에도 ‘마이너스 통장’은 논란이 됐다. 물건이 제때 팔리지 않아도 물건 값이 마이너스 통장으로 꼬박꼬박 결제됐고, 과도한 매출목표로 어려움을 겪어 빚더미를 떠안은 대리점주도 있었다.

농심은 강하게 반박했다. <JTBC> 보도에 왜곡된 부분이 많다는 입장이다. 농심 관계자는 “한 대리점주의 왜곡된 주장일 뿐”이라며 “판매목표제를 폐지하고 나서 대리점주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호전됐는데 한 대리점주의 주장만 부각됐다”고 억울해했다. 지난해 농심은 특약점에 대한 물량 밀어내기로 사회적 비난이 일자 인센티브제와 매출목표제를 폐지하고 특약점(대리점)과 ‘공정거래 및 동반성장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이어 “전산 서류상에 결제한 보전액과 대리점에 지급한 영업부의 결제서류 금액에 차이가 있다고 나왔는데 모두 전산처리 되기 때문에 절대로 조작할 수가 없다”며 “서류에는 여러 가지 항목이 있는데 추가된 항목을 보지 못하고 마치 (농심이) 금액을 속인 것처럼 보도됐다”고 반발했다.

백산수 팔려고
장백산 표기

특히 마이너스통장에 대해서는 강제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농심 관계자는 “마이너스 통장은 대리점주의 선택사항이지 강제사항이 아니다”라며 “해당은행과 대리점주와의 거래일 뿐”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절대로 본사 측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요구할 수 없다”며 “대출 이자도 8%에서 6%로 줄여 오히려 어떤 대리점주들은 이를 활용하기도 하는데 (농심이) 마이너스 통장을 통해 대리점주들의 물건대금을 빼갔다는 주장은 거짓”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특약점주협의회의 주장은 달랐다. 형식적으로는 선택사항이지만 실제로는 ‘마이너스 통장’ 개설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 농심 측 직원들이 대리점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어 쉽게 불만사항을 이야기하거나 요구사항을 거부하기가 힘들다는 입장이다. 특약점주협의회 측은 불법 대출과 관련해 문제가 된 거래은행을 불법대출로 고발할 예정이다.

라면시장 뿐만이 아니다. 생수시장에서도 농심은 고군분투하고 있다. 농심은 삼다수를 보면 마음이 쓰리다. 회사의 효자노릇을 했던 삼다수를 제약사 광동제약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농심은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제주도개발공사의 삼다수 판매를 도맡아왔다. 삼다수는 과거 150억에 불과하던 농심의 매출을 1888억까지 늘렸다. 하지만 삼다수는 2012년 3월 광동제약에 넘어갔다. 삼다수를 품은 광동제약은 단숨에 10위권 제약사로 우뚝 올라섰다. 반면 삼다수를 빼앗긴 농심은 매출액에 큰 타격을 받았다.
 

농심은 이를 갈았다. 2012년 국내시장에 ‘백산수’를 내세워 물시장의 패권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이다. 여기에는 신 회장의 맏딸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까지 가세했다. 신 부회장은 지난 2월 신한금융투자와 군인공제회가 보유한 농심백산수 28만3647주(10.15%)를 사들였다. 인수대금은 92억5600만원으로 추산된다. 이에 따라 신 부회장은 백산수를 개발한 김병순 농심백산수 각자 대표이사를 제치고 2대주주에 올랐다. 1대 주주는 농심(80.43%)이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지분 매각대금 100억원을 활용해 농심백산수에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신현주 부회장이 농심백산수 2대 주주에 오르면서 농심의 대대적인 투자가 시작됐다. 지난 4월 사명부터 상선워터스에서 농심백산수로 바꿨다. 특히 지난 6월 농심은 백두산에 위치한 백산수 공장 설립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2000억원을 투자한 것이다.

농심은 이러한 투자로 백산수 생산 물량을 25만톤에서 125만톤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는 연간 133만톤의 생산능력을 갖춘 삼다수에 버금가는 규모다. 게다가 백두산 신공장은 향후 200만톤 규모로 즉각 증설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는 프랑스의 세계적인 생수 기업 에비앙의 연간 생산량 180만톤을 능가하는 수치다. 농심의 투자 소식에 백산수는 자연스레 광고효과를 누리게 됐고 성장세를 탔다. 하지만 연매출은 250억원 수준으로 간신히 생수시장 4위를 지키고 있다. 사실상 투자에 비하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라면·커피·생수’
3대 주력사업 굴욕

농심은 삼다수의 ‘청정 이미지’에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 백산수의 수원지 백두산을 내세우고 있다. 농심은 백산수가 ‘세계 3대 청정지역’인 백두산의 물이라는 점을 알리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농심은 백산수 취수원 표기 논란으로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사고 있다. 국내에서는 백산수가 ‘백두산’ 물이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중국에서는 ‘장백산’물이라고 표기하기 때문이다. 장백산(長白山·창바이산)은 중국인들이 백두산을 부를 때 쓰는 명칭이다. 국내에선 이를 동북공정과 연관 짓는다. 애국과 맞닿아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 국내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 김수현과 전지현의 경우 취수원 ‘장백산’으로 표기된 중국기업 ‘헝다생수’ 광고 모델로 나서 많은 국내 팬들이 등을 돌렸다. 그런데 중국기업도 아닌 국내기업 농심이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표기한 만큼 비난여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아직까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를 알고 있는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미 농심은 ‘매국노’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농심은 해당 국가 공식표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농심 관계자는 “기업의 문제와 애국심의 문제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사실상 중국인들은 백두산 자체를 모른다”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도 (백산수 취수원을) 백두산이라고 표기하고 싶었다”면서도 “장백산은 중국의 공식 지명이라서 그 나라 정부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회장님 야심작
커피사업 굴욕

신 회장이 직접 이름까지 짓고 야심차게 진두지휘한 ‘강글리오’마저 커피시장에서 기를 못 펴고 있다. 농심의 커피브랜드 강글리오는 시장 점유율을 집계하기 힘들 정도다. 롯데마트가 2분기 ‘강글리오 커피’ 판매 현황을 집계한 결과 판매 비중이 전체의 0.4%에 그쳤다. 이마트와 홈플러스에서도 농심 커피는 통계로 잡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농심은 녹용(사슴 뿔)성분을 함유한 커피믹스 강글리오를 비롯해 꿀사과맛 커피 등을 출시했다. 커피에 ‘건강’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를 내세웠지만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자사 계열사인 농심미분이 생산하고 농심이 유통을 맡은 우리쌀 프리믹스(부침·튀김가루)도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기존 업체들의 지배력이 워낙 커 시장진입이 쉽지 않은 상태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커피시장은 기존 업체들이 탄탄한 기반을 다진 상태여서 소비자들의 입맛을 바꾸기는 쉽지 않은 구조”라며 “신 회장이 특별히 신경 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커피에 건강이라는 콘셉트는 사실상 소비자들에게 너무나 생소하고 이상한 조합이라 이목을 끄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강글리오의 실패로 최근 농심이 새로운 커피브랜드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농심은 “알려진 ‘코리아노’라는 명칭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아직까지 개발 중이라서 공개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선 그었다.

내년 창립 50주년을 맞는 신 회장. 라면, 생수, 커피 등 세 가지 고민을 어떻게 풀어낼지 식품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농심 ‘과대포장’ 딜레마

농심은 제과시장에서도 내수 성장 침체라는 벽에 부딪혔다. 양도 많고 값도 싼 수입과자의 등장에 소비자들이 국산 과자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산과자의 과대포장과 가격거품 논란에 ‘국산과자 불매운동’ 조짐까지 불거지고 있다.

농심은 지난 2월 새우깡 10% 등 스낵, 즉석밥 가격을 평균 7.5% 인상했다. 하지만 제품 가격인상 이후 실적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될 전망이다. 국산과자를 외면하고 있는 분위기 탓이다. 아직까지 농심의 타격은 크지 않지만 국내 제과업계는 전체적으로 2분기 국내 실적이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내수성장 정체에 직면한 농심은 타개책 마련에 분주하다. 국산과자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농심은 올해 초 ‘업계 최초 수출 100개국 돌파’라는 글로벌 경영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이미 본사에 해외시장개척팀을 신설해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등의 신시장을 발굴, 개척하고 있다. 아울러 해외시장개척팀을 중심으로 지난 5월 아프리카 니제르에 판매망을 갖췄다. 방글라데시와 소말리아 등으로도 수출을 확대하기 위해 현재 현지 조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양 적고 과다 포장된 수미칩, 입친구 등 농심과자가 해외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대다수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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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