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세광 자백 사건의 오해와 진실

김기춘의 진짜 역할은 무엇이었나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한국 현대사의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으로 꼽히는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의 범인은 재일한국인 문세광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현장에서 체포된 문세광의 자백을 중앙정보부장 법률보좌관을 맡고 있던 김기춘 검사(현 청와대 비서실장)가 소설 <자칼의 날>을 이용해 받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일요시사>에 ‘문세광 자백 사건은 잘못 알려져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김 실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추석연휴가 끝난 직후 <일요시사>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가 쓴 ‘박근혜, 김기춘 못 버리는 세 가지 이유’라는 기사의 일부 구절에 이의를 제기하는 내용의 전화였다. 자신을 소설가 황천우라고 밝힌 그는 “김기춘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모친 육영수 여사를 피격한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는 구절이 잘못됐다”며 조목조목 근거를 제시했다. 하지만 세간에는 김 실장이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실장 본인도 과거 복수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문세광의 자백을 받아냈다고 증언했다.

육영수 피습

2005년 1월 노무현정부가 공개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관련 문건에 따르면 문세광은 1972년 9월 조총련 간부 김호룡에게 포섭돼 북한으로부터 암살 지령을 받고 1974년 7월 일본 오사카 소재 파출소에 침입해 권총을 훔쳤다.

그해 8월6일 훔친 권총을 가지고 항공편으로 한국에 들어온 그는 열흘 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29주년 광복절 행사 도중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려다 실패하고 육영수 여사에게 총격을 가해 숨지게 했다.

당시 신직수 중앙정보부장 법률보좌관이었던 김기춘 검사는 사건 발생 다음날인 16일 오후 신 중정부장의 지시에 따라 문세광 조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김 실장은 2005년 1월21일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당시 중정부장 보좌관으로서 8·15광복식장에서 그 사고가 나자 문세광이 중정 수사팀에 인계돼서 왔는데, 심문을 받고도 그 다음날인 8월16일 오후 5~6시경까지 묵비하고 일체 질문에 답을 안 했다. 그러니까 당시 (신직수) 부장께서 나에게 혹시나 하고 한번 수사팀에 합류해서 말문을 열도록 신문을 해보라고 해서 수사에 참여해 프레드릭 포사이스가 쓴 소설 <자칼의 날>로 말문을 열게 해 그날 밤 자백을 이끌어냈다.”

<자칼의 날>은 프랑스의 비밀 군사조직이 자칼이라는 테러리스트를 고용해 드골 프랑스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내용을 담은 대표적 테러·공작 소설로 문세광이 즐겨 읽었던 책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황천우 작가는 김 실장의 주장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황 작가는 <일요시사>에 보낸 자료와 통화에서 “사건 발생 직후 김일두 서울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가 설치되고, 김 본부장은 문세광의 자백을 근거로 당일 밤 11시30분에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다음날 오전에는 문세광의 사상성분과 학·경력 그리고 가족상황 등 세밀한 부분까지 자백을 받았다는 내용의 2차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김 실장이 문세광과 대면하기 이전 수사가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얘기다.

<자칼의 날> 이용한 문세광 자백은 허구?
김기춘-문세광 만남 전 순조롭게 수사 진행

실제로 1974년 8월16일자 <조선일보>에는 사건의 배후, 경위, 문세광의 사생활 등이 상세히 보도되기도 했다. 한술 더 떠 1974년 8월15일 <동아일보>에 박경석 주일 특파원이 송고한 기사에는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의 범인은 일본에 귀화한 문세광, 일명 문세웅으로 알려졌다”는 글귀를 시작으로 문세광의 주소, 직업, 한국입국 과정 등이 상세히 기술돼 있다.

당시 <동아일보>가 석간이었다는 점과 기사 마감시간을 고려한다면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기사를 송고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시점에서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 범인이 문세광임을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사건 당일 오전 중정 직원이 문세광이 묵던 조선호텔에 나타나 방에 있던 그의 물건들을 압수해 가기도 했다. 종합하면 사건 발생을 전후해 중정은 이미 문세광의 행적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일부 보수언론에서도 이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는 문세광이 묵비권을 행사했고, 또 최초로 문세광의 자백을 이끌어냈다는 김 실장의 증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에 대해 황 작가는 “김 실장은 묵비권을 행사하는 문세광으로부터 자백을 받기 위해 수사에 참여한 것이 아니다”라며 “당시 신직수 중정부장이 수사방향에 관한 모종의 지침을 주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심에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도 한몫하고 있다. 사건 발생 당시 북한은 남한에 대한 이른바 꽃놀이패를 쥐고 있었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의 부당성을 들어 북한은 남한을 상대로 남북조절위활동, 심지어 남북적십자회담까지 중단하겠다는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일본과도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관계가 좋지 못했고, 내부적으로는 유신반대 학생운동이 늘어나고 있던 터였다. 박정희정권이 안팎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던 상황에서 북한이 프로암살자도 아닌 권총사격 경험이 전무한 문세광을 사주해 박 대통령에 대한 암살을 시도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실제로 문세광의 총에서 발사된 5발의 총알은 모두 자신의 의지대로 가지도 못했다. 일탄은 자신의 장딴지에 발사했고, 이탄은 연단, 삼탄은 불발, 사탄은 대응사격을 취하는 박종규 경호실장을 겨냥했지만 육영수 여사의 머리, 오탄은 국기에 맞았다.

문세광의 테러과정을 봐도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행사 전날 갑자기 청와대 경호실에서는 경비 완화 지시가 내려졌다. 심지어 경호실장 지시하에 몸수색을 하지 말라는 명도 내려졌다는 당시 경호관의 증언도 있다. 이와 같은 경호실의 조치는 초청장도 비표도 없었던 문세광이 행사장에 권총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굿판의 저주?

이러한 정황들을 근거로 황 작가는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문세광이란 꼭두각시를 내세워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한 굿판이었다. 그런데 그 굿판에서 안타깝게도 저주가 발생해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명을 달리했다”며 “김기춘 실장에게 이 사건 조사에 참여하게 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김일성이 문세광에게 ‘박정희 암살지시’를 진짜로 내렸는지를 묻고 싶다”고 말했다. 과연 묻히고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carpediem@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인터폴 적색수배’<br> 황하나 근황 포착

[단독] ‘인터폴 적색수배’
황하나 근황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마약 투약 혐의로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은 황하나가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해 1월31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황씨를 형사 입건했다. 앞서 황씨는 2023년 9월, 영화배우 고 이선균을 협박한 유흥업소 실장 김모씨 등과 함께 내사를 받아왔다. 지난해 2월 과천경찰서는 황하나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간이시약 검사 등을 통해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했다. 수사를 받던 황씨는 돌연 태국으로 출국했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마약과 성매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추가 혐의가 드러나자 태국에 있는 황씨를 검거하기 위해 인터폴 적색수배와 현지 영사 조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폴 적색수배 중인 황씨는 지난 1년 사이 캄보디아로 이동했다. 유튜브 채널 ‘크라임넷’을 운영하는 제보자 A씨에 따르면 현재 프놈펜 소재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한국인 남성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태국으로 도주한 황씨는 자동차 관련 사업체를 운영하는 현지인 N씨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 N씨는 태국 상류층을 뜻하는 ‘하이소(High-Society)’로 분류되는 유명인사다. 황씨의 지인이자 한국에서 모델 활동을 했던 여성 Y씨는 “(자신과 함께) N씨가 클럽, 유흥업소 등에서 황씨와 파티를 즐겼다”고 알려왔다. 태국에서 상위 10% 미만에 속하는 재벌인 하이소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파티를 즐길 뿐더러, 전관예우 등에 따라 현지 경찰의 수사가 어려운 대상이다. 황씨가 N씨의 비호를 받아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왔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Y씨를 비롯한 다수의 제보자는 황씨가 태국, 캄보디아 등을 오가며 성매매,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고 전했다. 황씨는 한국에 있던 Y씨 등을 불러 현지 남성과의 성매매를 유도하기도 했다. 이 밖에 황씨는 과거 방송인으로 활동했던 에이미(이윤지) 등 유명인들과 어울리며 여유로운 삶을 이어갔다. 현지 정보망에 따르면 황씨는 하이소들과 함께 했기에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하이소의 권력이 얼만큼인지 나타내는 실제 사례도 있다. 스포츠음료 ‘레드불’ 공동 창업주의 손자 오라윳 유위티야의 뺑소니 사망사건이다. 오라윳은 2012년 9월 방콕 시내에서 술과 마약에 취해 페라리를 과속으로 몰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근무하고 있던 경찰관을 치어 숨지게 한 후 도망쳤다. 그러나 경찰은 사고 후 스트레스로 술을 마셨다는 오라윳 측 주장을 인정하고 음주 운전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오라윳은 불기소됐고, 이후 마약 복용에 따른 처벌도 면했다. 경찰 추적 중에도 호화 생활 동남아 오가며 ‘환락 파티’ 2022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마약법 개정으로 만료됐다고 현지 검찰총장실 대변인이 밝혔다. 1979년 제정된 마약법을 보면 코카인 불법 복용자는 6개월~3년 징역에 처하고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오라윳의 공소시효는 그해 9월3일에 만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21년 12월 발효된 새로운 마약법에 따르면, 코카인 복용은 징역 1년에 공소시효는 5년이다. 이에 따라 오라윳의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는 자동 기각됐다는 것이다. 오라윳은 이를 틈타 해외로 도주했다. 불기소 결정 뒤 반정부 집회가 열릴 만큼 반발은 심했다. 결국 총리 지시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검찰과 경찰의 조직적 비호가 있었다는 정황도 포착했다. 검·경은 뒤늦게 부주의한 운전에 의한 과실치사에 코카인 불법 복용 혐의도 추가했다. 하지만 오라윳의 행방은 묘연하다. 검찰은 경찰이 오라윳을 체포해 데려오기 전까지는 마약 복용 혐의로 기소할 수 없다고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현재 오라윳에게 남은 혐의는 과실치사뿐이며 공소시효는 2027년 9월3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를 종합하면, 황씨는 동남아로 도주하기 전 마약을 투약한 것과 더불어 지인에게 마약을 권하기도 했다. 황씨의 지인 J씨는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황하나가 나에게 좋은 거 있는데 해볼래?”라며 팔에 주사로 된 약물을 주입했다. 그는 “좋은 거라길래 설마 했는데,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토를 하게 됐다”며 “정신을 차려 보니, 주변에 주사기들이 놓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J씨는 “마약을 투약한 것 같다”고 경찰에 자수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이어 황씨는 지난해 3월19일 취재진과 통화에서 “술은 왜 마셔요? 마약이 더 좋은데”라며 “왜 기자들은 내 기사만 쓰는지 모르겠다. 다른 약쟁이들도 많은데, 좀 취재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황씨의 아버지 황재필씨는 “딸이 적색수배된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카카오 메시지를 읽었지만, 묵묵부답이다. 태국 재벌 ‘하이소’ 조력 “나 잡아봐라” 수사망 피해 한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로 전환된 황하나에 대해 출국금지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것이 의아하다”고 말했다. 적색수배가 내려진 황씨가 이번에 귀국하게 되면, 앞으로 1년 이상 태국에 재입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이자, 동방신기 출신 박유천의 전 약혼녀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두 사람은 2018년 9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수차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았다. 황씨는 2019년 11월 항소심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면서 석방됐다. 앞서 여러 차례 마약 투약으로 처벌받은 이력도 있다. 2015년 5~9월 자택 등에서 필로폰을 세 차례 투약했다. 2018년 4월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 없이 사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집행유예 기간 중인 2021년 7월9일 재차 마약을 투약해 1심 판결로 추징금 40만원에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9년에 마약 투약죄로 선고받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동종범죄 재범에 이종범죄까지 저지른 대가로 가중처벌을 받은 것이다. 당시 마약 혐의와 함께 2020년 11월, 시가 500만원 상당의 명품 신발 등을 훔친 혐의도 받았다. 기소된 이후 세 차례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2021년 10월28일 2심 판결서 검찰은 황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구형했다. 황씨는 최후 진술에서 “휴대전화도 없애고 시골로 내려가 열심히 살고 제가 할 수 있는 성취감 느끼는 일을 찾아 열심히 살아보겠다”면서 “지난 3~4년간 수면제나 마약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제가 너무 하찮게 다뤘고 죽음도 쉽게 생각하며 저를 막 대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변론했다. 그해 11월15일 2심 판결서 재판부는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8개월을 선고했다. 추징금은 4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태국서 이동 이후 2023년 이선균 마약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황씨를 포함해 총 8명이 마약을 투약한 단서를 포착하고, 일부는 형사 입건해 내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황씨는 내사자 신분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내사 대상에 오른 인물 1명과 성명불상자 1명을 공갈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사실도 파악했다. 다수의 제보자들은 “황하나는 이선균이 협박당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이선균을 협박해 금품을 뜯은 전직 영화배우 박모씨와 유흥업소 여종업원 김씨의 협박 행각이 검찰 공소장을 통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