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머신 대부' 정덕일 롤러코스터 인생

'파친코 왕' 허망하게 잠들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슬롯머신 대부'로 알려진 정덕일씨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 정씨는 한 시대를 풍미한 '파친코 왕'으로 1990년대 6공 최대 스캔들인 '박철언게이트'를 촉발시킨 장본인이다. 정씨는 지난 15일 자택에서 호흡에 이상을 느껴 병원으로 후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슬롯머신 대부 정덕일씨의 빈소가 서울순천향대병원 VIP실에 마련됐다. 평소 지병이 없던 정씨였기에 빈소를 찾은 지인들은 그의 허망한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형 덕진씨와 함께 슬롯머신 사업으로 권부의 핵심에 이르렀던 그는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돈 쓸어 담아

'음지'에 있던 정덕일이라는 이름은 1993년 '양지'에 알려졌다. 정씨는 같은 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되며 '슬롯머신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죽는 순간까지 정씨는 슬롯머신의 대부란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과거 정씨가 자신의 사업을 확장시킨 배경은 이렇다. 1980년대 중반까지 슬롯머신 업소는 허가받은 일부 호텔에서만 영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을 치르면서 슬롯머신 업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93년 당시 79개 업소가 서울에 문을 열었고, 전국적으로는 330여개의 업소가 새로 생겨났다고 한다.

문제는 이처럼 우후죽순 번지는 슬롯머신 업소를 제재할 제도적 장치가 미비했다는 점이다. 사정당국의 단속 의지도 없었다. 사행성 조장, 승률조작, 탈세 등의 우려에도 사정기관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슬롯머신 업자들은 이들 사정기관과의 '검은 공생'으로 국내 슬롯머신시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다.


이 과정에서 '신데렐라'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정씨의 형 덕진씨다. 덕진씨는 주먹세계의 신흥강자로 군림하며 슬롯머신 업소 9곳을 운영했다. 호텔도 5개나 갖고 있었다. 돈냄새를 맡은 조폭들은 덕진씨와 한 배를 탔다. 이들은 덕진씨의 호텔을 기점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슬롯머신 업소가 호황을 맞으면서 덕진씨와 '파친코 왕' 정씨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당시 이들 형제에게 돈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유력 정치인 및 사정기관 고위 관계자가 정씨 형제를 비호하고 있다는 루머가 확산됐다. 실제로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쓴 회고록 <청춘은 맨발이다>를 보면 정씨의 부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신씨는 1987년 지인의 주선으로 정씨를 만난 뒤 친형체처럼 가까워졌다. 이로부터 몇 년이 지나자 정씨는 서울 석촌호수 맞은편에 뉴스타 호텔을 지었다. 정씨의 사업은 실패를 몰랐고 급기야 그는 신씨에게 스폰을 제안했다.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였다.

그렇지만 신씨는 "영화를 하고 싶다"며 거절했고, 그럼에도 정씨는 선뜻 1억원의 수표를 건넸다. 1990년대 초반 정씨는 노태우정권 최고 실세였던 박철언 의원을 소개해달라고 신씨에게 부탁했다. 신씨는 자신의 경북고 후배인 박 의원을 정씨와 만나게 해주었다.

신씨는 정씨에게 1987∼1993년까지 모두 40억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돈은 모두 영화제작에 쓰였다는 것이 신씨의 주장이다.

이처럼 '파친코 왕'은 상상을 초월하는 비자금을 사회 각계각층에 살포했다. 자신들을 외풍에서 막아줄 비호세력을 찾은 것이다. 정씨가 쓴 돈은 일종의 '공작금'으로 이해됐다. 정씨가 무차별로 뿌린 돈에 사회고위층이 중독됐다. 자타공인 6공 2인자였던 박 의원도 검은 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검은 돈의 뿌리는 깊고도 단단했다.

재기 준비하다 자택서 심장마비 돌연사
6공 최대 스캔들 '박철언 게이트' 주역


그의 화려한 전성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철퇴를 맞았다. 1993년 김 전 대통령은 사정당국에 '거악 척결'을 지시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홍준표 검사(현 경남도지사)는 정씨를 비호한 조폭, 정치인, 검찰 등에 대한 사정작업을 벌였다. 권력층은 긴장했다. 슬롯머신 사업권을 둘러싼 로비에서 자유로웠던 정치인이 많지 않았던 탓이다.

심지어 정씨의 큰형 덕중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자신이 직접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상황이었다. 정씨는 1992년 당시 대선후보였던 YS의 선거운동에 깊숙이 개입했다. 생전 정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YS가 나를 친아들처럼 대해줬다"며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씨 일가는 YS가 휘두른 매서운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일격을 당한 셈이다. 정씨 일가 입장에선 '대통령이 되도록 도왔는데…'라는 원망이 나올 법도 했다.

검찰 수사에서 정씨 일가는 관료와 정치권 등 사회 권력층이 대거 연루된 게이트의 꼭대기에 이름을 올렸다. 요샛말로 '정덕일 리스트'가 수사대상이 된 것이다.

작심한 홍 검사는 정씨 형제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정씨가 전날 검찰에 자진 출두 의사를 밝혔는데도 호텔을 급습해 기어이 체포했다. 검찰은 정씨가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5억원이 담긴 007가방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박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 등 각종 비리 혐의를 밝혀냈다.

최초 박 의원은 금품수뢰 혐의를 부인했지만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등 권력층 인사가 줄줄이 구속되면서 수사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끝내는 정권 '넘버2'인 박 의원도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후 홍 검사는 일명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탔다. 지금은 정치인으로 변신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돈을 건넨 정씨는 저 유명한 '플리바게닝'으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박철언 게이트' 이후 정씨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들까지 대거 동원해 군 위문공연을 다녔다는 정씨는 유착했던 정관계에서 영향력을 급격히 잃었다. 신씨 등 연예인에게 수억원이 넘는 용돈을 건넸던 위세도 잠시, 정씨는 세월이 지나면서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2000년대 들어 정씨는 제주도 모 호텔에서 카지노를 운영하며 '카지노의 대부'로 자리하는가 싶더니 최근 투자실패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카지노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300억원 규모의 제주도 부동산을 '경매사기'를 당해 헐값에 빼앗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기를 꿈꾸던 정씨는 한줌의 재로 돌아갔다.

'검은돈' 뿌려

정씨의 빈소 앞에는 정관계와 연예계 인사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빼곡했다. 그러나 정씨의 유족들은 취재진의 접근을 철저히 막아섰다. '음지'에서 꽃폈던 정씨는 결국 '양지'로 돌아오지 못했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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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